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눌러야...음악 나옴다...안나오는 컴도 있다는데...그건 운명이라 여기며..^..->
베인 옷섶 위로 붉은 핏물이 물들고 있었다. 도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을 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이 검술들을 익히는데 내 반평생을 흘려보냈는데 너는 타고난 본능을 가졌구나. 시장하구나....산채 밥도 먹을 만하다...."
방에 들어 상처를 치유하는 도진의 손이 무언으로 항변은 내보인다. 한 마디도 입을 때지 않은 채 상처를 닥아내고 약을 발라 천으로 동여매고 있었다. 자신을 염려하는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아 효원 또한 그 손길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오늘 일은 내 실수다...그를 탓하지 마라.."
"요즘은 도련님의 심중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두렵습니다.."
"별일 아니다..."
"하지만...."
"실수라 하지 않느냐...그러니 다른 의미를 가져다 붙히지 마라..."
공양을 마치고 그가 다시 불당에 들어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종현과 절 아래 계곡을 돌아 보았다. 종현은 굳이 편치 않은 심사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은 채 재촉하듯 물었다. 자신을 밀어 붙혀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도 검을 바로잡지 않았던 그에게 종현은 내심 화가 나 있었다.
"왜 그랬느냐..."
뒷짐을 지고 숲길을 걷던 효원이 잠시 발길을 멈추다 다시 길을 이었다.
"...이번엔 내가 틀렸다....너의 본능은 내 수년의 수련보다 빨랐다..... 검에 사정을 두지 마라 했는데 내가 그러질 못했다. 둘 중 하나가 다쳤다면 그건 내 탓이다..."
"연유를 모르겠다. 가끔씩 딴사람인 듯 느껴진다..."
"내가 너를 쉬 보아 그런 것이라 여기느냐....그래서 거슬렸느냐...."
"..너의 검이 아무리 나를 읽는다 해도 정도가 없는 칼끝을 어찌 믿느냐.... 내 칼이 그 어깨를 더 깊이 관통했다면 어찌 됐을지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다..."
그가 돌아 보며 빙긋이 웃어보였다. 사람을 품어 않는 그 한 점 미소가 종현의 얼굴에서 서운함을 거두어 갔다. 그 눈은 늘 두가지를 닮고 있었다. 한치 빈틈 없이 정돈된 그 모습 속에 더 할수 없이 따스한 사람의 정을 드리우고 있어 늘 종현을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니가 타고난 본능을 지닌 건 인정한다..허나 니 칼끝에 아무리 힘이 실려도 내게 치명상을 입힐 염려는 없다...."
"내겐 전력을 다할 이유가 있었다...어떤 목적을 가졌는지에 따라 몸에 실리는 힘이 달라지는 법이다..그러니 그리 장담하지는 마라.."
"한동안 술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다행이질 않느냐...."
시간은 그 마음의 형태에 따라 흐르는 체감을 달리했다. 기다리는 이의 하루는 일년처럼 더디어 하룻밤에도 백발이 될 듯이 애간장을 녹이고.... 마주앉은 사람이 눈 속에 내려앉은 이의 그것은 차라리 칼날 위를 걷는 섬뜩함이다.
그와의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속절없이 흘러 그렇게 닷새가 가고 있었다. 엿새째 밤 그가 불현듯 종현을 일찍 방으로 보내고 초저녁부터 모습을 감추었다. 눈앞에 앉은 그는 부처님의 미소를 끌어 담은 세선과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그는 늘 종현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종현은 대웅전을 내려와 절 곳곳을 다 돌아보았다. 잠시 늓을 놓고 앉아있던 종현이 퍼뜩 생각이 난 듯 이튿날 대련을 했던 수련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칠흑 같은 비탈 길을 지나 수련장에 닿았을 때 어렴풋이 허공을 가르는 칼바람 소리가 들렸다. 종현이 그제 서야 긴 안도의 숨을 내 쉬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둠속이긴 했지만 그의 지친 움직임이 익숙하게 종현의 눈 속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거냐....."
그가 칼을 거두고 숨을 몰아쉬었다. 온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고 앞섶이 다 젖어 있었다.
"쉬지 않고......어찌 내려왔느냐...."
"몸이 무거워 보인다...너무 과한 것 아니냐...팔도 온전치 않은데...."
"이리하고 나면 머리가 맑다.....술 생각이 나서 찾았더냐...."
"아니다...그냥 잠이 오질 않아 내려와 본 것뿐이다..."
"올라가자....정신이 맑다...잠이 오질 않는다면 한잔해야 하질 않겠느냐...."
종현이 방에 들어 불을 밝히고 방문을 열어 그가 앉은 마루로 빛을 보냈다. 방을 나서던 종현이 불빛 아래 앉은 그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 말을 잊지 못했다. 상처를 입은 그의 팔이 온통 핏물에 젖어 있었다. 과하게 움직인 어깨가 싸매놓은 상처를 덧나게 한 모양이었다.
"어찌......이리 되도록 ......"
그도 피로 물든 옷을 보고서야 상처가 터진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사지육신이 통증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처의 진통을 알지 못한 터였다.
"안되겠다...상처를 봐야 겠다....."
종현이 서둘러 바가지에 물을 떠오고 방에 들어 천과 약을 가지고 왔다. 그는 잠시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되었다...도진이에게 내 옷가지를 가져오라 일러주고 돌아가 있거라“
이상한 일이었다. 한없이 따스한 배려로 자신을 대하면서도 또 그렇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바로 곁에 있는 듯 같은 마음을 가지면서도 어느 순간 다른 사람처럼 냉정하게 종현의 밀어내고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그의 귀품과 자신이 달라 그런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종현에겐 그 벽이 어색하고 서운했다. 가부좌를 하고 앉은 그의 얼굴에 절간의 정막이 그대로 내려 앉아 있었다. 도진이 들어서자 그가 감은 눈을 열고 깊게 드리웠던 숨을 내 쉬었다.
"어찌 또 이리 하신 것입니까..."
"오늘은 땀을 흘려도 육신이 모두 내것같지가 않구나..."
"그분 때문입니까...."
"내속에 부질없는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리 평정을 찾을 수 없는 모양이다.."
상처를 동여매고 어깨위로 옷섶을 올려주던 도진이 잠시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
"곁에 두고자 하신다면...."
효원이 정색을 하며 도진의 말을 잘랐다.
"..함부로 짐작치 마라....그런 사람이 아니다...."
"저는 다만....."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마라...나가 보거라..."
도진이 나가고 효원은 뜨거운 물을 적셔 몸을 닦아 냈다. 몇 번을 그리 닦아내 마음에 생겨나고 있는 욕심을 털어내려 했다. 그렇게 만 가지 잡념에 사로 잡혀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있던 효원의 방문 앞에 인기척이 있었다.
"팔은 좀 어떠냐..."
"괜찮다..."
방문을 사이에 둔 두 사람에게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종현아..."
"듣고 있다..."
분명 무슨 말을 하려던 여운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는 말끝을 내놓지 않았다.
"아니다...오늘은 피곤하구나....그만 쉬어야 겠다..."
종현이 잠시 머뭇거리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은......없는 것이냐..."
"내일......내려갈까 한다.."
종현의 가슴에 큰 낙석이 내려앉은 듯 멍한 충격이 진동했다.
"열흘은 있을 거라 하지 않았느냐...." "그리 되었다..."
그의 이상한 행동들이 석연치 않았던 종현은 돌아간다는 그의 말에 불현듯 불안함을 느꼈다.
"잠시 들어가겠다...."
그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종현은 더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종현이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종현을 보는 그의 눈에 더 이상 미소가 스며있질 않았다.
"지금 내가 어떨 것 같으냐...."
"말해 보아라..."
"나는 지금 헛개비가 된 기분이다...왜 나를 이리 데려 왔느냐...
아무것에도 쓰일 때 없는 나를 왜 함께 오자 했느냐...
숨이 끊어질 듯한 너의 오열을 보았다..
상처가 터져 온 팔을 피로 적셔도 모를 만큼 몸을 혹사해 검을 휘두르는 너를 보았다..
너는 내가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허락치 않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이냐.....
정녕 풍류나 즐기고자 나를 데려 온 것이냐....
내가 장승이 아닌데 너는 어찌 내게 장승처럼 있어라 하는 것이냐..."
또 다시 침묵이 내려앉고 종현은 벌써 후회를 하고 있었다. 한번도 종현에게 그런 얼굴을 보인 적 없는 그였다.
"앞으로도 나의 대한 어떤 궁금증도 가지지 말라 하면 어찌 하겠느냐...."
효원이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고개를 들지 않고 종현에게 말을 건냈다.
"마시겠느냐..."
"아니다..."
채워진 술잔을 단숨에 마셔버린 효원이 잔을 내리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여 그 잔을 자꾸 만지작 거렸다.
[평생을 염원처럼 가지고 가야할 이 애통함이 겨우 한 손안의 술잔에 채워져 있다.
볼수 없는 눈과 말하지 못하는 입으로 마시는 술에 향이 있을리 없다.
다만 움직일 수 있는 건 술잔 뿐이니 그 속에 전부를 싫어보는 것이다.
이리도 어리석은 염원이 있느냐....
나는 세상을 죽여 지금을 정지시키고 싶다....
가지면 안되느냐...
나는 이런 염원을 가지면 안되느냐.....
너를 두고 마시는 술은 늘 이리 나를 시험한다....
보는 것만이 진실인 이 세상에.....
너를 곁에 둘 내 자리는 없다.....
아느냐....
하룻밤에도 수없이 백발이 될 듯이 살을 녹인 그 날들을.....
보느냐.....
칼날같이 섬뜩하게 흐르는 지금을 잡지 못해...
이리 또 술속에 정신을 놓아버리는 내 서러움을... ]
시린 그 눈 속엔 이미 어떤 다짐이 서려있었다. 종현이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산을 삼킬 것 같은 길고 무거운 침묵이 온 방을 채우고 두 사람의 신경을 팽팽히 붙잡고 있었다. 늘 가슴아래 앙금처럼 깔려있던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진실은 종현이 비켜 갈수도 없게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종현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더이상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를 지켜보는 일이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지고 있었다. 심장을 녹여내던 그 애통함의 근원이 무엇인지 더 이상은 장승처럼 보아도 못 본 듯 그리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안다 해도 그 무게 한점 조차 자신이 들어줄 수 없음을 짐작해 더욱 그랬다.
"보지 않겠느냐..."
"내 뜻으로 만나졌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게 뭘 선택할 여지가 있을 리 없다... 그래도 굳이 묻는다면 허울뿐인 술벗은 사양하고 싶다... 니가 내게 끝까지 너를 보여주지 않을 작정이라면 처음 내게 왔던 그때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정작 내보이는 말은 차디찬 칼바람을 일으켰다.
"니가 그리 말해주니 한결 편하구나......"
잠시 긴 숨을 내 쉰 그가 종현의 이름을 불렀다.
“종현아.....”
그가 말을 채 내놓기 전에 종현이 먼저 그의 말을 받아 마무리를 했다.
"내가 기다리지 않으면 될 일이다..... 너는 내게 아무것도 보인 것이 없으니 가져갈 것도 없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산처럼 그리 앉은 그를 뒤로하고 종현이 방을 나왔다. 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기다리게 될 사람임을 알면서도 종현은 그렇게 그를 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