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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의 싸움

호남사랑 |2007.01.25 09:59
조회 1,028 |추천 0

1972년 4월 김수환 추기경은 "대화를 하자"고 해서 진해까지 가는 기차를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탔다.

 

기차 안에서 박 대통령은 옆에 선 비서실장에게 "저기가 어디야. 나무가 없잖아"라고 하는가 하면 "주교님, 저 둑 좀 보십시오. 대한민국이 이래요"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저 플라타너스를 저렇게 전지(剪枝)를 했군요"라는 등 보는 곳마다 걱정을 멈추지 않았다. 또 종이 위에 4대 강을 그리면서 몇십년 걸릴 개발 얘기를 늘어놓더라는 것이다.

 

이런 박 대통령을 보고 김 추기경은 그가 우리나라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까지 애정을 가진 애국자이고 우국지사이지만 모든 것은 자기 손으로 해야 하고 필시 장기집권을 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더라고 했다. (김수환 추기경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 역사 바로잡기 아닌 정략 냄새


때 아니게 김 추기경의 회고담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 정권과 박정희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유신을 공격하고 박정희의 친일행적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유신으로 돌아갈 것이냐, 미래로 갈 것이냐 기로에 서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유신헌법으로 고시공부한 것이 부끄럽다고도 했다. 여당은 여당대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를 향해 '유신의 딸' '유신정권의 퍼스트레이디'라고 공격하며 새삼 유신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갑자기 박정희를 공격하는 것은 물론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박 전대표가 야당대표가 아니고 차기주자(次期走者)로서의 가능성이 안 보인다면 지금 이 시기에 박정희와의 싸움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싸움은 역사 바로잡기식의 거창한 이름보다는 정략.정쟁의 차원이라는 냄새가 물씬 난다.


그러나 아무리 정략이라고 해도 정부.여당은 싸움을 잘못 벌인 것 같다. 여권이 공격하는 것은 당연히 박정희의 독재와 장기집권 측면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박정희는 독재를 했지만 나는 독재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그를 이길 수 있을까. "박정희는 정보정치.유신을 했지만 나는 민주주의.탈(脫)권위주의로 나간다"고 해서 그를 능가할 수 있을까.


박정희의 독재와 유신은 더 이상 옹호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싸움이 안 된다. 6.10항쟁, 새 헌법, 두 김(金)의 집권, 노무현 정권의 출범 등으로 박정희의 독재는 여러 차례 결판이 났다.


남은 문제는 김 추기경이 말한 그의 다른 측면, '애국자.우국지사'라는 측면이다. 그의 산업화와 국가발전의 업적, 국가경영에 보인 그의 집념과 열정과 경륜…. 이런 것이 새삼 재조명되고 그런 그를 배워야 한다는 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그를 이기기 위해서는 재조명되는 그의 긍정적 측면과 경쟁해 이겨야 하는데 지금 정권에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현 정권에 박정희와 같은 리더십.안목.집념, 이런 게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잘못 건 싸움인 것 같다.


여야 간 정쟁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상대의 약점을 들추고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경쟁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지금 그 딸을 깎아내리자고 산 정권이 죽은 아버지를 공격하는 것은 아무래도 전략 실수인 것 같다. 그러잖아도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면에서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경제를 일으킨 지도자를 더 생각하게 되고,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느냐는 탄식과 절망이 크다 보니 강력한 리더십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만성적인 혼란과 사회 갈등은 반사적으로 안정의 지도자형(型)을 생각하게 만든다. 요컨대 박정희식 리더십이 가장 필요하다고 여기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박정희를 공격하다니 계산이 잘못된 게 아닌가.


*** "盧가 더 낫다" 소리 나와야 이겨


박근혜를 꺾자면 박근혜 본인을 공격해야 한다. 약점도 아닌 약점으로 공격하면 오히려 박 전대표의 정치적 성장을 돕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과거 박정희가 YS.DJ를 탄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을 민주화 스타로 만든 것처럼.


현 정권이 정말 박정희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면 국민 입에서 "노무현이 박정희보다 잘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믿음직한 경제정책 하나 없고 무능과 편가르기 등으로 국가적 표류가 계속된다면 사람들은 그의 독재마저 잊어버린 채 박정희를 점점 더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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