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강-24
느낌일까..
이곳까지 오면서 보이던 밝은 해는 더 이상 오간데 없었다.
어느새 잿빛 하늘이 산과 들과 강을 뒤엎고 도심 속에 머물러 있었다.
마음 만큼이나 어두운 하늘이라고 생각되었다.
지영은 낯선 두려움과 작은 호기심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감온 수원교도소는 더 높은 담장인것처럼 느껴졌다.
더 많은 수의 군상들...더 넓은 운동장과...더 많은 까까머리 사람들...그리고 교도관들....
각각의 이름과 수번이 호명되고 누구는 어느곳..누구는 어떤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7동 9방.
지영의 배정받은 장소였다.
분명 더 넓은 방과 더 많은 사람들 이었는데 이미 초라해져 버린 스스로의 모습에 짜증이 밀려왔다.
철문이 열렸다.
[문지방 밟으면 안되]
그랬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곳 군상들은 나갈때나 들어갈때 문지방을 밟으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무척 싫어했다. 지영도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철문이 닫혔다.
지영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15명의 사람들 적게는 20대부터 많게는 60대 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여기서도 막내인듯 보였다.
더 넓은 창틈으로 아까의 잿빛 하늘은 어둠을 내리고 있었다.
[신입 인사드리겠습니다. 23살 성남살았습니다. 강도상해죄로 3년6월 선고받았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어진 형식에 맞춰 신입 인사를 맞쳤다. 몇몇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몇몇은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하던일을 계속 했다.
[저 하진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지영을 가장 반기는 사람은 하진철 이었다.
진철은 방 안에서도 수갑을 차고 있었다.
[사형수구나....] 순간 지영은 섬뜻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네]
엉겹결에 두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곤 찬찬히 그의 눈과 그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진철은 밝은 미소로 지영과 나란히 뒤로 물러섰다.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취침을 알리는 소리였다.
이불들이 바닥에 깔리고 한사람 두사람 옷을 벗었다.
이곳도 방장이 있어서 방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모여졌다.
[오늘 신입도 있고 했으니까..조촐한 환영회 해야지?]
[그렇죠...]
[배식반장은 먹을꺼좀 꺼내오고...]
빙 둘려진 군상들 앞으로 한아름의 빵과 요쿠르트가 쏟아졌다.
[이곳에서도 최고의 간식거리는 초코파이와 요쿠르트구나]
지영은 슬며시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어이 신입..노래나 한곡해봐]
[저 노래 못하는데요....]
방장이 이맛쌀을 사정없이 찌뿌렸다.
진철이 수갑찬 두 손으로 지영의 옆구리를 찔러왔다.
[네 부르겠습니다. 누가 불렀는지는 모르겟구요..사랑과 미움이 만날때..라는 노래입니다.]
군상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하지만 큰 소리는 아니었다. 아마도 교도관을 의식하는듯...
[어제는 바람찬 강변을 나 홀로 걸었소..
길 잃은 사슴 처럼 저 강만 바라보았소..
강 건너 저 끝에 있는 수많은 조약돌처럼..
당신과 나 사이엔 사연도 참 많았소...
사랑했던 날 들보다 미워했던 날이 더많아..
우리가 저 강을 건널수만 있다면..
후회없이 후회없이 사랑할텐데..
하지만 당신과 나는 만날수가 없기에..
당신이 그리워지면 저 강이 야속하다오..]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 함성과 더불어 우렁찬 박수소리도 뒤를 이었다.
갑자기 터진 함성과 박수소리에 지영은 당황스러웠다.
[무슨일이야..]
몇명의 교도관이 복도와 연결된 문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입이 노래를 하도 잘불러서.... 죄송합니다.]
[이새끼들이 미쳤나.. 놀랬자나..]
교도관들이 씩씩거렸다.
하긴 갑자기 터진 함성소리가 무슨 커다란 난리라도 난듯하였으니 교도관들이 화를 내는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거였다.
[죄송합니다. 이거라도 드시면서...]
[소리지를려면 나 말고 다른 교도관 잇을때 하던가하지....]
뛰어왔던 교도관들은 배식반장이 내민 몇개의 음식을 들고서 머쩍은듯 말꼬리를 흐렸다.
[야 신입 너 노래 잘하는데?]
[.....]
[그 노래 내일 나한테 좀 적어줘]
[네 알겟습니다.]
진철이 오른손의 엄지손을 높이들어 지영에게 내밀었다.
지영과 진철은 그렇게 친해져가고 잇었다.
[한명은 답가를 불러야지. 진철아 너가 불러라.]
[네 형님.]
[네가 떠나던 그날 눈물대신 웃음을 보였네~
차마 울지못한 마음은 아쉬움때문이었네~
..............
내 곁을 떠나버린 마지막 순간~~
...............
내일이 찾아와도 넌 나를 찾지 않겟지만~
내일이 찾아와도 난 너를 기다릴테야~]
진철의 노래가 끝이났다.
아까처럼 커다란 박수와 함성은 아니었지만 숨죽여 함성도 지르고 주먹박수를 치고있었다.
이번엔 지영이 엄지손을 곳추세워 진철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이제 모두 자자..각자 자기가 할일들 하고...]
[넌 3년6월이라며?]
[응]
[강도상해야? 그리보이지 않는데?]
[말하자면 길어 천천히 이야기할께..]
[응]
[근데 넌 왜......]
지영은 말끝을 흐릴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또래인데 사형수라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지만 사형수이면서도 흐트러짐없는 그의 미소가 너무 맑았기 때문이었다.
[전에 절도로 여기 들어온적이 있거든. 난 아무짓도 안했는데 아무도 내말을 믿어주지 않더라구. 그 바람에 1년6월동안 정말 억울한 시간을 보냈지..사랑했던 여자도 있었는데 그 새 다른 남자를 만나서 가버렸고...]
[많이 힘들었겠구나..]
[뭐 별로...나가자 마자 둘다 죽여버렸어]
[......]
지영이 누운 자리에서 벌떡일어났다.
천연덕스럽게 두 여인의 살인을 이야기하는 진철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하하하..무섭지?]
[...조금....]
[견딜수 없었어..그 억울함과 배신감...넌 모를꺼야...하지만 후회는 없어.]
견딜수없는 억울함과 배신감...
지영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와 너무 흡사한 진철의 이야기...
어떤 경우도 정당화 될수 없는 범죄이긴 하지만, 진철의 그 행동을 뭐라 말할수는 없었다.
억울함...
배신감...
그리고 살인...
자꾸만 떠오르는 세 단어가 지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배신은 지영이 먼저한거나 다름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