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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꽃선녀님때문일까...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무속인의 이야기...

청명 |2004.10.21 01:03
조회 19,022 |추천 0

제가 이렇게 타를 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 세상에 나 말로고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많은 사람들이 나만큼이나 아프고 힘든 일도 겪고,

기쁘고 행복한 일도 겪는 것을 보며 나름대로 배우고 나름대로 반성했는데...

오늘 이렇게 용기내어 타를 치는 것은 몇몇분들이 종교나 무속에 대해 쓴 것을 보고는

답글이라는 걸 쓰려고 보니 너무나 길어 저 나름대로 한 공간에 글을 채워봅니다.

좀 길고 재미 없는 글이니 인내심을 갖고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다만, 저의 일이고 제 생각이니 악의성 발언은 삼가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아이디는 새아버지의 아이디이며, 저는 딸입니다.

제 나이 이제 스물하고 여덟! 적잖은 나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짧게 나마 설명을 하자면... 음........

9살...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이 보증으로 인해 날아가버리고 걸이에 나 앉게 된 우리 다섯식구.

친가가 있는 청주 한 소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일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청주로 간 저희 가족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밀가루로 수제비를 떠 먹었고,

연료가 없어 적은 옷들과 몇몇가지를 연탄 아궁이에 넣어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도 봤습니다.

그런 것이 싫어 철 없던 전 운동을 하겠다며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이를 물고 정말이지 악으로 운동을 했습니다. 그 덕인지 전 금새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리어커로 과일도 팔아보고,

겨울엔 메밀묵과 찹쌀 떡을 손수 만들어 팔아보기도 하셨죠.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도 좋아지는 것은 없더군요.

어느 땐가 휴가를 받아 집엘 가보았는데... 방 한켠에 선반이 놓여있고, 오색으로 그 아래를 덮었더군요.

그 땐 어느 누구도 제게 그 것이 무엇인지 얘기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좀 흐른 뒤 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시고, 저와 남동생 둘을 데리고 서울행을 했습니다.

외가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어머니는 외가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맞아야했고,

또 그렇게 우리 넷을 손 잡고 싸늘한 서울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파출부, 공사판... 정말 여자의 힘으로 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하셨지만.

그 다지 좋아지거나 행복하지 않았던 저의 가족은 어머니의 재혼으로 마무리되는가 싶더군요.

현대산업개발에서 표창을 받을 정도로 목수로서의 능력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작게 남아 본인의 사업을 하며 나름대로 행복한 날들을 지냈습니다.

비록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오빠 셋과 여동생이지만 나름대로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어색하게 지내더군요. 천륜이라 할 도리 한다며...

그렇게 몇 해가 지나 큰오빠가 결혼을 하면서 문제가 심각 해 져갔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오빠들의 행동... 둘째오빠가 만취 해 찾아와서는 횡폐를 부리고,

심지어는 아버지를 걷어 차 눈덩이가 찢어지기까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큰 오빠 역시 큰소리 내기 일수였고, 이리저리 돈 달라는 식의 말들...

그렇게 집안이 시끄러워지면서 아버지의 사업이 주춤하더군요.

집안이 평탄질않아 그런지 아버지는 작은 사고였지만 치명적인 사고를 당해 손을 수술하게 되었고,

그 나마 손에 쥐고 있던 사업도 손을 놓아야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집안의 사정을 알았던 큰 동생은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않았음에도 집에 한 푼이라도 보테보겠다고,

중국집서 배달일을 하게되었습니다.

정말이지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일이 또 생겼습니다.

착한 심성을 갖은 동생인데 왜~!!! 왜!!!

교통사고로 척추 수술을 받게 되어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수술을 받던 날 저 또한 교통사고로 목과 허릴 다치고,

두 번이나 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회사를 잃어야했습니다.

잊혀질만하면 또 당하는 교통사고... 이젠 막내동생이더군요.

큰 동생은 수술 후 일년, 저는 6개월, 막내동생은 3개월... 참으로 긴 시간이죠!!!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 번엔 어머니시더군요. 수술을 받고 한 달정도 흐른 뒤 회복하셨지만...

저의 집의 악몽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우애좋게 지내던 삼남매가 만나기만하면 살벌하게 싸우고...

오빠네 형제들이 오고가면 정말이지 전쟁터가 따로 없더군요.

 

어릴적부터 조무모님을 따라 무속인의 집도 가보고 굿하는 것도 본 저...

꿈을 꿔두 생시처럼 훤하게 꾸고,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고...

어릴 땐 몰랐습니다. 그저 그런 건가보다 싶어 어머니께 말씀만 드리는 정도였는데...

그게 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더군요. 제가 무속인이 될 운명이랍니다.

제 친아버지께서 잘 받아 기도로 닦아 놓으셨다면 자식들이 이 풍파를 겪진 않았을 것이라며,

절 무속인의 길을 걷게 하라는 것이였답니다.

제가 치마만 둘렀지 개집아이가 아니라고 장군감이라며,

재산 잃은 건 별거 아니라며 이렇게 하다다가는 자식들 앞세워 보낸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부모의 심정이 어찌 무속인의 길을 걸어라 하시겠습니까!

이 곳... 저 곳 다니시며 다 보았지만 일괄된 말... 무시하며 지내다 그 간의 일을 겪게 된 거랍니다.

무속인이 길게 잡지 않았다더군요. 1년안에 벌어질 일들이라며 얘기 해 준 것이였답니다.

모든 풍파 다 겪고 나서야 다시 찾게 된 무속인... 역시나 다를게 없더랍니다.

방법을 찾겠다고 있는 것 다 모아 굿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답니다.

외로운 길, 무시당하는 길이 무속인의 길이라더군요.

부모 형제간에도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일단 살고 봐야지...

방법을 찾다 찾은 것이 지금의 아버지께서 무속인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풍파는 막아주고 일단락은 해 주지만 불기가 샌집에 시집을 가게되면 무속인이 되어야한답니다.

오빠들과 여동생은 아버지를 버렸고, 아버지의 형제들은 둘째큰아버지만 빼고,

아버지를 다 외면하더군요. 그렇게 외로운 길을 자식을 위해 걸으신 아버지...

제게... 저의 동생들에게 아무일도 없냐구요!!! 그 이후 사고는 더 없었고,

지금까지 7년 가까이 작게 나마 모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우리 삼남매는 갖은 건 없지만 항상 웃으며 함께 삽니다.

 

하지만, 이 것이 끝은 아닙니다. 저요! 요즘도 무시무시한 꿈을 꿉니다.

한 가지 예를 들까요!!!

맘 의지할 곳 없는 기숙사. 유난히도 제가 잘 따르던 할머님이 계셨죠!!!

몇 년이 지나서 그 할머니의 틀의 장독대를 꿈꿨습니다. 검은 그림자... 저승사자였죠!

무서워 말만 늘여놓고 가보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꾸기 몇 개월 전 할머님이 편찮으셔서 아들네로 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었죠.

지금은 꿈을 꾸면 기억하려 하지않으려 애를 씁니다.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아무리 나쁜 꿈이라도 잊혀지면 괜찮다고 합니다.

제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이 세상 사람다 50% 신기를 갖고 태어난다고...

그 신기를 다 받아 살아간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무속인이라고,

정말 받아야하는 사람은 어느 누가 말려도 받아 무속인이 된답니다.

제겐 꼭! 명심하라시며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 직감이 너무 쌔기때문에 무속인을 만나 점을 봐도 점 쾨가 나오지 않는다고요.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막아보겠지만, 제가 무속인의 집을 찾아다니며,

신을 접하면 막아주지 못하신다며, 결혼해서 나중에 받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지금은 않된다며... 한사코 제 발걸음을 잡으십니다.

저요! 재수 굿이라는 것도 해 봤구요. 액 막는 굿도 해 봤습니다.

무시하고 지낼 때 풀리지 않았던 일들이 풀리고 맘이 편해지고,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이 됐을 거라는 분들의 말씀에도 이해는 갑니다.

본인이 겪지 않았으니까요...

무속신앙! 믿어라! 믿지말라! 그 말은 않겠습니다.

다 개인의 차이고, 개인의 개념이니까요.

운명이라는 것 개척할 수도 있지만 난관속에선 해처나올 수 없는게 운명이고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인을 믿으세요! 남들의 충고는 받아들이되 본인의 판단을 믿으세요!

나약해져서는 않됩니다.

글 재주가 없어 이렇게 밖에 못 써 아쉽고 답답하지만,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현모양처가 꿈이 었던 전... 그 꿈 접어버리고 선을 베풀며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항상 밝은 생각... 행복한 생각...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며 사세요.

그럼 조금은 행복하고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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