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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을 거슬러….
웅성. 웅성.
“야, 햄 내놔!”
“이, 이 자식. 안 줄 테다!”
지금은 왁자지껄한 점심시간이다. 뭐 시끄러운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난 그런 것쯤엔 전혀 굴하지 않은 채 열심히 도시락을
까먹고 있다.
‘오오, 나이스으으으. 오늘의 반찬은 마요네즈 참치 샐러드!’
그 때 같은 반 친구이자 단짝친구인 형준이가 말을 걸어왔다.
“야. 김철범. 뭐하냐?”
“냠냠… 보면 모르냐? 밥 먹는다.”
녀석이 당연한 걸 묻는 터라 난 당연히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바삐 손을 움직여 도시락을 까먹는데 열중했다. 그런데 요 망할
형준이 녀석은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았는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아까 전과는 달라진,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철범아. 너‘히어로(Hero)’라는 게임 알아?”
히어로라…. 영웅을 말하는 건가?
“우걱 우걱. 아니, 생판 처음 들어봐.”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로선, 까막눈 앞에서 ㄱ자
설명하는 꼴이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으며 다시
식사에 열중했는데….
“왜, 그거 있잖아. 요즘 들어 가장 뜨는 거 말이야.”
녀석이 또 귀찮게 굴었다! 망할, 이놈 파리 아냐?
“그래, 가상현실게임! 알지?”
가상현실? 가상현실이고 기상현실이고 난 밥 먹기도 바쁘다.
그러니….
“몰라, 난 원래 게임 같은 거 잘 안하잖아.”
이쯤이면 충분한 거절의사를 밝혔을 거라 생각한 나.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알아, 근데 그거 엄청나게 재밌거든. 그러니까 철범이 너도
한 번 같이 해보자. 응?”
재밌다? 재밌다? 재밌다? 재밌다……. 재밌다?
“…….”
뭘 재밌어? 난 밥 먹는 게 더 재미있다는 말이다! 라고 할까
하다, 잠시 망설였다.
“…음?”
녀석이 이정도로 말하는 걸 보니 재밌기는 재밌나보군.
형준이는 나와 비슷한 성격인지라 자신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잘 안하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녀석의 말은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난….
“…….”
아까도 말했듯이 밥 먹기도 바쁘다! 세상에서 제일 추잡한
짓이 남 밥 먹는데 쳐다보는 거 아닌가? 난 오른 손을 들어
녀석의 얼굴을 밀었다.
스으윽 투-욱.
“으윽.”
녀석이 인상을 쓰며 소리친다.
“이게 어디서 앞발을 휘둘러!”
녀석의 말에도 난 끄떡없었다. 앞발이고 뒷발이고 지금의 난
밥 먹기도 바쁘다니까?
“에이, 밥 먹는데 귀찮아. 저리가라. 훠이~ 훠이~”
그리곤 다시 밥 먹는데 전념하기 시작했다.
2.
학교가 끝나자 난 설레는 마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단짝 친구이자 환장할 친구인….
“철범아, 같이 하자. 응? 한 판만 같이 하자.”
형준이 자식이 집요하게 따라붙고 있다. 아아, 이래서야 어디
즐거운 방과가 되겠나? 난 돌아버리겠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쏘아봤다.
“닥치시고오오, 너나 많이 하셔.”
영 싸가지 없는 말투일지도 몰랐다. 허나, 이놈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응, 난 많이 하고 있단다. 그러니 나의 사랑하는 철범이
친구도, 같이 해야 하지 않겠어?”
“…….”
바로 요렇게 말이지. 하아, 이놈 좀 어떻게 때어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은 없고. 이러다간 말이지, 정말….
‘가, 간식 맛도 없을 것 같아.’
그래, 난 지금 간식을 먹으러 가고 있는 중이거든. 그런데 요
녀석이 이렇게 귀찮게 구는 마당이니, 평소라면 즐거웠을
간식행이.
“싫어! 안 할 거야! 안 할 거라고! 안 한다는 말이다!”
지옥행으로 바뀌어가고 있던 거야. 정말 환장하게도 말이지.
꼬르르르륵-
게다가 화까지 한 번 냈더니, 배가 더 고파진 것 같아. 그래서
일단은 협상을 하고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는데….
“나 배고프다. 그냥 그 얘긴 나중에 하자.”
“그럼 얼른 한다고 해라. 정말 재미있다니까?”
녀석은 역시 끈질겼다. 이 정도로 끈질기다면, 약간은 수긍해
주는 게 예의일 터.
“그래?”
“응, 다시 한 번만 생각해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흠.”
별로 재미없을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진 단 한 번도 안
해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다고는 하지만, 벼슬도
체질에 맞아야 한다고 어째 게임이라는 거….
‘영 내 체질에 맞지를 않아. 게다가 그냥 게임도 아닌
가상현실게임이라니…’
가상현실게임이라는 건 말 그래도 게임 속에 주인공이 되어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순전히‘노가다형 게임’이기 때문에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나로선 그다지 호기심이 생기질 않는다.
“싫어. 난 안할 거야.”
그렇기에 사양이다. 정말 뛰어다니는 건 아주 질색이거든.
그러자 형준이가 늘 그렇듯이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쳇. 미련 곰탱이 같은 놈.”
뭐? 미련 곰탱이?!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냥 곰탱이도 아니고 미련한 곰탱이라니… 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발차기를 시도했다.
“뚜시!”
내 분노를 담은 일격이고 제법 묵직한 기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 몸은 따라주지를 않았던 것 같다. 그 증거로
녀석이 말했다.
“철범아. 때리려면 제대로 때려줘. 종아리가 뭐냐?”
“…….”
원래는 엉덩이를 때려 줄려고 했었는데, 다리가 무거워서 안
올라갔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호, 우리 철범이 왔네?”
“헤헤. 반가워요, 아줌마.”
오늘도 역시 [많이 줘 분식점]아줌마가 반갑게 날 맞아주셨다.
입안에 가득 고이는 침을 삼키며, 눈앞에 놓인 맛 좋은
음식들을 헤~ 하고 쳐다보는 나.
“와아, 오늘도 자알 있네요?”
“그럼. 우리 철범이 오면 주려고 아줌마가 많이 준비해놓았지.
”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뎅 국물과, 윤기가 잘잘 흐르는
맛탕. 토실토실 잘 말려진 까만색의 김밥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붉은 빛의 환상적인 떡볶이까지!
‘아아, 기절할 것만 같아!’
언제나 흥분되는 순간이다. 무엇을 먹을까 걱정해야 할 만큼
상당히 난감한 이 시간인데, 아줌마가 물어왔다.
“그래. 우리 철범이 뭐줄까?”
난 아줌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통통한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고는, 이것저것을 일사분란하게 가리키기 시작했다.
“떡볶이,오뎅,김밥,맛탕,순대 전부 2000원어치 주세요.”
도합 1만원어치! 오늘은 특별히 배가 고팠으니 이 정도쯤은
상관없겠지?
아줌마는 방긋 웃으며 음식들을 담기 시작했고, 난 두 손을
불끈 쥐며 외쳤다.
“아줌마!”
“응. 왜?”
“많이 주셔야 해요, 아셨죠? 흐으으.”
어찌 보면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선 이게
하나의 애교였던 것이다. 아줌마는 생긋 웃으시고는 곧 순대를
썰기 시작하셨고, 그 모습을 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쓱쓱쓱-
쓱쓱쓱쓱-
그리곤 조금씩 모양을 잡아가는 순대덩어리를 바라보던 난,
‘맛있겠다. 맛있겠다. 맛있겠다!’3창을 외치고는,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작은 의자에 육중한 몸을 기대었다.
털썩-
미쳐 말하지 않았는데, 내 몸무게는 자그마치 100kg!
“의자 부서지겠다, 인석아.”
“헤헤, 미안해요. 아줌마.”
쉽게 말해 뚱보라는 말이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음식이 나왔다. 하지만 먹는 분위기는 그다지 좋진 않았다.
“철범아. 철범아. 철범아. 철범아.”
하아, 또 시작인가? 일단 떡볶이 하나 집고.
푹-
“…형준아?”
“응?”
세상에서 제일 추잡한 게 밥 먹는 거 쳐다보는 놈이라면,
그보다 더 치사한 것이 간식 먹는 거 쳐다보는 놈이란 걸 네
놈은 모른단 말이냐! 라는 표정으로, 녀석을 쏘아보는 나.
부르르르-
입은 떡볶이를 씹는 터라 못 움직였고 대신 두 눈을 부릅뜬
채로‘버럭 버럭’거렸으니, 내 모습이 추리할 거라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
하지만 녀석에게 일일이 대답해주기도 귀찮았기에,
언제부턴가 난 ‘바디랭귀지:Body language’즉 몸동작을 이용한
표현을 해댔던 것이고,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표현했건만 녀석의 대답은….
“같이 하자. 응? 하자. 하자. 하자.”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자기가 하기
싫은 걸 계속하라고 하면 더 하기가 싫어지는 법!
‘네 놈의 설득력은 정말 최악이야!’
라고 생각한 난, 물엿이 잘잘 흐르는 맛탕을 한 입에 쏙
넣고는 비교적 차분하게 말했다.
“…싫어, 때려 죽여도 안할 거야.”
그런데…. 정말 그런데!
“아에에에!”
(안 돼! 라고 외치려던 것이다.)
글쎄 녀석이 내 피 같은 김밥 한 조각(마지막 남은)을
집어 들더니 한 입에 쏙 쳐 넣는 것이 아닌가!
두 개 남은 것도 아닌, 단 한 개짜리를!
“…….”
눈물이 났다. 텅 빈 접시를 말없이 내려다봐야 하는 이
심정이란.
“…….”
기, 기절할 것만 같아. 하지만 쓰러질 수는 없다!
“네 놈이 감히! 내, 내, 내 피 같은 김밥을!”
당장이라도 뒤통수로 포크를 찍어 내릴 것 같은 절박한 상황!
위기감을 느낀 녀석이 외쳤다.
“만약 나와 같이 히어로를 해 준다면….”
“애우아어?”
목소리가 왜 이래? 다시, 해준다면?
“10배! 즉 김밥 한 줄이라도 사줄 수 있다! 어떤가 김철범?
너라면 할 수 있어!”
뭐, 뭐, 뭐라고? 고작 김밥 한 줄로 네놈이 용서를 받으려고
해?
“훗! 가소로운 자식. 감히 김밥 한 줄 따위로 이 몸을
유혹하려 하느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일랑,
지껄이지도 마라!”
그러자 놀랐다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형준. 녀석이
물어왔다.
“오, 어쩐 일이냐? 김철범. 혹시 사춘기라도 온 거야?”
“닥쳐라! 사춘기는 1년 전에 끝났다!”
“그, 그럼?”
이제는‘미, 미친 거 아니야?’라고 쳐다보는 오형준. 난 그런
녀석에게 말했다.
“크흐흐흐, 두 줄 사주면 같이 하지롱.”
“큭. 그럼 그렇지. 아줌마! 김밥 두 줄 더 주세요.”
…역시 난 먹을 거에 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