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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과의 로맨스 [19] 제이미의 천사

미니미니 |2004.10.20 11:31
조회 1,505 |추천 0

영국 리버풀 근교 시골마을. 밝은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소년이 마당에서 혼자 공을 차고 있다. 해맑은 얼굴에 무료함을 담고 있던 제이미는 폴이 자신을 부르며 뛰어오는 것을 보자 공을 버려두고 달려나갔다.

 

 

"제이미!!!제이미!!! 큰일났어!!"

 

 

"응? 뭔데? 얼른 말해봐!!"

 

 

제이미는 숨을 헐떡이며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폴을 다그쳤다. 새로울 것이라고는 별로 없는 이 조용한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런던으로 이사간 에드먼드네 집에 이사왔어. 포카 혼타스가 이사를 왔다구!!"

 

 

"뭐야? 포카 혼타스? 폴 너 꿈꾸니?"

 

 

시큰둥해서 공을 가지러들어가는 제이미의 등 뒤에 폴이 다시 외쳤다.

 

 

"진짜야!! 지금 짐을 풀고 있다고. 검은 긴 머리에 검은 눈. 포카 혼타스라구!"

 

 

결국 제이미는 끌리다시피 폴과 함께 에드먼드의 집으로 향했다. 보기좋은 적갈색 통나무로 틀을 잡아놓은 2층집이 보이자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에 제이미는 입을 딱 벌렸다.

 

 

"거봐! 내말이 맞지?"

 

 

신이 난 폴의 말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흰 셔츠에 몸에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는 자그마한 그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칼에 노르스름하지만 투명한 피부, 검고 큰 눈동자를 지녔다.

 

 

"이상한 말을 한다. 엄마말로는 한국이란 곳에서 왔대."

 

 

폴이 침을 튀기며 말했지만 제이미는 정신없이 그녀만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서있는 키가 크고 짙은 갈색 머리칼에 갈색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를 한 청년이 제이미와 폴을 보며 살짝 웃었다.

 

 

"으아~~~~"

 

 

깜짝 놀란 폴은 자기 집쪽으로 정신없이 뛰어가버렸지만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그녀와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신비로웠다. 나이를 알수 없는 얼굴이었다.

 

 

"이 동네에 사니?"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에 제이미는 쭈뼛하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오늘 이사왔단다. 앞으로 잘부탁해."

 

 

청년이 말을 하는 동안 그녀는 가만히 미소를 띈 채 제이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슬퍼보이는 눈동자로 가만히 말없이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제이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이미 이거 로자 할머니 댁에 가져다드리고 오렴."

 

 

다음날 오전 엄마가 먹음직스러운 파이그릇을 건내주자 제이미는 들고 있던 게임기를 던지고 일어났다. 로자 할머니 댁에 가는 길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제이미는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흰 스웨터 차림의 그녀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으며 인사를 입으로 연습했다.

 

 

이윽고 그녀의 집 앞에 다다랐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제이미는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색하게 인사를 건냈다. 긴장한 탓인지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그녀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동그랗긴 하지만 자신보다 작은 눈동자가 웃으면서 가늘어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매끈한 볼 위에 작은 볼우물이 패이며 아침햇살만큼이나 밝아보였다.

 

 

 

 

"또 그 집에 갈꺼야? 조심해. 병이 옮을지도 몰라."

 

 

"병? 누가?"

 

 

제이미는 무엇을 주면 그녀가 기뻐할까 고심하며 자신의 보물상자를 뒤지고 있는 중이었다. 난데없는 폴의 말에 제이미는 손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자신의 말에 제이미가 관심을 보이자 기뻤는지 폴이 마구 침을 튀기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얘기했지? 그 여자가 말 못하는 병에 걸렸대. 목소리가 전혀 안나온대. 인어공주 같아, 그치?

 

그리고 그 남자는 리버풀에 있는 대학교에 다닌데.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냐고, 그래서 한국에서 도망쳐서 여기 살고 있는 거 같다고 그랬어. 무슨 일 때문에 자기 고향에서 살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온거라고 아줌마들이 얘기하던데."

 

 

제이미는 폴을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폴은 제이미의 조그맣게 오므리고 있는 입술을 보았다. 저건 제이미가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폴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제이미에게서 멀어졌다.

 

 

 

 

"아니야. 그 사람은 아주 어려보였다구."

 

 

제이미는 풀을 잡아 뜯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람. 제이미의 발걸음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낮이라 그런지 마당은 사람없이 고요했고 커튼이 쳐지지 않은 거실이 바깥에서 살짝 보였다. 제이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레 창가로 다가섰다. 

 

 

아무도 없는 것일까 조심스레 안을 살피고 있는 제이미의 얼굴 앞으로 갑자기 무언가가 휭하니 나타났다. 

 

 

"엄마아!!!!"

 

 

제이미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녀가 창가에 서있었다. 제이미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그녀는 희미한 미소가 아닌 허리를 잡고 깔깔 밝게 웃고 있었다.

 

 

 

[이것 좀 먹어. 아까는 미안했어.]

 

 

 

제이미는 얼떨결에 집안으로 들어와 그녀가 건내준 레몬차와 쿠키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탁자에 놓인 작은 수첩에 또박또박 큰 글씨로 글을 썼다. 제이미는 문득 자신의 작문 공책을 떠올리고 부끄러워졌다.

 

 

 

[몇살이니? 이름은 뭐야? 이 근처에 산다고 했지?]

 

 

그녀는 연달아 질문을 했다. 처음 보았을 때 슬픔에 젖어있다고 생각했었던 가라앉은 눈동자가 제이미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흑요석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라고 생각하며 제이미는 대답했다.

 

 

 

"7살이구요 이름은 제이미예요. 여기서 2km쯤 떨어진 곳에 살아요.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

 

 

 

[하연이라고 해. 난 한국에서 왔어.]

 

 

"하연.."

 

 

제이미는 그녀의 이름을 읽어보았다. 이국의 말이라 그런지 발음하기가 힘들었다. 제이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또 환하게 웃었다.

 

 

 

 

"그럼 매일 그 집에 놀러간단 말야?"

 

 

"응. 되게 착하고 무지 예뻐. 나 나중에 하연이랑 결혼할꺼야."

 

 

하연에게 들려주기 위해 아빠의 서재에서 몰래 비틀즈의 음반을 챙기며 제이미는 폴에게 말했다.

 

 

"쳇! 내가 저번에 얘기할 때 너 뭘 들었냐? 그 남자랑 애인사이라니까."

 

 

"아니야. 그 사람은 저녁 늦게야 집에 온단 말야. 애인이 아니라고 얘기했어."

 

 

제이미는 화가 난듯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하연은 사랑하는 사람있어요? 저번에 그 형이랑은 애인 사이 아니라고 했죠?"

 

 

제이미는 차를 준비하는 하연의 등 뒤에서 물었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가 했더니 하연이 테이블로 다가와 찻잔을 놓았다.

 

 

 

[한국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제이미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와 결혼만 하면 되지 뭐.

 

 

 

"그냥 애인이죠? 결혼은 안했죠?"

 

 

하연은 제이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프게 웃었다.

 

 

 

[결혼했어. 그 사람의 아이까지 가졌었는걸.]

 

 

 

"그런데 왜 떨어져있어요? 아줌마들이 형이랑 하연이랑 서로 좋아해서 도망온거라고 하던데."

 

 

 

[형은, 태민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동생이야.

 

 

그리고 한국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너무 사랑해서 잠시 헤어져있기로 했어.]

 

 

 

"왜 사랑하는데 헤어져있어요?"

 

 

제이미는 더이상 질문할 수가 없었다. 하연의 검고 깊은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 고여오더니 그녀가 너무도 슬프게 흐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마치 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눈물이 차올라 흘러내렸고 하연이 죽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하연!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울지마요."

 

 

제이미는 자신도 울음을 떠뜨리며 하연의 머리를 조그마한 손으로 감싸안았다. 하연은 자신을 안아주는 따스하고 조그마한 온기에 3개월 전 자신의 뱃속에서 살아숨쉬고 있었던 기쁨이의 온기가 떠올랐다.

 

 

자신이 태윤도 없는 이곳에서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건지. 강해지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다만 태윤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누나!!! 왜 그래?"

 

 

 

막 돌아온 태민이 문을 열다말고 눈물범벅이 된 하연과 제이미를 보고 뛰어왔다.

 

 

 

"죄송해요. 제가 하연을 울렸어요."

 

 

하연이 열심히 눈짓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하는 동안 제이미가 울면서 태민에게 말을 건냈다. 태민은 당황해하며 제이미와 하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울지말고 진정해."

 

 

 

태민이 한숨을 쉬며 하연에게 매달려 있던 제이미를 안아들며 말했다. 태민의 기분좋은 음성이 제이미의 귓가를 간질였다. 제이미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하연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제가 하연의 상처를 건드렸나봐요. 죄송해요."

 

 

조숙하고 예민한 꼬마. 태민은 한숨을 쉬며 제이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하지만 하연은 지금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너무 자극하면 안돼, 알았지? 하연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맙다."

 

 

 

제이미를 돌려보내고 들어온 태민이 쇼파에 웅크리고 있는 하연 앞에 앉았다.

 

 

"누나..... 괜찮아?"

 

 

하연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어. 돌아가선 안된다고 생각하는데도 너무 보고싶어.]

 

 

 

하연은 수첩에 휘갈겨 썼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너무 답답했다. 하연은 자신의 목을 주먹으로 쳐댔다. 태민이 하연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아 저지했다. 하연은 쓰러지듯 태민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형도... 이렇게 있기를 바라는 거 아니잖아. 누나가 없다고 형이 이렇게 있다면 기뻐? 제발... 이러지마..."

 

 

 

하연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홀로 한국에서 말도 없이 편지 한장 남겨두고 떠나버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태윤.

 

 

 

"그리고...나도 누나의 이런 모습을 보려고 데려온거 아니야.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이렇게 시들어가지만은 말아줘."

 

 

 

태민의 눈물이 하연의 정수리 위로 똑똑 떨어졌다. 하연은 느슨해진 손을 둘러 태민을 꼭 안아주었다. 그래, 자신은 이곳에 다시 혼자 일어서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하연, 이제 괜찮아요?"

 

 

하연은 제이미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며 웃어보였다.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자신에게는 매일같이 찾아와주는 제이미가 유일한 이곳의 친구였다.

 

 

 

"한국이란 곳은 어떤 곳이예요?"

 

 

제이미의 물음에 하연은 세계지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와~ 되게 먼 곳에 있네. 사진도 있어요? 보고싶어요."

 

 

 

하연은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앨범을 꺼내어 제이미에게 보여주었다. 몇장으로 넘기다 보니 자연스레 태윤과 찍은 사진이 나왔다. 교정에서 찍은 태윤과 자신. 이토록 환하게 웃고 있을 때는 태윤과 헤어져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는데...

 

 

 

"이 사람이 하연의 사랑하는 사람 맞죠?"

 

 

 

제이미는 어두워진 하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만큼이나 키가 크고 선이 굵은 사람이었다. 동양인이지만 당당하고 멋진 생김새. 제이미는 하연과 그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도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어떤 곳일가 궁금해."

 

 

제이미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 푸른 사기구슬 같은 눈이 하연을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듯 했다. 하연은 웃으며 수첩에 썼다.

 

 

 

[언젠가 같이 가자. 내가 제이미를 잘 안내해줄게.]

 

 

 

"진짜요? 약속이예요."

 

 

손가락에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어린아이 특유의 싫지 않은 땀내와 열기. 하연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오늘부터 한국말 공부할래요. 하연과도 나중에 한국말로 얘기하고 싶단 말이예요."

 

 

[그래? 그럼 제이미는 내 영어선생님이 되어줄래? 함께 배우면 되잖아.]

 

 

그렇게 하연과 제이미는 서로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쳐주게되었다.

 

 

 

 

 

"오늘 제이미랑 학교에 온다고 그랬지? 잘 찾을 수 있을까?"

 

 

제이미와 태민의 학교에 가기로 한날 아침, 태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요즘 한결 밝아진 표정의 하연이었지만, 7살난 꼬마와 말도 하지 못하는 하연이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 제이미가 있잖아.]

 

 

하연은 웃으며 태민의 가방을 들어주며 배웅했다. 태민은 마음이 뭉클하며 탐내서는 안될 것을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갈게. 있다봐."

 

 

태민은 웃으며 손 흔드는 하연을 보며 돌아서 몇걸음을 걷다 다시 뛰어와 하연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놀라서 뺨을 쥔 채 멍하니 있는 하연을 보며 태민은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하연은 리버풀에 처음 와보는거야?"

 

 

공항에서 내린 이후에는 처음 와보는 것이라 처음이나 다름없긴 했다. 아주 어려보이는 동양여자와 금발의 꼬마. 도시 한중간에서는 무척 낯설어보이는 광경이었다.

 

 

도시에서는 필담도 어려워 하연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찾았어!!! 저기야!!!"

 

 

제이미가 지나는 사람에게 몇번을 물어보고서야 드디어 태민의 학교를 찾았다. 건너편에 서있는 태민에게 몇번이고 손을 흔들면서 제이미는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하연은 그런 제이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하연, 제이미 조심해!!!!"

 

 

불이 바뀌고 횡단보도에 첫걸음을 내려놓은 순간 거대한 화물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보도 중앙으로 미끄러져왔다.

 

 

 

"제이미!!! 안돼!!!!!"

 

 

 

하연은 제이미의 목을 끌어안으며 몇바퀴를 굴렀다. 눈을 뜨자 거대한 바퀴가 바로 옆에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차를 피한 것이었다. 하연의 품에 안겨있던 제이미는 안도의 숨을 쉬며 그 자리에 누워버리는 하연에게 소리쳤다.

 

 

 

"하연!!! 지금 말했어!!! 지금 제이미라고 내 이름을 말했어!!!"

 

 

 

하연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태민이 달려와 하연을 일으켜앉혔다. 상기된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이 태민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태민아.. 나 지금 말하고 있어. 지금... 내 목소리... 맞지?"

 

 

   

하연의 상태를 살피던 태민은 깜짝 놀라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하연을 찬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나...지금 내 이름 부른거 맞지? 지금 얘기한 거 맞지?"

 

 

"태민아.. 제이미..."

 

 

태민과 제이미가 양옆에서 하연을 꼭 끌어안았다. 하연은 눈물을 흘리며 신에게 감사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한걸음 더 가까이 온 것이다.

 

 

 

 

"에이~ 오늘도 공부하러 가는거야?"

 

 

 

제이미가 왔다가 하연의 말에 부르퉁해져서는 잔디를 발로 차고 있었다. 하연은 요즘 랭귀지 스쿨에 등록해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제이미 미안해. 하지만 얼른 영어를 배우고 싶어. 그래야 제이미에게도 한국말을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지."

 

 

 

말을 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하연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창백해보였던 뺨에도 생기가 돌았고 늘 흰색만 입었던 옷도 컬러풀하게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이미만의 공주님이었던 하연은 요즘 영어공부에 푹 빠져있어서 좀처럼 예전같은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미안해 정말. 대신 오늘 같이 저녁 먹자. 제이미가 좋아하는 호박수프 만들어줄게."

 

 

내내 시무룩한 표정의 제이미의 뺨을 만지며 하연이 말을 건내자 제이미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깡총깡총 제 자리에서 뛰며 제이미는 하연의 손을 잡고 흔들어댔다.

 

 

"진짜지? 진짜지? 엄마한테 말하고 6시까지 올게. 하연도 꼭 그때까지 돌아와있어야해."

 

 

하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 내가 도와줄거 없어?"

 

 

수업을 마치고 일찌감치 장을 봐서 돌아온 하연은 부엌에 섰다. 아직 익숙치 않은 요리를 하는 것은 무척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으앗! 어떡해. 한가지 빠뜨렸다. 제이미 가서 파슬리 좀 사다줄래?"

 

 

 

한참을 요리책에 집중하고 있던 하연은 제이미에게 말했다. 제이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받아들고 가게로 향했다.

 

 

 

여름이 되어서 이제는 밤이 되어도 해가 느릿느릿 졌다. 이제 해가 게으른 걸음을 하고 있는 저녁시간. 봉투를 안고 돌아오는 제이미의 눈에 하연의 집앞에 서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형!!!"

 

 

 

멀리서 키와 뒷모습만 보고 태민이라 생각한 제이미는 정신없이 뛰어 다가갔다. 다리에 툭하고 부딪히는 순간 제이미는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여름용 양복을 입고 있는 그 남자는 태민보다 키가 컸다. 잘 그을은 얼굴에 매섭지만 매력적인 눈매, 강인한 콧날과 턱선, 길고 단단한 손가락과 다리.

 

 

"네가 제이미니?"

 

 

기분좋은 낮은 음성에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그 사람은 말없이 웃으며 제이미가 놓친 봉투를 주워주었다. 제이미는 슬픈 눈매가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 혹시 하연의 사랑하는 사람 아니예요?"

 

 

 

하연이란 이름에 사내가 움찔하며 제이미를 보았다. 제이미는 자신을 보는 얼굴을 보며 언젠가 하연이 보여준 사진 속의 사내가 맞다고 확신했다.

 

 

 

"하연을 보러온거예요?"

 

 

그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이는......요즘 잘 지내고 있니?"

 

 

 

몹시도 고통스러워보였다. 제이미는 자신들이 서있는 자리에서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하연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네. 하연은 이제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영어도 배우러 다니구요 앞으로는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줄꺼래요."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어려 빛나기 시작했다.  

 

 

 

"영어도 이제 많이 잘하구요 많이 웃어요. 예전에는 아저씨가 보고싶다고 자주 울었거든요.

 

 

 옷도 예쁜색 옷을 입구요 말도 많아졌어요. 저랑 태민에게 맛나는 것도 많이 만들어줘요."

 

 

 

제이미는 왠지 그가 우는 것이 싫었다. 예전의 하연을 보는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따끔따끔해져서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제이미의 긴긴 설명을 들으며 그는 끝내 눈물을 참는 듯 했다.

 

 

 

"어! 저기 태민 온다!!!"

 

 

 

제이미의 말에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무심하게 걸어오는 태민이 저 멀리서 보였다.

 

 

 

그는 제이미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고마워. 앞으로도 하연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렴."

 

 

 

일어서서 걸어가는 그의 등뒤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제이미는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연이 밖에 서있는 제이미를 발견하고 손짓하고 있었다. 하연도 아직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연은...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제이미의 말에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제이미는 다시 한번 말했다.

 

 

 

 

"하연은 아저씨를 아직 사랑한다고 했어요. 아저씨도 그런거 아닌가요? 왜 만나지 않아요? 하연도 아저씨를 보고싶어할꺼예요. 아저씨도 보고싶잖아요."

 

 

 

그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려있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연을 기다려줄거야. 그녀가 준비되면 언제든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을거야."

 

 

 

"............................................"

 

 

 

"그때까지 네가 하연을 잘 돌보아주렴. 부탁한다."

 

 

 

제이미는 자신의 어깨에 놓인 그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성큼 다가온 태민을 보며 그는 뒤돌아서서 차에 올랐다.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검은색 차를 물끄러미 보던 태민이 제이미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등을 툭 쳤다.

 

 

"들어가자, 얼른."

 

 

 

 

"두 사람 다 이렇게 늦게 오고 말이지. 나 혼자 힘들었단 말이야."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집안으로 들어서자 하연이 달려나와 투정을 부리듯 종알댔다. 제이미와 태민은 서로 마주보며 한번 웃었다.

 

 

그날밤, 제이미는 한결 어른이 된 듯한 느낌으로 잠이 들었다. 내일도 자신의 천사, 하연을 지킬 꿈을 꾸며........

 

 

 

 진짜 너무너무 늦었죠? 이러면 안되는데~

 

 이제 두회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글이 넘 안풀려서 계속 못 올리고 있었어요. 회사도 좀 바빴고...

 

 

 우쨋든 죄송합니다. 이제 한회 남았네요. 다음편까지 기다려주시고 마지막까지 추천과 답글로 많이많이 사랑해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길~ 태풍왔지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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