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업자들이 바쁜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름 한 철 먹을 밑반찬을 겨울 내내 만들고 봄철에도 담갔다.
오이지, 짠지, 깻잎절임, 마늘장아찌, 고추절임,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짠지는 다 담갔다. 그리고 오징어 사다가 오징어 젓갈도 담아보고, 생선 시장에서 각종 알만 사다가 알젖도 담갔다. 또 친한 몇몇 분들이 조개를 잡아다가 한그릇 퍼주어서 조개젖도 담가놨다.
아르헨티나 생선 시장은 교외에 있다. 커다란 건물 여러채가 있는데, 그 곳은 아르헨티나 여러 곳에서 많은 싱싱한 생선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온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값도 한국에 비해선 십분의 일 가격이라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욕심내어 많이 사가게 된다.
아르헨티나 인들은 생선을 별로 해먹을 줄 몰라서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는 않다.
게다가 난 생선 종류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저 맛있어 보이는 생선 내지는 싱싱해 보이는 생선을 사다가 저려놓거나 얼려놨다가 먹는다.
내가 아는 생선 종류라곤 도미와 조기같은건데 그걸 왕창 사다가 소금에 저려놓고 오븐에 두 세마리씩 구워먹음 일미다.
팔뚝만한 조기나 도미를 구워서 난 주로 머리 부분을 먹었는데, 아버님과 내가 입맛이 비슷한지 아버님도 머리 부분을 좋아하셨다. 어두일미가 맞는 말인가부다.
문제는 생선을 사다가 다듬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힘을 들인다는거다. 커다란 비늘은 사방으로 튀고 잘 긁어지지도 않아서 너무 곤욕이고, 힘도 빠져서 대부분 랑에게 다듬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님은 잘도 혼자서 다듬으시드만 난 도무지 안되었다. 이삼십마리 사다가 한마리 다듬는데 몇십분 걸리니 내 스스로도 일못하는 내가 참 답답했다.
그 때 사람들 사이에서 오징어 젖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싱싱한 오징어를 바로 빨갛게 짭짤하니 무쳐서 오징어 젖갈처럼 먹는거다. 도톰하고 감칠맛나는 아르헨티나 오징어는 한국으로 많이 들어간다고 알고 있다.
영국에선 포클랜드 섬이라고도 하고 아르헨티나는 말비나스 섬이라고도 하는 그 섬은 주위에서 오징어며 참치가 많이 잡히는 굉장한 어장인데 그걸 영국에 빼앗겨 아르헨티나는 조업권을 영국에 넘겨주고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 꼴이다.
역시 나라가 힘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내 땅도 안뺏기고 사는거지.
겨울과 봄 시간 날 때마다 시골로 내려가 랑은 벌통을 짜고 창고 주위의 갈대밭도 베어서 너무 우거지지 않도록 정리도 하고 했다.
이제 우리 집은 아이도 둘이나 되어서 창고 생활은 불가능했다.
아가가 너무 어려서 기저귀 신세를 지고 있는데다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해서 어느 곳에서 이상한 걸 주워먹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신발을 안신고 살 수 없는 아르헨티나 시골이기에 아이가 기어다닐 수 있는 장소를 구해야 한다는게 내가 아이들과 시골로 내려간다는 조건이 됐다.
랑은 우리를 다 데리고 내려가기 전에 집을 구하러 다녔다. 그래서 동네 한 가운데에 있는 아주 예쁜 집을 구했다. 랑은 아주 만족해서 이제 시골에 살아도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고 침대도 가져가고 옷장도 가져가자고 했다.
커다란 트럭에 침대도 싣고, 옷장도 싣고, 우리 아들넘 책 걸상도 싣고 밧줄로 꽁꽁 묶었다. 다시 아버님과 랑 사이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라 우리 모두 올해의 수확에 대한 기대와 침대까지 다 가져가는 시골 생활이라 즐거웠다.
햇빛으로 가득찬 들판엔 곡식들이 풍성한 수확을 예견이라도 하는듯 푸르름을 자랑했다. 여기저기 노니는 소들도 우리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소를 구경하는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내 생각엔 소들이 지나가는 우리를 구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팔라시오스 김씨 아저씨네 농장은 더 규모있게 보이고 뒷 마당의 포도나무도 꽤 우거져 좋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밭 고랑들도 많이 늘어났고, 밭과 집 사이에는 커다란 웅덩이도 파놓았다. 수영장을 만들 계획이란다.
으~ 이 뙤약볕에서 수영하면 금방 아프리카 토인될꺼라고 했더니 썬크림 바르고 하면 된다나. 암튼 손주들 태어나면 수영할 수영장은 커다란 두꺼운 비닐로 덮여 있었는데 이제 뱃속에 들어있는 손주를 위해 벌써 파놓은 수영장이 우습기도 했다.
김씨 아저씨네 큰며느리는 벌써 시골에 내려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토담집에서 로얄젤리까지 채취하고 있었다.
임신부가 무지 힘들겠구나 싶었다. 난 그 며느리에 비하면 참 편하다 싶다. 왜냐하면 로얄젤리의 작업은 정말 귀찮고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새벽녘 벌들이 깨기전에 여왕벌이 새끼를 키우는 유아방이 있는 밀납으로 지어진 벌집을 들고와서 여왕벌이 그 아가들을 먹이려고 뇌에서 분비하는 그 로얄젤리를 훔치는 작업을 하는거다. 보통 새벽 4시부터 그 작업은 시작된다. 작은 나무로 된 귀후비개로 퍼내면 한 구멍에서 귀후비개한 수저씩 퍼내게 된다. 그걸 모으니 얼마나 귀한 로얄젤리인가.
게다가 여왕벌을 속이기 위해 각 작은 방마다 알에서 갓깨어난 벌새끼를 넣어주어 로얄젤리를 먹이로 넣어주게끔 만들어놓기도 해야한다. 그건 무지 많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꼬박 몇시간이고 앉아서 해야했다.
아버님은 내가 아이도 키워야하고, 또 우린 밥먹는걸 무지 중요하게도 여기고, 내가 그 일까지 하면 너무 힘들다는 걸 아시기 때문에 우린 시도조차 안한다고 하셨다. 가끔 아버님 혼자서 소규모로 채취를 하곤 하셨다.
그 며느리는 일이 힘들었는지 나보고 하혈이 비친다고 했다. 그거 위험한건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안정을 취해야한다고 했다.
일 많은 큰며느리보고 더군다나 그렇게 여기저기 손길이 가아햐는 곳에서 그런 말은 사치에 불과했지만 그게 임신부 특권이 아니겠는가.
우린 다시 짐을 꾸려서 우리가 살 동네로 향했다.
컴컴한 밤에 도착한 집은 그런대로 살만해보였다. 주인 아줌마는 우리 집하고 붙어있는 다른 사랑방같이 생긴 집에서 산다고 했다. 안마당은 공유해서 쓰는거다. 안마당에는 커다란 우물과 작은 정원들이 꾸며져 있었다.
일꾼들을 불러서 짐을 내리고 대충 정리를 끝낸다음 침대에 누웠다.
아 기분좋다.
시골에서도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잘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