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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싫어하는 이유

박정희를 싫어하는 이유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것은 그를 지지한다는 사람들 때문이다.  

난데없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요즘 ‘나라가 시끄럽고 어지럽다’고 울분을 터뜨리며 진짜로 나라를 시끄럽고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보수우익 애국세력’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박정희를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뛰어난 ‘일급 지식인’,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며 그에게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박정희를 대하는 태도에서 자기 모순적인 그들의 사상적 비겁과 빈곤을 엿본다. 이를 통해 박정희에 대한 나의 평소 의심을 다시 확인한다.

 

요즘 그들의 궐기는 몇 달 전 의문사조사위 파동에서 촉발됐다. 전향공작에 맞선 장기수 남파간첩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추천한 일에다, 과거 간첩사건에 연루됐다는 의문사위 조사위원이 국군 장성까지 조사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겹쳤다. 마침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나서 ‘간첩이 장군을 조사하는 세상’이라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개폐논쟁도 그 뒤를 이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아픈 과거를 변호하고 감싸안아야 하는 박 대표까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보수우익 애국세력들의 빈곤한 역사의식과 자기모순에 연민을 느낀다. 그 논리라면 남로당 군내 조직책으로 활동하다가 대통령까지 된 그의 아버지를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남로당 프락치가 웬 대통령이냐’는 말 앞에 그는 과연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그의 과거를 트집잡자는 것이 아니다. 식민과 민족상잔을 거치면서 그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될 것인가. ‘보수우익 애국세력’의 우상으로 대통령까지 한 사람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웅변으로 증명하지 않는가. 친일과 좌익, 그리고 우익 군사쿠데타라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것이 그의 과거다. 고통스런 조국의 현대사에서 출세와 영달을 위해 기회주의와 배신으로 일관했고, 그의 행적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정희를 진실로 지지한다면 그를 그런 과거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이를 식민과 민족상잔, 이념갈등으로 점철된 조국의 고통스런 현실에서 한 지식인의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어지는 자기모색으로 싸안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는 박정희가 겪은 상처와 화해하는 것이고, 그와 비슷한 상처를 입은 사람과 그들의 가족들을 보듬어 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를 역사 속에서 사면해 모두 동의하는 이 땅의 지도자로 승격시키는 것이 진정한 지지자들의 몫이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보수우익 애국세력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인 박정희를 기회주의와 배신의 구렁텅이로 더욱 밀어넣고 있다.

 

나라가 ‘내전’ 상태라서 ‘전면봉기’해야 한다며, 해방과 한국전쟁 때를 방불케 하는 이념선동과 투쟁을 일삼는 상황에서 박정희가 살아날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1980년대 공안당국이 그렇게 비난하던 학생운동의 ‘저급하고 생경한 좌파논리’를 방불케 하는 그들의 구국 전략과 전술, 5공 부역세력들이 총출동하여 ‘구국’을 부르짖으면서 ‘애미’(미국사랑)를 강요하는 그 수준 낮음과 자기모순은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역사상 어느 나라의 보수와 우익들이 애국을 말하면서 외국의 국기를 손에 손에 들고 흔든단 말인가. ‘돈을 가지고 있으니 젊은 세대에게 용돈도 주고 밥도 사주며 설득하자’는 것이 요즘 그들의 구국 전략과 전술의 하나라고 한다. ‘가진 것은 돈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모금실적이 부진해 무산위기에 처한 박정희 기념관 건립사업에 그 돈을 왜 안 보태는지 모를 일이다.

 

절망스러운 것은 자신의 지도자도 올바르게 자리매김을 못하는 이 땅의 ‘보수’와 ‘우익’, ‘애국’이라는 가치에 화해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 나는 박정희를 보게 되고, 이 때문에 나는 박정희에 대한 나의 의심을 새삼 확인하며 실망하는 것이다.

 

정의길 사회부 차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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