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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부 1막 : 묘령(昴靈)의 추억 #19)

J.B.G |2004.11.18 00:50
조회 195 |추천 0

 

 

중림부가 유일하게 대륙과 육지로 이어진 운산(雲山)의 목진국(木眞國) 영토를 관장하는 연성주(軟城主)의 집에 운향이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의 실신 끝에 지금 서서히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여긴…”

 

운향은 정신을 차리면서 고통이 밀려왔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달라진 시각의 변화를 느끼고, 자신이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필연적으로 더 큰 사실을 깨달았다.

 

“비? 비야! 비…”

 

운향은 몸을 추슬러 황급히 방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목진국 연성의 성주 무위(拇偉)의 자택 이었다.

 

“이… 이건…”

 

방을 뛰쳐나온 그녀를 보자 매일 그녀가 깨어나기를 지키고 있기라도 했던 듯… 목진국의 장수 이며, 연성의 성주인 무위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깨어나셨습니까? 전란 중이라 성 내가 엉망이지만 이 정도로 참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위의 말은 전혀 들리지도 않는 듯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얼 그리 찾으시죠?”

“제… 아들은…”

 

그녀의 간절한 이 물음에 무위는 잠시 망설였다.

 

“저는 목진국의 장수 무위라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자신의 아들만을 부르고 있었다.

 

“제… 아들! 비! 비야!”

 

무위는 점점 더 흥분을 더해가는 운향을 잡고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저희는 용국과의 전투 중에 정신을 잃은 부인을 발견해서 이곳으로 모셨을 뿐 입니다.”

“제… 아들은…”

“부인…! 아들을 잃으셨나요? 그곳 전투에서 살아남은 백성은 부인 뿐 입니다.”

“네?! “

 

운향은 몸이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그… 그럼…제… 제 아들은…”

 

장수 무위는 아들을 잃고 실성한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운향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운향이 전란 중에 어디 다른 곳에서 아들을 잃고 실성해서 계속 아들을 찾아 헤매고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었다.

 

“어딘가 피했을 겁니다. 부인…”

 

그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운향은 불현듯 무위에게 달려들며 간청했다.

 

“그곳… 절 다시 데려다 줘요… 어서!!”

“부인…”

“어서! “

 

운향은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고, 무위는 그녀를 모른 척 하지 못했다.

 

“…”

 

말을 탈 수 없는 산길을 헤치며 가는 그녀를 보며 무위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산장이 아직 멀었는데는 운향은 숨도 차지 않은 듯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무위를 따르던 훈련 된 병사들 마저 지쳐 헐떡거릴 즈음 그녀는 자신의 산정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향이 다시 돌아온 산장은 그녀의 추억을 모두 깨뜨리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 많은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 시체 섞는 냄새가 진동하는 그 끔직한 현장에서 운향은 미친 듯이 시체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본 무위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병사들은 구토를 하며 그 곳을 외면했고, 무위도 악취에 얼굴을 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악취 속에서 질퍽대는 시신들을 그녀는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운향은 목 없는 하반신만 남은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기 시작한다.

 

“부인…”

 

무위는 그저 넋을 읽고 미쳐버린 듯이 통곡하는 운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미친 듯… 시신들을 다시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참혹과 광경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무위가 그녀를 말렸다.

 

“이 참혹한 시체더미 속에서 아드님의 머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이미 강에 떠내려 갔을지도…”

 

그러나 그녀에게 그의 말은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뿌리치고 계속 시체를 뒤엎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리고 또 계속해서… 그리고 어느 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부인! 저는 이곳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습니다. 이곳 운산을 넘어 연국(燃國)의 군사가 언제 이동해 올지 모릅니다.”

 

그때 시체더미 위에서 운향은 목걸이 하나를 집어 목에 걸었다. 그것은 무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아 아들 비에게 준 큰 패가 달린 목걸이였다.

 

“무엇을 찾은 것입니까?”

 

그녀는 묵묵무답 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다 흐느끼기를 종일토록 반복했다. 그리다가 갑자기 그녀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부… 부인?”

 

운향은 지금 묘를 만들고 있었다. 장군 무위는 운향이 자식의 하반신을 뭍을 묘를 만드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뜻밖에도 모두의 묘를 만들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운향은 다른 시신들과 함께 아들의 목 없는 시신을 땅에 안장했다. 그리고그 묘 앞에서 아들이 품고 있던 아버지의 유품인 목걸이를 꼭 쥐며 무엇인가를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난 뒤에야 운향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기거하던 집에 불을 붙였다. 운향은 한없이 타들어가 재로 변해가는 자신의 행복했던 과거를 뭍어벌리는 그 불길을 바라보며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그리고 실신한 그녀를 무위가 안고 운산을 넘어 자신들의 성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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