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58. 큰 마누라, 작은 마누라

무늬만여우... |2004.11.24 08:34
조회 2,819 |추천 0

원래 집 계약 당시엔 부엌 시설을 웬만큼 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믿고 계약을 하고 간건데, 부엌 시설이 전무한 형편이다. 개수대에 물이 안나온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물 버리게끔 만들어줬음 편했을텐데 그냥 밑으로 구멍만 뻥 뚫려 부엌 흙바닥으로 물이 바로 쏟아지게 생겨먹었다.

좁아터진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설겆이하고, 빨래하는게 배불뚝이 임신부에겐 참으로 힘든 노동이었다.

입맛들이 까다로운 남자들 챙기려니 내가 대꼬챙이처럼 말라갔다. 날씨는 왜그렇게 더운지 가만히 있어도 등에서 땀이 흘러 흥건히 젖곤했다.
처음엔 그 젖은 옷이 너무 싫어서 벗어서 씻고 다시 갈아입고 씻고 다시 갈아입곤 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하루에 여섯, 일곱번은 갈아 입어야해서 더이상 갈아입을 옷이 없어졌다. 덥지만, 젖었지만 참고 있다가 점심 때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갈아입는 걸 원칙으로 했다. 아들 녀석은 수시로 갈아입고 벗어 제꼈다.

부엌이 없음으로 불편한 것은 집 주인에게 제대로 따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집 주인에게 간 랑은 그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은 교통 사고로 왼쪽 팔이 완전히 잘려져 나가고 없었다.

퇴원을 하고 집에 들른 집 주인은 없는 팔에 여전히 어깨까지 칭칭 붕대를 둘러메고 그 여름에 얼굴이 벌개서 다녔다. 에궁. 디게 아프겠다.

그는 운전할 때의 버릇이 왼쪽 창문을 다 내리고 팔을 내 놓는 거랜다.

깜박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그는 왼쪽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왼쪽 팔을 창문으로 내놓고 쑥 내밀어 뒤에 오는 차가 그 팔의 신호를 보고 추월하지 않도록 했다.

하긴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운전사가 그런 버릇이 있긴하다.

나도 가끔 그 버릇이 있어서 랑이 운전할 때 오른쪽 손을 밖으로 내 놓으며 뒷차에게 표시를 해주곤 했다.
한 번은 그러다가 위험했던 적이 있었는데, 뒷차가 그걸 무시하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난 놀래서 얼른 손을 집어넣었는데, 그 때의 생각만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 집 주인은 술을 마시면 더욱 그런 행동이 잦아졌나부다.

주로 시골 마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는 그들을 그냥 술 한 잔 마시고 운전하는건 봐주기 일쑤이다. 그 날 그는 한잔 기분좋게 걸친 상태에서 운전하다 버릇대로 왼쪽 팔을 뻗었는데, 바로 추월하던 차가 있는걸 눈치를 못챘던 것이다.

그 추월하던 차가 그의 팔을 받으며 잘라버리고 그는 그 날로 팔을 잃어버렸다.

그런 그에게는 아내가 둘이나 있었다.

큰 마누라 집에선 월, 수, 금 자고 작은 마누라 집에선 화, 목, 토, 일요일을 보낸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정혼이 된 큰 마누라하고 살다가 그는 작은 마누라랑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큰 마누라와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이 큰 마누라는 절대로 이혼불가를 외치고 나섰고, 그렇게 어우러져 살게 되었다나.

한 동네에서 한 블럭 밖에 차이가 안나는 곳에서 그는 그렇게 아내를 둘이나 두고 살았다.

문제는 사고가 나면서 커졌다. 서로 병간호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참말로 행복한 사내지. 우리같음 얄미워서라도 네가 해라 하고 서로 미룰텐데...쩝.

같이 사이좋게 병간호를 못하고, 남편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에 그들은 머리끄댕이까지 뜯으며 싸워서 동네에서 큰 이슈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처럼 타지에서 흘러들어와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 귀에까지 그 이야기가 들어온 것이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작은 마누라를 더 사랑하는지 작은 마누라가 간호를 해주면 좋겠다고 편을 들어서 큰 마누라는 몸져 눕는 결과를 초래했고, 동네 사람들은 큰 마누라가 간호를 해줘야 좋다, 아니다 작은 마누라가 더 젊고 건강하니 더 낫다. 이렇게 패가 갈리게 되었다.

이 때 슈퍼에 가면 나보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의 일로 입에 거품 물며 싸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 논쟁이 벌어진거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참말로,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날 친구로 받아들이고 묻는데 뭐라고 말해줘야하나.

"음. 한국은 일부 일처제라 그런 사람들만 봐와서 난 잘 모르겠어. 지네들끼리 잘 의논해서 하라고 해야지. 내가 뭘 알겠니."

근데, 큰 마누라가 해야지 하는 맘이 드는건 사실이다. 웬지 작은 마누라라는 단어는 예전부터 밉상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조강지처 타입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동네 여론은 큰 마누라는 30프로 작은 마누라가 70프로 정도래나.

그 작은 마누라가 성격도 좋고 인심도 좋으며 인물도 좋아 평판이 좋다.

큰 마누라는 '심술궂은 앙헬라'라고 불리웠다. 하긴 남편이 그렇게 다른 여자 데리고 와서 바로 옆집에 산다면 심술궂은게 아니라 더 심하게 변하지 않을까 싶긴하다.

요즘의 세상에서 이런 일도 발생하다니...

일부 일처제인 아르헨티나지만 시골은 그게 제대로 통용이 안되나부다.
그 남자 외에도 아내를 둘 정도 둔 집은 몇 집 더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며 합의가 이루어져 월, 수, 금은 큰 마누라가, 화, 목, 토, 일은 작은 마누라가 병간호를 사이좋게 나누어서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졌다.

이 남자는 그렇다고 돈이 그리 많은 집도 아니었다. 아내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남편을 벌어먹여 살리는 듯했다.

도대체 생긴 것도 별로고, (내가 보기엔 그냥 털북숭이 평범한 징그런 아저씨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며, 성격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고, 몸매도 배불뚝이 아저씨를 그 부인들은 애타게 사랑하고 있었다. 나이도 어지간히 있는 40대라 내 눈엔 참 신기한 일로 비치었다.

우리 예전 한국 사회에선 그게 가능했지만, 그게 어디 가능해서 가능했던 일인가, 그야말로 사회의 부조리였구만.

랑은 그 사람이 오면 마당가에서 같이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그를 능력있는 남자라고 추켜세우며 부러워하는 발언을 가끔했다. 그 남자는 그게 좋기도 하지만 골치도 아프다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둘 다 너무 질투가 심해서 힘들대나. 어구. 그걸 봐주는 사람들이 난 이상했다.

그는 다시 세상에 태어나면 한 아내만 두고 살겠단다. 어지간히 머리가 아픈가부다.

암튼, 그 두 아내는 아이들 키우며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있다. 체념하고 사는건가?

랑과 랑 친구들은 그 집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워하는 발언을 했다.

에구. 도둑넘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