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영웅 (1부 1막 : 묘령(昴靈)의 추억 #10)

J.B.G |2004.11.05 01:51
조회 213 |추천 0

무해진.

장수들이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다. 장수 사기(仕起)를 비롯한 수군 장 이목한(李目寒)등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한 봉국의 군세를 과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현국의 청해진(淸海津)을 통해 상륙한다면 곧 정진을 함락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목한의 부장인 정해룡(政海龍)이 이에 반대했다.

 

“구석에 몰린 쥐를 그리 몰아 붙여도 되겠습니까?”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수야 있겠지만, 어찌 당해내겠는가?”

 

정해룡의 이 한마디는 곧 수군장 이목한에 의해 무시되고 말았다. 그렇게 전략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군사로 이 전쟁에 참가한 묘령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녀는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중대한 결심을 했으며, 지금 군사로서의 책무를 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를 이상히 여긴 정해룡 장군이 물었다.

 

“묘령 장군께서는 어찌 침묵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저도 수군 총사령관이신 이목한 장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패주한 적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니 지금이 총 공세의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진을 얻으면, 곧 안주, 성림의 제후들도 투항해 올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습니다만… 그것은 정진을 얻은 후의 일입니다.”

 

그때 수군 장 이목한이 부장 정해룡을 또 다시 저지했다.

 

“부장은 어찌 그리 부정적 인가? 묘령장군도 이미 동의했으니, 오늘 전략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깊은 밤.

묘령은 홀로 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번 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 모든 것이… 난, 절대로 같은 일을 되풀이 할 수 없다. 절대로! 그것은 내가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한번 죄를 범했으나 나는 그 일로 나의 한계를 깨닫고 말았다. 한번 지은 죄의 무게는 아직도 나를 짓누르고 있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난 이 죄의 무게에 짓눌려 죽고 말 것이다. 틀림없어… 이제는 이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된 거야… 이 운명의 짐을…’

 

묘령은 바다에 비친 하늘의 무수한 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죄송해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를 믿고 죽음을 택해 준… 영웅들이여… 내 죽음으로 속죄하리다…’

 

며칠 후.

청해진에서는 봉국 수군의 대대적인 상륙작전이 전개 되었다. 예상대로, 봉군은 파죽지세로 청해진을 점령하고 정진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너무나 당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봉의 육군도 인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정진을 향하고 있었다. 인성과 청해진을 통해서 봉군은 파죽지세로 현의 정진을 에워싸고 있었다.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되지 않은가…? 이게 어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해룡은 연일 계속되는 승전에 불안감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군부는 승전에 취해서 정진에서 현이 황제를 포위하고는 술판을 벌이기 까지 했다.

 

“정말… 이 원정은 어찌 된 것인지…”

 

그럴수록 수군 부장 정해룡의 근심을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이러한 전세는 곧 역전되고 말았다. 일사천리로 정진까지 진군한 봉군의 진이 어느새 사방에서 현군에 의해 둘러 쌓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는 봉의 진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것은?”

 

묘령은 중얼거렸다.

 

“거짓, 패전이었군…”

“네?”

“적은 아마 염파와 안주성에 정예군을 집결한 다음 작은 소규모 전투에서 패하면서 우리 군이 정진에 집결하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성에 입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적은 그것을 노리고 우리가 성에 입성하기 전에 전 군을 몰아 우리를 포위한 것입니다.”

 

그때, 장군 이목한이 말했다.

 

“그럼 우리는 하루 빨리 성을 공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묘령은 반대했다.

 

“정진을 얻기 전에 먼저 외곽에서 뚫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럼”

“하루 빨리 회군해야 합니다.”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승전했는데, 승전 군이 회군이라니…”

“지금까지는 적군의 위장패전 이었습니다. 승전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목한은 끝내 묘령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 봐야 사기가 이미 땅에 떨어진 적 입니다. 우리 군은 절대로 회군하지 않습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성을 얻을 것 입니다.”

“…”

 

이목한은 장군들을 모아 전략에 대해 숙의하기를 밤이 맞도록 계속 했다. 그러나 묘령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래 머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봉의 원군은 강 너머에 있지만, 현은 사방에서 그 지원자가 늘어나 군사가 늘고 있을 것입니다.”

“장군은 어찌 한사코 이 원정에서 내 명을 거역하는 것입니까?”

 

계속 되는 묘령의 반대에 수군 사령관 이목한는 돌연 노를 발했다.

 

“쥐가 고양이를 문 형상입니다. 회군해야 합니다.”

 

그러나 묘령은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드러내지 않은 채 반대만을 일삼았고, 그러한 그녀의 태연한 태도에 이목한은 더욱 노했다.

 

“그만 하시오.”

 

흥분한 이목한은 묘령의 진언을 거부했고, 결국, 다음날 정진 함락을 위한 대규모 공성전이 전개 되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4번의 전투에서 모두 패하고 병사들은 지쳐갔다. 그리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현군이 노도같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결과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봉국의 참패였다.

 

둘로 나뉘어 만 하루를 쫓긴 봉군은 북으로는 인성으로 남으로는 청해진을 향했다. 그리고 북으로 쫓긴 군사는 인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잠그고 항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청해진으로 퇴군하는 군사들 이었다. 그들은 몸을 의탁할 성이 없었다.

 

“장군님!”

 

묘령이 이목한을 불렀다.

 

“무슨 일이오?”

“청해진에 가도 우리 수군의 배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진은 적의 손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허면 어찌하면 좋겠소.”

“군사를 청해진과 염파의 사이의 강변으로 이동시키시죠.”

“하지만, 그곳은 진이 아닙니다. 어찌 강을 건너 본국으로 돌아간단 말입니까?”

“마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을?”

“백성들의 집의 뜯어 땟목을 만들고 강을 건너도록 하시지요. 그리고 강변의 나무를 모두 베어 그것을 부여잡고라도 강을 건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정예병 500을 주시지요. 진이 아닌 마을로 이어진 길들은 대부분 대군이 이동하기에 비좁으니 그 정도 군사로도 적병을 막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소…”

 

이목한은 깊이 한탄했다.

 

‘어찌 이리 참담할 수가 있단 말인가?’

 

패전한 봉군은 마을의 집들을 부수어 땟목으로 사용하고, 또 어부의 배를 징발했으며, 주변의 물에 뜨는 것은 닥치는 대로 탈취해 강을 도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정예병 500 이 그들의 도주를 위해 길목에서 수 만의 현국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곳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

 

퇴군하는 군사들의 시간을 벌기 위해 길목을 막고 있는 묘령의 정예병은 반나절의 싸움으로 이제 500여 군사도 10여명 만 남게 되었다. 그리 되자 묘령과 10여기의 기병은 말을 달려 염파(廉波)로 행했다.

 

“저자를 놓치지 마시오!”

“겨우 십여기의 적보다는 어서 도주하는 대군을 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사!”

“그들은 이미 늦었습니다. 저는 적장 묘령을 잡고 싶습니다. 그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현의 군사 유다는 묘령을 얻으려 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반나절을 쫓기는 동안 묘령은 혼자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염파의 야산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모두 도하를 했을 것이다. 이제는… 죽는 일만 남은 것인가…? 하지만 이번에도 결국은 마지막에도 500의 생명을 사지로 끌고 들어오고 말았군… 빌어먹을…’

 

쫓기다가 결국 막다른 절벽의 끝에 도달한 묘령은 그때까지도 칼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녀를 둘러 싼 현의 병사들 사이에서 군사 유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가 지난 날 나에게 큰 패배를 안긴 묘령이라는 장수인가?”

“…”

 

그의 물음에 묘령은 침묵했다.

 

“우리 현에 투항하는 것이 어떠한가? 이대로 죽기에는 그대의 재주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훗…”

“…”

“그 재주로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순간, 유다는 갑자기 두려워 졌다.

 

‘왜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숨이 가빠지는 것인가…? 왜…?’

 

묘령이 침잠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미 죽기로 결심하고 이 원정에 나섰다. 그러니 후회는 없다.”

“뭣이…? 그 이야기는 네가 죽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내가 또 다시 패배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냐?”

“그런 것은 이제 상관 없다.”

“…”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해서 그 동안 지은 최가 탕감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이 악몽에 시달리는 일을 없겠지… 그것이면 족하다.”

“가녀린 영웅이로구나… 너는…”

 

결국, 그녀가 이미 죽기로 마음을 굳힌 것을 깨달은 유다는 그녀를 포기하기로 했다.

 

“묘령… 저승에서 만나자!”

“훗…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

 

이 말과 함께 묘령은 칼을 버리고, 천길 절벽으로 아래인 천, 지, 인강과 바다가 만나는 거대하게 흐르는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영웅이 하나 지는구나…”

 

유다는 깊은 탄식을 하며, 그 자리에 절을 하고 물러났다.

 

봉의 황도 천산.

참패에 대한 소식은 봉국을 큰 충격에 빠지게 했다. 묘령의 용맹함이 남은 군사를 구했으므로 그 명예로운 죽음에 아무도 제상 위와 대장군 호령을 참언 하는 자는 없었지만, 이 일로 제상 위와 대장군 호령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흐르는 물에 자신을 맡긴 묘령은 강을 따라 흐르고 흘러… 운산에 인접한 지류로 흘러 들어 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한 촌부에게 구명되고 말았다. 결국, 묘령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