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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72. 태권도는 무기소지에 해당

무늬만여우... |2004.12.21 15:22
조회 2,776 |추천 0

젊은이에게 무료함은 정말 죄이며 벌이다.

가을 겨울을 일거리 없이 지내자니 랑은 무료해서 죽으려고했다.

가을 한 보름이나 한달 정도 창고에 내려가서 열심히 벌통을 짜며 못질을 해대고 왔다. 랑은 가을을 한아름 선물한다며 길거리에 널린 갈대를 엄청 잘라왔다. 온 거실에 갈대가 무성했다. 처음에는 보기 좋았지만 갈대가 지면서 솜털같은 갈대꽃이 무수히 날려서 아침이면 눈처럼 쌓였다.

벌통에 다녀온 뒤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우리에겐 커다란 트럭이 있었는데, 그걸 활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랑은 교포 신문에 광고를 냈다.
이삿짐센터.

팔다리 튼튼하겠다. 남아도는 힘 있겠다. 커다란 짐칸있는 트럭있겠다. 좋은 조건이었다.

일주일에 한 두번 나가서 이삿짐을 나르고, 거의 매일 공장으로 물건을 가지러 가거나 원단을 가지러 가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일도 돈이 쏠쏠히 들어와서 둘이 겨울 내내 얼굴보며 다투은 일은 덜해서 좋았다.

랑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원단을 날라주며 호기심 많은 랑은 원단에 대해 빠삭하니 알게됐다.
또 쉐타집 물건을 배달해주며 쉐타에 대해 이거저거 정보를 들어 알게되며 한국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옷에 관하여 알게됐다.

그러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생기며 오고가며 초대해서 저녁도 같이 해먹고 그랬다.

어떨 때는 교통 경찰하고 싸워서 배달한 돈을 다 뜯기고 온적도 있었다. 그 때부터 랑은 아르헨티나 경찰을 불신했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동양인이 운전하는 차는 무조건 잡았다.

하루는 이삿짐을 올겨달라는 전화가 왔다.
랑은 새벽같이 나갔다. 그런데 하루종일 연락이 안되는게 아닌가. 밤이 되어도 연락이 안되었다.

난 무슨 사고가 났을까? 걱정이 되어 오늘 이사한 집을 수소문해 전화를 했다.
랑은 이삿짐을 다 나르고 저녁 6시에 집으로 갔댄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까지 랑은 집에 연락도 없이 안들어왔다.

다음날 아침에 랑이 이삿짐을 날라줬던 그 집에서 연락이 왔다.
동네어귀에서 시비가 붙었었는데 그 일때문인지 모르겠다는거다. 도대체 무슨일인데 그럴까.

점심때쯤 랑은 조서를 받고 풀려났다. 같이 싸웠던 패거리들도 같이 풀려났다. 네명하고 혼자 싸웠는데...그냥 조서만 하고 나오다니...

랑이 집에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말해줬다.

그들은 길모퉁이에 있던 어떤 차가 긁혔다고 랑에게 뒤집어 씌웠다고 한다.
트럭은 높이가 있어서 그 승용차의 긁힌 위치도 긁히기 불가능한 위치였고, 그 자리에 있으면 트럭이 왔다갔다하며 긁일 일이 없는 자리였단다. 게다가 긁힌지 오랜자국을 갖고 그들은 시비를 걸었댄다.

랑도 처음엔 웃고 넘어갔는데, 말귀를 알아들으면 남들이 욕을 할때 손해다.

"이 동양의 사기꾼아~ 너네들은 다 더러운 돼지들이다. 이 나라에서 내쫓아서 저 바다에 다 빠져죽여버려야해~! 이 더러운 개새끼들아!!"

랑은 그들에게 조용히 말하고 돌아서다 그 욕을 들었다.

젊은 혈기 왕성한데 그런 욕을 들었으니 랑은 바로 돌아서서 그들과 엉겨 싸웠다. 그리고 조서를 받고 나온거다. 애들처럼 쌈질하고 온건 화가 났지만 그들의 행동에 난 분개했다.

다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집 주소가 맞냐고 확인을 한대나...

다음 날 아침 7시도 안된 시간에 그들은 초인종을 눌렀다.

랑은 잠바도 안입고 내려갔는데, 그들은 잠깐 경찰서에서 조서 재작성만하면 보내준다고 동행을 요구했다. 랑은 쉽게 생각하고 잠바도 안입고 그대로 경찰서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랑에게 맞은 사람이 목뼈에 금이가며 일이 커진줄 몰랐던 것이다.
그 목뼈를 다친 사람 친척이 다른 구의 경찰 서장이라나. 재수 없어도 더럽게 걸린거다.

랑은 다음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도 않았고, 연락도 안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들은 일부러 랑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일부러 가둬놓고, 랑을 살인미수와 무기소지로 잡아넣은 것이다. 인권유린에 덮어씌우기였다.

무기소지는 하지 않았다고 랑은 진술했지만 그들은 한국인은 태권도를 다 할줄 알기 때문에 권총소지와 같은 1급무기소지에 해당한다고 조서를 작성했다.

랑은 태권도 못한다. 그냥 어릴적 친구들과 쌈질만 해 본 평범한 사람이다. 근데 그 싸움을 지켜 본 아르헨티나인들은 네명과 붙어서 싸운 랑이 발길질도 잘하고 주먹도 잘 써서 아마도 태권도를 잘하는 것 같다고 증언들을 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끼니때가 되어도 밥도 안주고, 집에 연락도 못하게 했다.

하루만에 그 유치장에 들어간 경찰서장이 랑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경찰서 너무 낡았지 않니? 너네 한국인들은 돈도 잘 버는데 좀 보태서 고쳐 줄 의향없니?"

랑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며 그 서장과 대화를 시도했다. 한참 대화가 오간 후에 그 목뼈 다친 사람 친척이 옆동네 경찰서장이고, 그리 심하게 다치진않았다는걸 알아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이게 웬떡이냐며 랑에게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 랑은 일단 전화로 내게 이 사실을 알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내게 그런 사정을 알렸다.

여러가지 전후 사정으로 봐서 랑이 불리한 점도 있지만 이길 점도 많았다.
하지만 법정 싸움은 느리기로 유명한 아르헨티나다.
이 사건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한번 고소 들어가고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랑은 몇달이고 유치장에 갇혀지내야하는거다.
답답했다.

서장은 그걸 아니깐 뇌물을 요구했다. 랑은 그 서장을 구슬려 만불을 요구했지만 2천불로 깎았다. 억울했지만 할 수 없었다. 남의 나라에 사는 설움이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의 아르헨티나 법도 문제였다.

랑은 그렇게 다시 며칠만에 풀려났다.
너무 속상했다. 그 뒤로 랑이 일을 나가려면 한마디 하게 되었다.

"누가 뭐라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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