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아이디를 빌려 올립니다.
긴내용이지만 정말 잘 읽어봐 주세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움이 되는 리플 부탁 드립니다.
내용을 보시고 정말 이렇게 무서운 여자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퍼서 여기저기 올려주세요..정말 너무 억울합니다.
난 16년 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때 나에겐 3살 된 아기가 있었고, 수원에서 목욕탕을 하고 있었으며 어머닌 오산에서 목욕탕을 하고 계셨다. (내 3살 된 아기는 4개월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님 손에 키워졌고,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행복했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항상 돈이 비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며 살았었다.
이제 결혼 생활의 전반기는 다음에 얘기하겠다.
목욕탕을 그만두고 유통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1998년 6월경 아는 후배로부터 시골집 도색하는 일이 괜찮다는 얘길 듣고 확인 후 임실로 가서 친구를 소장으로 두고 직원 12명으로 일을 시작했고 번 돈은 모두 아내에게 맡겼다.
아내에게 돈을 맞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닌가???
일년 동안에 약 1억에서 1억5천을 벌었다. 그런데 돈은 갖다 주고 필요할 때 돈을 달라고 하면 아내는 돈이 없다는 거다. 싸워도 돈이 없다고 하니 영업한 집에서 선자금을 받고 일을 한 적도 있다. 어머니께 이런 내용을 말씀 드렸더니 여자들은 돈이 없다 없다 하면서 다 모아 두고 큰일이 있으면 내 놓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하셨고 난 그 말씀을 굳게 믿었다.
다음해 임실을 정리하고 해남에 와서 일을 시작했다.(사실 칼라 강판을 이제 너무 많이 알려졌고, 너무 위험하여 페인트가 잘되는 지역을 찾고 있었던 길이었다.)
해남은 임실보다 페인트 일이 훨씬 많았다. 칼라 강판을 하루에 한 장 밖에 못하지만 페인트 일은 하루에 2-3집 정도를 할 수 있었다. 계속 돈을 벌었다.
한 집에 약 60-70만원정도 였고 정말 하루에 2-3집을 했으며 이 업종에 일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다들 이정도는 번다.
어떻게 생각 하실 지 모르지만 사실 일이 힘이 들어도 돈이 들어오니 일은 너무 재미있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쉴 수가 없었다. 비가 오면 화가 날 정도였다.
역시 돈은 아내에게 모두 맡겼다.
그러다가 내가 적금 300만원짜리를 넣자고 했더니 아낸 흥쾌이 응했고 내 이름으로 300만원짜리 적금을 3,4개월 붓고 나서 아내는 싸움을 걸어왔고 너무 열이 받아 그럼 너 마음대로 하라며 통장을 없앤 적이 있다.(지금 생각하면 항상 자기에게 들어오던 돈이 내 이름으로 다달이 들어가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아낸 가계부라며 장부도 보여준 적이 있다. 생활비가 450만원 적혀 있던 적도 있었지만 내 생각에 작은 돈에 너무 몰아 부치는 것 같아 그냥 장부를 보기만 했을 뿐 뭐라하지 않았다.
2000년 8월 여동생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평택에 사는 동생에게 잠시 내려와 달라고 한적이 있다. 선뜻 멀리서 내려와 준 여동생이 고마워 아내에게 ‘동생 올라갈 때 20만원 줘서 보내라’하고 아내는 ‘알았다’고 했으며 나는 일이 바빠 현장으로 갔다. 하지만 아내는 동생에게 ‘고모 돈이 지금 없거든 오빠한테는 돈 받았다고 해 알겠지” 하며 기차표만 끊어서 보냈다는 거다. 아니 결혼한 시누가 8개월된 아기까지 남한테 맡기고 내 일을 도우러 온 동생에게 어떻게 그렇게 보낼 수 있나? 이런 일은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2000년 11월 어머니 생신에 부모, 형제, 친척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친구 만나러 나간 사이에 돈이 없어 공과금도 못 내고 거리로 나 앉게 생겼다며 나를 욕하였다고 한다.
이런일들로 어머님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여 사실을 확인하고자 해남으로 내려오셨고 어머닌 오시자마자 내 직원들에게 얼마나 버는가 확인을 하신바 직원들이 ‘사장님 한 달이면 약 2천만원 정도 버실겁니다’ 라는 말씀에 화가나 ‘도대체 애 아빠가 한달에 얼마나 버냐’고 처에게 물어보셨다.
그땐 아내도 거짓말을 할 수 없는지 ‘천만원 이상은 갖다 줘요’했고 어머니와 아내의 싸움은 대단했다. 어머닌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데 '왜 공과금도 못 내고 사냐' 하니깐 내가 내지 못하게 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머님이 '내가 너희 돈을 한달만 관리 해 주고 너 다시 다 주고 올라가겠다' 하니 아내는 '왜 내 돈을 당신이 관리하느냐'며 '당신(어머니) 죽을 때 당신이 어떻게 죽는지 내 이 두 눈으로 꼭 확인 할꺼다.'하며 대판 싸운 후 어머님이 계신 내내 아낸 아침에 나가 밤 늦게 들어왔고 하루는 늦게 들어와 식구들 눈치를 살피며 핸드백을 화장실에 숨겨 놓고 나오길래 어머님이 수상하게 생각이 들어 핸드백을 뒤졌더니 담배, 팬티가 핸드백에서 나왔다.
아내를 데리고 가까운 공원에 가서 담배를 피워보라고 하였다.
1-2년 피운 솜씨가 아니었다.
난 그때 까지도 내 집사람이 담배를 피운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그러나 여자가 담배 피는 것이 뭐 그리 나쁜 건가 하면서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래도 내 아이 둘을 낳아준 아내를 믿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며느리한테 아침밥 한번을 못 얻어 드시고 그냥 가버리셨다.
그리고 돈을 주지 않자 아낸 나에게 우리 가족들에게 정말 큰 거짓말을 했다.
병원에 갔더니 임신 했다는 거다. 임신했는데 나이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고..
난 딸만 셋이다. 나이 많은 아내가 임신했다니 너무 기분이 좋아 본가 전화하고 본가에서도 아내에게 축하 전화 하고 앞으론 좋은 일만 생길꺼라고 너무 너무 반가워하고 항상 조심하라고 했다.
또다시 계속 벌어온 돈은 이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식구들이 같이 세어보고 그녀에게 맡겼다.
아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함께 세어보고 했으니 아내도 거짓말은 안 하겠지 싶어서였다. 근데 그 임신이라는 말이 거짓말 이었다.
어떻게 그런 큰 거짓말로 태연스럽게 웃어가면서 진짜인 양 가증 스럽게 전활 할 수 있었는지... 너무 무서운 여자 아닌가?
그리고 계속 또 일을 했다.
항상 아내에게 돈을 맡겼지만 마찬가지 그녀는 항상 돈이 없다고 했다. 난 그래도 그녀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돈을 착실히 모으려고 해서 그런다고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집에 일을 하는데 마침 그 집이 보험설계사 집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전부 지붕 위에서 하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보험을 들어보려고 주민번호와 신상을 얘기했더니 3년전부터 31만원의 보험을 아내가 들고 있다는 거였다..
어떻게 나도 모르게 그것도 수익자도 자식이 아니 아내로 되어있다니 종신보험은 평생 법정상속인으로 하는게 많고 배우자가 수익자가 되는 건 별로 없다는 거였다.
또 웃긴건 종신보험 주소지를 자기 큰오빠 집으로 해 놨다는 거다.
그날 그녀와 집에서 대판 싸웠다.
그녀는 싸울 때 갖은 욕을 하는 건 기본이고 내가 화가나 상을 엎으면 그녀는 그릇을 하나하나씩 던지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아내가 내가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해서 못 산다니 너무 어이없다.
하물며 시어머니와 싸울 때도 십팔년이라는 소리까지 하는 사람이다.
2003년 4월부터 아내에게 생활비 150만원과 아이들 교육비만을 주고 어머니에게 돈을 부쳤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한두달 그녀가 보기 싫어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먹고 잠을 잤었다.
그러다가 2004년 4월 우리둘째(중3) 교육문제로 평택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같이 올라가자 했더니 죽어도 싫다는 거였다.
그리고 막내(중1)까지도 데리고 올라가라는 거였다.
중3이라 진학 문제도 있고 교육을 늦출 수 없어 먼저 아이들과 함께 평택으로 올라왔다.
평택에 집을 10년쯤 전에 사둔 것이 있어서 그녀에게 그 집 보증금을 내주고 나와 자식들이 그곳에서 살아야겠다 하니 자기 명의 돼있고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네티즌 여러분들 이해가 가십니까? 아내는 여지껏 주부로 살았고 명의만 자기로 되어 있는 집을 아이들 데리고 들어가겠다는데 그것도 안된다니 이해 가실 분 계신가요?)
정말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에 들어가 잠시 생활하고 두달정도 일해서 번돈으로 700만원에 30만원짜리 월세방을 얻어 현재 거기서 살고 있다.
헤어진 지 한달 정도 돼서 해남에 내려가 아내를 보고 같이 평택으로 아이들 데리고 살자하니 당장2000만원을 주고 앞으로 버는 모든 돈을 자기 앞으로 하면 살아주겠다는 거였다.
너무 어의가 없어 한바탕 욕을 해주고 다시 평택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50만원만 보내 달라며 울며 전화했왔다. 우는 소릴 들으니 정말 또 불쌍한 마음에 돈을 보내 줬다. 내 자신이 바보 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오로지 돈! 돈! 그녀는 나와 자식들 보다는 항상 돈이 앞서 있다.
지금 헤어진지 6개월 정도 되지만 자식들에게 전화 한 두 번 하고 한번 본 것 말고는 자식들에게도 전화 한 통 없다.
아내의 형제들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만나주지도 않는다. 아니 왜??...왜 만나주지 않는건지 모르겠다. 자기 동생이 이혼을 한다는데 어떻게든 이혼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거 아닌가?
이혼을 하자고 해도 아직 이혼은 안된다고 한 아내에게서 먼저 이혼소송장이 날라왔다.
내가 3살짜리 아이가 있다것을 속였으며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갖게 되어 결혼하게 되었고, 남편의 폭력, 음주, 도박으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내용으로 위자료나 양육권은 언급하지 않고 서로 주고 받는 것 없이 합의 이혼하자는 내용이였다.
하지만 난 내 자식들에게 엄마 없는 자식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동안 벌어다 준 돈의 경위도 알고 싶거니와 법정에서 나의 억울한 심정을 알리고자 이혼을 못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법정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 자료도 청구하였다.
그리고 며칠후 그녀에게서 반박문이 왔는데 실로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마약을 했다는 거다. 마약을 한 사람이랑 살 수 없으며 그녀는 내가 페인트 일을 여태까지는 배우기만 하고 2004년 4월부터 일을 시작했고 그 돈을 자기몰래 어머니한테 보내진거를 이제야 알게 되었며, 그동안 한달에 60-70만원만 주었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평택으로 가야한다면서 자기하고는 상의 한마디 없이 데리고 올라가 지금까지 연락 없어 별거가 시작되었다고 법원에 주장하고 있다.
폭력, 폭행을 해서 살수 없다며 오히려 법원에서는 판사님 앞에서 서럽게 울기도 했다.
그리고 폭력, 폭행, 음주, 마약의 근거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증인이 있냐고 하니 증인은 없지만 자기가 힘들 때 마다 전화 통화하던 친구가 있다고 그 친구를 증인으로 세운다고 했다.
나도 너무 억울해서 판사에게 호소하며 아이들도 내가 돈 갖다 주는 것을 많이 봤으니 난 아이들을 증인으로 세울 수 있다고 하니 아이들은 증인이 될 수 없다 하여 내 직원을 증인으로 올려 놓았다.
(정말 아이들은 증인이 될 수 없나요? 내가 알기론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아니 법무사에서도 그렇게 얘길 들었는데..)
아니 정말 내가 그런 남편이라면 어떻게 그런 아빠 밑에 아이들은 맡긴단 말인가?
또한, 폭력등으로 결혼 생활이 힘들었다면 다른 여자들처럼 위자료를 청구해야 되는거 아닌가?
2004년 4월부터 아내를 믿지 못해 맡긴걸 가지고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하질않나
어떻게 아이들을 그런 아빠한테 맡길 수 있냐고 하니 내가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아내가 직접 아이들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했으면서 내가 무작정 데리고 올라와 별거가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나, 내가 돈을 매일같이 갖다 주었는데 어떻게 한거냐 하니 언제 돈을 갖다 줬냐 그래서 300만원에 30만원짜리 월세에 살았냐고 한다.
정말 너무 웃긴다.
난 타지역에 집을 사 놓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역을 옮겨 다니기 때문에 월세로 살았는데 이제 와서 아내는 이렇게 얘기한다니..
아니 정말 내가 60만원을 벌어다 줬다고 하면 월세 30에 종신보험료 31만원만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아이들 사교육비며 아내 명의로 차를 어떻게 샀으며 나 또한 승용차며 트럭이며 어떻게 갖고 있을 수 있나?
정말 60만원으로 생활했다면 아이들 교육과 건강은 생각지 않고 종신 보험료를 냈다는 건데 진짜 남편 죽기만을 바라는 여자 아닌가?
아니 내 종신보험을 31만원씩 다달이 계좌이체하여 연체 없이 낸 여자가 아이들 건강보험료 6만원씩 다달이 내야 하는 건 내지 않아 1년 반이나 연체되어 있었다. 너무 어이없다.
이번 일로 아니 이제사 새삼 느낀건데 내 명의로 날라오는 세금은 절대 내지 않고 연체료 붙은 명세서를 보고 난 후에야 내가 직접 은행가서 냈으며 자기 명의로 날라오는 세금(종신보험, 재산세)는 다 내고 있었다니 너무 기가막히고 억울하다.
난 정말 일만 했다. 일만 했지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통장 또한 그동안 없었다.
그동안 농협 통장을 갖고 있던 아내는 2004년 4월 그 통장을 없앴다.
내 아내인데 난 농협을 가서 그 내역서도 뽑을 수 없다.
어떻게 법정 안과 법정 밖에서 그렇게 틀릴 수 있을까 참 우습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 말이 엄마에게서 아빤 월 천만원 이상은 번다는 얘기를 수도없이 들었고 아빠가 항상 앞뒷주머니에서 돈뭉치를 주는 모습을 항상 봐 왔으며 돈을 같이 셀때는 돈 세기가 힘들 정도 였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 애들은 그래서 일반 직장인들도 그 정도 버는 줄 알았단다.
11월 24일 2차 공판이 있는 날이다.
내가 쓴 것은 빙산의 일각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온 증거와 증인은 얼마든지 있다.
너무 뻔뻔스럽다.
법정에서 그녀와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여기 인터넷상에 계속 해서 올릴 생각이다.
부디 세상에서 이런 여자도 있다는 걸 수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의심 나거나 도와주실 분들은 리플 부탁합니다.
정말 세상에 진실이 이기고 진실은 승리한다는 것을 만 천하에 알리고 싶다.
아이들이 나의 힘이 되어 주어 너무 고맙고 또 아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아이들도 아내가 보낸 문서를 보고 너무 어이없어 한다.
지금 10/20일 1차 법정때 아이들이 참석했었다.
학교 개교기념일이라며 따라 오겠다고 하여 함께 법정에 참석하게 되어 말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반박문에도 제출하지 않은 부분이다.
결혼 당시 3살된 내 딸은 연애 기간엔 알리지 못했지만 결혼전에는 알렸으며 내 딸은 키운적도 없다. 내 3살된 딸은 4개월부터 어머님이 지금까지 키워주셨다.
그리고 자기가 임신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는 주장을 한다.
사실 아내는 나와 결혼하지 전에 유부남과 동거를 했었다. 결혼 후 우연히 아내의 일기장을 보게 되어 알고 있었으나 나한테는 혹(딸아이)이 하나 있으니 뭐라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럴수도 있지 하며 잊었고 임신 전 두번의 유산 경험이 있다.
이런 아내가 어쩔 수 없는 결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웃긴다.
내가 목욕탕을 하고 어머님이 목욕탕을 하니 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된거라 생각된다.(이런 생각은 지금에서야 하는거다)
그리고 내가 페이트 일로 자주 지방에 내려갔을 때 내 2년 선배와 바람을 피웠다.
이런 사실은 내 후배로부터 듣고 알게 되었고 선배를 찾아가 엄청 패줬다.
정말 너무 화가나 참을 수가 없었고 대판 싸움도 났지만 정말 아이들 때문에 참았고 아이들이 내 큰딸처럼 엄마 없는 아이로 키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과거와 과오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지방으로 내려간 후에 아내는 명절 때 만 되면 싸움을 걸어왔다.
(이건 직원이 내게 한 말이다. ? 사모님은 명절 때 만 되면 싸움을 거시네요?)
정말 몰랐던 부분인데 정말 명절 때가 되면 무슨 일이 생겨도 일이 생겨 싸움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어 난 4년동안 명절 때 아이들만 데리고 본가에 갔었다.
1차 법정에서는 그녀의 눈물이 한몫 했고 끝났다.
11/24일 2차 법정에서 아내와 또 만날것이다.
계속 관심있게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으면 꼭 리플 부탁 드립니다.
11월 9일 저녁
위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전화가 와서 받았다.
켐코(페인트회사)라는 회사에서 3~4년 전 수금이 안됐기 때문에 신용정보센타인지 에서 1000만원의 돈이 수금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라는 내용이었다.
그 전활 받고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까지 나를 아이들을 궁지에 몰아 넣어야 하는지...
난 그해 아내에게 ‘켐코회사에 돈 넣었냐?’ 물으면 ‘응 넣었어.’란 얘길 항상 들었다.
그당시 정말 너무너무 일이 잘 되기 때문에 돈을 그때 그때 지급하지 않아도 ‘벽산페인트’란 이름만 들으면 우선 무상 지급 해 줬었다.(원 채 많은 물량을 소화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인가 전화도 온 적 있다. 수금을 해 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아내하고 얘기 하라고 했고 그쪽에서도 알았다고 하곤 그 후론 전화 온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평택에 살고 있을 때도 아낸 전화해서 아이들 안부보다 해남에 있는 페인트 통이 너무 보기 안 좋다며 빨리 치워달라는 전화를 매일같이 했다.
그래서 그 전화 받기 싫어 내려가 트럭으로 10번인가 왔다갔다하면서 다 치워버렸다.
아낸 이걸 노렸나는 생각까지 든다.
왜 그 당시 돈 붙였다고 해 놓고 이제와서 이런 용지서 받게 하냐 하면 아낸 돈을 안 벌어다 줬기 때문에 그랬다고 할것이고…안 봐도 훤하다.
정말 열 받는다. 아니 미치겠다.
시골 다니면서 칼라강판이나 지붕도색을 하시는 분은 돈을 얼마나 버실 지 잘 아실 겁니다.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은 필히 얼마나 버시는지 리플로 증명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저 좀 도와주세요……두서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