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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84. 이상기온 엘 니뇨

무늬만여우... |2005.01.30 15:44
조회 2,361 |추천 0

엘니뇨란 이름의 이상기온 현상은 비가 별로 오지 않던 지역에 폭우를 쏟아붓기 일쑤였다.

벌통이 걱정이 된 아버님과 랑은 땅이 약간 말라서 굳자 벌통을 보러 농장에 갔다.

한창 꿀이 나와서 넘쳐야 할 시기에 꿀을 뜨기는 커녕 벌통 근처도 못가고 있었다. 사방 팔방에 흩어놓은 벌통을 다 돌려면 삼일은 걸린다. 거리도 여간 멀찍히 퍼뜨려 놓은게 아니어서 한 벌통을 가려면 비포장 도로를 한시간 이상 가야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들어갔다가 비를 만나면 차를 그 자리에 냅두고 그냥 걸어나와야 한다. 길이 미끄러워서 차는 못다닌다.

아르헨티나 우리 살던 그 산타페 지역은 높낮이가 전혀 없는 평야라 물 빠질 곳이 없었다. 언덕도 없는 평평한 땅이다. 주위 사방에 지평선으로 둘러쌓여 산이라곤 없다. 강도 없다.

아버님과 랑이 농장으로 가고 나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걱정이 되었다. 그 농장 한 가운데에서 폭우를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어서 걱정하는데 비는 너무 많이 왔다. 빗줄기는 너무 굵었고 이미 몇 날 며칠 비가 온 뒤의 땅이라 땅도 그 빗물을 다 흡수하지못해 금방 길에는 물이 흘러내렸다.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방에서 아들녀석이 뛰어왔다.

"엄마~ 방에서 물나와요"

잉. 방에서 뭔 물이 나?
뛰어갔더니 마루로 되어 있는 방 한쪽 쿨렁쿨렁 거리던 곳에서 샘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기가막혔다. 얼른 애들을 침대위로 올리고 밑에 있던 서랍장을 침대위로 올렸다.
물은 금방 불어나서 침대 다리밑에서 찰랑거렸다.
대야를 가져와서 바가지로 물을 퍼담아서 밖으로 내다 버렸다.

다행히 거실에는 물이 많이 안들어왔고 방은 한강이 되었다.

아들보고 아가를 돌보라고 하고 하루종일 밖으로 물을 퍼서 날랐다. 방 한구석에서 샘물처럼 물이 들어와서 옷가지와 걸레로 다 틀어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루종일 물을 퍼다 버리느라 녹초가 다 되어가는 중에 다행히 비는 그쳤다. 비 그친 뒤로도 한 시간을 넘게 물을 밖으로 퍼날라야했다. 거리는 시냇물화가 되어 있었다.
저녁 나절이 되니까 아버님과 랑이 차를 농장에 놔두고 걸어서 집까지 왔다.

애들을 데리고 어디로 피신할 데도 없어서 난감하고 너무 무서웠는데 반가웠다.

아버님과 랑은 온 몸이 진흙 투성이가 되어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옷은 홀딱 다 젖어있었고 집이 물난리가 났던 거도 모르고 집이 다 젖어 있으니까 비오는데 문도 안닫고 있었냐고 했다. 아들 녀석이 집에 물난리 났던걸 말하니까 물이 많이 오긴왔네 하며 다시 또 비가 와서 물난리를 겪을까 걱정을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약간 저지대에 있는 농장들은 물에 완전히 잠겼고 고립된 집도 많았다. 소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 농장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산타페 주는 고립된 지역은 헬기를 동원해서 가서 먹을 것과 의약품을 날랐다.

우리 벌통이 있던 농장들도 대부분 물에 잠겨서 우리 벌통의 안전도 문제였다.
물에 잠긴 벌통이 많아져갔다.

3천통의 벌통은 물이 빠진 뒤에 반으로 줄었다. 반 이상이 물에 잠겼던 탓이다.

그 많은 벌통을 직접 손으로 다 만들었는데...
그 정성을 들이며 벌을 키우고 늘렸는데...
너무 속상했다.

물에 잠겼던 벌통중 그래도 살아 남은 벌들이있어 남은 벌통을 추스리려고 아버님과 랑은 최선을 다했다.

물에 잠겼던 벌들은 면역력이 약해져 전염병이 돌기 쉬웠다. 물에 잠긴 지대가 많아지자 먹을 것이 없어진 꿀을 노린 들쥐의 공격도 많이 받았다. 이래저래 벌통은 그 반 남은 것에서도 반으로 줄어갔다. 아버님과 랑은 낙심했다.

남은 벌통에 약도 뿌려주고 청소도 해주며 다녔다. 이미 꿀을 채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겨울동안 벌들이 먹을 꿀이나 제대로 나올까 싶었다.

그렇게 그 해의 꿀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
그리고 피해는 아주 심각해서 남은 벌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도 몰랐다.

비가 그친 뒤에도 방의 한쪽 구석엔 물이 가끔 새어 나왔다. 그 집을 지을 때 우리가 있던 방 밑이 웅덩이었다는 소리가 있었다. 소름이 끼치고 너무 싫었다.
기침도 심해져서 밤엔 가슴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었다. 축축한 마룻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와서 천식기운이 심해졌다. 약국에서 기침 알레르기 진정하는 약을 사다 먹었는데 갈수록 양을 늘려야 약효가 있었다.

침대를 거실로 옮기기로 했다. 거실은 대리석이라 습기가 덜했다.

내 기침이 더해갈수록 젖먹는 아가가 입술이 파래져갔다. 내가 먹는 약이 아가한테 영향을 끼치나해서 아차 싶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내가 먹던 알레르기 약이 아가한테는 독약에 가깝다고 당장 젖을 끊으라고 했다. 아가한테 너무 미안했다.

젖을 끊느라 우는 아가를 달래며 기침이 심해져서 나도 날이 갈수록 말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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