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은 텐트에서 자는게 불편하다고 마을에 집을 얻자고 했지만 아버님은 굳이 텐트에서 지내신다고 고집을 세우셨다. 그래서 우리 식구 셋만이라도 잘 방을 얻어야겠다며 마을 센트로(중심가)에 있는 잡동사니 가게에 방을 하나 빌렸다. 그 곳은 여인숙도 하는지 아주 좁은 방이 여러개 있었는데 한 밤중에 손님들이 들어와서 자고 아침이면 가곤했다.
거기서는 샤워 시설이 있어서 샤워를 할 수 있었지만, 문 잠그는게 없어서 내가 안에서 샤워할동안 밖에서 누군가 못들어가도록 랑이 지키고 있어야했다. 그러니 화장실 사용을 안심하고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우린 거기에서 잠만 자고 새벽에는 아버님이 계신 창고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 새벽 다섯 시에는 창고에 가 있어야 했는데, 난 그게 더 고역이었다. 여관 집은 콘크리트로 네모나게 지어져서 창문은 30센티도 안되게 작았고, 낮동안 달구어졌던 집은 밤이면 오븐 상태가 되어져 있었다. 더워서 숨이 탁탁 막혔다. 난 땀이 잘 나는 체질이 아니다. 나봤자 코끝에 살짝 땀이 맺히는게 다였는데 이 여관에선 끈적끈적 등과 가슴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너무 더워 짜증이 났다. 그래서 샤워를 하고 왔는데, 랑은 우리끼리 있다는게 너무 좋아서 방에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내 비싼 향수를 방향제로 뿌려놨다. 가뜩이나 너무 더워 짜증나 있는데, 내가 아끼는 비싼 향수를 방향제로 뿌렸다는게 더 화가 나서 짜증을 부려댔다.
대판 부부 싸움을 하고 새벽녘에야 잠이 설핏 들었는데 아버님이 창문을 마구 두들기셨다. 놀래서 시계를 봤더니 벌써 5시 반이 다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님은 그럴줄 알았다며 잔뜩 역정이 나 계셨다. 허둥지둥 창고로 갔다.
차라리 창고에서 자는게 더 시원했지만, 랑은 죽어도 창고에선 자기 싫댄다. 그래서 한밤중에 창고에서 나와 새벽에 창고로 되돌아가는 생활이 시작됐다.
아버님만 어두컴컴하고 커다란 창고에 냅두고 나오는데 별로 맘이 안좋았다. 몇번이고 마을로 같이 가자고 그래도 아버님은 거기 혼자 계신다고 고집하셨다. 방 값으로 돈을 낸다는게 아까우시댄다.
저녁을 해먹고 동네로 나오면 동네 사람들 또 식탁 의자들을 하나씩 문 앞 거리에 내놓고들 앉아있다. 지나가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해줬다. 나중에 보니 그들의 취미생활인거같다.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그들은 그렇게 인사를 나누다 맘에 맞는 누구와 대화라도 시작되면 좋아라하며 몇 시간이고 거기서 마떼도 돌려마시며 수다를 떤다.
집 앞의 거리는 그 집 주인의 소유라 인도는 맨발로 다녀도 될만큼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이 세레스의 99%의 주민이 프랑스계이다. 그래서 이름도 프랑소와즈라든가 하는 프랑스식 이름들이었다. 게다가 인물들은 어찌나 훤칠하고 이쁜지 모른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이 양산을 쓰고 다녔었는지 아르헨티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양산이 이 세레스라는 마을에선 할머니들이 양산쓰고 지나가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랑의 일꾼들은 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데다 이름도 멋졌다. 그들은 하루 벌어 그 날 돈을 다 썼다. 저축이란 없다. 그 날 돈을 벌면 온 가족이 레스토랑으로 외식을 나가거나 고기를 푸짐하게 사다가 굽거나 한다.
우리 일꾼의 누나는 성격도 화통하고 늘 즐거운 여자였다. 예전에 이 동네 창녀였단다.(그 사실을 숨기지않고 우리에게 말하는게 참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친구라서 말해주는거라는 단서를 붙이긴했지만...)
지금은 영업을 안하고 마당을 개조한 작은 주점을 만들어 생맥주만 파는데, 그녀에게는 아주 이쁜 딸이 하나 있다. 딸내미가 부륵쉴즈처럼 생겼었는데 창녀 영업하던 시기에 가진 아이라 누가 아빠인지를 모른댄다. ㅡ.ㅡ
이 아이를 임신하고나선 그 일을 안하고 모아놓은 돈으로 술집을 열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 딸은 희망이었고, 신의 축복이다. 학교에서 매일 1등을 놓치지 않는다고 우리가 가기만하면 자랑을 해댔다.
그녀는 자기의 딸을 보며 어떤넘 씨인지 몰라도 예쁜색의 노랑머리(같은 노랑머리래도 이쁜색이 따로 있다)와 아름다운 청녹색의 눈동자를 갖고 태어난걸 대견해했다.
그녀는 하나도 부끄러워 하지않고 맥주를 마시며 지난 이야기들을 해줬다. 한숨이 섞인 그 푸념들을 듣다보면 그녀의 인생도 참 우여곡절이 많아 불쌍했다.
수많은 바람둥이 남자들과의 결혼 생활...그 뒤에 몸까지 팔면서 살아야했던 그 시절 이야기들은 소설 그 자체였다. 그런 그녀가 하나도 추해보이지 않았던게 참 희한했다.
늘 크게 소리내어 웃는 그 웃음 소리에 세상을 달관한 듯한 허탈함과 묘한 체념이 뒤섞여 우린 그냥 당황스런 미소를 자아냈을 뿐이었다.
가끔 마을을 떠나 옆 동네를 가다보면 지나가는 트럭 운전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창녀들이 길거리에 있었는데, 뙤약볕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풍만한 몸을 보여주며 길거리 땅바닥이나 풀숲에 누워있었다.
남자들은 그걸보며 성욕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햇빛이 얼마나 따가울까? 지나가는 차들이 무섭겠지. 등등의 생각으로 그녀들이 불쌍하게 보였다. 차라리 식모일이 낫지 왜 저런걸 할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토요일이면 마을은 축제 분위기다. 일주일동안 열심히 일한 그들은 토요일 오후면 모두 씻고 디스코장을 가거나 카지노를 가거나 레스토랑을 가거나 한다. 차들은 깨끗하게 씻겨져서 센트로에 집합한다.
차를 깨끗하게 단장한 그들은 센트로 공원을 그냥 빙글 빙글 운전하며 돈다. 그냥 그게 취미랜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차를 파킹하고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새벽 세네시까지 논다.
약속한 것도 없는데 토요일 오후면 주위 근방에서 다 온다. 거기 카페테리아에 앉아있으면 일단 도착한 사람들이 바로 카페 테리아에 안오고 그 거리를 슬슬 두 세 바퀴 돈다음 오니까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 둘 모여든다. 그래서 우리도 차(우린 3.5톤 트럭이다 ㅋㅋ)를 끌고 불을 반짝거리며 거리를 몇 바퀴 돌 때도 있다. 우리 트럭은 랑이 멋을 부려 뒷 짐칸에 반짝 거리는 불이 열댓개 달려있다. ㅎㅎ
시골 마을이라서 공부를 잘하던 애들은 더 큰 도시로 유학을 가거나한다. 그래서 주말에 그들이 오면 마을이 더 축제분위기가 되는듯하다. 특히 방학이 있는 기간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한 30분 차를 몰고가면 우리가 속해있는 산타페 주와 산띠아고 델 에스떼로주와 붙어 있는데, 그 국경에 카지노가 있어서 카지노를 좋아하는 이들은 죽어라고 거길 간다.
그 주는 모든 물가가 우리가 사는 산타페주보다 싸다. 워낙 가난한 주인 산띠아고 델 에스떼로는 면세되는게 많았다. 기름값도 거의 반 값이고 고기등 생활 필수품도 거긴 반값이라 우리처럼 국경마을과 가까운데 사는 사람들은 그 동네로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가곤했다.
산타페주는 부자 주이다. 농장지대여서 소도 많고, 기름진 땅인데.....산띠아고 델 에스떼로 주는 거의 사막지역에 농사를 못짓는 소금지대가 많았다. 그 가난한 주 국경에 아이러니칼하게도 카지노가 있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은 약간의 돈을 들고 그 지역으로 세차된 차를 끌고 옷을 최고로 멋지게 차려입고 카지노로 놀러간다.
외식을 좋아하는 이들은 토요일에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까지 신사옷이나 긴원피스로 우아하게 입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레스토랑에서 뛰어다니고 버릇없는 애들은 한국 아이들 뿐이다.
이들은 식탁 예절을 아가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서 그 작은 개구장이들이 끝까지 앉아서 얌전하게 소리없이 먹었다. 평상시에는 너무 까불던 아이들도 식탁에 앉으면 너무 얌전했다.
난 그걸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내 아이도 그 교육 하나는 확실하게 시켰는데, 나중에 한국 방문중에 식당에서 정신없는 친구들 아이들을 보고 내가 친구들에게 한마디했다. 제대로 좀 교육 시키라고...
내가 있는 중에 식당에서 시끄러운 애들은 나한테 혼이났다. 난 버릇없이 큰 애들을 못 봐주겠다.
그네들은 나보고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키운다고 뭐라고 했지만 난 그렇게 자기들 우선으로 이기적이며 버릇없이 커가는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맘에 안들었다. 물론 그렇지않고 예절있게 키우는 집도 많겠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아이들 우선이고, 자유가 넘쳐 방종에 가깝게 내버려두는 듯해보여 아이들과 친해도 지킬 예절은 확실하게 가르쳐야 하는걸 가르쳐주고 싶었다.
편하고, 자유스러움 가운데 나름대로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 것은 배워둬야 할 좋은 점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