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은은 정신없이 바빴다. 기사를 송고하고, 취재를 다니고, 거기다 펑크 난 기사까지 대신 쓰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거기에 미란다의 신경질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나 바빠요. 미안. 이만 끊어요.
레오는 효은의 바쁜 듯한 목소리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내려놓고 말았다.
-많이 바쁜가.
레오는 중얼거리며 담배를 물었다. 결혼을 해도 이렇게 바쁠까. 차라리 결혼을 해서 내 옆에 둘까. 어제부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결혼에 대해서. 레오는 창가로 걸어갔다. 너무 이른 것 아닐까? 레오는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요한센.
레오는 전화기를 들고 요한센을 불렀다.
-네, 사장님. 찾으셨습니까?
요한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자선 음악회는 잘 되고 있나?
-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지 않습니까? 잘 되고 있습니다. 가수들 다 섭외되었구요. 모델들도 많이 온다고 합니다.
요한센이 말했다.
-그래?
-왜 부르셨습니까?
요한센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자네 눈은 못 속이겠구만!
레오가 머리를 흔들며 미소지었다.
-말인데, 요한센.
-네?
요한센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만약 효은과 결혼한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뭐.. 풋.
요한센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다 심각한 레오의 얼굴을 보고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지말고, 이 사람아!
-아, 죄송합니다.
요한센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지만 아가씨껜 너무 급한 것 아닌가요? 여자들은 결혼에 어느 정도 거부감과 환상과 두려움과.. 남자가 모르는 이상한 감정이 있거든요.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결혼까지 다가가는 게 가장 좋은 거 아니겠어요?
-자네는 어떻게 결혼했나?
레오의 말에 요한센이 웃었다.
-저요? 신디 어머니가 우리 결혼을 반대하셨잖아요? 그래서 공기총을 들고 가서 허락 안 해주면 이 자리에서 자살하겠다고 그랬습니다. 바로 허락하시더군요.
-진짜 그랬나?
레오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그럼요. 총알이 가득 들어 있었죠. 그때 어머니 표정이란.
-독한데가 있구만, 자네.
레오가 말하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렇게 안 독해지면 행복도 없습니다, 사장님.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구요, 눈물 없는 사랑도 없습니다. 사랑이 행복하기만 하면 좋게요? 싸우고 지치고 그러면서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래도 싸운 적은 없네.
-그러시죠? 조금만 있어 보십쇼. 한달에 서너 번은 헤어질 겁니다. 그러다가도 만나면 화해하고.. 그러면서 서로 알아가고 닮아가고 이해하는 거죠.
-미란다와도 그랬네.
-두 분은 노력하지 않으셨죠. 한쪽이 손을 내밀면 한쪽이 차버렸고 한쪽이 관심을 두면 한쪽은 멀리 달아나 버렸잖아요. 서로 노력해야죠.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도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사랑이 더 깊어져요.
요한센이 말을 마치자 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랑은 너무 어려워.
-어렵지 않으면 재미가 없죠.
말을 마친 요한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일어난 레오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아, 그런데요. 사장님.
요한센이 나가다말고 뒤를 돌아봤다.
-왜?
-그 헨리 스완 기자 있잖습니까?
-그래. 그.. 얼굴 허연..왜?
-그 기자 우리 잡지사로 자리를 옮겼더군요.
-뭐라구?
-자리를 옮겼더라구요. 들리는 말로는 아가씨가 이코노믹스 그만 둔 이후에 같이 그만 뒀답니다. 워낙 실력이 좋아서 채용했답니다.
-뭐야?
레오는 얼굴을 찌뿌렸다. 이건 또 뭐지?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알았어.
요한센이 나가자 레오는 헨리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군. 생각 같아서는 당장 짤라버리고 싶지만... 레오는 담배를 한 대 입에 물면서 생각했다.
-강효은!
-네!
스톤튼이 손을 흔들었다.
-네, 선배님.
-이거 봐. 이거, 철자가 틀렸잖아!
-앗, 죄송합니다.
-정신을 어디다 두는 거야?
스톤튼과 함께 기사를 검토하던 미란다가 눈꼬리를 치켜뜨고 물었다.
-뭐, 그런 실수 할 수도 있지. 윈즈버그는 그런 실수 안했나?
스톤튼이 정색을 하자 미란다는 얼굴이 굳어졌다. 도대체 왜 사람들 모두 강효은 편만 드는 거지? 미란
다는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져다 다시 쳐와!
미란다는 기사를 효은 앞에 휙 뿌리고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런. 성질머리하고는. 선배 앞에서.
스톤튼이 고개를 흔들었다. 기사를 주운 효은은 다시 자리로 들어가 원고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은 다섯 시였다. 사람들은 하나 둘 퇴근하는데, 효은만은 쉬지도 못하고 계속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네.
-나야. 바빠?
-응. 이거 다 해놓고 가야하는데..
-퇴근도 안했구나.
레오가 침울하게 말했다.
-퇴근? 밥도 못먹었어.
-그래. 알았어.
다시 타이핑을 시작한 효은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벌써 창 밖은 어두워졌다.
-자기야!
효은은 레오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레오가 초밥 도시락을 들고 서 있었다.
-뭐에요?
-밥도 안먹었다며? 사왔는데.
-우와. 고마워.
효은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표정이었다.
-고마우면 나 볼에다 뽀뽀해줘.
레오가 뺨을 내밀었다. 그러자 효은이 레오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고마워.
-무슨 소리. 빨리 먹구 일해야지.
레오가 도시락을 펼쳐줬다. 효은은 입안 가득히 초밥을 넣고 우물거렸다.
-그런데, 자기. 우리 결혼할래?
-뭐라고?
효은은 너무 놀라 씹던 밥풀을 튕겨냈다.
-미안. 우리 결혼하자고?
-그래. 있잖아. 당신이랑 결혼하면, 아니 같이 살면 너무너무 행복할 거 같아.
-나 바빠. 지금은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는데. 조금 만 더 일 좀 하고. 당신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가 아니야.
효은의 말에 레오는 의기소침해졌다.
-당신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니까.
효은은 젓가락을 입에 물고 타이핑을 하면서 말했다.
-아직 결혼은 이르지 않아? 둘 다 일도 있구.
-그래?
레오는 우울하게 되물었다. 레오의 표정을 본 효은은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심각하게 생각해 볼게, 우리 결혼. 아직은 이르지만. 충분이 생각해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
겠지. 그리고..
효은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뭐?
레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도 당신 사랑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처음 듣는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레오는 너무 기분이 좋아져 실실 웃음을 흘리며 초대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우리 자선 음악회 티켓인데 꼭 와. 꼭 와야 해.
-언젠데?
-다음주.
-다음주엔 바쁠 것 같은데..
-왔으면 좋겠어.
레오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기다리진 마.
-그전에 또 물어볼게.
-그래, 그럼.
효은은 초대장을 코르크 판에 압정으로 박아놨다.
-언제 끝나?
-음, 이것만 치면 돼. 곧. 왜?
-기다릴게. 빨리 끝내.
-그래, 그럼. 잘됐다. 피곤한데 편하게 집에 가겠네.
효은은 팔목이 부서져라 빠르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서 그런 효은을 바라보던 레오는 또각거리는 구도 발자국 소리에 눈을 들었다.
-이게 누구야?
-미란다.
미란다였다.
-왠일이세요, 선배님?
효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스켓을 놔두고 갔지 뭐야.
미란다는 최대한 성질을 죽이며 자리로 가서 빨간색 투명 디스켓을 가방에 넣었다.
-여기서 이렇게 데이트 하나?
미란다의 말에 레오가 눈살을 찌뿌렸다.
-남이사 데이트를 하던 말던 참견할 바 아니잖아.
-알았어, 레오. 새겨들을게.
미란다는 효은을 보고 눈을 흘기더니 밖으로 나갔다. 효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 앉아 타이핑
을 시작했다. 어쨌든, 그녀는 레오에게 청혼까지 받았다. 무엇이 두려우랴!
차를 세운 레오는 효은을 깨우려다 그만 두었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닌데 벌써 잠이 들어있었다. 레오는 조심스럽게 자켓을 벗어 덮어주었다. 그리고 레오는 효은의 손을 잡았다.
-당신 힘든 거 너무 싫다. 더 편하게 해주고 싶어.
레오가 속삭이자 효은이 대답했다.
-그저 지켜보는 게 나 도와주는 길이야.
레오가 깜짝 놀라 말했다.
-자는 거 아니었어?
-당신이 옷 덮어주는 바람에 깼어. 벌써 집이네. 가서 자야겠다.
-조금만 더 같이 있어.
레오가 효은의 손을 힘을 주어 쥐었다.
-왜?
-하루종일 당신 생각만 했는데. 이렇게 보내면 너무 서운하잖아.
-어유, 느끼해.
그러면서도 효은은 웃는다.
-요한센이 뭐라했는지 알아?
-뭐랬는데?
-사랑이란 마음 아프고 지치고 힘들고.. 그러면서도 서로 이해하고 안아주고 함께 하는 거래.
-요한센이 그래?
효은이 되물었다.
-응.
-역시 요한센은 멋있다니까.
효은의 농담에 레오가 짐짓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왜?
-우리도 힘들고 아프고 지쳐도 정말 잘 하자구.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그래. 나 당신 없으면 못 살거같아.
-장난치지마.
효은이 레오의 볼을 꼬집었다. 레오는 아프다는 듯 얼굴을 찌뿌리다 귀엽게 윙크를 했다.
-어유, 애교부리는 거야? 지금?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
효은이 우습다는 말투로 말하자 레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는 소리. 나 모델할까 생각중이야.
-모델?
효은이 소리쳤다.
-응.
-절대 안돼!
효은의 단호한 외침에 레오는 움찔 놀랐다.
-왜?
-지금도 부담스러운데 그렇게 되면 더 부담스럽잖아!
닭살의 초절정...쓰는 저도 소름끼치네요. ㅋ
그래도 댓글 많이많이 써주세요~ 추천두요ㅋ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