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윤대 엄마.
당신과 결혼한지 올해로 25년으로 접어들었구려..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 지금 내 옆【?곤히 잠들어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니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구려.
당신의 잠든 모습을 가만히 드려다 보는데 왜 이토록 마음이 저려오는 것인지.
그 고왔던 얼굴은 어느새 주름이 지고, 섬섬옥수같던 하얀 손은 손 마디 마디 굳은 살이 배이고 상처로 부르튼 것을 바라보면서.. 내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버리고 마는 것을 당신은 모를겠지. 미안하오. 미안해. 수없이 마음으로 되뇌이는 이 말을 나는 당신을 만났던 81년부터 지금까지 접지 못하고 가슴 한 곳에 늘 담아 있으니.. 그런 내 마음도 조금은 곪았을게요.
결혼 초 가난했던 시골집 8남매 장남이였던 나는, 당신에게 딱 한가지만은 약속하겠다고 말했지.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정말 열심히 일해서 당신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노라고. 나를 믿고 내게 와달라고. 그때 당신은 수줍게 말했었지.
"괜찮아요.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걸요..당신과 함께 라면요... "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던 당신의 그 따스한 손길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오.
가난했지만 늘 따스한 미소로 넓은 가슴으로 나를 바라봐주고 믿어주는 당신 있어 우린 참 행복했었지.. 그런데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함께 가게를 꾸려가던 친구로 부터 사기를 당하고 감당할 수 없을 빚까지 대신 지게 되었지. 믿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빚까지 져서 우리는 전세금마저 빼야 했고, 당신은 나에게도 말하지 않고 결혼 반지까지 팔아 내게 조용히 봉투를 내밀었었지.그날 밤 기억나? 서로 아무 말 없이 그 추운 겨울 작은 골방에서 서로 안고 하루 종일 울었던 거...당신의 마음. 그 사랑으로 나는 비로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 믿었던 친구도 잃고 돈도 잃고 남은 것이라고는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빛더미 뿐이였지만. 그래도 내 옆에 늘 함께 해주는 당신이 있기에..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믿고 따라 주는 그런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소.
그 후로 우리 참 고생했지. 당신은 새벽부터 공장에 나가 저녁 9시까지 잔업을 해야했고, 나도 새벽부터 야간까지 버스를 몰며 죽을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었지... 몸은 고단하고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생각되어 질 만큼 힘들고 고달픈 하루 하루였지만.. 당신과 그리고 착한 아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마음만은 시리지 않고 든든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렇게 일하면서 진 빚도 서서히 갚아갈 수 있었고 이제 우리도 남들처럼만은 못되도 조금은 안정되어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또다시 우리 앞에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지.
어느날 갑자기, 마지막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나는 그만 길가에 쓰러졌고,그동안 누적되었던 당뇨와 합병증으로 1년 가까이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 있는 생활을 해야 했었지..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것인지...세상이 싫었고..내가 싫었고..
당신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아이들 볼 낯이 없어서.. 나는 내내 눈물만 흘렸었지.
그때 당신이 울며 말했지..
"그러지 마요.. 괜찮아요.. 몸이 중요하지.. 돈은...나는 말이예요.
그깟 돈보다 당신 건강이 우선이라구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배가 따뜻한다해도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 소용없어요. 우리 가족은 살 수 없어요.
당신 몸만 생각해요..."
그 말이 너무나 고마워서.. 그런 말을 하는 당신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불혹의 나이에도 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만 당신 앞에서 소리내어 울고 말았지..
그때부터 당신은 더 잦은 잔업에.. 늦은 밤까지 부업까지 하며 살림을 도맡아 해야했지. 그런 당신은 또래의 사람들보다 더 빨리 흰머리가 늘어나고, 손은 늘 상터투성이에 굳은 살이 배였지..아무 도움 없이 그저 그런 당신만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점점 더 늙고 아팠다는 것을 당신도 알았을까...
그리고 10년.
다행히 몸이 어느정도 추스러졌고, 나는 다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버스를 몰았지. 새벽 4시에 일어나 죽한모금을 마시고 50키로도 채 안되는 몸으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평생 못난 나만을 믿고 따라 주었던 당신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나 싶소. 참 힘겨운 지난 날이였지만.. 그동안 빚도 다 갚아고.. 이제는 작지만 20평 남짓 우리 집도 23년만에 갖게 되었고,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했는데도 아무 탈없이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있으니.. 이제야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소.
당신..사랑하는 당신.
그러고보니 늘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면서도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사랑한다는 말...
그 말 한마디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구려.
나도 어쩔 수 없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런 표현에는 영 자신이 없어서 그저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그래도 힘써 마음을
가다듬고 막상 입으로 표현하려면 어째 그것이 참 쑥스럽고 민망하여 그만,
또다시 허허 웃어버리고 마니..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참 시원찮소.
그래도 마음 깊은 당신은 이미 내 마음을 모두 알 것이라 믿소.
그동안 당신에게 준 것이라고는 고단한 삶과 힘든 일 뿐이였지만..
그래도 내 마음만은 언제나 당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
솔직히 고백하건데. 혹여나 이 말을 듣고 남들이 팔불출이라 흉볼지라도
나는 아직도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것 같소.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고, 얼굴엔 주름살과 드문드문 검버섯이 보이지만,
그래도 당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내겐 더없이 곱고 향기로운 사람이외다.
여보, 윤대 엄마.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살지 알 수 없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언제나 행복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앞으로는 조금 편안게 살기로 합시다. 이제는 주말이면 동네 약수터도 가고, 봄이 오면 벚꽃 구경도
가보고, 여름이 오면 시원한 강가에 가보기도 하고, 가을이면 울긋불긋 낙엽지는 것도 함께 보면서 우리.. 마음만은 늘 여유롭게 살아가기로 약속합시다.
오는 5월이면 25주년이오. 그때는 내가 다시 당신 손가락에서 잃어버리고 만,
우리 결혼 반지를 꼭 당신 손에 끼어줄 것이오.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지만, 꼭 다시 되찾아 줄 것이라오.
늘 그것이 내 마음을 아리게 했었거든...가는 반지 하나 없이 부르튼 당신의
손을 보면서... 늘 나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오...그랬었다오...
비싼 다이아 반지는 아직도 못해주지만, 예쁜 금가락지 하나 마련하여
당신의 아름다운 손에 꼭 다시 끼어주리다.
여보, 윤대 엄마.
당신이 잇어 나는 이 세상에 따스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줄 배울 수 있었소.
당신이 있어 비로소 나는 나일 수 있었소.
정말 고맙소.. 그리고 ..
사랑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