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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입시에 꼭 출제 될 논술문제

레지스탕스 |2007.01.23 14:31
조회 62 |추천 0
 

역사에 묻힐 뻔한 ‘사법살인’ 진실 밝혀


(::‘인혁당 무죄’ 확정 의미::)

우홍선, 송산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도예종, 여정남. 국가전복 기도 혐의로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 18시간만에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주역들이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들에게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9일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그로부터 32년여만인 2007년 1월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문용선 부장판사)는 이들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무죄 판결이지만, 진실은 마침내 밝혀졌다.


◆인혁당 사건, 사형선고에서 재심결정까지 = 1964년 “인민혁명당이 북괴의 지령을 받아 국가변란을 획책했다”는 중앙정보부발표로 1차 인혁당 사건이 터져나왔다.

연루자들은 대법원에서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10년뒤인 1974년 4월, 중정은 또다시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2차 인혁당 사건이다.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국가보안법 위반·내란예비 음모·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우씨 등 8명에게 사형을 확정했고 재판이 종료된 지 불과 18시간만에 이들에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지난 30여년에 걸쳐 우씨 등의 유족들은“민주화운동 탄압을 위한 유신정권의 고문 조작 사건”이라는의혹을 제기해왔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유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정의 조작사건이었다”고 발표했다.

2005년에는 국정원 진실위의 고해 성사가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듬해 3월, 인혁당 사건에 대해 마침내 재심 결정을 내렸다.


◆인혁당 재심 무죄 선고, 의미와 파장 = 2006년 3월 인혁당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첫 재심 공판이 열린 후, 이철, 유인태, 김지하씨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 투사들이 증언대를 거쳐갔다.

그들은 “무고한 생명이 국가의 권력에 희생됐다”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법원은 인혁당 사건 재심 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경찰과 검찰, 공판 조서에 대한 ‘증거 능력’만을 쟁점으로 삼았다.

변호인단이 주장해온 긴급조치와 유신헌법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위헌 심사는 법원의 권한이 아니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번 선고가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 신호탄이 될 것이란해석을 경계하기 위한 신중한 행보로 해석된다.


그러나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생존 피해자 등이 이미 재심 청구준비에 착수한 상황이어서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는 거스를 수없는 대세가 됐다.

법조계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과거사 정리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선고가 재심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재심 공판과 별도로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340억여원대의 손배소를 제기해 놓고있다.


노윤정·조성진기자 prufroc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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