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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들국화 |2004.10.07 11:32
조회 720 |추천 0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꺼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원곡이 Secret Garden 의..SERENADE TO SPRING 입니다.
여기에 우리말 가사를 붙여서 테너 <김동규>씨와
소프라노 <금주희>씨가 부른곡으로
[DETOUR]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년 봄에 처음 알게 된 곡인데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참 좋아하는 곡입니다.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다시 맞이하는 아름다운 시월..


 

황금물결이 출렁대는 들녘..가냘픈 몸매로 하늘거리는 길가에 코스모스..

보랏빛의 쑥부쟁이며 지천에 깔린 하얀색의 작은 개망초 꽃...

이름모를 수많은 알록달록한 꽃들..빨갛게 익어가는 감과

입을 쩍쩍 벌린 밤송이들...

 

 

명절 연휴 차를 타고 시골을 오가며 내내 차창 밖으로만 눈길을 주었다.

한 차례 긴 몸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서일까..가을 산과 들은 여느때보다

아름답고 자연의 오묘함과 그 아름다움 푹 빠져버린 괜스레 눈물이 나려한다.

 

 

 

늘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어머님...뵐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하시는지...

왜 그렇게 야위어 가시기만 하는지..볕에 말린 좋은 고추는 장에 내다 파시고 

집에는 병들고 희끗희끗한 무녀리 고추를 빻아서 드셨다는 어머님.

그러시는 어머님이 우리에게 고춧가루를 주실려고 제일 좋은 고추를 넉넉히

빻아서 집에도 모처럼 좋은 태양초 고춧가루로 김치를 담그셨다고 하신다.

 

 

 

 

명절 이틀 전에 한낮에 도착한 시골집..전날이 5일 장날이어서 늘 해마다

그래왔던 것처럼 어머님께서 장을 본 줄 알았는데 어머님은 그날 김치 담글

배추 석 단과 무만 사서는 그것만 들고 오기도 너무 무거워서 장을 못 보셨단다.

그날 어머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무거운 배추 다발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는 외소한 몸에 많은 인파에 떠밀리며 버스 정류장까지  얼마나 땀을

흘리며 오셨을까..

 

 

 

 

그러고도 그날 배추를 절여 밤늦게까지 김치를 담그신 어머님.쌈짓돈 통장이

몇 개나 되면서도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어머님은 절대 택시를 안타신다.

자식들과 손주들에게는 펑펑 쓰시면서 당신께는 왜 그렇게 야박하신지..

아무리 용돈을 드리고 택시를 타고 다니시라 해도 그 돈은 모두 고스란히

어머님 통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안다.

 

 

 

자식이 땀 흘려서 힘들게 번 돈이라는 그 생각에  분명 또 못 쓰시리라.

대형 할인매장에 들러 간단한 선물과 술, 고기만을 사가지고 갔기에 

추석전날 어머님과 장을 보았다. 송편도 만들기 힘들고 번거롭다고

떡집에 맞추셨다는 어머님... 비록 가족들이 다들 떡을 안 좋아 해도

해마다 한 됫박이라도 집에서 만들었었는데....

 

 

올해는 산에 솔잎따러 가기도 다리가 아파  힘들고 귀찮다고 편하게

하시겠다는 어머님...한 해 한 해 달라지시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올 추석엔 더 많이 마음이 아프도록 야위셨다.

그런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년부터는 명절 장을 봐 가지고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엄마~ 작엄마~를 부르며 나를 따르는 네 살 박이,일곱 살 박이 조카 녀석들...

다행스럽게도 아픈 몸을 이끌고 끙끙거리며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치수는

몇 호로 사야하나 이리 재고 저리 재며 고민을 해가며 한시간을 넘게 골라

녀석들에게 사다 준 추석 빔은 크지도 작지도 않게 넉넉하니 잘 맞았다.

 

녀석들은 작엄마가 사 준거라며 추석날 아침 그 옷을 입고는

폴짝폴짝 뛰면서 이뿐짓을 한다.

 

 

 

 

해마다 조금씩 변하는 아주버님과 형님.. 아주버님은 요즘 부쩍 눈에 띄게

우리가 올 때면 신경을 쓴다고 그이는 말한다. 추석 일주일전 벌초 때도

그이가 내려갔는데 아주버님은 싸리버섯을 따다가 그이에게 싸리버섯이

들어간 맛난 돼지고기 찌개를 먹을 수 있게 해 주셨고,그이가 올라올 때

가지고 가라며 내 몫을 따로 싸리버섯을 챙겨 두셨다는 아주버님..

 

 

그  버섯을 서로 가지고 가려고 해서 그이가 대전에 사시는 당숙 어른께

드렸다고 한다. 비록 먹진 않았지만 먹은 것 보다 아주버님이 날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더 고맙다. 내 모습이 포장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바로 봐 주시니 그게 더 고맙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 후 밖으로 볼 일을 보러 나가셨던

아주버님은 큰 비닐봉지를 들고 대문을 들어와 물에 담궈놔요~ 하면서 내게

겸연쩍게 내민다. 올갱이(다슬기)였다. 한말은 넘을 듯한 많은 양을 한 동네

후배가 그물로 끌어서 잡아 가지고  오는데 그대도 몽땅 샀다는 것이다.

 

 

 

 

올갱이를 무척 좋아하는 나... 그래서 나는 아욱과 부추를 넣은올갱이 국을 

잘 끓이는 편이다. 남편은 물론 인정을 하고 올갱이 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먹어 보고는 올갱이 국 음식점을 차리라고 할 정도로 아주 진하게 끓인다.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해 주셨던 올갱이 국...나는 그 맛을 생각해가며

올갱이를 된장을 연하게 푼 끓은 물에 푸르스름한 물이 진하게 우러나도록

오래도록 푹푹 삶아 물이 반쯤으로 줄었을 때 올갱이를 건져 낸 후 

졸아서 간이 짜진 국물에 물을 더 붓고 다시 끓여 아욱과 부추, 마늘을

넉넉히 넣어 끓인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그이를 위해 꼭 고추가루 양념을 한 다진 양념만 준비해 놓으면

뜨거운 국물에 올갱이 한 숟가락, 다진 양념 반 숟가락 넣고 풀어서 밥을 말아 먹으면

땀을 흘려가며 한 그릇 금방 뚝딱하고는 아~~맛있게 잘 먹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올갱이 국 한 그릇에 다진 양념만 있으면 일체 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다.

심지어 김치 조차도...

 

 

추석 연휴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난 남편에게 그 동네 가게 앞에 잠시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거기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기에...예전 어린시절 할머니와 살 때 난 늘 그 크고

단단한 탱자나무 가시를 따서 올갱이를 빼 먹었다. 올갱이를 빼 먹는 데는 이쑤시개나

바늘도 있지만 탱자나무 가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작은 녀석 가졌을 때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올갱이 국..그때 어머님은 다니러 오시면서

먹고 싶은 거 다 얘기 하라며 시골에서 전화를 하셨었다.

그때 난 무심코 어머님..저 올갱이 국이 먹고 싶어요. 했더니 먹고 싶은 게 겨우

그거냐 라고 하시며 ... 알았다 내가 사가마..하셨는데.... 

 

올라오는 날 기차를 타러 일찍 나오셔서 올갱이를 사려고 장터를 다 헤맸는데

올갱이를 파는 사람이 안 보이더란다. 어머님은 크게 실망을 하시고 올갱이를

못 사면 안 올라 오실려고 하셨는데 마침 한 쪽 구석에 용케도 올갱이 장사가 있어

올갱이를 샀기에 그날 우리 집도 올 수 있으셨다던 예전 어머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예전엔 옥천 금강 올갱이 하면 많이 알아 주었지만 몇 년 전 여름 수해를 입어서 크게

공사를 한 후에는 올갱이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아주버님이 사 온 올갱이도

예전의 껍질이 얇으며 매끄럽고 짧고 검은빛의 통통한 모습의 올갱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인 껍질은 이로 깨물어도 안 깨물어질 정도로 두껍고  단단하며

우툴두툴하고 길고 가늘었다.

 

 

환경에 따라 그렇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올갱이도 변하나 보다.

아주버님은  말은 안 하시지만,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 올갱이를

몽땅 사 오신 건가보다. 사실 난 아주버님이 나한테는 못해도 좋으니 앞으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어머님께 따뜻하게 더 잘 해드렸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유난히 올 추석엔 예전엔 잘 들르지도 않던 많은 친척 분들이 성묘를 다녀오며 들어오신다.

어머님은 요즘 돈 주고도 잘 못 사 먹는 귀한 올갱이 한 사 발, 햅쌀 한 됫박, 봄내 꺾어

말려 둔 고사리를 한 뭉치씩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건넨다. 아무리 부자라도 쉽게 못 구하는

귀한 음식들...비싸고 좋은 것 싸 주어도 다들 마다하면서도 고향의 옛 향수가 느껴지는

음식들은 누구나 사양 않고 서로들 보물인양 소중하게 자기 몫을 챙긴다.

 

 

 

 

 

우리가 내려간 날 어머님은 어느새 타작을 해서 이틀간 마을앞 도로가에서 가을볕에 말려 방아를

찧어 온 햅쌀로 밥을 해 먹어 보자며 저녁밥 지을 때 묵을 쌀을 두고도 햅살을 하라고 하신다.

어머님은 우리가 명절에 오면 햅쌀로 지은 밥을 먹이려고 부지런히 도로가에서 나락 알갱이를

골고루 저어가며 볕에 말리셨을 것이다.

 

 

형님도 해마다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서툴지만 하려고 노력하고 형님이라고

나이 많은 손아래 동서 챙겨주는 모습이 보인다. 차례를 지낼 무거운 상을 혼자서 나르는 일,

밥 먹으라며 챙겨주는 일, 음식 할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 커피 같이 마시자며

따뜻한 커피를 타서 내미는 모습...난 그렇게 심하게 앓던 몸살도 시골에서는

긴장을 해서인지 공기가 좋아서인지 잠시 주춤해서 아픈 것을 못 느꼈다.

 

 

 

추석날 오후엔 두 녀석들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영동의 가로수를 

지나쳐서 부모님과 조부님의  산소를 찾았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절을 하고는 맨 마지막 어머니 산소 앞에 가족은 언제나 그랬듯이 주저앉았다.

남편은 절을 하고 난 후에도 장인어른, 장모님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돌봐 주십시오.

라고 말을 한다. 고마운 사람..그래도 명절 때 날 낳아 준 부모라고 내가 말을 안 꺼내도

해마다 추석이면 가족을 데리고 먼저 성묘를 와주는 그이가 고맙기만하다.

 

 

그리고 남은 청주를 내게도 한 잔 건네주고 북어를 쭉 찢어 안주를  하며 그이도 한 잔 마신다.

그럴 때마다 난 할머니가 더 그립다. 산소가 멀리 떨어져 계시기에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스러운

마음만 앞선다. 늘 다음엔 부모님 산소를 거르고 할머니 산소를 찾아뵈어야지...하면서도

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이십 오 육년이 지났건만 난 할머니의 산소를 한번도 가보질 않았다.

그러하기에 어딘지도 모르며 갈려면 큰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찾지 않을까 싶다.

 

 

 

한번도 찾지 않는 손녀딸을 얼마나 할머니께서 날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실까...알면서도

할머니 마음 다 알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안 된다. 어쩌면 내가 아무리 할머니께 섭섭하고

못되게 해도 할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기에 한결같은 맘으로 나를 사랑해 주신다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살아생전에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가끔 그러셨지...

"아이구~~우리 똥강아지~~~이 할미 죽으면 어떻게 살래?" 라고......

난 그때마다 늘 할머니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매 죽으면 나도 따라 죽지~" 라고

철부지 어린 나이에 생글거리며 늘 똑같은 말로 대답을 하곤 했었다.

그런 철부지 손녀를 바라보며 할머니 마음은 어떠셨을까...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 우리 똥강아지 시집갈 때 까지만 살아야 하는데...

시집은 보내 놓고 눈을 감아도 감아야 하는데..." 라고 말끝을 흐리곤 하셨던

기억이 난다.

 

 

몇 해 전 추석 연휴 귀성 길에 차가 많이 막혀서 국도를 타고 속리산으로 보은으로

돌아서 옥천에 오다가 해질녘 별로 어둡지도 않은 때인데도 그이가 그만 어찌된 일인지

옥천군 안내면 쯤에서 길을 잃고 깊은 산골길로 들어갔다.

같은 옥천인지라 그리 헤맬 일도 아닌데...그때 그이는 그곳을 헤매다가 벗어나더니

이렇게 내게 말을한다.할머니가 손녀딸과 손녀사위, 증손주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잠시 이곳으로 불렀나 보라고.....난 그때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나와 헤어진 그 해 가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이 곳 안내면에 위치한 산골짜기

큰댁에 계셨고 그 곳에서 눈을 감으셨다. 그 후에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어딘지 모르기에 그냥 세월만 흘러 보냈다. 하지만 할머니는 지금도 서른아홉이나 먹은

이 못된 손녀를 여전히 사랑하시나 보다.

 

 

11살 가을에 본 할머니의 모습이 마지막 이였는데...그 후 아무도 내게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내게 할머니 얘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은 서로 쉬쉬했는지도 모른다.

한번도 찾아뵙지 않는 못된 손녀를 할머니는 여전히 땅 속에서 조차 맘 편히

지내시지 못하고 지켜주시나 보다.

 

이렇게 내가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면...못된 손녀는 지금도

늘 할머니의 그늘 속에서 끝없는 내리사랑만을 받아먹고 사나보다.

 

 

내년 추석엔 아니 내년 여름휴가 때라도 할머니의 산소를 알고 있는 누군가를 

앞세워서 할머니 산소를 꼭 찾아야겠다. 그이한테 속내를 말하고 싶어도

번거로운 부담을 안겨주는 것 같은 미안스러운 마음이 먼저 앞서 할머니 산소를

찾아 가보자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년엔 꼭 부탁을 해 봐야겠다.

그이도 날 이해해주고 응해주겠지...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할머니가 날 몹시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아니 어쩌면 내가 할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워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추석 다음날 서울로 올라오는 길..어머님은 햅쌀, 고춧가루, 애호박에 그이와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을 듬뿍 따서는 말라서 시들시들 해지면 잘 벗겨지지 않는다며 

껍질까지 곱게 다 벗겨서 넣어주신다.

 

설탕이나 꿀 넣고 푹 고아 먹으라며 누런 늙은 호박도 두덩이 실어 주시고, 

올라가면서 두 녀석들 차 안에서 먹을 주전부리도 잊지 않고 챙겨 넣어 주신다.

어머님의 크나큰 사랑을 어떻게 다 갚을 런지...또 이렇게 듬뿍 난 받기만 했다.

 

 

공주, 아산, 평택으로 이어지는 39번 국도를 타고 올라오는 길...

10킬로가 넘도록 길가에 코스모스가 끊어지다 이어지다를 반복한다. 

일일이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고 해마다 가을이면 씨앗이 떨어져

이듬해에 또 싹이 트고 되풀이하며 스스로 자라난 거라서 빼곡하고

유난히 가늘고 키도 작았다.

 

앞서가는 큰 덤프트럭이 지나칠 때마다 길가에 코스모스는 큰 흔들림으로 

한바탕 파도타기를 한다. 행여 그러다가 꺾기 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에 불과 했을 뿐...... 그 갸냘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흔들림은 이내 잠잠해지고 다소곳한 수줍음으로 제자리로 온다.

분홍, 자주, 빨강, 하양....여러 색이 어울려 함께 피어있을 때 더욱더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명절을 지내고 내색을 못하고 혼자서 한참을 앓았다.

몸이 아픈것 보다 마음의 병이 더 크기 때문이리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또한 가장 아파하는 계절이기도하다.

내가 좋아하는 쪽빛 하늘은 왜 그렇게 드높고 시린지 눈물이 난다.

하지만 아파도 나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생활 속의 곱고 예쁜 자그마한 이야기들이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처럼 쌓여만 간다.

 

 

 

※많이 부족한 제게 혹여 어디가 아프지나 않나 걱정해 주시고

메일로까지 주신 고운님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 드리며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전합니다. 

시월에도 늘 고운님들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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