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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남자 유키*** <#9. 두번째 죄악, 과소평가>

길스진 |2005.01.24 18:52
조회 5,811 |추천 0

#9

<<두번째 죄악, 과소평가>>

 

 

 

지나가 레이의 가정교사가 된 지 거의 한 달이 되었고, 이내 아이의 여름방학이 내일 모레로 다가왔다.

 

그녀는 레이와의 간격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으며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밤마다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하루는 레이 방에서 하루는 그녀의 방에서 잠을 잤다.

 

때로는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자는 경우도 있었고 또 때로는 오후에 너무 신나게 놀아 저녁숟갈 놓자마자 잠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매우 친해졌다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레이의 가장 큰 변하는 바깥 세상을 보고싶어한다는 것과 친구 몇 명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이의 변화에 너무 기뻤다.

 

"아니지.  왜 여기서 반올림을 안 한 거니?  반올림을 하고 안 하고에서 숫자가 달라지는데... 자, 다시 한번 풀어볼까?"

 

레이는 그녀와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고싶어 학교가는 것을 절대 지루해하지 않았다.

 

"오늘은 같이 간식 만들어 볼래?  샌드위치 만드는 거 어때?"

 

공부시간이 끝나고 간신을 먹이기 위해 지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가정부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하루 간식을 그녀가 직접 책임져야 했다.

 

"좋아요!"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서 먹는 거야.  그럼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

 

"네, 좋아요!  보리 너도 만들어서 줄게."

 

보리는 레이의 말에 꼬리를 세게 흔들며 짖어댔다.  녀석도 좋아서 함성을 지르는 것이다.

 

지나는 같이 외출준비를 하자고 했다.  그러자 레이는 쏜살같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녀는 방으로 가서 흰색에 작고 푸른 꽃무늬가 그려진 원피스를 꺼내어 입었다.  그리고 긴 머리를 하나로 땋아서 한쪽 어깨로 내렸다.

 

원피스의 어깨 끈이 가는 편이라 그녀의 어깨가 앙증맞게 보였다.  그녀는 마무리로 선물 받은 링 귀걸이를 걸고 방에서 나갔다.

 

"준비 되었니?"

 

"네.  근데... 아버지한테 말씀 드리지 않아도 될까요?  아주머니도 안 계시는데..."

 

레이의 눈동자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지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후, 2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사토 유키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지나는 계단을 밟는 동안에 발소리보다는 자신의 맥박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을 알고 더욱 긴장했다.

 

2주 넘도록 그와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혹여 늦은 시간에 그와 마주친다하더라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있었고 그녀는 아주 잠깐 인사만 던질 뿐이었다.

 

그의 방문 앞에 선 그녀는 노크를 했다.  잠시 후,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레이와 같이 외출해요.  간식거리하고 저녁식사거리를 사려구요."

 

"..."

 

"혹시... 필요한 거라도 있으면 사드릴까요, 사장님?"

 

그녀는 일부러 마지막에 그에 대한 호칭을 불렀다.  더이상 그가 쓸데없는 말을 할 수 없도록 못박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갈 거요?"

 

"버스타고요.  레이가 버스타는 걸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

 

"열쇠는 가지고 나갈 거에요.  그럼 다녀올게요."

 

지나는 그가 무슨 말을 던지기라도 할까봐 얼른 그곳에서 물러났다.  죄를 지은 죄인같은 심정으로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그럼, 가볼까?"

 

"보리는요?"

 

현관에서 아이가 뒤를 돌아보고는 따라 나가고 싶어하는 보리를 쳐다봤다.

 

"기사아저씨가 안 좋아하실 거야."

 

"그래도, 데려가고 싶어요."

 

"차가 있으면 몰라도... 어차피 데려가도 매장 안을 돌아다닐 수 없어.  그래서 저번에 차 안에 둔 거 잖아."

 

"네..."

 

시무룩하게 서있는 레이를 보며 지나는 보리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대신에 오면 맛있는 과자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꼬리치는 보리를 놔두고 두 사람은 대문을 나섰다.

 

 

 

 

카트를 레이에게 맡기고는 지나는 먼저 사야될 것 부터 먼저 사고는 다음은 천천히 매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가 능숙하게 카트를 밀고 잘 따라오는지도 확인했다.

 

레이는 군소리하지 않고 자기보다 덩치가 더 큰 카트를 부딪히지 않고 잘 끌었다.

 

레이와 보리에게 먹일 과자를 사려고 스낵코너에 들어섰을 때였다.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이다.

 

지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웃고있는 여자를 보고는 반가워 소리쳤다.

 

"재영아!"

 

그녀는 친구에게로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기집애!  도대체 연락도 안 하고 살길래 어디 잠수타서 살림이라도 차렸는 줄 알았다!"

 

"미안.  잘 지냈어?"

 

둘렀던 팔을 풀며 그녀는 지 재영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래.  근데... 너 이동네로 이사온 거냐?  이 쪽엔 어쩐 일이야?"

 

"아, 음..."

 

지나는 낯선 남자처럼 보이는 여자를 경계하듯 쳐다보고 있는 레이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야."

 

지 재영은 남자아이를 내려다봤다.  약간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녀석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한상 경계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눈에는 경계심과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는 자신의 특유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 사토레인가 하는 그 꼬마냐?"

 

"???"

 

"야.  너 말 못 해?  왜 대답 안 해?"

 

지나는 아이의 손이 카트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 친구니까 인사하라고 했다.

 

그러나 레이는 쉽게 인사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너 겁쟁이구나?"

 

"아뇨!  전 겁쟁이 아니에요!  난 사토 레이라구요!"

 

아이의 날카로운 대답에 지 재영은 피식 웃고는 자신의 짧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오우?  그래?  그럼 인사를 제대로 해야지."

 

레이의 눈이 지나를 향해 날아왔다.  별로 재영에게 인사를 하고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겁먹은 녀석에게 인사를 억지로 시켜선 안 될 것 같았다.

 

"선생님 친구요?"

 

"음?  음, 그래.  선생님 친구야."

 

"..."

 

하지만 레이의 눈에는 단순한 친구로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두 사람이 사랑하는 연인끼리 끌어안듯이 반갑게 포옹하며 인사했었다.

 

그래서 레이는 그들이 단순한 친구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의 뺨을 쓰다듬어주기까지 했다.

 

"살 거 다 샀어?"

 

"아, 음...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야.  넌?"

 

"난 뭐 하나 사려고 왔는데 팔리고 없단다.  그래서 그냥 가려고 했지.  나온 김에 차 한잔 하자.  너 보기도 정말 오랜만인데..."

 

재영의 손이 지나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볼을 살짝 건드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더니 매장 입구로 이끌었다.

 

"치... 애인도 있으면서..."

 

레이는 앞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따라가며 투덜거렸다.

 

애인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 어린 아이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불가능이었던 것이다.

 

매장에서 나온 세 사람은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그러나 레이의 표정은 내내 굳어있었고 말을 걸더라도 차갑게 대꾸하기만 했다.

 

"레이.  왜그렇게 화가 난 건데?"

 

재영이 집까지 태워다준다고 했지만 이미 레이는 저만큼 걸어가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까지 걸어오면서 그녀는 아이의 어깨를 건드렸다.  레이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레이."

 

"선생님!"

 

앞서 걸어가던 레이는 대문 근처에 와서 멈춰 서더니 갑자기 뒤돌아서서 그녀를 불렀다.

 

"음?"

 

"선생님은 애인이 몇 명이에요?"

 

"어?  가...갑자기 그게 무슨..."

 

"몇 명이냐구요?"

 

"???"

 

 

 

 

유키는 아래층에서 시끄럽게 들리는 웃음소리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었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쿵쿵거리며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그는 덥수룩한 머리를 거칠게 뒤로 넘기고는 옆에 놓인 물을 마셨다.

 

가정교사가 들어온 뒤로 이 집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매우 생기가 넘쳤지만 지나치리만큼 시끄럽기도 했다.

 

털짐승의 날카롭게 짖는소리와 지금처럼 누군가의 쿵쾅거리는 발소리는 그가 좋아하는 침묵을 방해하는 짓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정교사의 짓이었다.  아이의 공부만 가르치면 될 것을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들어놨다.

 

그 털짐승을 집안에 들여놓은 것을 괜히 허락한 것 같아 후회가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있었다.  그녀는 가정교사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는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나 다시 그의 귀는 아래층의 소리에 민감해하며 쫑긋거렸다.

 

"이런, 제기랄!  이 여자가...!  이 집에 자기 혼자 사나?  분수도 모르는 여자같으니!"

 

유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향해 성큼 걸었다.  그러나 그는 손잡이를 잡다가 문득 자신의 행동에 당황했다.

 

지금 뛰쳐나가서 뭘 어쩌려고... 그는 나갈 수가 없었다.

 

어두워진 시간에만 그림자처럼 몰래 다니던 그가 자신의 상처입은 모습을 아들과 가정교사에게 보여주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그는 불에 덴 것처럼 얼른 문에서 떨어졌다.

 

그는 지나에게 당신을 원한다는, 그녀에 대한 열망을 밝힌 후로는 그녀와 제대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일부러 그와 아래층이나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른 그자리를 피하거나 짧은 인사만 건네고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들에게는 충실한 선생님이었다.  마치 엄마처럼 신경을 써준 덕분에 이 집에서는 생전 듣도 못한 아들의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그의 귀에 들렸다.

 

그 부분에서는 고맙기 하지만 낮이나 밤이나 두 사람이 떨어질 줄 모르고 붙어있기만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는 따스한 미소와 다정한 말은 언제나 아들 레이를 위한 것이었다.

 

유키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여느 때와 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2주 넘도록 아들의 자는 모습을 보려고 갈 때면 항상 녀석의 옆에 김 지나가 함께 했다.

 

이제 두 사람은 잠자리까지 함께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번번히 헛걸음했고 자신의 어두운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쩐 일인지 오늘 밤은 레이의 방에 레이 혼자 누워 자고있었다.  유키는 문간에 서서 안으로 들어갈까 고민했다.

 

"거기서 뭐 하세요?"

 

"???"

 

지나였다.  그녀는 허벅지가 완전히 드러나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그에게로 걸어왔다.

 

희미하게도 그녀의 다리곡선이 보이자, 그는 얼른 한쪽으로 물러나 그녀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들어가시려면 들어가시고, 아니면 나가시구요."

 

기분나쁘게도 그녀는 매우 쌀쌀맞은 어투였다.  부부싸움해서 분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유키는 혹시라도 그녀의 어깨를 건드릴까봐 두려워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차 한 잔이나 합시다."

 

"...왜요?  전 지금 잘 건데요."

 

그는 그녀의 딱딱한 어투로 거절하자, 자존심이 상했지만 애써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할 얘기가 있소."

 

"...좋아요."

 

그녀는 유키를 앞서 주방으로 갔다.  그녀는 이제 좀 어두운 내부에 적응이 된 편이었다.  어느 위치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도 정확히 기억했다.

 

"커피요?"

 

"음."

 

그녀는 두 잔의 커피를 준비해 각각 앞에 내려놓고 자신도 그의 마주편에 앉았다.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차를 마시는 것이.

 

지나는 괜스리 긴장감을 느꼈고 그에게 드러내보이지 않으려고 무슨 용건인지 화제를 꺼냈다.

 

유키는 그녀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과 원인 모를 전류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래서 그것들을 무시하려고 일부러 대화를 재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일한 대화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을 방패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내일 모레면 방학이란 거 알고있을 거요."

 

"알고 계시긴 하셨군요?"

 

"... 무슨 뜻으로 비꼬는 거요?"

 

"아아... 전 사장님께서 레이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죠.

 

아이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돈을 주시고, 궁긍한 사항은 메모지를 이용하시거나 아니면 아주머니를 통해서 전해들으시고요.

 

그리고 자기 전에 레이 얼굴보러 잠깐 내려오시고...  그게 다인 줄 알았죠.  그런데 방학인 걸 신경쓰실 줄은 몰랐거든요."

 

유키는 속으로 이를 악물고 턱을 끌어당겼다.  희미한 조명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반항하고 있었다.  저번에 그녀에게 느닷없는 소리로 당황시켜서 화가 났다 이건가?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가슴에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말없이 가정교사를 노려봤다.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군?"

 

"뭐라구요?"

 

"나에 대해서."

 

지나는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몸을 숙이더니 그녀에게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순간 그가 자신에게 키스하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가 키드키득 웃어댔다.  분명히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화가 났다.

 

"하실 얘기가 뭔지 얼른 하세요."

 

"방학 때 일본에 갈 거요."

 

"???"

 

유키는 팔짱을 풀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앞에서 의아해하고 있는 그녀를 위해 설명했다.

 

"여름 방학 때면 아이를 일본으로 보내오.  일본에 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이를 보고싶어하시기 때문에 일년에 한번씩... 방학 때 만나게 하는 거요."

 

"그래요?"

 

그럼 그 동안에 난 어떡하라고... 한달 동안 놀게 되는 건가?  한달은 너무 길지 않을까?  아이와 떨어져 있기 싫은데...

 

그런 생각은 오로지 자신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여겼다.  의외로 레이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방학이면 일본으로 갈 수 있고 그곳에 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그 한달 동안 아이는 자신의 존재같은 것은 잊을 것이다.

 

"...가게 될 거요."

 

"..."

 

"내 말 듣고있는 거요?"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에 지나는 흠칫 놀라 시선을 들었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어두운 주방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죠?"

 

"같이 가게 될 거라고 했소."

 

"네?"

 

"당신하고 레이가 같이 일본으로 갈 거요."

 

"네-에?"

 

지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레이와 같이 일본으로 가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당신은 레이의 가정교사요.  방학이라고 해서 당신은 노는 게 아니라 방학동안에 공부는 계속 시켜야 되는 거요.

 

교과서 공부든, 방학숙제든...  설마 일본에 간 아들녀석이 혼자서 공부를 해결하란 뜻은 아니겠지?"

 

"네?  아,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곳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다면서요?  그럼 아이를 대신 봐주시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유키는 매우 신랄하게 쏘아댔다.

 

아버지란 사람은 완전히 일본 사람이고 어머니는 내가 열네 살 때 일본으로 가셨고 지금은 일본인이나 다름없소.  그런 분이 아이 공부를 어떻게 시키신단 말이오?"

 

"아... 그렇군...요?"

 

지나는 자신의 바보같은 말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는 지금 그녀를 매우 얼간이라고 여길 것이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

 

그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경고라니...

 

"날 유혹할 짓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뭐...뭐라구요?  하!  난 그런 적이..."

 

"없다고?"

 

유키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그녀 쪽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 1초면 되었다.  눈 깜짝할 시간은 지나가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이 못 되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잡아 치켜들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누르듯이 문질렀다.

 

그 바람에 지나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키스를 한 것처럼 심장이 뛰었고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욕망이 일어났다.

 

"입술 깨무는 짓.  내 앞에서 꼬리치지 말라고 했을 텐데?"

 

"..."

 

"당신이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 남자들에게는 유혹의 손길로 느낀다는 걸 모르는 거요?

 

혀로 입술을 핥거나... 아랫입술을 깨무는 행동 그리고... 오늘처럼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은 경우..."

 

그 말과 동시에 유키의 다리가 그녀에게로 바짝 붙어섰다.

 

그녀의 짧은 반바지는 엉덩이까지 올라갔고 그의 다리는 얇은 면바지를 통해 그녀의 허벅지살을 맘껏 느낄 수 있었다.

 

지나는 턱을 잡고있는 그의 손을 내려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그에게 주눅들지 않으려고 애써 큰소리로 말했다.

 

"제 월급에 그것도 포함되어 있나요, 사장님?"

 

"뭐가 말이요?"

 

"스킨쉽요.  아니면 키스?  그것도 아니면... 섹스?  어느 거죠, 사장님?"

 

질문이 아니라 날카로운 비명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가 제법 화가 나있다는 것을 느꼈다.

 

"..."

 

"그래서 제 월급을 그렇게 많이 주시는 건가요, 사장님?"

 

그는 말끝마다 그녀가 부르는 '사장님' 그 망할 놈의 호칭이 듣기 싫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일부러 그렇게 갖다붙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신경질이 났다.

 

애써 두 사람의 간격에 깊은 골을 파고 있는 그녀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월급이 많아서 불만이라는 거요?  아니면 내 손길이 신경쓰인다는 거요?"

 

"당연히 사장님 손길이 싫은 거죠!"

 

유키는 지나의 어깨를 잡아서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지나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이 살짝 부딪혔다.

 

"그 놈의 사장님 소리 좀 집어치워!  듣기 싫소!"

 

"누군 좋아서 하는 줄 알아요?"

 

"흠... 그래?  그럼 이제부터 부르지 마시오."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마!"

 

"???"

 

지나는 그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의 빠르고도 거친 숨소리가 귀에 들렸고 얼굴에 닿았다.

 

상황이 너무 안 좋다는 것을 깨달은 지나는 어서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마냥 이렇게 그의 숨소리를 듣고있다간 그는 둘째치고 그녀가 먼저 그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당신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

 

"당신은 그러기에... 너무 아까운 여자니까..."

 

지나의 머릿속은 너무 엉켜서 쥐어뜯고싶은 심정이었다.

 

알 수 없는 말을 한 그는 물러나기 전에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비벼댔다.

 

아주 짧게... 스치듯이... 감질맛 나는 키스같았다.

 

 

 

 

다음 날 아침.  지나는 가정부가 돌아오지 않아 아침 식사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이미 레이는 그녀의 요리솜씨를 어제 저녁에 맛 본 상태였고 맛있다고 밥을 두 그릇을 먹어 그녀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유키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전날 저녁식사 메뉴에 대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상태라 그녀는 굳이 그에게 의사를 묻지 않기로 했다.

 

주방으로 내려와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한 후, 국을 준비하려던 그녀는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노란 메모지를 발견했다.  유키가 남긴 메모였다.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메모를 남겨 냉장고에 붙여두거나 아니면 밤에 어둠을 방패삼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그녀는 화가 났다.

 

 

 

당신 여권과 항공권을 마련해 주겠소.

 

출발은 이틀 후, 도착은 방학 끝나기 일주일 전.

 

(필요한 게 있으면 메모남길 것!)

 

 

 

그녀는 메모지를 신경질적으로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런 그의 방식에 가정부는 잘 참고있었다니... 존경스러웠다.

 

"아마 아내였던 사람도 이 남자의 이런 짓에 답답하고 화가 나서 도망갔던 걸 거야.  완전히 무시당하는 기분이잖아?"

 

"누가 무시당해요?"

 

"엄마야!!!"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봤다.  레이가 부시시한 얼굴로 나와있었다.

 

미키마우스와 도널드가 그려져있는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천사같았다.

 

갑자기 그녀는 전날 레이의 엉뚱한 상상이 떠올라 다시 쿡쿡 웃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웃겼다.

 

대형할인마트에 돌아와서 왜 레이가 퉁해있는지를 물었더니... 아이는 친구 지 재영이 남자인줄 알았던 것이다.

 

왜 애인을 놔두고 다른 남자를 껴안냐는 순수한 생각에 그녀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나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의 질문에 얼른 대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직 안 씻었지?"

 

"네.  근데... 아주머니는요?  왜 선생님이 앞치마를 두르셨어요?"

 

"아, 글세... 아주머니가 안 오셨어.  그래서 오늘 아침도 선생님이 해야할 거 같아.  괜찮지?"

 

"그래요?  좋아요!"

 

"그럼 얼른 씻고 와서 선생님 좀 도와줄래?"

 

"네!"

 

레이는 눈깜짝할 사이에 욕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몇 분 후에 뽀얀 얼굴로 옷까지 갈아입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비누칠은 한 거니?"

 

그녀가 약간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요!"

 

두 사람은 약간 소란스러웠지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아침상을 마련했다.  지나는 아이의 밥그릇을 내려놓고 유키의 밥을 뜨기 시작했다.

 

"제가 갖다 드리고 올까요?"

 

그녀는 레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아버지와 선생님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교사가 아버지를 피하는 눈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대신 식사를 갖다드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먹고 있어."

 

지나는 큰 쟁반에 음식을 담아 조심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계단을 오르며 이런 것 또한 가정부가 매일마다 했을 생각을 하니 존경심이 절로 생겼다.

 

하루 세 끼를 매번 이렇게 쟁반에 담아다 주는 것은 너무 심한 노동이었다.  그것도 나이든 가정부에게는.

 

 

 

 

노크소리와 함께 가정교사의 부드러우면서도 경계심이 담긴 목소리에 유키는 젖은 머리를 닦다가 멈추었다.

 

그는 조금 전 산책하고 옥상 가건물에 있는 헬스기구를 이용해 운동까지 마치고 막 들어온 길이었다.

 

그는 항상 새벽에 일어나 산책과 운동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늦잠 자는 바람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운동을 끝낼 수 있었다.

 

가정교사는 가정부가 없어 손수 요리를 했을 것이다.  문간에 다가가자, 음식냄새가 살짝 났다.

 

"거기 두고 가시오."

 

"맘대로 하세요."

 

그녀의 발소리가 저만치 들리자, 그는 문을 열었다.  전날 그녀가 요리한 저녁식사는 제법 괜찮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나이든 가정부보단 훨씬 입맛에 맞았다.

 

간도 정확했고 젊은 사람치고는 조미료도 전혀 안 쓴 것 같아 음식 맛이 깔끔했다.

 

그리고 그가 매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그녀는 국을 맵게 했다.

 

유키는 전날 밤에 부산에 내려간 가정부의 전화를 받은 후, 걱정거리가 늘어났다.

 

영감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거라는 것이다.  당장 사장님과 레이의 식사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속히 다른 사람을 대신 구할테니 남편의 병간호를 잘 하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의 월급은 계속 보내주겠다고 하자, 가정부는 절대적으로 거절했다.

 

그런데 가정교사의 요리를 맛 본 그는 굳이 가정부를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레이와 그녀가 일본에 건너가 있는 동안 임시로 잠깐만 할 아주머니를 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구하지 못한다하더라도 그가 얼마동안 자신이 직접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가정부 노릇까지 해주겠냐는 것이다.  돈을 더 준다고해도 거절한다면 이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녀가 일본으로 떠난 동안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전 좋아요, 선생님."

 

밥알을 오물오물 씹으며 레이가 가볍게 대답했다.

 

지나는 레이가 자신과의 일본여행에 동행하는 것이 못마땅하면 어쩔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아이는 오히려 그런 그녀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주었고 좋아했다.

 

"정말이지?"

 

"그럼요.  안 그래도 방학이 다가와서 또 일본에 가야하는데... 이번에는 혼자 가기 싫었거든요.  선생님하고 같이 가고싶었어요."

 

아이의 말에 지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까지 레이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항상 그곳에 혼자 갔었니?"

 

"네."

 

"왜... 아버지하고는..."

 

갑자기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연한 대답이라는 것을 알고 지나는 괜한 질문을 던져 아이의 기분을 망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저기... 레이.  있잖아.  점심은 우리 마당에서 먹을까?  마당에서 고기 구워먹는 거야.  햄도 사서 같이 구워먹고.  집에서 먹는 기분하고 다르지."

 

단번에 레이의 얼굴은 화사해졌고 벌써부터 점심을 먹을 생각부터 하느라 밥을 제대로 먹지 못 했다.

 

"전 아직 한번도 그렇게 해서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너무한데?"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보리는 의자에 발을 올리며 얼굴을 식탁 위로 내밀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뜻이었다.

 

지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세사람은 함께 지낼 거에요.  앞으로 쭈-욱.  그쵸?"

 

"그럼."

 

그녀는 웃으며 대답은 했지만 그것이 실수란 것을 깨달았다.  레이는 언제까지나 그녀와 함께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너무 좋아했지만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이곳에 있으면 있을 수록 레이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레이 또한 그녀를 더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에 있을 이별에 두 사람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될 게 뻔했다.

 

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레이의 우는 모습은 보지 못 했다.

 

이제 밝고 적극적으로 지내는 아이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그녀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점심식사는 약속대로 마당에서 했다.  집에 있는 커다란 파라솔을 어색하지만 제법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고정을 시키고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버너를 올려놓고 고기를 구웠다.

 

레이는 얼마나 고기를 먹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고기도 부족하다며 햄까지 구워 더 먹으려고 했다.

 

"보리!  넌 그만 먹어!  레이 그만 줘.  녀석 뚱보될 지 몰라.  저 녀석 배가 땅에 닿으면 곤란하다고."

 

"배가 땅에 닿아요?  크크크큭..."

 

아이는 소리내어 웃으며 고기와 햄을 후후 불어 보리에게 던져 주었다.  보리는 날렵하게 점프해서 그것들을 받아 먹었다.

 

"이렇게 잘 뛰는데 뚱보가 되요?  먹으면서 운동하면 되잖아요.  그치, 보리야?"

 

이내 보리의 커다란 소리가 마당에 퍼졌다.  아이와 보리는 야외에서 먹는 점심이 신나서 시간이 두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정리하고 들어가자.  오늘 공부 못 했잖아."

 

"오늘 같은 날은 공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아, 선생님 우리 뒷뜰에 가서 수영해요."

 

"뒷뜰?"

 

"모르셨어요?  이집 지을 때 아버지가 만드신 거에요.  직접.  건물 뒤에 오르막길 있죠?"

 

"음?  오, 오르막길?  몰랐는데?"

 

"..."

 

레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빈 그릇을 정리하는것을 도왔다.

 

아이는 가정부의 동행으로 가끔 건물 뒤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혼자서는 절대 수영장에 못가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부턴가 혼자서 노는 것이 너무 따분하고 싫어서 그만 두었다.  아마 지금쯤 수영장 바닥이 제법 더러울 것이다.

 

"수영 잘 해?"

 

지나는 살림들을 담은 쟁반을 들고 현관을 들어서며 먼저 들어간 레이의 뒷통수를 향해 물었다.

 

"네."

 

"누가 가르쳐 준거야?"

 

"어렸을 적에요.  지금보다... 그때 배운 걸 안 까먹고 있었나봐요.  그리고 아버지 차 끌고다니는 아저씨가 저번에 몇 번 가르쳐주셨구요."

 

"좋겠구나?"

 

주방에 들어선 그녀는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담그며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수영 잘 하세요?"

 

"아니!  난 맥주병이야."

 

"맥주병?"

 

"가라앉는다고.  못 해.  아직 한번도 수영이니 헤엄이니 해본 적 없어.  물이 무섭거든."

 

"겁쟁이네요?"

 

무심결에 내뱉은 아이의 놀림에 지나는 고개를 획 돌려 째려봤다.  하지만 진짜 화가 나서 쳐다보는 시선은 아니었다.

 

"그거 쉬워요."

 

"암만 그래도 안 해.  무섭다구."

 

"보리도 잘 할 걸요?"

 

"보리?  난 녀석이 수영하는 거 한번도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녀석도 나하고 똑같이 맥주병일 거야."

 

"개는 원래 수영 잘 한대요.  우리 담임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개는 본능적으로 수영한대요.

 

어떻게 선생님은 학교선생님도 하셨다면서 그런 것도 모르세요?  괜히 선생님이 겁쟁이니까 보리까지 겁쟁이로 만드시는 거죠?"

 

지나는 설거지하다가 그릇과 수세미를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무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서 발끈하듯 소리쳤다.

 

"좋아!  해!  하자고!  쳇!  그깟 수영?  흥, 나도 할 수 있어!  그리고 만약 내가 오늘 중으로 수영을 하면, 넌 나한테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알았지?"

 

그녀는 아이의 입꼬리가 어디선 본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로 바뀌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의 미소는 그의 아버지, 사토 유키와 매우 흡사했다.  누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랄까봐 웃는 얼굴조차 닮았다.

 

갑자기 맥박이 빠르게 뛰자, 그녀는 다시 돌아서서 설거지를 했다.

 

"이거 끝내고..."

 

"야호!  난 그 동안에 수영복 꺼내야지!  보리야 가자!"

 

"수영...복?"

 

그녀에게는 수영복이 없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여자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고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어떡하나?  하는 수 없이... 뭐... 내일로 미뤄야 겠네?"

 

그러나 내일은 모레 일본에 떠날 준비를 해야했다.  이 소식을 아이에게 전하면... 녀석은 실망하고 말 것이다.

 

'어째... 그렇다고 홀라당 벗고 할 수는 없잖아.  그래!  뭐... 짧은 바지입으면 되겠지.

 

수영도 못 하는데 무슨 수영복?  아무거나 걸치지 뭐.  그리고 비싸잖아.'

 

설거지를 끝낸 그녀는 아이 아버지에게 수영하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하는지 약간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 그냥 가기로 했다.  그를 무시하는 것이 최대한 자신에게 이로웠다.

 

그와 대화를 하는 동안, 그와 가까이 있는동안 그녀가 쌓아올리는 벽은 이내 허물어질 정도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제껏 해온 것처럼... 레이에게만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이다.

 

2층 방에서 숨어사는 남자의 존재는 잊고 그의 사랑스런 아들, 레이만 신경 쓰면 되었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뇌에 주문과 경고를 던지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올가갔다.

 

'으흐흐흐... 사토 레이.  네가 이 선생님에게 겁쟁이라 했겠다?  두고 봐, 사토 레이!

 

오늘 중으로 내가 수영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날 존경하게 될 테니!  그때까서 후회하지나 말라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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