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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앓이 - 14

키라라 |2005.01.02 22:44
조회 349 |추천 0

 

 

새끼 손가락 걸고 맹세하자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가슴앓이 by 키라라]

 

들을 수록 머리가 아프다.

 

 

박형사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불능범과 미수범에 대해 술술 풀어내고 있지만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어 일부러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에게는 이런 내가 조금은 예의없고 무식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아주 난해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한 제스츄어였을 뿐이다.

그런 날 보고 준수가 웃었다.

무색해져 베시시 따라 웃자 그 길다란 손가락으로 내 머릴 비벼 헝클어뜨렸다.

 

"어려워서 그랬어"

 

변명하듯 그의 어깨에 머릴 기댔다.

커다란 손바닥이 내 얼굴을 덮었다.

 

"많이 심심하니?"

 

극도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날 이해하는지 손등으로 내 코끝을 건드렸다.

내가 콧잔등을 찡그리자 크게 웃던 그가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날 보는 박형사를 보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박형사님은 지연이의 동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박형사가 잠시 어물거렸다.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뭐...그야 둘 사이가 워낙 안좋았으니 다툼...끝에 우발적으로..."

 

"아뇨! 제 생각은 다릅니다. 형사치곤 너무 평범하신데요?"

 

그가 박형사의 말을 가차없이 잘랐다.

 

멍한 얼굴로 박형사가 나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말씀 중에 그러지마..."

속삭이며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괜찮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박형사가 양보했다.

 

픽!픽! 웃던 그가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 살인 동기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박형사가 볼펜을 돌리며 물었다.

아까부터 돌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 볼펜 만지는 솜씨가 여간 서툰게 아니다.

 

"질툽니다."

 

"질투?"

 

그럼~ 그렇지...방금도 떨어질뻔 했잖아...?

 

굵은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는 볼펜이 살려달라고 조르는 것 처럼 처량해 보였다.

마치 은영이가 내 머릴 옆구리에 끼워 방방 뛸 때 고통스러워하는 나 만큼이나 말이다.

 

"네."

 

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내 시선이 줄곳 박형사의 손끝에 집중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나 보다.

좁은 내 어깨 위에서 초조하게 손가락을 똑똑 부딪쳐 불편한 심기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변 시선을 아랑곳 하지않는 그가 부담스럽지만 그냥 조용히 있는게 나을 것 같아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지연인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을 끌만한 요소가 부족하다거나 또는 없다고 생각한다더군요. 지독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셈이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가까울수록 커지는 질투를 감당 못해 몇 번씩이나 남을 해치려고도 했다는게 담당 의사의 말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치료를 받았었다는데...그건 알고 계셨을테니 빼고 얘기하는게 좋겠죠?"

 

어깨 위에서 춤추던 그의 손가락이 목덜미로 옮겨져 갔다.

 

"흠..흠...단순히 아파서 치료만을 받았던게 아니라 이전에도 같은 병원에서 같은 문제로 여러번 정신병동 신세를 졌다면 아주 문제가 많은 환자였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8시간정도 병원에 있으면서 실상 지연이가 하고 싶다는 말보다는  병원내에서 걔에 대해 수근거리는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간호원들도 아주 쉽게 말을 꺼내놓더군요. 아주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입니다. 여러가질 종합해보면 지연인 평균 이상의 I.Q를 가지고 있는데다 폭력적인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해도 뛰어난 언변으로 잘 빠져나갔죠. 거기에 집안 뒷 배경이 그녀에게 힘을 실어줬던 것도 같습니다. 후훗...알면 다친다는 집안이라면서요...? 박형사...님도 알고 계셨겠죠?"

 

준수는 은근슬쩍 굳어있는 박형사를 건들기 시작했다.

 

"...모른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군. 그 집으로 부터 전화가 몇 번 오긴 했었으니까."

 

박형사가 이쑤시게를 거칠게 부러트리며 시인했다. 

 

"생각보다 솔직하시군요. 그렇게 공권력을 이용할 줄 아는 집안에서 자란 지연인 자신이 나쁜 짓을 일삼아도 쉽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예를 들면 같은 병실의 환자 한사람만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구타를 한게 그 증겁니다. 그래도 누구 한사람 나서서 그게 나쁜 행동이란 것을 말하지 못했고 때문에 그런 성격이 더 나쁘게 형성 되었겠죠. 뭐랄까...음...들은 걸 제대로 표현하자면 '지연이가 한번 발작하면 뜯어 말릴 수도 없다'...는게 정확하겠네요. 의사가 짚어준 몇 가지를 제 생각대로 말씀드릴까요?"

 

차분하고도 조리있게 늘어놓는 이론과는 다르게 준수의 손가락은 집요하게 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가슴앓이 by 키라라]

 

 

"1.이지연은 상당히 침착하고 말이 유창하다. 이건 맞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질문하는 의사를 위해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는 케이스랍니다. 조사 때 지연이 행동을 잘 생각해 보시면 될겁니다. 유난히도 진술내용이 일관적이고 매끄러웠죠. 아는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말로는 경찰이 병실에 왔을 때 심박수가 전혀 늘거나 줄지않았다던데 모르셨습니까? 사실, 있었던 일을 말하다보면 덧붙여질 수도 있는데 마치 각본을 짠 것 처럼 시작과 끝이 아주 똑같았지 않았습니까...더군다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다쳤는데도 전혀 흥분한다거나 범인을 꼭 잡아달라는 부탁 한마디 없었어요."

 

박형사의 귀는 준수의 목소리를 쫓고있었지만 매서운 눈은 내 목뒤에 보이지않게 올려져있는 준수의 손을 신경쓰여 하고 있었다.

 

"그리고...2.이지연은 거의 중요하지 않거나 크게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책임감이 없다...전화로 지연이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대부분 맞는 말이라더군요. 돈이면 뭐든지 해결되니까 남들의 의견이나 약속따위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나보죠, 뭐. 또...3. 지연인 진실되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하다...이 부분은 제가 모르는 부분이라 잘 모르겠지만...제일 가까이서 지연일 지켜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여러가지 평가를 해 본 의사들이 내린 판단이니 믿어보죠."

 

그가 내 앞에 놓인 물컵을 입으로 가져가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약간 냉소적인 말투지만 분위기를 전혀 거슬리지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허...또 있습니까? 듣다보니 재미가 있군요."

 

박형사가 물병을 건네주며 물었다.

 

재밌다니...?

난 세가지 모두 다 내 얘긴 것 같아서 찔려 죽겠구만...

 

아릿한 아픔에 밑을 내려다 보자 쉴새없이 물어 뜯긴 손톱 끝에서 피가 제법 많이 흘러 손가락 사이까지 바싹 말라 엉겨 있었다.

 

"저기...누구나 살다보면 몇...번쯤은 책임감이나 성실감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침착하지않나?"

 

침을 삼키며 물었다.

 

"세휘 넌 그렇게 생각해?"

 

컵을 내려놓고 내 허리를 감싸안는 그를 고갤 돌려 바라보았다.

 

"안그래? 난 그렇것 같은...데?"

 

잘생긴 옆 얼굴을 보며 소리 낮춰 물어보았다.

 

"푸후...물론 그럴 수는 있지. 인간은 신 앞에선 나약한 존재니까...사람 모두가 전부 다 완벽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 경우는 꽤 오래전 부터 연구해 오던 의사들의 진단법을 적용해 보았을 때 지연이의 경우가 매우 극적이란 것을 보여주는 예지."

 

아...아...또 머리 아프다...

얘가 언제부터 의학에 관심이 많았었지?

 

하지만...그를 보면서 생각나는게 있었다.

그의 부모님 직업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거란 것을.

 

"그럼 계속 이야기 할까요?"

 

그가 양해를 구하듯 박형사를 바라보자 오랫동안 앉아 있는게 힘들어 엉덩이를 꿈틀대며 불편하게 앉아있던 박형사가 다리를 바꿔 꼬고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수가 풀어 놓는 말을 모두 메모하고 있었던 듯 그의 수첩은 온통 파란색 투성이다.

 

"세 번째까지 했었죠? 이번엔~ 4. 이지연이란 여자는...병적으로 이기적이고 완전히 자기 중심적이다. 단순히 부잣집 딸이어서가 아니라 원래 성격이라고 병간호하는 그 집 가정부가 얘기해줬습니다. 워낙 괴팍스러워서 부모님들까지도 고갤 젓는다던걸요? 키우던 강아지가 다른 사람이 주는 밥을 먹었다고 굶겨죽일 정도였으니 오죽하겠어요...?"

 

그가 혀를 차며 손을 휘휘젓자 박형사가 볼펜을 내려 놓았다.

 

으헉!!!

굶길데가 어딨다고 그 이쁜 개를 굶겨?

차라리 지나 굶지...

그럼 자기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한테 뭘 받으면....

헉!!!

손모가질 자!르!겠!네?

 

"허~허~ 나원~ "

 

나이에 걸맞지 않는 박형사의 웃음소리가 식당 안을 메웠다.

어쩌면 저사람 직장 상사의 웃음소리도 저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케이스는 깊고 지속적인 감정이 일반적으로 부족하다던데...맞습니까?"

 

박형사가 물었다.

그는 나를 먼저 흘낏 본 다음 준수를 꽤 오랫동안 보았다.

 

어라라?

준수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가 다 여자들인데...?

혹시 이 남자...나보다 준수한테 더 관심있는거 아니여?

 

 

[가슴앓이 by 키라라]

 

"잘 보셨군요. 그게 제가 말씀 드리려던 다섯 번째입니다.지연인 뜨거운 양은 냄비와도 같아서 감정 표출이 매우 자유롭죠. 그만큼 애정을 한꺼번에 쏟았다가 재빨리 식는 성격이라

사귀던 사람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게 되는게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망가진 모습으로 방황하게되면 쾌감을 느끼고 비웃기도합니다. 지연일 쫓아 다닐수록 상대방을 더욱 깍아내렸더군요. 심한 모멸감은 기본이었고...반대로 사귀던 사람이 쉽게 포기하고

멀리 사라지면 오히려 자신이 못견디고 집요하게 쫓아다녔죠. 우리는 그런 행동을 스토킹이라고 부릅니다. 그것도 심하면 범죄와 연관되잖습니까? 한 가지에 미련을 못버리고 내가 가질 수 없으면...너도 가질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 그러다보면 누군가를 쉽게 죽일 수도 있는 것...그게 바로 전형적인 스토커의 패턴입니다."

 

박형사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그렇게 쉽게 결론까지 내려집니까?"

 

박형사가 한숨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준수는 그런 박형사를 무시한 채 은빛이 감도는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가늘고 날렵한 허리 부위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빙글빙글 돌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 한 가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젓가락이 소릴 내며 떨어졌다.

 

아니...일부러 떨어지게 손가락을 벌린건가?

 

연속 두 개가 떨어지는 소리에 식당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잠시 뜸을 들이며 씨익 웃어 보인 그가 낮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6.... 이지연은... 진짜~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다..."

 

박형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마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지연일 예뻐했던 나까지도 몰랐던 얘기였으니 놀랄 수 밖에.

 

난 딸이 그렇게 심하게 다쳤다는데도 부모라는 사람들이 전혀 모습을 드러내질 않아 지연이가 보호자도 없는 앤줄 알았었다.

하지만 알면 다치는 집이라지않는가.

대체 어느 정도여야 알면 다치는 집안이고 자살 기도를 여러번 할 정도로 애 하나 간수 못하는 집일까?

 

하긴... 우리집도 만만치는 않는 것 같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나도 어지간히 속을 썩이는 편이네.

그러니 나도 미앨 음..음...음..하려했지....새삼 창피하다...

 

남 욕 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계셨을...텐데? 새삼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니 제가 더 황당한걸요?"

 

옆에 앉은 짖궂은 이 남자가 이번엔 젓가락이 아닌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때리는 장난을 쳤다.

그리고 귀찮아진 내가 여러번 놓으라는 시늉을 했지만 못 들은 척하며 잔뜩 굳어있는 박형사를 쏘아 보고 있었다.

 

"권준수씨 말이 맞다고 칩시다. 그 논리대로라면 말입니다~ 그럼 이지연양은... 정신병자...라는 겁니까?"

 

박형사가 수첩으로 테이블을 툭툭쳤다.

그 모습이 약간은 위협적으로 보여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준수는 전혀 신경 쓰이지않는 듯 내 머리칼 속에 코를 묻으며 중얼거렸다.

 

"아뇨~ 그런 사람은 정신병자가 아니라 사회병질자라고 부릅니다."

 

박형사를 똑바로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가슴앓이 by 키라라]

 

 

표정이 일그러지는 박형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해보인 그가 늦었으니 그만 가자며 내 팔을 잡고 일으켰다.

얼결에 따라 일어서긴 했지만 아직 못다한 말이 있어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다리를 벌리고 버티고 선 채 할 말이 있다고 말을 꺼내 보았으나 준수의 시선이 너무 단호해 그냥 끌려 나갔다.  

                

꽤나 오랫동안 말을 해서 목이 아플 것도 같은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낮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내 어깨를 둘러 안았다.

 

"저기...나 아직 말 못한거 있는데...괜찮을까...?"

 

눈치를 보다 가만히 물었다.

 

"끼끼끼...아마 약 좀 오를거다~ "

 

그가 내 말을 무시하고 잇새로 웃음소릴냈다.

 

"내말 듣고 있어?"

 

여러 번 물어보아도 그냥 웃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말없이 그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음~화화화화~!!"

 

또 시작 됐다...저 자만심에 가득찬 웃음.

기분 좋으면 아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웃는다니까?

박형사에게 공부 좀 더 하라고 말한 자신이 그렇게도 대견스러울까...

하여튼 내 주변 인간들은 못 말려~

 

경찰서 정문 옆에서 핫도그를 파는 할머니 앞에 다다르자 그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을 꺼냈다.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미리 말을 했지만 그는 이미 두 개가 아닌 세 개씩이나 들고 돌아보는 중이다.

 

"몇 개나 파셨어요?"

 

준수는 가장 커보이는 하나를 입에 물고 내게 두 개를 건네주었다.

 

에고~ 내 신세야~

요즘 주변 환경이 왜 다 이 모양일까...

아무래도 여러개 더 살 모양이다.

그것두 아주 많이.

아이고~ 오늘 이 할머니 장사 다 하셨네~

 

 

지나가다 나이 드신 분들이 뭔가를 팔고 계시면 거의 떨이 아닌 떨이를 해오는 성격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냥 검은 봉투에 핫도그를 담기로 했다.

얇은 기둥에 묶여있는 봉투 꾸러미로 손을 뻗어 한 장을 잡아당겼다.

투둑하는 소리와 함께 봉투가 손등 위로 떨어져 달라붙었다.

 

길쭉한 햄소세지를 나무젓가락에 끼워 밀가루 반죽 위로 재빨리 굴리는 할머니의 손놀림을 아주 흐뭇하게 쳐다보던 그가 입에 있는 것을 삼키지도 않고 마흔 개 이상 싸달라고 했다.

봉투 입구를 벌려 몇 개 담았다가 마흔 개라는 말에 포기하는게 낫겠다 싶어 그냥 놔뒀다.

주문 숫자가 너무 큰 탓인지바쁘게 움직이시던 할머니의 동작이 멈췄다.

 

"여기 돈 받으세요."

 

미리 마흔 세 개 값을 알아서 쥐어 준 그는 경찰서 정문 앞에 서 있는 의경에게 다가갔다.

여드름 난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서 있는 의경에게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자꾸 건물을 가르키며 뭐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박형사가 전담되어 있는 형사과에 핫도그를 돌릴 생각인 것 같아 보였다.

 

"할머니~ 많이 파시구요~ 빨리 댁에 들어가세요."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둘의 입가에 설탕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고 행인들이 웃으며 지나쳤다.

쓱쓱 얼굴을 비벼 닦은 그가 팔을 잡아 당겼다.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식당에서 나온 후로 처음 내게 물었다.

 

심통이 잔뜩 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둑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찰서 주변은 시간이라도 정지 할 법한 어둠이 낮게 깔려있어 발을 디디면 금방이라도 깊게 빠져버려 다시는 나오지 못하고 어둠 속을 떠돌아다닐 듯한 불안함을 느끼게했다.

 

TV에서 많이 봤던 낯익은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용기있게 고개를 쳐들었던 것도 잠시...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광빛에 기가 눌려 입에 물고있던 핫도그 조각을 떨어뜨려버렸다.

 

"왜 그렇게 봐~?"  

 

 

뭣때문에 건물을 올려다 보는지 알면서 묻긴...

 

일부러 내 어깰 툭툭 건드리던 그가 차문을 열기 위해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저기... 있잖아~ "

 

어색하게 몸을 비틀면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리저리 흔들면서 쉽게 말하지 못하자 그가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며 입을 삐죽였다.

 

"할...말이 있는데...들어 볼래?"

 

눈을 내리깔고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싫어."

 

아주 어렵게 말했는데 그는 너무 쉽게 거절을 해버렸다.

사건에 관한 이야기거나 박형사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더욱이 듣기 싫다며 날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금 기분이 너무 좋은 상태라 계속 유지해서 오늘밤을 무사히 보내고싶다는게 이유였다.

 

"넌 심심하면 헤어지자고 조르잖아? 아주 입에 붙었더라. 지난번에도 그랬고...음...오늘 낮에도 그랬었으니 지금도 헤어지자고 말할지 누가 알아? 그리고 은영이가 말하기를 가급적 요즘의 네가 하는 말은 듣지말라던데?"

 

콧노래가 섞인 말투로 자신의 불만을 털어냈다.

 

"넌 그런게 아니라고 말할런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엔 매우 불안정하니까 얌전히 내가 하자는대로 따라와 주면 좋겠어. 밸트 채워줄께, 반듯하게 앉아봐."

 

그의 무기인 자상함으로 밸트를 채워준 다음 입술에 묻은 설탕과 케첩을 닦아주었다.

 

"내가 할 말을 네가 어떻게 알아? 나~참~. 정말 그런거 아니니까 들어봐."

 

그의 손을 잡았다.

 

"어? 여기도 묻었네?"

 

엉뚱한 곳까지 닦는 시늉을 하며 듣기 싫다는 표현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리고 카세트 덱에 테이프 하나를 넣더니 일부러 소리를 크게 키워 내 목소리가 묻히게 만들었다.

쉴새없이 알아듣기 어려운 노래로 정신을 어지럽히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슬슬 화가 치밀었다.

 

"음악 좀 꺼봐~ 야! 권준수!!......아우~! 짜증나!"  

 

불러도 대답이 없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차문을 열려고 했다.

그가 음악을 끄고 흘깃 쳐다보더니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었다.

 

"어쩌지~? 그 문 잠궜는데~? 지금 너...약오르지? 그렇지? 냐하하하하!!"

 

짖궂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가 얄미워 팔뚝을 꼬집어 버렸다.

아픈지 웃으면서도 이맛살을 찌뿌렸다.

 

"차 세워~!! 걸어갈거야!"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기위해 버둥대자 히죽대던 그가 소리쳤다.

 

"자꾸 신경질 부리면 차 세우고 대로변에서 뽀뽀 해 버린다!!! "

 

[가슴앓이 by 키라라]

 

 

".......내...가... 졌다"

 

...으휴...

 

그와는 달라서 워낙 시선 끌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가끔씩 저런 말로 날 협박하면 말싸움에서 지곤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그냥 입을 다물고 반항의 표시로 팔짱을 꼈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보며 예전에 봤던 공포영화를 떠올렸다.

기숙사로 바로 돌아가려던게 아닌 모양이다.

 

이 길 끝에서 날 기다리는 것은 뭘까....?

끝도 없이 가다보면 혹시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같이 본 사람들은 신비 영화라지만 나만 유독 공포스럽게 봤었던 어비스나 그랑블루가 떠오르는 것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어두워서일까?


 

주인공이 깊고 깊은 물 속으로 혼자 들어가 폐부 깊이 있는 숨어있는 공기를 내쉬었을 땐

마치... 그 공기 방울이 내 입에서 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었다.


 

불이 꺼진 방안에서 화면 가득 펼쳐지는 푸르른 슬픔과 깊게 깔리는 숨소리...

 

하아.하아.하아...

영화에서 봤던 주인공의 숨쉬는 모습을 따라서도 해 봤다.

보그르르 터지는 물방울이 입안에서 다시 작은 물방울이 되어 터지는 상상의 감촉.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묘한 그 기분을 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몇 분간 머릴 담궈 봤다.

하지만 깊고 푸른 공포가 욕조에선 느껴지지 않아 급기야는 이른 새벽, 실내 수영장을 찾아갔다.

 

거기서 준비 운동은 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니 내가 제일 일찍 들어간 모양인지  수영장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남들 모르게 와 있다는 즐거움에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해대자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앞을 살피지도 않고 풀로 뛰어들다 그만 사다리 기둥에 머릴 찍어 응급실로 실려가야만 했다.   

누가 얼마 후에 날 발견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열심히 울고 계시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분을 부둥켜 안고 징징대는 준수와 내 손을 잡고 울고있던 세내, 은영이의 얼굴 뿐이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 아직도 뾰루퉁이야?"

 

여러번 내게 말을 걸었던 듯 그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더듬었다.

 

"미안해. 그만 기분 풀어. 다 풀어졌어?"

귓불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정신이 들었다.

 

"어?...어...."

 

얼굴을 집요하게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을 가만히 뿌리치고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생각을 하는 도중 어느샌가 좌석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고 상상 속에서 체험하느라 나도 모르게 이런 자세로 앉아있었나 보다.

 

"준수씨..."

 

" !! "

 

낮게 부르자 그가 놀랐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지나치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우릴 앞질러 갔다.

 

"지금 뭐라고 불렀어?"

 

놀란듯 하지만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목소리다.

두 번 묻지않는 성격답게 그냥 확인을 해본 것이리라.

 

그가 안정감있게 몸을 조이고 있는 밸트를 풀고 몸을 내 쪽으로 숙여왔다.

그리고 내 눈꺼풀에 기습적인 입맞춤을 정신없이 퍼부었다.

 

얼굴에서 입술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모조리 입술로 점령해 버린 그가 얼굴을 들고 날 홀릴 때마다 사용하는 웃음을 보였다.

나와 시선이 얽히자 특유의 가라앉은 음성으로 내가 들을 수 없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차안과 밖이 너무나도 고요해 똑똑히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구해줄께...."

 

[가슴앓이 by 키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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