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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으세요? *1* 어린여자

샤랄라 |2005.02.14 08:58
조회 1,327 |추천 0

 

1. 어린 여자


자리에 앉으려던 형원은 잠시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아서다. 요즘 들어서 부쩍 환청이 자주 들린다. 병원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그러는 데, 형원은 이러다 정말 자신이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 형원은 벌써 몇 달째 프로작을 먹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고개를 저었다. 자리에 앉은 형원은 컴퓨터를 봤다. 관내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 용의자의 신상이 파악되었다. 이름, 나세홍. 나이 25세. 목포에 있는 고아원 출신이고 주거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탐문 수사에 의하면 용봉동 근처 모텔에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형원은 세홍의 사진을 한 장 뽑아들고 일어났다.

 

-임 형사, 가자구.

 

옆에 앉아 뭔가를 타이핑하던 명규가 형원을 보고 일어났다.

 

-위험할까?

 

-아니, 별로 보니까 엉겹결에 칼 든 놈이지 그렇게 독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형원의 태평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명규는 총을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이었다. 명규는 항상 챙기고 뒤돌아보는 스타일인 반면, 형원은 먼저 부딪혀보는 스타일이었다. 형원은 먼저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서 꼼꼼하게 오늘 일과를 적기 시작했다. 명규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해 보는 것이었다. 수첩에다 적는 습관을 들이니 훨씬 실수도 적게하고 일의 능률도 오르는 것 같았다. 8시 30분 출근해서 정각 9시에 탐문 수사를 나간다. 형원의 수첩에는 거의 똑같은 일과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8시 30분에 경찰서 근처 아파트에서 출근, 9시부터 일과 시작. 퇴근 후에도 거의 매일 되는 잠복, 야근의 연속이었다.

 

-뭐야. 아침부터.

 

명규는 좀 투덜대고 있었다. 능숙하게 차를 출발시키며 형원은

 

-빨리 털고(범인을 잡고) 가자.

 

라고 말했다.

 

-야, 넌 좀 천천히 일해도 돼. 그렇게 일해서 어따 쓸래?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명규의 말에 형원은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이 놈 잡고 나야 다른 일 또 하지.

 

-너, 임마. 일 중독인 거 알어?

 

명규는 담배를 한 대 입에 물며 말했다. 그러나 형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거 안 먹어?

 

세홍은 마리에게 컵라면을 내밀었다. 그러나 마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세홍은 걱정스럽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핏기 없는 얼굴에 하얗게 말라붙은 입술까지. 벌써 몇 일째 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죽이라도 사다줄까?

 

마리는 또 고개를 젓는다.

 

-그러지 마. 너. 너 계속 이러면 너 데려온 나는 뭐가 되냐?

 

마리는 그의 말에 희미하게 웃는다.

 

-웃으니까 좋잖아. 좀만 기다려. 요 앞에 죽집 있더라. 죽 좀 사가지고 올게.

 

세홍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세홍은 좀 의아했다.

 

-누구세요?

 

-프론트에요.

 

모텔 주인 아줌마인가? 세홍은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재빨리 형원과 명규가 문을 밀었다. 그 힘에 세홍은 뒤로 넘어졌다.

 

-뭐에요?

 

세홍은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너, 나세홍 맞지?

 

-그런데요?

 

세홍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명규가 수갑을 채우는 사이, 형원은 신발도 벗지 않고 모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침대에 유난히 얼굴이 하얀 여자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너, 엊그제 주공 아파트에서 강도 짓 했지? 그거 때문에 긴급 체포 된거야. 임마, 넌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 행사할 수 있는데 니가 하는 짓이 법정에서 불리할 수도 있다는 거 알아둬라.

 

세홍은 모든 걸을 체념한 듯 순순히 수갑을 채우는 데 협조했다. 그러자 침대에서 일어난 여자가 달려와 세홍을 보고 수화로 뭐라고 했다.

 

-뭐야, 이 여자는?

 

명규가 물었다. 형원은 모텔 방 안에서 범행에 쓰인 흉기, 혹은 마약을 했는지 하는 증거품을 찾고 있었다.

 

-동생입니다.

 

세홍이 주저하며 말했다.

 

-뭐라고 하잖아. 뭐라는 건데?

 

명규가 재차 물었다.

 

-저보고 나쁜 짓 한거냐고 하는 겁니다. 왜 잡아가는 거냐고.

 

그러자 명규가 마리를 보고 말했다.

 

-아가씨, 당신 오빠는 강도짓..

 

-야! 뭐하는 거야?

 

형원이 급하게 명규 입을 막았다. 그러자 명규가 의아한 눈초리로 형원을 바라봤다.

 

-아가씨, 오빠가 뭐 좀 잘못했는데, 가서 조사해보고 잘못한 거 없으면 풀어줄게요. 너무 걱정하지 말

아요.

 

형원은 침대 시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명규가 뭐 좀 나왔냐고 물었고, 형원은 깨끗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가자.

 

명규가 세홍을 앞으로 밀었다. 세홍을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여자를 뒤돌아 봤다. 순간, 세홍의 시선을 본 형원은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연민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동정이라고 할 수도 있는.

 

-뭐야, 아가씨는?

 

-저..

 

명규가 자기 몸모다 더 큰 트렁크를 들고 따라 나서는 여자를 보며 묻자 세홍이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저 아인 갈데가 없습니다.. 형사님.

 

-그래서 어쩌자고?

 

-됐어. 우선, 서로 가자고.

 

형원이 여자의 짐을 대신 들며 말했다. 갑자기 가벼워진 짐에 마리가 뒤를 돌아봤다. 자기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마리는 잠깐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 곧 종종 걸음으로 형원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칼이 아니라 손가락이었다고?

 

세홍을 취조하던 형원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세홍은 칼로 강도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손가락으로 등을 찔렀을 뿐인데 피해자는 그것을 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녀석아. 칼 들 용기도 없는 놈이 뭔 강도 짓이냐? 으이구. 담배나 펴라.

 

형원은 세홍에게 담배 한 가치를 건네고 자신도 한 대 입에 물었다. 세홍은 담배를 입에 물더니 좀 안정이 된 듯 싶었다. 형원은 턱으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마리를 가리켰다.

 

-쟨 뭐냐?

 

-아, 쟤요.. 고아원 동생입니다.

 

-그래, 너..

 

형원은 세홍에게 너 고아원 출신이지. 하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저 징역 사는 거야 무섭지 않습니다만.. 저 감옥가면 저애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형사님.

 

세홍은 괴롭다는 듯 머리를 떨구었다.

 

-이 녀석아. 딸린 식구도 있는 놈이 그래, 강도짓을 해? 차라리 노가대를 뛰지.

 

-일이 없더라구요.. 춥고.. 더군다나 마리가 많이 아파서. 약값도 없고.

 

형원은 슬쩍 마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듯 경찰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흰 피부에 윤기 없이 푸석거리는 긴 생머리. 하얗게 마른 입술. 어디하나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 긴 면 치마에 맨발. 아무렇게나 구겨 신은 운동화는 다 낡아서 실밥이 터져 있었다. 하얀 맨발. 형원은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제길. 왜 또 그게 생각나는 거야. 형원은 옆에 있던 녹차를 들이켰다. 속이 좀 가라앉았다. 

 

-저 애 말을 못하냐?

 

-옛날에는 곧 잘 웃기도 하고 말도 잘했어요. 그런데.. 한번 입양을 갔다 오더니 저렇게 말을 못하더라

구요. 소문에는 입양 갔던 집에 강도가 들어서 부모님이 모두 찔려 죽었대요..

 

-그 충격으로 말을 못한다?

 

형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충격이었나?

 

-야, 임마! 너 한 일년은 썩어야 될거야!

 

옆 자리에 명규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명규는 뭔가를 먹었는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쩝쩝 거렸다.

 

-일년은 무슨.. 뉘우치고 있고, 생계형 범죄니까 한 반년에서 십 개월 정도?

 

-요즘 연말이고 그래서 쎄졌어. 어쨌든 조서 다 됬나?

 

-응, 다 됐다.

 

형원은 프린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홍은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 뜯다가 갑자기 형원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사님. 우리 마리 좀 부탁드릴게요. 저 징역 가 있을 동안 어디 가서 고생 안하게 좀 보살펴주세요!

 

갑작스런 일이라 형원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세홍을 바라봤다. 그러자 명규가 옆에 있던 서류철로 세홍의 머리를 한대 때렸다.

 

-에라이, 이 놈아. 동생이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진작 정신 차렸어야지. 형사가 무슨 자선사업가냐? 빨리 안 일어나?

 

-형사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형사님이 약속 안 해주시면 저 탈옥할 겁니다.

 

-어라? 이 자식 보게! 형사를 상대로 공갈 협박을 해?

 

명규의 서류철이 다시 세홍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알았다, 임마. 일어나. 사람들 쳐다본다.

 

형원이 못 이겨 말하자 일어난 세홍은 마리를 불렀다. 그러자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너 꼭 이 형사님 따라가야 한다. 알았어?

 

마리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 죽어도 이 형사님 옆에서 떨어지면 안돼? 알았어? 죽어도 붙어 있어야 된다고! 오빠가 꼭 너 찾아

올 테니까 형사님 옆에 있어!

 

그러자 마리가 수화로 뭐라고 말했다. 세홍은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말했다.

 

-아냐. 아니니까. 꼭 이 형사님이랑 같이 있어.

 

마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원은 그렇게 우는 여자는 처음 봤다. 울음소리 하나 없이, 흔들림 하나 없이 그저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명규가 옆에 서있던 의경을 불렀고

 

-갔다올게.

 

하고 형원에게 말했다. 세홍은 가면서 뒤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꼭 그 형사님이랑 있어야 된다! 꼭!

 

 

 


-이제 그만 퇴근 하지. 오늘은 별 일도 없는데?

 

명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규와 형원은 늘 함께 움직였는데, 파트너라면 이렇게 죽이 잘맞는 파트

너도 없을 터였다.

 

-그럴까?

 

형원도 벗어두었던 잠바를 들었다. 그러자 명규가 턱으로 그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마리를 가리켰다.

 

-짼 어쩔려구?

 

-지 알아서 가겠지. 설마 날 따라올려구.

 

형원은 시큰둥하게 말하고는 일어섰다. 그러자 마리도 일어섰다. 신경 안 쓰는 척 하고 있지만, 형원도 여간 마리가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형원이 사무실을 나서자, 마리도 재빨리 형원을 따르기 시작했다. 트렁크 바퀴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서 건물을 나선 형원은 뒤를 돌아봤다. 마리가 낑낑대며 트렁크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순간, 뭔가가 잘못 되었는지, 마리가 트렁크를 놓쳤고, 트렁크는 굴러 걸어오던 남자와 부딪혔다.

 

-아, 씨. 이게 뭐야?

 

남자가 버럭 화를 내자 마리는 우물쭈물 하며 연신 고개만 숙였다.

 

-뭐야? 너 벙어리야?

 

-아, 죄송합니다.

 

형원이 뛰어와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형원보다 직위가 아래인 경찰이었다. 형원을 알아본 그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자.

 

형원은 마리의 트렁크를 들고 앞 서 가기 시작했다. 마리는 안심이 되는 지 한 숨을 쉬고 종종 걸음으로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형원은 차에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었다. 마리는 자동차에 앉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형원은 백미러로 마리의 얼굴을 살폈다. 어떻게 보면 참 예쁜 얼굴인데, 어떻게 보면 너무 생기가 없어 환자처럼 보였다. 형원은 차를 출발 시키며 말했다.

 

-너, 우리 집 가서 직업 구할 때까지 식모노릇이나 해라. 그럴 수 있어?

 

마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형원의 집은 경찰서에서 오 분도 떨어져 있지 않은 아파트였다. 사실, 형원이 신혼집으로 마련한 것인데 사고로 약혼녀와 어머니가 죽자 혼자 살게 된 것이었다. 형원은 그 집이 너무 싫어 이사도 가고 싶었고 팔고도 싶었지만, 이상하게 집이 안 팔려 눌러 산 것이 벌써 5년이 넘었다. 아파트 문을 연 형원은 마리의 트렁크를 들고 작은 방으로 향했다. 그림을 전공했던 약혼녀의 직업실로 쓰려던 방이었는데, 명규가 장가가기 전까지 쓰던 방으로 침대와 책상, 의자, 서랍장 등 가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방 써라.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글자는 아니?

 

마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탁기는 베란다에 있고, 부엌은 저 쪽에 있고. 욕실은 바로 옆이야. 필요한 거 있으면 돈 달라 그러고. 나 혼자 살아서 집에 없는 게 많으니까.

 

마리는 낡은 가죽 핸드백에서 수첩을 꺼내 뭐라고 적더니 내밀었다.

 

-네. 고맙습니다.

 

또박또박 예쁘게도 쓴 글씨였다. 형원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됐어. 대신 월급은 못 준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니까. 하지만, 필요한 거 있으면 항상 얘기하고.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백을 내려놓았다. 형원은 벽장문을 열고 이불과 베개를 꺼냈다.

 

-썰렁하지? 곧 따뜻해질거다. 짐 정리하고 씻어라. 밥 먹자. 너 점심도 못 먹었지?

 

형원은 말을 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밖으로 나온 형원은 안방 욕실로 가서 대충 씻고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욕실에서 마리가 샤워를 하는 지 물 소리가 들렸다. 참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그럼 생각이 들자 거실이 너무 썰렁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형원은 방으로 들어가 담요를 가져와 카펫 대신 바닥에 깔았다. 거실에는 소파도, 쿠션도, 방석도 아무것도 없었다. 담요를 깔고 나니, 등받이 쿠션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하나 살까? 형원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물 냄새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마리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훨씬 생기 있어 보였다. 등 뒤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 속옷 빨래 인 것 같아 형원은 일부러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리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오~ 올만이에요~^^

 

새 연재 시작합니다. 새해 복은 많이 받으셨죠?? 

댓글부탁드려요~추천도 꾸욱~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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