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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 후... <마지막 회> - 사랑해

박준욱 |2004.11.12 10:10
조회 687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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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대학 캠퍼스의 곳곳에는 다가오는 5월의 낌새를 미리 느껴 보라는 것인지 푸르스름한 잎들로

치장한 가로수들로 한층 멋스러운 광경을 자아냈다.

물론 법정학관 근처에 나있는 산책로의 가로수에도 푸른 빛깔의 잎들과 그 사이사이로 따뜻

한 햇살이 군데군데 새어 나오는 가운데 어느 벤치에 한 남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으로 서있었다.

반면 그 남자와 마주하고 있는 한 여자는 비록 미약하게나마 훌쩍거리고 있지만 다소 담담

한 듯 했다.

그들은 그렇게 잠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그 남자는 자신의 것인 마냥 벤치에 놓여진 가방을 둘러메고는 애써 좀 전의 당황한

표정을 숨기곤 말했다.

 

"안녕... 잘 지냈어...?"

"응..."

 

그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럼 먼저 갈게..."

 

그 남자는 고개를 떨구곤 여자의 뒤로 나있는 산책로로 다시 향했고 그 여자는 여전히 그대

로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막 그 여자를 막 스쳐 지나갈 때였다.

그 여자의 목소리가 잠시 그 남자의 발걸음을 잡아두었다.

 

"왜 그랬어...?"

 

그 남자는 갑작스런 그 여자의 물음에도 여전히 등을 보이며 반문할 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여자는 말을 계속 이었다.

 

"정연이란 여자한테 다 들었어.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왜 그렇게 너 혼자 상처받고... 그

러면서까지 내게 나쁜 모습을 보이며 날 떠나보내려고... 아니, 내가 먼저 떠나가게 한 거야?

꼭 그래야만 했어? 내가 너한테 그렇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렇게 부담스런 존재

였어?"

 

결국 그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다시 눈물을 보였다.

그 남자는 여전히 등을 보이였지만 그 여자의 말에는 동의하지는 않는지 고개를 절래 흔들

었다.

 

"아냐... 그 반대야. 네가 너무나 좋은 여자이기에... 나한테는 너무나 과분할 만큼... 그렇게

좋은 여자이기에 그랬어야 했어. 더 이상 네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싫었고, 비록 나

때문일지라도 널 단 한순간이라도 오해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내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너에 대한 사랑이 진심이었다 한들 그에 따른 자신감은 없었어."

 

그 여자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그 남자의 뒷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손으로나마 눈물을 훔치곤 말했다.

 

"왜 그렇게 너 혼자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만 했어? 나한테 말이라도 해줬으면... 큰 도움

은 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네 곁에 있어 줄 순 있었잖아. 그리고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많

이 바랬어? 왜 그렇게 너 자신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거야? 널 사랑한 지난

날 동안 너한테 특별히 바라는 건 한 번도 없었어. 단지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특별

한 추억들이 아니더라도 그냥 좋은 추억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 내가 얼마나 행복

했는데... 그리고 얼마나 너한테 고마웠는데..."

 

그 남자는 갑자기 등을 돌렸다.

그 남자는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자신 앞에 처연하게 서있는 그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

며 조금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게 아냐! 난 한 번도 네 도움 같은 건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았어. 항상 말했었지만, 네

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널 사랑하면서 정작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실제적인 사랑은 너무나 부족했어. 남들만큼... 아니, 남들보다 더 좋은 걸

사주고 더 좋은... 더 행복한 사랑을... 그리고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게다가 나로 인해

네가 더 이상 이상한 추문에 휩싸이는 것도 싫었고 그 추문으로 인해 아주 순간적이나마 너

를 오해하고 불신한 내 자신을 발견한 이상 널 사랑할 순 없었어. 차리리 널 보내는 것이

마지막으로 너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라 생각했어. 그렇게 하기까지 난 마음이 편할 줄 알았

니?!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데...!"

 

이내 그 남자의 두 눈망울에도 조금씩 젖어갔다.

하지만 차 오르는 슬픔까지도 겨우겨우 억눌러가며 그 남자는 좀 전과는 달리 나직한 목소

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야만 했어. 널 사랑했으니깐... 너무나 사랑하니깐... 그것이나마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하니깐..."

 

그 남자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 여자는 문득 그 남자에게 다가가더니 그 남자의 얼굴을 지긋이 올려다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고마워할 것 같니...?! 아니, 참 고맙네. 정말 눈물나게 고마워, 응?!"

 

그 여자는 그 남자의 가슴을 툭툭 치며 울먹거렸다.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그리고 그 남자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럼 난 덜 아픈 줄 알아?! 너랑 헤어지고 얼마나 아팠는데... 널 추억하지 않으려 지우려고

얼마나 힘들고... 아프고 슬펐는데...! 또 정연이란 여자한테 그동안 내가 널 오해하고 있었다

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동안 얼마나 네가 그

리웠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는지 알기나 해?!"

 

그 여자는 그 남자와 재회한 이후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속이지 않기로 했기에 그 여자의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라도 자신을 향한 그 여자의 진심이라도 알았을까?

그 남자는 그 여자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안았다.

 

"나도 그랬어... 나도 한시도 널 잊어본 적 없었어. 나 역시 얼마나 널 보고 싶었고...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는데... 다시, 사랑하자고...! 사랑한다고...! 얼마나 말하고 싶었는데..."

 

그 남자의 두 눈에도 글썽거렸던 눈물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별동안 그 여자를 향한

미련했던 그리움과 함께 얼굴 아래로 떨어졌다.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부챗살처럼 촘촘히 새어나오는 햇살에도 어느 벤치엔 여전히 선선한

그늘과 함께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좀 전의 상기된 표정들은 사라진 채 흐뭇한 웃음만이 그들의 표정을 지배했다.

물론 그 남자나 그 여자의 눈가에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지만, 마치 예전에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감정들을 이제는 숨기고 지울 필요 없듯이 굳이 지우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 여자가 말했다.

 

"참! 시험은 어떻게 됐어?"

 

그 남자는 애써 씁쓸한 표정을 감추려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떨어졌어..."

 

그 여자의 표정도 금세 시무룩해졌다.

 

"하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으니... 미안..."

 

그 남자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지, 뭐. 하지만 다음 시험에는 붙을 수 있을 거야. 아니,

꼭 붙을 거야. 지금 이렇게 네가 있으니깐..."

"피∼ 내가 너 공부하는데 무슨 도움이 된다고. 오히려 나한테 다시 신경 쓴다고 공부에 더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돼."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야말로 정말 바보야. 내가 좀 전에도 말했지?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

다고."

"그럼 뭐야? 결국 네가 시험 칠 때 내가 곁에 없었으니 나 때문에 시험에 떨어진 거 아냐?

그렇잖아, 안 그래?"

"뭐라고?"

 

그 남자는 이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여자는 그런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며 잠시 환한 웃음을 보이더니 그 남자의 어깨에 살며

시 기댔다.

 

"미안해... 난 내 생각만으로 너에 대해 판단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널 오해했고. 하

지만 이제는 누구 말처럼 널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인정할거야. 이제 다시는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헤어지는 동안 네가 얼마나 나한테 소중한 존재인지 확실히 깨달았으니

깐. 그런 슬픔, 아픔 그리고 그런 서글픈 그리움 따윈 다시 겪기는 싫어. 그러니 네가 나한

테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말고 바보같이 다시는 날 떠나 보낼 생각도 하지마, 알았지?"

 

그 남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나야말로 너한테 미안해. 나 역시 널 위한다는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랬으니

깐.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런 식으로나마 너를 향한 부족한 사랑에 구원받으려고

한 것 같아.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이젠 다시 놓치진 않을 거야. 참! 그러고 보니 정연이

한테 너무 고맙네. 그 애 아니었으면 우리가 여기에서 우연으로 재회했다한들 지금처럼 다

시 사랑할 순 없을 텐데..."

 

그 남자의 말에 공감하듯 그 여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정연이란 친구는 잘 지내고 있니?"

"미안하게 가는 날에는 보지 못했지만, 잘 지낸다는 메일이 왔었어. 다행이지, 뭐."

"정말 그 친구한테 고맙게 생각해. 너에 대한 오해를 들었던 당시에는 그 애가 사실 원망스

럽기도 했거든. 그리고 그 애는 널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괜히 나만 행복해지려 하니깐

미안하기도 해."

"아냐, 오히려 너와 내가 다시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지낸다면 정연이도 좋아할 거야. 그게

어쩌면 우리가 정연에 대한 고마움을 답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애도 그러길 원했으니깐. 그

러니깐 우리는 예전보다 더 행복하게 사랑하자."

 

그 여자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그래, 꼭 그러자... 그래서 말인데 예전에는 널 사랑하면서도 수줍단 그런 이유로 너한테 표

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아꼈던 것 같아. 어쩌면 그래서 내가 네게 준 사랑에 그렇게 자

신할 수 없을 수도... 하지만 너랑 헤어지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었어. 우연이라도 널

만나 정연이란 친구가 말 한대로 사랑의 기적이라도 일어나... 널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이

젠 부끄러워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자고...!"

 

그 여자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잠시 주춤거렸다.

그 사이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도 우연이든 필연이든 널 다시 만나길 원했어. 그리고 그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 다시 사

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물론 그것이 한낮 보잘것없는 망상이고 헛된 욕심인 줄

알면서도... 그래서 일부러 널 잊은 척도 해봤지만, 내 마음속에는 항상 네게 말하고 있었어.

아니, 외치고 있었어."

 

이번엔 남자가 주춤거렸다.

그때 그 여자가 다시 고개를 들자 그 남자의 얼굴과 마주했다.

그렇게 잠시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짜기라도 하듯 행복에 겨운 진한 미소와 함께 동시에 서로에게 속삭였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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