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춤(影舞) 72 - 제3장 다시 세상으로 8 - 내글 -
- 세월은 만남의 기쁨을 더하기도 하지만, 쌓아놓은 세월의 무게도 무시할 수 없다.
8
준성과 신수 산다의 대화는 정연이 끼어들어 끊어졌다.
- 작은 주인, 오늘 저녁부터는 이 사람이 많을 걸 알려줄 거다.
“정연이라고 했지, 잘 부탁한다!”
“헤헤, 걱정 마! 산다하고 약속했으니 꼭 지킬게”
준성은 여전히 반말을 쓰는 정연의 말투가 귀에 거슬렸지만 차츰 고쳐 주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받아 주기로 했다.
준성은 매일 신수 산다가 끼니 때 마다 토해 주는 약으로 생각되는 것과 음식물을 먹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 두 시간씩 정연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준성은 남들보다 늦게 결혼을 했다. 준성의 친구들은 이미 결혼 적령기에 이른 자식들이 있지만 학위를 받기위해 결혼을 뒤로 미루다 서른을 넘기고 여섯 살 아래인 주연과 결혼을 했고, 지금은 중학교를 다니는 두 살 터울의 두 딸이 있었다. 정연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니 준성의 큰딸과는 한 살 어리고 작은딸과는 한 살 많았다. 덕분에 준성은 보다 쉽게 또래들의 생활에 대해 정연에게 말해 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준성을 꺼려하던 정연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잘 따르게 되었고, 준성도 역시 순수한 정연에게 끌렸다. 또한 준성이 정연과 많은 말을 하면서 자신의 딸들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되어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저 아이가 내 아들이었으면…!’
준성은 정연이 목각을 깎는 데 몰두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정연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후후, 작은 주인님에게 빠진 모양이군! 그건 힘들 거야, 주인님이 살아 계시니. 한 가지 방법은 있지. 너의 두 딸 중 하나를 작은 주인과 결혼시킨다면 문제는 간단하겠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준성은 순간 신수 산다를 노려보았다.
- 후후, 인연이란 하늘님의 뜻이야. 물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선택이라는 것이 있지만, 작은 주인은 너의 식구들과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선택은 너의 몫이 아니라 딸들에게 있지만, 너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준성은 다시 한 번 벌거벗은 정연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딸들이 좋아할까? 아참, 옷을 입는 것부터 알려주어야겠군!’
- 작은 주인님이 입을 옷은 걱정마라, 곧 주모님이 마련해 보내 주실 것이다.
“그렇군, 그런데 자네는 사람들이 본다면 문제가 있는데, 그에 대한 준비는 되었나?”
근 20일을 같이 지내는 사이에 준성과 신수 산다는 친구가 되었다. 준성은 신수 산다가 가지고 있는 무한에 가까운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신수 산다는 신수이기 때문에 영이 의식에 가려 잠재되어 나타나는 사람들과는 달리 영이 바로 의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정민이 새긴 봉인 때문에 더욱 뛰어난 영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준성은 이런 신수 산다에게 존경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 물론이다. 신통력이란 말을 들어 봤겠지?
“설화에 보면 많이 나오지. 천리안을 가졌다든지, 구미호가 사람으로 변한다든지 하는 것을 말하는 거 아닌가?”
- 그렇지, 나에게도 그런 재주가 있으니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몸은 어떤가?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았으니 내가 알 수 있겠는가?”
- 후후, 일주일 뒤엔 묶은 것을 풀어 주지. 작은 주인님이 너를 잘 따라 주어 다행이다.
준성은 문득 신수 산다를 거느리고 있는 정민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준성은 정민이 혹시 고분벽화나 탱화에 나오는 신장(神將)이나 사천왕들과 같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한 가지 물어 볼게 있는데…?”
- 주인님은 너의 생각처럼 괴물이 아니다.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다. 단지 하늘님의 선택받은 영을 소유하고 태어나셨기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살고계실 뿐이다. 그러니 이상한 생각을 하지마라.
준성의 생각을 읽은 신수 산다는 준성의 말을 막았다.
‘이거야…! 이상한 일을 겪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구나. 그나저나 식구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준성은 정민의 정체를 생각하다가 자신을 찾고 있을 식구들이 걱정되었다.
- 후후, 식구들은 염려 말아라. 그들은 네가 산에서 실종은 되었지만 생명에는 이상이 없다고 믿고 있다. 아직도 너를 찾기 위해 수색을 하고 있지, 아마도 내일 쯤 너의 몸을 찾게 될 거다. 그러니 염려마라, 하하하!
“내 몸이라니?”
- 네가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나게 되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은 틀림없지 않은 가? 그래서 그동안 너를 대신할 허깨비를 하나 만들었다. 그놈을 너를 발견한 곳에 지난밤에 가져다 놓았다. 물론 그 허깨비는 바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을 것이다,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하하하!
“…!”
준성은 신수 산다의 철저함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 참, 그리고 이걸 받아라.
준성은 이틀 전부터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손을 들어 신수 산다가 토해 주는 걸 받아 들었다.
“아니 이건…!”
- 그렇다, 네가 그렇게 고민하던 이론을 증명할 유물이다. 작은 주인이 수련을 하는 동안 너는 이걸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거라 생각해서 지난밤에 조금 멀리 다녀왔다. 참, 앞으로 한 가지를 잊지 말고 지켜 주기 바란다. 앞으로 묶인 것을 풀게 되면 밤에는 절대로 검은 거목이나 이 공터를 벗어 나지마라. 만일 내말을 시험하고자 한다면, 그 즉시 네 목숨을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건 무슨 소리냐?”
준성은 신수 산다가 자신이 그대로 도망갈까 봐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신수 산다는 준성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웃음을 흘렸다.
- 후후, 내가 너를 죽이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주위에는 우리 작은 주인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허깨비들이 잔뜩 몰려와 있다. 그래, 저기보이는 저 나무 생김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준성은 신수 산다가 고개 짓을 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언뜻 보기에 말라 죽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저기 죽은 나무 말인가?”
- 저건 죽은 나무가 아니다. 요기를 흘리며 내가 쳐 둔 결계를 부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허깨비지. 자 잘 보라고, 내가 도와 줄 테니.
신수 산다는 준성의 앞에 붉은색 유리 같은 투명한 막을 만들어 주었다.
“어 헉!”
준성은 눈에 비친 거대한 칼 같은 것을 들고 무언가를 쪼개려는 자세의 목상에 놀라 숨을 멈추었다.
- 후후, 저놈의 실체는 저렇게 생겼다네. 저놈뿐만 아니라 그 옆으로 있는 바위도 없던 것인데 몇 달 전 갑자기 생겼지. 저 놈은 바닥을 파고 이곳으로 들어오려 했다가 결계에 막혀 땅위로 솟아오른 놈이야. 내가 쳐 둔 결계를 부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네 능력이라면 쉽게 없애 버릴 수 있을 텐데…?”
- 저들은 선발대에 불과하다. 문자 그대로 허깨비들이지 진정한 허깨비들은 저들을 앞세워 놓고 나의 반응을 떠보고 있는 것이지. 밤에는 힘을 가진 것들이 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어 조심해야 된다. 하지만 저놈은 맘에 들지 않아, 주제넘게도 이곳을 엿보려 했지. 그래서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한다.
신수 산다의 말이 끝나자마자, 죽은 나무에 푸른색 빛이 어리더니 서서히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준성의 놀란 표정으로 신수 산다를 쳐다보았다.
- 놀랄 것 없다. 흩어 지지 못한 떠돌이 혼이 강한 영의 힘을 받아서 몸을 가지게 되고 실체를 이루게 해준 영의 조정을 받게 된다. 의식은 있으나 자유 의지는 없는 꼭두각시들인 셈이다. 주인님이 상대하려는 자들이 인간을 저렇게 만들려는 자들이다. 사람이 영을 잃으면 오로지 본능이 요구하는 욕구만을 추구하게 된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본능에 의한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준성은 신수 산다의 말을 묵묵히 듣다가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는 허깨비를 떠올렸다.
“나를 대신하는 허깨비도 떠돌이 혼을 이용했는가?”
- 그건 아니다. 너를 대신하는 허깨비는 꼭두각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지 너의 모습만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네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고 있게 된다.
“병원에 가면 여러 가지검사를 받게 될 텐데…?”
- 그건 염려하지 말라. 사람의 몸을 똑 같이 만드는 것은 쉽다. 살아 있는 영이 깃들 몸이 아니라면 재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정교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영이 깃들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건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다.
“그럼 내가 다시 돌아가게 되면 그건 어떻게 되지?”
- 너랑 마주치는 순간 저 허깨비처럼 된다.
신수 산다는 사라진 죽은 나무 옆에 있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바위에도 사라진 죽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생겼던 푸른빛이 어리더니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준성은 두 번째로 보는 것이지만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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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