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 흡혈귀 마녀와 동침을II -03 >>
쓰는 이 : 연지바른 마녀(mskim0920@nate.com)
*등장인물*
-신윤아(여, 17세, 화자)
-최선우(남, 57세) : 아시아 대 배우, 엔터테인먼트, 푸른 극장 대표
-이민수(남, 18세)
-한 욱(남, 18세)
-지나현(여, 17세)
-이태석(남, 59세) : 태석 영화사 대표
-강현민(남, 48세)
-유성린(여, 57세) : 선우 약혼녀, 뮤지컬 배우
그 외...
#
영화부 실.
캠코더에서 컴퓨터로
역사 내 노숙자들 영상을 옮겼다.
[윤아 : 후레쉬를 안 달았더니,
화면이 너무 어두워요.
역사 안에 있는 조명으로 어떻게 될까 했더니,
쓸만한 게 하나도 없어.
다시 찍어야 되겠어요.]
[민수 : ...(옆에서 멍하니 모니터를 보기만)]
[욱 : 야, 이민수!]
[민수 : 어? 어?]
[욱 : 어디다 정신 빼놓고 있냐?]
민수 선배는 그냥 밖으로 나가버린다.
[욱 : 저 자식 요즘 왜 저래?
아는 거 있냐?]
[윤아 : (어깨 으쓱해보이며, 도리도리)]
[욱: 다리 삔데는 다 나았냐?]
[윤아 : 네! ^^]
[욱 : 조심해야지.]
[윤아 : 명심하겠습니다! ^^
근데 민수 선배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예요?]
[욱 : 글쎄다.]
욱이 선배도 짐작가는 게
전혀 없는 눈치다.
민수 선배는 그게 안좋단 말야.
혼자 속에 담아두는 게 너무 많아.
누구하고라도 얘기하면 좀 가벼워질텐데.
지난 번 푸른 극장 옥상에서처럼.
에구구, 할 수 없지.
또 내가 카운셀링으로 나서야겠구만.
그나저나 ...어디로 갔을까?
#
욱이 선배가 알려준 곳에,
민수 선배가 있었다.
운동장 구석 철봉에
다리를 걸치고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윤아 : (씩- 웃으며, 손 흔들어보이는)]
[민수 : ! ]
[윤아 : 거꾸로 보면, 새로운 거 뭐 보여요?]
[민수 : ...]
[윤아 : 선배...님. 무슨 걱정있어요?]
[민수 : ...]
민수 선배는 한바퀴 돌더니
철봉 위에 올라 앉았다.
이젠 내가 서서 보는 높이 이상의
무언가를 보고 있겠네.
[민수 : 혹시 삼촌한테서 연락온 적 있어?]
[윤아 : 최선생님이요? 아.. 한 번 왔었어요.
발 괜찮냐구.]
[민수 : ...]
[윤아 : ...그건 왜요?]
[민수 : ...]
꼭 한 박자씩 뜸을 들인다니까.
[민수 : 신윤아.]
[윤아 : 옛썰!]
[민수 : 너 누구야?]
[윤아 : 네? (눈 껌뻑껌뻑) 저야... 저죠.]
[민수 : (쿡-)]
[윤아 : (칫-)]
뭐야... 괜히 이상한 소리나 묻고.
[민수 : ... 삼촌, 변했다. 너 때문에.]
[윤아 : ...네?]
[민수 : 삼촌, 여지껏 연기말고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자기 가슴을 쉽게 빌려준 적 없었어.]
수습되지 않는 침묵이 흘렀다.
[윤아 : (당황) ...선배, 그걸...]
[민수 : 어떻게 아냐고?]
민수 선배가 잠깐 나를 보더니,
곧 하늘을 올려다봤다.
[민수 : 우연히, 봤으니까.
푸른 극장에서, 삼촌 집에서.]
[윤아 : ! ]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푸른 극장의 새벽 시간이나,
최선우 집에서의 늦은 밤 시간에
어떻게 민수 선배가...?
하긴... 최선우 그가 친조카처럼 귀여워하는 민수 선배에게
그의 거처나 극장은 밤낮으로 항상 개방되어 있는 곳이니...
[민수 : 신윤아! 나랑 사귀자!]
[윤아 : ...?]
[민수 : ?]
[윤아 : 왜요?]
[민수 : 싫어?]
[윤아 : 싫어요.]
[민수 : 잘 생각해봐, 너보나 내가 밑지는 장사같은데.]
[윤아 : -_-;;;; 지금 선배 잘났다구, 자랑하는 거예요?]
[민수 : 응. ^^]
[윤아 : 재수없어. (민수 다리를 퍽- 때리고, 가버리는)]
[민수 : (헉!) 어어어? (철봉에서 떨어질 뻔)]
#
...삼촌, 여지껏 연기말고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자기 가슴을 쉽게 빌려준 적 없었어...
민수 선배의 말이
자꾸 귓가에 울린다.
내 맞은 편에 앉은 민수 선배,
투덜대며 열심히 희곡을 읽고 있는 중이다.
나한텐 감당하기 힘든 말을 던져놓고,
저는 혼자 편하다 그거지?
얄밉다.
이 아르바이트도 이번 주면 끝난다.
나현인... 매니지먼트 학원 잘 다니고 있을까...?
방학 내내 핸드폰으로 몇 번 통화한 게 전부다.
난 이 아르바이트며 촬영한다고 정신없었고,
나현인 학원이 생각보다 힘들다고 엄살이었다.
[나현F : 무슨 매니저 교육에
경호원 훈련하고 응급처치까지 들어가니?]
그래도 열심히 다니는 걸 보면...
아직까지 최선우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민수 : 무슨 사념이 그리 길어?]
[윤아 : ...네?]
잠깐 창밖 좀 내다봤기로서니,
눈치 한번 디게 빠르네.
[윤아 : 헤헤- 커피 한잔 하려는데,
선배 것두 타올까요?]
[민수 : 당연한 걸 뭘.]
이 일을 하느라
임시로 쓰는 작은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들어갔다.
[성린 : (물 마시다가) 어머! 안녕? ^^]
[윤아 : (꾸벅) 안녕하세요. ^^ 연습 잘 되시죠?]
[성린 : 응, 그치만 선우가 안나와서
같이 맞추는 부분은 거의 못하고 있어.]
[윤아 : (?) 왜요?]
[성린 : 어머, 몰랐니?]
[윤아 : 네?]
[성린 : 선우, 아파.
요 몇일 동안 못나왔는데,
전혀 몰랐나보네.]
갑자기 머릿 속이 하얘졌다.
같은 극장이래도
뮤지컬 연습하는 곳하고 사무실이 멀리 있어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어서...
그가 일부러 오지 않으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요새 한번도
민수 선배하고 내가 일하는 곳에 오지않아,
'연습이 바쁜가보다...' 그렇게만 가끔 생각했다.
최선우 집과 아파트 위 아래층으로 사는
민수 선배는 알고 있었을텐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
[윤아 : 어디가... 편찮으신데요?]
[성린 : 그냥 몸살이라고 하는데, 꽤 오래가네...?
혼자 살면서,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나 몰라.]
[윤아 : ... 유선생님, 안가보세요?]
[성린 : 나?]
[윤아 : 네..., 최선생님하고 약혼도 하셨고..., ]
[성린 : 누가 그래? 우리가 약혼했다고...? ^^]
[윤아 : ...]
#
최선우, 그의 집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나, 이래도 되나...?
에잇,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차비가 아까워서라도 그냥 한번 보고 가자.
벨을 눌렀다.
조용하다.
지나가는 잡상인으로 생각하고
그냥 있을지도 몰랐다.
또 벨을 눌렀다.
조용하다.
다시 벨을 눌렀다.
조용하다.
마음이 초초해졌다.
나오지 못할만큼 많이 아픈 걸까?
[선우E : 누구세요?]
아아... 다행이다. ^^
[윤아 : 저, 윤아예요. 문 좀 열어주세요.]
문이 살짝 열렸고,
그 너머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 : 웬일이니?]
탁한 음성과 열에 상기된 얼굴.
[윤아 : 병문안 왔어요. 많이 아프세요?]
[선우 : 괜찮아, 그냥 몸살이야.
와줘서 고마운데, 그냥 돌아가라.]
[윤아 : 병문안 온 사람 문전박대하면,
3년은 재수없대요.]
[선우 : ...(훗-)]
[윤아 : 혼자세요?]
[선우 : ...응.]
[윤아 : 식사는 하셨어요?]
[선우 : ...]
죽을(집에서 새언니한테 물어가봐며 만든) 담은 그릇을 들어보였다.
그제서야 문이 활짝 열렸다.
역시, 먹는 거 앞엔 장사없다니까.^^
거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힘들어보였다.
다 큰 남자, 아니 많이 늙은 남자가
혼자서 아픈 모습이 처량해보였다.
[윤아 : 오는 동안 식었을건데, 데워드릴게요.^^
약은 드셨어요?]
[선우 : ...응.]
거실 쿠션에 앉아있는 그에게 가서,
이마를 짚었다.
꽤 뜨겁다.
[윤아 : 약갖고 안될 것 같은데, 병원가실래요?]
그가 고개젓는다.
[윤아 : 왜 괜히 병을 키워요? 병원가요, 네?]
[선우 : ...싫어. 난, 병원 싫다.]
처음 듣는 강한 어조.
정말 싫은거다.
그러면서 지난 번에 어떻게 날 업고
대뜸 응급실로 갈 수 있었을까.
전자렌지가 땡- 울렸다.
렌지에서 죽을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
그가 식탁으로 오려다가 휘청한다.
[윤아 : 선생님!]
놀라서 달려갔지만,
그는 곧 아무렇지 않은 듯이
식탁에 와 앉았다.
죽을 몇수저 뜨더니, 그냥 수저를 내려놨다.
[윤아 : 왜요? 맛없어도 좀 드세요.]
[선우 : 미안하다, 입맛이 써서.
나중에 먹을게.]
뭐라도 좀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을텐데.
[윤아 : 제가 먹여드릴까요? ^^]
[선우 : 정말? ^^]
다 큰 남자가 아프니까
어린애같다.
죽을 한 수저 떠서
호호- 불어 식혀서 내미니까
정말, 받아먹는다.
[윤아 : 일부러 엄살 부리신거죠? +_+]
[선우 : (일어날 듯이) 입안이 소태같아, 맛없어. 안먹을래.]
[윤아 : 아, 알았어요.
(허둥지둥 떠주며) 자, 아- 드세요.
이 김치는 꼭꼭 씹어드세요.]
[선우 : 응. ^^]
반 그릇정도 겨우 먹이고,
약을 먹였다.
그렇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약으로 될 것 같지않은데...
그렇다고 내가 다 큰 어른을 억지로 끌고갈 힘도 없고.
침대에 눕히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얹어줬다.
[선우 : 앗! 차거! 일부러 그랬지?]
[윤아 : (시침떼고) 얼음주머니 만들어 올게요.]
[선우 : 춥단말야, 더 춥게 하지마. T_T]
[윤아 : 원래 열 내리게 하려면,
얼음으로 온몸을 문질러줘야 된다구요.]
[선우 : 노, 농담이지? ^^;;;;]
[윤아 : (짐짓) 민수 선배 불러서 해달랄까...?]
[선우 : 추워, 진짜 추워. 하지마.]
[윤아 : ...]
...안쓰럽다.
사실 얼음으로 문지르는게 직빵인데,
저렇게 덜덜 떠는게... 마음 아프다.
약기운때문인지,
그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찬 물수건으로
그의 얼굴과 목, 팔을 계속 닦았다.
새액-쌕- 고열로 인한
그의 숨소리가 거칠다.
제발 열이 빨리 떨어져야 할텐데.
열이 높아, 근육통도 있는 것 같던데,
병원에 가기 싫어하니...
열이 빨리 내리길 바라는 수밖에.
#
아침이 밝았다.
집에는 자취하는 친구 병간호 해준다고
전화해뒀다.
자취하는 욱이 선배 이름을
욱선이로 바꿔서 팔아먹었다. ^^;;;
거짓말... 자꾸 는다.
마음이, 무겁다.
달칵!
현관문이 저절로 열렸다.
[윤아 : 0.0]
부엌에서 설겆이하다가
놀라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놀라긴..., 열쇠로 현관문 열고 들어온
민수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민수 : 0.0]
[윤아 : ... 서, 선배..]
[민수 : 너... 왜 여기 있어...]
[윤아 : ...선생님이 편찮으시대서...]
[민수 : 이 시간에?]
왜 자꾸 뭔가 잘못하는 기분이 드는걸까.
민수 선배는 화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부엌으로 들어가
들고 온 죽그릇을 탕-! 소리나게
식탁에 내려놓았다.
[윤아 : (화들짝, 절절매는) 선, 선생님 깨요.
밤새 열때문에 자꾸 깨셨단 말이예요.
새벽에 겨우 잠드셨는데...]
[민수 : 너도 그런거였어?]
[윤아 : 네?]
[민수 : 난, 삼촌만 잠깐 흔들린 줄 알았어.
그치만 (허- 헛웃음, 윤아 어깨 잡아 흔들며) 너까지 왜 이래!]
[윤아 : (애원) 소리 낮춰줘요, 제발.
선생님 깨요.]
그제서야 민수 선배는
억지로 자기 흥분을 가라앉혔다.
[선우E : 민수 왔니?]
침실에서 그가 나왔다.
[민수 : (윤아 어깨 놓고, 태연히) 어.
엄마가 삼촌 갖다주래서, 삼촌 좋아하는 야채죽.]
[선우 : ^^ 맨날 형수님한테 신세져서 어쩌냐.]
[민수 : 내가 여기서 얻어먹는거나 매일반인데 뭐.]
[선우 : ...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그는 잠깐이라도 잠을 제대로 잤는지,
얼굴이 말갛고, 기분이 나아보인다.
[민수 : (선우에게) 좀 괜찮아?]
[선우 : ...응, 윤아가 애썼다. ^^]
[민수 : 나두 여기서 먹어도 돼?]
[선우 : 몇인분인데?]
[민수 : 2인분.]
[선우 : 윤아도 먹어야 되는데,
넌 그냥 올라가서 먹어라.]
[민수 : (뭔가 참는듯)...알았어.]
민수 선배가 바람처럼 나가버린 뒤에,
그가 식탁에 앉았다.
[선우 : 저 녀석 삐졌나? ^^]
[윤아 : ....]
[선우 : 너도 같이 먹자.
윗층 형수님 음식 솜씨 좋거든. ^^]
[윤아 : ...네.]
그의 앞에 수저와 국자, 그릇을 놓아주고,
그의 이마를 짚어봤다.
아직 미열이 남아있다.
[선우 : 다 나았어. ^^
커피 마시고 싶다.
커피가..(일어나려는데)]
[윤아 : (선우 앉히며, 자기가 일어난다)
제가 타드릴게요. 커피에 설탕 타드세요?]
[선우 : 어.]
[윤아 : 안돼요, 아직 열이 있는데
단 건 드시지마세요.
그냥 커피만 약하게 타드릴게요.
커피 어디있는데요?]
[선우 : 윗찬장 제일 왼쪽에.]
그에게 등을 보이며 싱크대로 가서
까치발로 서서 찬장에서 커피병을 집어 내렸다.
[선우 : ... 너 아주 잘아는구나?
집에 아픈 사람 있었어?]
[윤아 : 제가 어릴 적에 잔병치레를 많이 했어요.]
[선우 : ...그렇게 안보이는데.]
[윤아 : 엄마가 공들여 키워주셨으니까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약도 먹었어요.]
[선우 : ...그래..그랬구나...]
여전히 그에게 등을 보이며
가스렌지에 올린 물이 끓길 기다렸다.
[윤아 : ...선생님.]
[선우 : 응?]
[윤아 : 혹시... 선생님, 그리운 분 계세요?]
[선우 : 왜?]
[윤아 : 밤새 헛소리 하셨어요.
'가지마요, 가지마요...' 그렇게요.]
[선우 : ...]
어느 책에선가
그리움이 깊어지면 병이 된다고 했다.
밤새 열에 들떠,
내 손을 꽉 잡고...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그 누군가에게 진실되고 간절하게
가지말라던 그의 목소리에...
오직 그 문구만이 떠올랐다.
[선우 : 내가... 그랬어?]
[윤아 : ...네.
웬만하면 만나세요,
그렇게 힘드시면요.]
왜...내 목소리가 떨려나오는 걸까.
[선우 : ...죽었어, 그 사람.]
[윤아 : ! ]
덜컹,
가슴이 덜컹거렸다.
유성린 선생님이 아니었어...?
...죽었다...고?
대체 난 뭘 생각한거야?
[윤아 : ...죄송해요..]
[선우 : ...]
[윤아 : 그래도, 다 나으시면... 만나러 가세요.
무덤이나, 납골당이나, ...]
[선우 : 갈 수 없어.
내가 찾아가기 힘든 곳에 뿌려졌거든.
그래서 가끔... 이렇게 힘들어.]
역시... 그랬구나.
그리움이 병이 되고,
외로움이 그를 쓰러지게 한 거다.
[선우 : 물 끓는 것 같은데?]
[윤아 : 아, 예...]
커피만 약하게 숭늉처럼 타서,
그에게 내밀었다.
[윤아 : 맛없어도, 열떨어지기 전까진
이걸로 만족하세요. ^^]
[선우 : 알았어, 무서운 간호사님.^^]
어젯밤, 무서운 건 나였다.
고열때문에
자주 잠에서 깬 그는
잠깐씩 눈을 떴으나,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것처럼
빛이 없었다.
그제서야 가끔씩 나를 다르게 보던
그의 눈빛이... 떠올랐다.
내 마음이 움추려 있어서,
로리타 컴플렉스로 오해했던....
사실...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최선생님은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나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을.
여러 감정이 담긴 그 눈빛...
겨우 몇가진 읽어낼 수 있다.
...그립다,
사랑한다,
보고싶다,
외롭다,
고독하다,
아프다...
하지만... 죽은 이를 가슴에 담고
그리움 병으로 키울 줄은 몰랐다.
어리석은 남자.
...이 남자는 자신만의 그리움 세계에서
나를 느끼긴 했을까.
밤새 열이 너무 높아,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넘기지 못해...
내가 해열제와 진통제를 빻아 물에 타서
내 입에 담아
그의 입 안 깊이 넣어준 것을.
... 어리석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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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그의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는데,
엘리베이터 맞은 편 계단에
걸터앉아있는 민수 선배가 보였다.
...날... 기다린걸까...?
내가 그쪽으로 가자,
민수 선배가 천천히 일어났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하고 민수선배, 나란히 탔다.
[민수 : 배 안고파? ]
[윤아 : 별로요.]
[민수 : 근처에서 라면이라도 먹자.]
[윤아 : ...]
#
민수 선배가 날 데리고 간 곳은
뜻밖에도 욱이 선배 자취방이었다.
[욱 : (방문에 턱-하니 기대서) 신윤아, 너 진짜 겁없다.]
[윤아 : ... 저, 저... 그냥 갈게요. ^^]
[욱 : (들어오게 비켜주며) 들어와.]
민수 선배 손에 잡혀 들어갔다.
벽에 성룡과 여러 액션 배우 사진이
몇 장 깔끔하게 붙여져 있고,
앉은뱅이 책상에 놓인 컴퓨터와
이불 한 채.
신윤아, 너 긴장할 거 없어.
민수 선배,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닐거야.
[윤아 : 홀애비 냄새는 안나네요? ^^]
[민수 : 라면 있지? 배고파 죽겠다.]
[욱 : 내 방에 라면 맡겨놨냐?]
욱이 선배는 툴툴대면서도
부엌으로 들어갔다.
욱이 선밴 영화촬영 중이라
시골집에 못내려갔나보다.
[민수 : 다음엔 한 박스 사올게~! ^^]
[욱E : 제발 그래줘~]
[윤아 : ^_^;;;]
[욱E : 셋이 먹긴 부족할 것 같은데?]
욱이 선배가 방 안쪽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욱 : 슈퍼 갔다 온다. 민수야?]
[민수 : 어?]
[욱 : 청슈퍼로 갔다올까, 정미슈퍼로 갔다올까.]
???
슈퍼마다 라면 맛이 다르나?
[민수 : 정미슈퍼.]
[욱 : 오케이.]
욱이 선배가 문 열고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부러 민수 선배에게 등을 보이며
책상에 있는 연기에 관한 책을 건성으로 넘겼다.
액션 배우래두 무조건 운동만 잘해야하는 건 아니구나.
연기나 영화에 대한 손때묻은 책자들이 제법있다.
[민수 : 신윤아.]
민수 선배의 목소리가
차분히 가라앉아있다.
[민수 : 나 좀 볼래?]
돌아볼 자신이... 없다.
[윤아 : ...선배, 무섭게 그러지 마요.]
[민수 : 그러게 왜 겁나는 짓을 왜 해.]
[윤아 : 그런 적 없어요.]
[민수 : 삼촌한테 뭘 바라는 거야?]
[윤아 : ...! ]
[민수 : 왜 그러냐, 너.]
[운아 : ...]
[민수 : 나, 너 후배로 좋게 생각해.
어떤 면은 너한테 배우기도 하고.
그렇지만, 삼촌에 대해서만큼은 이해할 수 없어.
너, 선우 삼촌한테 뭘 바라는 거야! 대체!]
아... 민수 선배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다.
날 나쁜 아이로 몰아서라도,
내가 행여 그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바라고 접근한걸로.
[윤아 : ... 저 최선생님한테 바라는 거 없어요.
정말이예요. T_T]
[민수 : 삼촌, 유선생님하고 파혼했어.
하긴 정식으로 약혼한 적도 없으니,
파혼이랄 것도 없지만.
한바탕 우리집, 삼촌 모두 뒤집어졌지.
알고나 그런 속편한 소리 해.]
[윤아 : ...!!]
[민수 :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신윤아.
삼촌 더 이상 흔들지마.]
...괜히 서러웠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뭘 바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험한 소리를 들어야 하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투툭 떨어졌다.
대체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눈물이 흔해졌지.
여길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민수 선배의 추궁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일어나서 문으로 가는데,
민수 선배가 막아섰다.
[민수 : 너... 정말, 진짜로... 삼촌 좋아하는거야....?
아니지? 그건 아니지?]
[윤아 : ....]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그게 모든 감정을 포함한 예스도 아냐.
경악에 가까운 표정의
민수 선배 얼굴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윤아 : ... 선배두...좋아하잖아요... 최선생님...]
[민수 : (당황) 나야, 나야... 삼촌조카같은 사이로...
넌 다르지... 삼촌이 널...]
난... 대전서 도망치면서
사람을 함부로 좋아할 용기같은 것,
잃어버린 줄 알았다.
그는
그저 편하고, 수다떨고, 귀여움받고...
위로받을 수 있고, 잠시나마 기대서 울 수 있었던...
그럴 수 있었던 상대였을 뿐.
...그렇게 방심해버렸다.
[윤아 : ...좋아해...요.
아니... 선배, 나 어떻해...
나... 최선생님... 사랑해...]
당황한 민수 선배는
나를 끌어안았다.
[민수 : 너, 너 왜 그래...어?
아니잖아, 넌 그냥, 그냥 삼촌이 귀여워해주니까 만난 거잖아,
아냐? 아냐? 어?]
...흐느낌이 멈추질 않았다.
[민수 : (안타까워서) ...널 어쩌냐...
대체 언제 그렇게 되버린거야....]
#
울다가 기진한 나를...
민수 선배는 잘 참아주고 있었다.
[민수 : ...내가 삼촌 앞에 서 있을게.
내가 삼촌을 가려서, 너한테 안보이게 해줄게.
... 우리, 그러자.]
[윤아 : ....싫어요.]
[민수 : ...]
[윤아 : 선밴 날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요.]
[민수 : 그래, 난 삼촌 좋아해.
그러니까 너한테 잘할게.]
[윤아 : (고개 젓는) ... 싫어요.
그런 가식적인 짓 안해.]
[민수 : ...]
민수 선배는 잠시 날 보더니,
단념한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욱F : 얘기 다 끝났냐?]
[민수 : 어디까지 갔어?]
[욱F : 청슈퍼 지나서 정미슈퍼 지나서,
차도까지 나와서 쭈쭈바 빨고 있다.]
[민수 : 우리 그냥 갈게.]
[욱F : 그러든가.]
[민수 : 현관 열쇠, 화분 밑에 넣어둘게.]
[욱F : 어.]
비척비척 일어나 가방을 맸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따라 타려는 민수 선배를
밀쳐냈다.
[민수 : 윤아야-]
[윤아 : 선배 미워.]
가식적인 아버지 모습 싫다더니,
나보고 거짓 모습을 연기하라는 거야?
그것도 순전히 최선생님 앞에서?
...하지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차라리 민수 선배를 좋아했다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마음이 복잡하고 괴롭진 않았을텐데.
#
나도 이 상황이 좋은 건 아니란 말야.
최선우 팬인 나현이한테도,
그를 삼촌으로 좋아하고 있는 민수 선배한테도
너무 미안해.
그리고 나 자신한테도 너무 미안해.
하필이면 내 일생의 단 한번뿐인 첫사랑이 그런 늙다리 아저씨란 말야?
하필이면 라이벌이 머리채 잡고 싸울 수도 없는 죽은 사람이란 말야?
차라리 그가 사랑하는 분이 유성린 선생님이었다면,
난 어쩌면 순순히 포기가 됐을지도 몰라.
나하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분이니까.
그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테니까.
... 그의 그토록 아픈 사랑을 받은,
그 분은 어떤 여자였을까...?
적어도 나처럼 별나진 않았을거야,
방금 몇십분전엔 당장이라도 죽을듯이 심각했다가도
금세 헤헤거릴 정도로 단순하진 않았겠지.
그 분도 그를 많이 사랑했겠지...
그의 사랑... 너무 깊어져...
이제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깊고 고요해진 사랑을,
가질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으니까.
그래, 그는 그 분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으니
쉽게 잊지 못하는 거겠지.
...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었겠지.
나와 모습은 비슷해도,
나 같은 애와는 전혀 달랐을...
.....
민수 선배가 그랬다,
내가 그 분과 많이 닮았다고.
[민수 : 갑자기 기억이 났어.
그 날 계단에서 삼촌 병간호하고 나올 널 기다리는 동안...
몇 십년동안 어떤 여자한테도 꿈쩍안하던 삼촌이
왜 너한텐 그렇게 쉽게 흔들렸는지.]
[윤아 : ...]
[민수 : 너, 삼촌이 사랑했던 그 분...
그 분하고 너무 똑같아.]
[윤아 : 0_0 그렇게... 똑같아요?
선배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민수 : 사진을, 삼촌 몰래 그 분 사진을 본 적 있어.]
[윤아 : ...]
[민수 : 삼촌은 몰라,
형이 삼촌 몰래 그 분 사진을 한 장 훔쳤었어.
형한테...삼촌의 그 분, 우상이구... 이상형이었거든.]
[윤아 : ...]
[민수 : 어릴 적부터
가끔 아빠하구 선우 삼촌, 현민이 삼촌,
...그런 분들이 모여서 술자리 하실 때
귀동냥 잠깐씩 한 정도였는데...
형은... 선우 삼촌의 비밀 로맨스에
늘 혼자 몰래 설레했어.
형이 살아있었다면... 아마 널 봤다면...
널 굉장히 좋아했을거야.]
[윤아 : (퉁-) 울엄마가 들었다면 통곡하셨겠네요.
열달을 품어서 낳아준 공도 모르고,
엉뚱한 사람이나 닮았다구.]
[민수 : (피싯-)]
그제서야... 푸른 극장의 미스테리가 풀렸다.
죽은 그 분을 아는
민수 선배 아버지도, 유성린도, 강현민도, 민동희도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없었다는 걸.
[민수 : ...괜찮아...?]
[윤아 : 억울해요, 억울해 죽겠어.]
[민수 : ...?]
[윤아 : 이게 뭐냐구요.
단지 닮았다는 이유로, 그 딴 이유로,...
최선생님하구 얘기해야겠어요.]
[민수 : ... 그래봤자, 너만 더 상처받아...]
[윤아 :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거죠.
어중간한 감정같은 거, 딱 질색이예요.]
[민수 : 그래서, 정말 그 딴 이유로 삼촌이
널 가볍게 대한거라면...그 땐 어떻할래?]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직은.
#
푸른 극장 입구에서, 기다렸다.
어느 새 어둠이 깔렸다.
아르바이트도 끝났고,
공연 연습하는 곳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어서...
...퇴근하는 단원들 속에
그는 없었다.
분명 연습하러 극장에 왔을텐데.
사무실에 있을까...?
용기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중앙 대공연장 무대 위에 서서
엔지니어실과 무선기로 대화하며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 위치를
체크하고 있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서서
그가 하던 일을 마치고
나를 발견할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춤을 추듯이 빙그르-한바퀴 돌던 그가,
날 발견하면서 딱 멈췄다.
그는 나를 향해, 계단을 올라오고
나는 그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고
계단 중간에서 마주섰다.
[선우 : ...이 시간에 웬일이야?]
[윤아 : ...파혼하셨어요?]
[선우 : ! ]
[윤아 : 왜요? 저 때문에요?]
[선우 : 아니. ...너하곤 상관없어.]
[윤아 : ...정말요? 아니면 왜요?]
그는 나를 잠시 봤다.
[선우 : 너처럼... 성린씨를 옆에 두고
외롭게하기 싫어서.]
그는...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
무대 위에 올라서서 엔지니어실을 향해
목례했다.
[선우 : (무선기에 대고)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무대 위의 조명이 꺼졌다.
그의 모습이 어둠에 묻혔다.
계단을 내려가 무대 아래에 서서 올려다봤다.
어렴풋이 그의 실루엣만 보인다.
[윤아 : (선우를 찾아부르는) 선생님, 선생님...]
[선우 : 윤아야... 그냥 거기서 들어줄래?]
어둠이 눈에 익으면서
그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표정까진 알 수 없지만,
몸짓은 보였다.
그의 목소리에선 차분하다 못해
깊은 울림까지 느껴졌다.
[선우 : ...어떻게 얘기를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대체 어떤 얘기를...?
[선우 : 넌... 내가 아는 어떤 사람하고 많이 닮았어.]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먼저 묻기 전에,
오늘 이런 상황에서
그런 얘길 듣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윤아 : ...어떤, 사람이요?]
[선우 : ...]
[윤아 : ...]
[선우 : ..내... 아내.]
[윤아 : ! ]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윤아 : 선생님은 결혼하신 적 없잖아요?]
아...!
혹시 비밀 결혼?
예전에 홍콩의 어느 배우가
결혼한 걸 숨겼었었다가 나중에 밝혔지.
팬들에게 혼란과 실망을 줄 수 없어서였다나...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 팬들도 그렇게 수준이하였나?
좋아하는 연예인이 남들처럼 결혼하고 사는 걸, 용납못할 정도로?
[선우 : 결혼... 했어.
공개할 수 없었고,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지만.]
[윤아 : ...]
마음이 먹먹해졌다.
여태 독신인 것에,
아주 이유가 없진 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민수 선배에게서 그에게 로맨스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결혼이라니...
[윤아 : (떨리는) ...선생님 사모님하고... 제가 많이 닮았나요?]
[선우 : ...그래...
그 사람이 니 나이였다면, 네 모습 그대로였겠구나 싶어.]
[윤아 : 돌아가셨다는 그 분... 인가요? 병으로...]
[선우 : 그래...]
어두워서 볼 순 없어도,
지금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눈빛은
내가 아는 눈빛일 것이다.
그리움에 병들어 아픈 눈빛...
[윤아 : ...많이.. 사랑하셨어요?]
[선우 : ...아니.]
[윤아 : ...거짓말.]
[선우 : 많이 사랑하지 못했어.
그래서 지금도 사랑하지, 지금도 늘 부족하게 사랑해.]
[윤아 : ...! ]
소년같은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아직도 이런 사랑이, 이런 사람이... 있다.
어쩌나...
난....난....
그 사랑이 욕심난다.
[선우 : 어쩌면...니가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윤아 : ...! ]
[선우 :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나하고 약속했었어,
다시 태어나서 같이 살자고.]
말도 안된다.
멜로 영화용 멘트가 따로 없다.
다시 태어나면 꼭 널 찾을거야,
다시 태어나면 다신 헤어지지 말자,
다시 태어나면 절대 널 보내지 않을거야...
그런 유치한, 유치찬란한 대사를 주고받았단 말야...?
[선우 : 이젠 알겠어, 분명히... 넌 그 사람이 아니야.]
당연하죠, 난 난데.
제가 어떻게 감히, 선생님이 그렇게 그리워하는 분하고
비교될 수 있겠어요.
[윤아 : 그래서 절... 만나고, 아껴주신거예요?
그 분 같아서? 그 분일지도 몰라서?]
[선우 : ...마음 다쳤다면, 미안하다...]
[윤아 : ...]
[선우 : ...하지만 그 사람이 때문이 아니라...
그냥 너한테 어느정도 끌렸던 것, 사실이야.]
아아... 작은 희망이 생겼다.
무대 위로 올라가, 그에게 다가갔다.
...사랑합니다.
[선우 : 그만.]
멈춰섰다.
그의 손 끝이 내 머리위에 살짝 내려앉았다.
우리가 마주보고 서서
그가 팔을 뻗으면 내 머리가 닿는 거리.
그러나 나는 아무리 팔을 뻗어 버둥대도
그의 옷자락조차 스칠 수 없는 거리.
그는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했다.
벤치에 나란히 앉을 때도,
거리를 나란히 걸을 때도.
[선우 : 더 오지 마라.
더 오면... 너만 상처받아.]
그래도...
한 걸음 옮기려는데,
강하게 내 이마를 막는
그의 손 힘이 느껴졌다.
[선우 : 이만큼만.
네가 무모하게 오지 않으면,
난 항상 이만큼에서 있을거다...]
철로 만든 것 같은 벽이 느껴졌다.
그를 스스로 과거에 가두고,
새 사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난 나도 모르게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아 꽉 쥐었다.
[윤아 : 선생님, 한번만, 한번만... 저를 봐주세요.
그 분이 아니라... 그냥 저 신윤아로만 보고,
그 분한테 가는 사랑... 조금만 저한테 주세요.]
제발....
[선우 : ... 왜.]
[윤아 : 그 분처럼 선생님 사랑 받을 자격없다는 거 알아요.]
[선우 : 윤아야-]
[윤아 : 알아요, 저 나쁜 애죠.
그래서, 그래서... 다시는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선생님은 다 알고도, 그냥 있어주셨어요.
다시 울 수 있게 해주고, 기댈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다시... 다시 사람도 믿고, 사랑도 믿고 싶어졌어요.]
[선우 : 넌... 충분히 사랑스런 애야.]
[윤아 : 그럼 조금만 욕심낼게요... 허락해주세요...]
[선우 : 아니, 넌 너무 어려.
민수처럼 지켜봐줄 순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생각해.]
[윤아 : ...]
[선우 : ...이게 너와 나의 최선이다. 여기까지야.]
[윤아 : ...]
[선우 : ...]
[윤아 : 선생님은 겁쟁이예요.]
[선우 : ! ]
[윤아 : 우리 하루도 인생도 사랑도,
웃는 날도 있고 우는 날도 있잖아요.
저같은 애도 용기내서
다시 사람을 믿고 사랑을 해보려고 하는데
그런데 선생님은 겁부터 먹고,
도망치려고 하시잖아요!]
[선우 : ...]
[윤아 : 그 분은 선생님께 다시 올 수 없잖아요!
하지만 전 선생님 옆에 있을 수 있어요!]
[선우 : (화 난) 신윤아!]
난 나를 더이상 지탱할 수 없어,
무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안다...
터무니없는 환생까지 믿어가면서,
그 사랑을 버리지 못한 남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는 것을.
[윤아 : 선생님 사람으로 인정해달라고 안해요.
그냥... 선생님 마음만 조금 주세요.
제가 선생님한테 불가능한 걸 달라는 건 아니잖아요.]
[선우 : 불가능해. 가능하다해도, 너한텐 아니다.]
그는 냉정하게 그대로 무대를 내려가
공연장을 나가버렸다.
멀어져가는 발자욱 소리를 들으며,
현기증이 일고,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나를 추스려
그와 나의 마지막 무대에서 내려와
푸른 극장을 완전히 나설 때까지
그가 나를 멀리서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것을.
나를 걱정한 그의 부름을 받은 민수 선배가
푸른 극장에서부터 내 뒤를 밟고 있었다는 것도.
민수 선배가 알려줄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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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 전작하고 느낌이 많이 다르죠...? ^^;;;
쓰면서... 윤아가 되어 선우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시점이, 시선이 참 많이 다르구나..라는.
선우의 사랑은 쓰기 편했는데, 윤아의 사랑은 쓰기 정말 힘들어요.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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