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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사랑할 권리는 있다...28

美道-━★ |2004.11.15 11:23
조회 1,233 |추천 0

 

 

 

그가 요리를 제법 잘 한다는 것, 그건 그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임을 알았다.

 

나무 사이에 감추어진 작은 집 옆 물가에 누워 낮잠을 즐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곳이 그에게는 소중한 공간임을 알았다.

 

그가 나에게 미안해 하는 것을, 나의 용서를 받고 이해를 구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

 

그의 말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와중에도 두근거리는 것이 내 가슴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소중한 공간에 그가 나를 데려왔었음을 알았다.

 

 

 

 

 

 

 

 

 

 

 

 

 밥만 먹고 가겠다던 해빈의 말과는 달리 두 사람은 상운의 별장에서 다음 날까지 머물다 가게 되었다.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각자 방에서 잠을 자고 쉰 것 뿐이었다. 무엇때문인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던 해빈이 웃고 떠들지 않았기 때문에 상운과 유미는 해빈을 사이에 두고 서먹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빽빽한 도심 한 가운데 오피스텔보다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은 곳에 있으니 지루하기는 했지만 그 동안 쌓인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유미에게는 나름대로 괜찮은 휴일이 되었다.

 

 

 

다만 신경이 쓰인 게 있다면, 차마 상운 혼자 요리하는 걸 보고 앉아만 있을 수 없어서 됐다는 상운의 말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아침, 점심은 유미가 준비하였다.

 

막상 차리고 보니 상운이 차린 것보다 맛이 없는 데도 맛있게 먹어주는 두 사람때문에 살짝 민망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른함에 몸이 풀려갈 때 쯤 상운과 해빈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혼자왔었던 상운은 자신의 차를 끌고 먼저 출발했고 유미는 왔던 것 처럼 해빈의 차에 타고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유미는 해빈이 깨워줄 때 까지 잠에 들어있었다. 해빈이 운전하는 동안 자신은 잠만 잤다는 게 미안해서 해빈에게 집에 들려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했지만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해빈은 사양을 하고서 돌아갔다.

 

다른 때 같으면 좋다고 소리지르며 먼저 올라갔을 그가 왠일인지 주말 동안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왜 그런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안그러던 사람이 너무 심각하게 있으니 오히려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해빈에 대한 걱정은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걸려온 전화에 의해 잊어버리고 말았다.

 

 

- 강유미씨?

 

"네."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유사장의 목소리에 유미는 가슴이 턱, 막혀왔다. 지금 현재 유미를 가장 옥죄고 있는 사람, 유미가 제 발로 들어간 덫을 쥐고 있는 유사장이었다.

 

 

 

- 주말 잘 쉬고 있나?

 

"네, 염려해 주신 덕분에요."

 

- 하하. 그래, 일은 잘 되고 있나?

 

"...네."

 

 

다른 말도 없이 직접적으로 '일' 얘기를 꺼내는 유사장의 말에 유미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일에만 치중하지는 않았었다. 일하면서 얻어지는 수많은 유통 라인에 대한 정보를 유미 나름대로 정리하여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일을 담당한 지 1년도 안되기 때문에 대리라고는 해도 얻어낸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공개되어 있는 정보에 비하면 유미가 알아낸 것만 해도 상당한 양이었다. 그러나 신우물산의 정보력이라면 이미 이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어 유사장에게 보고를 하지는 않았었다.

 

 

- 그래도 아직 몇 달 되지 않았으니.. 힘이 들겠군, 그래.

 

"...아닙니다."

 

- 가까운 시일 안에 만나서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 괜찮은가?

 

"...네, 좋으실 시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 음.. 당분간은 스케쥴이 잡혀있고... 다음주 7월 11일이 금요일이군. 그때 어떤가?

 

"괜찮습니다."

 

- 그래. 그럼 그때 보도록 하지. 일, 열심히 하게.

 

"..네."

 

 

 

 

전화를 끊고 유미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누웠다. 7월 11일... 아직 2주 정도 정확히 열흘 정도 시간이 있었다. 요즘은 일이 끝나가는 마무리 단계라 조금 한가해졌지만 또 언제 무슨 일이 들어올 지 모르는 시기이긴 했다. 한편으로 그 즈음 갑자기 일이 들어와서 약속을 취소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됐든 만나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에 머리가 아파왔다.

 

 

 

 

 

 

 

 

 

 

 

 

 

 

 

 

 

 

 

 

*     *     *

 

 

 

 

 

 

 

 

 

 

 

 해빈은 유사장의 전화가 신경쓰여 주말 동안 영 기분을 낼 수가 없었다. 자신때문에 상운과 유미가 불편해 하는 건 알았지만 머리속에는 온통 유사장과 유미의 관계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자신이 신경쓰였는 지 집으로 올라가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는 유미의 말이 다른 때였으면 뛸 뜻이 기뻤겠지만, 지금의 해빈은 선뜻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상운에게 말을 해 볼까 고민도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만약 상운에게 얘기했다가는 유사장이라면 치를 떠는 그가 유미에게 어떤 짓을 할 지도 알수 없었다.

 

 

 

"네, 윤비서님. 의논 드릴 일이 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해빈은 윤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윤비서에게 유미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보면서 알아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해빈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윤비서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금은 한창 상운의 회사가 몸집을 부풀리는 시기였다. 이런 때에 뭐든 하나라도 잘못 된다면 회사가 망가지기 쉽상이어서 꺼림칙한 일은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만 했다.

 

 

 

 

 

뭔가 초조한 마음에 해빈은 차를 최대한 빨리 몰았다. 가슴 속에서 뭔가 기분 나쁜 것이 피어올라 해빈의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불안해졌다.

 

 

 

'....괜한 걱정일거야.'

 

 

 

 

 

 

 

해빈은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렇게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     *     *

 

 

 

 

 

 

 

 

 

 

 

윤비서는 연락을 받자마자 나왔을텐데도 불구하고 해빈보다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해있었다. 뭔가 긴장하고 있는 듯 잔뜩 굳어있는 얼굴을 보자 윤비서는 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따뜻한 녹차 2잔을 주문하였다.

 

 

"급하신 일이라도 생기셨습니까?"

 

 

 

해빈이 숨을 가다듬길 기다리는 듯,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녹차를 한 입 대면서 윤미서가 입을 열었다. 예의 그의 부드러운 분위기에 해빈의 몸을 감싸던 긴장감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가슴 속에는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다.

 

 

 

".....강유미씨..에 관한 거에요. 삼촌."

 

 

해빈의 불안한 마음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어릴 적 버릇대로 윤비서를 불렀다. 그는 해빈과 상운이 어릴 적부터 그들의 곁에 있어주던 가족과 같은 사람이었다. 해빈과 상운의 부모님이 바빠 자식들에게 소홀해 질 적엔 그들을 대신해 해빈과 상운을 돌보아 주던 그였다. 비록 피는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서로 남이었지만 해빈과 상운, 특히 상운에게는 혈연보다 더 소중하고 따뜻한 존재였다.

 

 

 

"네가 그렇게 부를 때는 항상 뭔가 사고를 쳤을 때였지. 강유미씨라.. 요즘 한창 바쁜 그 아가씨가 왜..?"

 

 

윤비서, 아니 윤찬영은 해빈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항상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는 삼촌이라고 부르며 선처를 구하는 해빈이었다. 하지만 강유미에 관해서라니.. 이제는 그녀도 자리를 잡고 좋아져 간다는 생각에 찬영의 머리속에서는 잠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있었던 그녀였다.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부모님이나, 친구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다 보지 않았나. 뭐가 궁금한 거지?"

 

"...일단은 해외사업부로 옮기고 나서의 대인관계, 자주가는 곳, 친한 사람 그리고 ... 가능하다면 통화내역까지요."

 

 

 

단순히 해빈의 개인적인 감정에 관한 것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찬영의 생각과는 달리 해빈이 원하는 것은 의외의 것들이었다. 게다가 조금의 장난기도 섞여 있지 않은 그의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무슨일이 있는 거냐."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지만.... ....상운이가 싫어하는 그런 것, 이제 그만 둔 것 맞지요?"

 

"음. 정리했다, 어느정도. 몇 몇 군데의 멍청한 작은 기업들의 경우 아쉬워하기는 하더라만 가장 손이 많이 가던 곳들은 금방 알아듣더구나."

 

"...신우물산의 유재욱 사장도 정리된 건가요?"

 

"......그와 관련된 일이냐."

 

"네."

 

"하아..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신우물산쪽이 심상치 않긴 하다만, 설마 강유미씨가 관련된 것일 줄.."

 

"확실하지는 않아요. 아직까지는 제 짐작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은 상운에게 비밀로 해두죠."

 

"..그래, 그래야 할 것 같다. 확실해 지면 그때 말하도록 하지."

 

"..네."

 

 

 

 

 

 

 

 

생각에 빠진 듯한 찬영을 보면서 해빈은 속이 달아올랐다. 만약, 최악의 경우 유미가 유사장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 유미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유미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고, 그녀 역시 희생자라는 것은 알 고 있었지만 상운과 상운 주변 사람들에게는 유사장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 만도 용납하기 힘들었다.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지..'

 

 

 

 

하지만 만약 유미가 유사장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리고 그 관계가 상운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 누구라할지라도 해빈, 그리고 윤비서에게는 상운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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