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들어와서 많은 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사는게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삶이 고달픈 분들의 글을 읽다보면....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소속을 얻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려서 부터 "공부해라.. 공부해라" 소리를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도무지 이놈의 공부가 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알지 못한 채....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만 꽉 채워져 있는 책을 봐야 했습니다.
그러나..저는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았고..책을 보면 이내 잠이 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은 늘 바닥을 기고..선생님한테 학우들이 있는 앞에서...매를 맞아야 했고..
집에 오면 부모님 한테 "넌 커서 도대체 뭐가 될래?" 라는 꾸중을 들으며 또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저는 형들처럼 공부를 못했습니다.
형들은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의자에 앉아 공부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무렵 저는 같은반 여학생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공부도 무척 잘했고...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죠..
그녀의 집은 지금의 놀이방 형태의 유치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집에 놀러가서..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참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그렇게라도 그녀에게 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하자 그녀의 어머님이 나중에 무척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하루는 "너는 반에서 몇등을 하니?" 물으셨습니다.
저는 "저 공부 못했요"라고 했죠..(그때는 그게 흠이 되는 지 몰랐습니다.)
저녁을 먹고..집에 가려고 하는데..그녀의 어머님이 이제 그만 오라고 하시더군요..
어린마음에..집에 돌아오는 길에..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래서..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구나..이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단순히 그녀가 좋았을 뿐이었고..저는 그저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에 그녀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하는 것이 좋았을 뿐인데..
단지..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물론 그녀의 어머님은 다른 뜻에서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겠지만...저는 분명히 그렇게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곤 저의 생활은 달라졌습니다.
왜냐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니..그녀는 저를 무시했던 거 같아서..좋아했던 마음만큼...상대적으로 미움이 커졌습니다...
"그래..나도 공부를 열심히 하자..걔보다 더 열심히 하자"
쉽게 성적이 나오지 않더군요..
당시 제가 다니는 학교는 한 학기에 시험을 두번 봤습니다.
한번은 국어 산수 사회 자연 4과목을 보는 월정고사..
그리고는 전과목을 보는 중간고사...
아무리 공무를 해도..공부에 쏟아 붓는 시간만큼..모르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전에는 알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것들이...공부를 하게 되자..세상의 그무엇보다도 중요한 것들이 되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자..저는 형들에게 특별 과외(?)를 요청했고...더운 여름방학내내..그 땀띠라는 것을 저도 한번 자랑스럽게 새겨보자...생각했습니다.
2학기가 되고..월정고사를 보던 그날..
시간이 수십년이 흘렀지만..지금도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모조리 다 아는 문제들이 나왔던 겁니다.
이전에는 시험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그날만큼은 세상에서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고...
문제를 다 풀고 나서..주윌 봤더니...끙끙대는 친구들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한편으로는 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시죠? 초등학교 시험은 그날 시험치고 그날 채점해서..그날 발표하는 거...
저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 났습니다.
4과목에서 저는 5개밖에 틀리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친구들의 표정을 한 몸에 받으며..(물론 그중에는 그녀의 표정도 있었죠..)
그뒤로..저는 승승장구였습니다.
공부를 잘 하고 나니..선생님의 시선도 저를 보는 것이 달라졌고...
친구들도 달라졌고...
6학년이 되자..저는 반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런 모든 것들은..소속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였나 봅니다.
중학교에서 진학을 하고...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몸부림을 치고...
고3 때 저의 담임은 종종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지금의 1년은 너희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라고..
그랬습니다..정말로 그랬습니다.
어느 대학을 가는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판도가 달라졌으니까요..
하지만..저는 불행히도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제 형들과는 달리 저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고...지방 대학을 갔습니다.
하지만..인생에는 패자부활전이 있죠..
저는 편입에 저의 모든 것을 걸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죽으라고 죽으라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곤..누구나 인정을 하는 그런 대학에 간신히..진학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그속에서도..재학생과 편입생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건..그토록 바라는 소속에서도 다시 소분류의 소속으로 나누어 진다는 것을..알았습니다.
사회에 나와 회사에 입사할려고 해도...편입생은 편입생이라는 꼬리표는 늘상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아..이놈의 지긋지긋한 꼬리표..
우리는.. 어디어디 출신의 사람을 우선 시 합니다..
우리는..어디어디 대학의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어디어디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스스로 우월한 소속에 들지 못한 자(여자)는 우월한 소속에 들어 있는 사람(남자)을 얻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합니다.
(선우 같은 결혼대행사가 그런 연결고리를 마련해 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죠...사람을 소속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또한 그런 소속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주니 말입니다.)
스스로 우월한 소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런 위치에 맞는 사람을 찾습니다.
소속을 갖지 못한 사람은 이사회의 비주류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아마도..그래서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소속을 얻기 위해...더 나은 소속으로 들어 가기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고..자녀들을 채찍하고...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자신의 자녀가 혹시 변변치 못한 소속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고 그래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사회를 한탄하고..인생을 비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지금 2004. 10. 16을 살아오면서....제자신이 불행하다고..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흔히들.."너무 힘들어 하지마..너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그런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
그래..이정도면..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거야..더이상 더 나은 소속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내 인생을 낭비할 순 없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있는 겁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우월한 소속에 있는 사람들처럼..화려한 곳으로 갈 순 없지만...
가까운 친구들과...인근에 있는 관악산의 단풍을 보며..즐거움을 느낍니다.
저의 아버지는 평생 열심히 일을 해서 소나타를 타고 다니시고..
저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인 젋은 사람이 그랜져를 타고..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가끔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소속과 제가 속한 소속과의 그 엄청난 거리를 좁히지 못해 스스로 불행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합니다.
예전에 생활을 비관해 한 어머니가 죽기 싫다는 아이 둘을 아파트 고층에서 던지고 자신도 자살한 기사를 읽으며..
몸이 부르르 떨리는 분노 비스무리한 것을 느꼈고...제가 다니는 회사 앞에 늠름하게 서 있는 고층 아파트를 한동안 쳐다볼 수 없었지만..
그렇지만...저의 정신세계를 보다 더..살찌우기 위해
소속이 가져다 주는 안락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그래도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정된 소속에 모두가 들어갈 수는 없겠죠..만일 그렇다면..그순간부터 그곳은 더이상 우월한 소속이 아닐테니 말입니다.
경쟁을 하다보면 승자가 있지만 패자도 있습니다.
갖을 수 없는 것에 갖기를 원하며 갖지 못한 것에 불행해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제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앞으로도 그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패배자가 갖는 감상주의가 아닌 현재의 위치에 만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어차피..지금의 현실은...영원한 소속도 없고...소속이 영원히 안락을 제공해 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신기루를 찾아 헤매이며..소중한 인생을 허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찾아보면..얼마나..기쁘고 아름다운 것들이 넘쳐 있는지...
삶의 무게에 지쳐있는 분들이여..
그 짐에서는..간단히 버릴 수 있는 짐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짐을 버리면서...꼭 필요한 것들만...지고 가면 어떨까요?
가다가 힘들면..쉬어가고..나보다 앞서 가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혹..나보다 더 힘들어 하는 사람의 짐을 나누어 갈 자세를 갖는 다면..아마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쓸데없는 소릴 한것같지만...
가을은 원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절이니까요...
아래는 작년 무더웠던 여름에 길을 가다가..느낀 것들에 대해 적어 본 글입니다.. ^^;;;
아줌마...............
날씨가 덥다.
덥다. 덥다. 덥다.
이 더운날..길바닥..앉아..채소를 파는 아줌마가 있다.
이 더운 여름 햇빛을 피해 그늘진 나무아래에서 열심히 마늘을 까고 있다.
바구니에는 축 쳐진 아줌마 모습처럼 이미 시들어 버린 야채가 수푹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사지도 않을것 같은데 마늘은 세숫대아에 하나 가득 차 있다.
아줌마라고 하기에는 머리는 하얗게 샜고 손은 주름투성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고 연신..부채질을 하며 거릴 걸어간다.
저 아줌마는 저렇게 한평생을 살았으리라..
저 아줌마의 아들, 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노동자들은 구호를 외친다.
그속에 있을까?
나는 쳐다보기가 민망해 하늘을 본다.
하늘엔 구름한점 없이 햇빛만..강렬하게 내리쬔다.
없는 사람살기엔 여름이고 겨울이고 힘겹긴 매 한가지다.
(2003. 7.14. 방배역 근처 맥도날드 앞에서 어느 행상 아주머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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