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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으세요? *5* 여린남자 3

샤랄라 |2005.02.18 10:26
조회 886 |추천 0

 

의자에 털썩 주저않은 형원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형원은 우선, 약부터 한알 먹고는 컴퓨터를 켰다.

 

-왠일이냐? 지각을 다 하고?

 

-응? 아, 미안..

 

-뭐여? 말을 다 더듬고..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아니라니깐. 너는 좀 괜찮냐?

 

형원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지만, 명규의 날카로운 눈빛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집에 무슨 일 있지?

 

명규는 일에 몰두하는 듯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바라보는 형원에게 말했다. 그러자, 형원은 두 손을 깍지껴서 머리를 받치고는 대답했다.

 

-그래, 임마.

 

형원의 말에 명규가 긴장한다.

 

-뭔데? 설마..

 

설마, 걔가 돈들고 튀었냐? 하는 말을 하려다 만 명규는 형원의 그늘진 눈동자를 보고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리가 아프거든. 입원했어.

 

-어? 그래..

 

다행이다. 명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어디가 아픈데?

 

-뇌수막염이래.

 

명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어른도 걸려? 그거 걸리면 소아마비 되는 거 아닌가?

 

소아마비란 말에 형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형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라던데? 그거, 약만 잘 먹으면 다 낫는데.

 

형원의 항변 아닌 항변에 명규는 내가 잘 못알았나? 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컴퓨터를 보기 시작했다.

 

-너 다친데는 안아프냐구?

 

형원이 다시 묻자 명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는 스친거야. 명규가 엄지 손가락을 들고는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씩 웃어보였다. 형원은 안심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 잡는 것도 좋지만, 니 몸 생각도 좀 해라. 제수씨 산달이 다음 달 아냐?

 

-그러게.

 

그때서야 명규는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다음 달인 것을 기억해 낸다. 별 걸 다 기억하네. 명규는 컴퓨터를 보며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 하고 있는 형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자식, 생긴 것 같지 않게 다정하다니까.


 

-어? 벌써 점심시간이네. 야, 밥 먹으러 가자.

 

명규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러나 형원은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됐다. 난 병원에 좀 가볼려구.

 

-뭐? 흠..

 

명규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형원을 바라봤다. 형원은 그런 명규의 표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을 걷기 시작했다. 형원의 차는 흰색 코란도. 튼튼했기 때문에 가끔 은신중인 범인을 불러내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범인의 차를 들이받고 차에 붙여진 전화번호로 차 사고가 났으니 나와 보라고 하면 심중 팔구는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용도로 단골이었기 때문에 형원의 코란도 앞 범퍼는 성할 날이 없었다. 차는 미끄러지듯 주차장을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한 형원은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렸다.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입원실로 뛰어간 형원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순간, 형원은 그 때가 떠올랐다.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말에 입원실로 뛰어갔지만, 이미 아현과 그의 어머니는 숨을 거둔 뒤였다. 입원실이 아니라 영안실로 가보라는 간호사의 말에 형원은 자신의 귀가 잘못 된 줄 알았었다.

 

-휴..

형원은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는 잘 자고 있었다. 그는 마리가 깰까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누군가가 문에 노크했다.

 

-어머, 보호자 분 오셨네요. 이거, 점심인데, 약을 먹어야 하니까 꼭 드시도록 하세요.

 

-네.

 

형원은 식판을 받아들었다. 그는 잠깐 동안 마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처음 모텔 침대 위에서 봤던 것처럼 파리하게 생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유령처럼 보였다.

 

-마리야.

 

형원이 조용히 마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움찔 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괜찮니?

 

형원은 너무 기뻐서- 왜 기쁜 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마리

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원은 마리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은 많이 내려 있었다.

 

-녀석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어야지. 놀랬잖아.

 

형원의 말에 마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난다.

 

-그래, 밥 먹자- 약 먹으려면 밥 먹어야 된대.

 

형원이 탁자를 펼치고는 식판을 내려 놓았다. 마리는 힘겹게 한 숟가락씩 뜨기 시작했다. 그러던 마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또, 그런 눈물이다. 조용히, 움직임도 없이 그저 눈물만 흘린다. 형원은 씁쓸한 입맛에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쨌든, 여기는 병원이다.

 

-다 먹었니?

 

시간이 좀 흐르자, 형원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렇지만, 마리는 느낄 수 있었다. 어둡고 침울한 형원의 마음을.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자신이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래서 운 것이다. 미안해서. 그리고 고마워서. 한편으로는 세홍을 잡아간 원망에. 그렇지만, 마리의 마음을 알 수 없는 형원은 그저 괴롭기만 했다. 자신의 마음이 왜 괴로운지 알지도 못한 채로.

약을 다 먹은 마리가 약이 쓴 듯 얼굴을 찌뿌렸다. 그러자 형원이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써?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떡하냐. 먹어야지. 약만 먹으면 금방 낫는대. 걱정하지 말구. 있다 퇴근하고 오든지 할게..

아니, 올게.

 

형원은 가볍게 말하고 식판을 들고 돌아섰다. 그렇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어라? 

 

밖으로 나온 형원은 진나와 마주쳤다.

 

-그 환자 때문에 오신거에요?

 

-아, 네.

 

그저 지나치려던 형원을 진나가 잡았다.

 

-근데 그 환자랑 무슨 사이에요? 혹시..

 

-혹시 뭐요?

 

형원은 얼굴을 지뿌렸다.

 

-부인 되세요?

 

형원은 도대체 이 여자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진나를 바라봤다.

 

-아닙니다. 

 

-그러면요?

 

진나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형원은 뭐라 대답할까 고민하다 말했다.

 

-먼 친척 아이에요.

 

-아, 그래요.

 

진나가 살짝 미소지었다.

 

-전 이만..

 

형원은 진나를 지나쳤다. 진나에게선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났다. 포근함이 느껴지는 향이었다. 돌아

서서 가던 형원은 그 포근한 향기 때문에 뒤를 돌아봤다. 당당한 걸음으로 사라지는 진나의 뒷 모습에

서 형원은 자신에게는 없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의자에 앉은 진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침에 왔던 뇌수막염 환자 몇 호에요?

 

-아, 현마리씨요? 글쎄요? 알아 봐 드릴까요?

 

-아니에요. 내가 알아볼게요.

 

-네.

 

간호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진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원무과로 전화를 건 진나는 마리가 624호라는 것을 알아냈다. 살짝 미소지은 진나는 곧 일어나 병원 구내 매점으로 향했다. 구내 매점에서 음료수와 과일, 과자를 산 진나는 마리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마리는 누군가, 하고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여자,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

 

-아, 기억 못하는가 보구나. 오늘 내가 응급실에서 주사 놔줬는데?

 

아.. 그제서야 마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진나는 살갑게 인사를 하며 마리 옆에 앉는다. 그녀는 마리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이거, 먹어요. 음, 과일은 냉장고에 넣어 놓을게 먹구요. 열은 내렸나?

 

-...

 

마리는 지나치게 친한 척 하는 진나가 좀 부담스럽지만, 어쨌든 친절한 여자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진나는 마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좀 머쓱해졌다.

 

-내가 불편한가요?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두리번거리다 탁자 위에서 메모판과 볼펜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가져와 적었다.

 

-난 말을 못하거든요.

 

-아, 어머.. 저런..

 

진나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미안해요. 난 몰랐어.

 

진나의 사과에 마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진나는 그제서야 왜 형원이 그렇게 마리를 걱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진나는 형원의 진심을 알지는 못했다.

 

 


-뭐야?

 

마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원을 올려다봤다. 형원은 진나가 음료수와 과일 등을 사왔다는 소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형원은 방금 마리가 뇌수막염이며 열이 내렸으니 내일 퇴원해도 되고, 집에서 통근 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의사의 처방을 듣고 온 것이었다.

 

-내일 퇴원해도 된다던데? 저녁은 먹었니?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턴가 형원은 마리가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하고 있었다.

 

-약은?

 

마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와서 밥 먹는 거 볼려구 그랬는데.. 요즘 너무 바쁘거든.

 

형원은 진나가 사 온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마리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괜찮다는 뜻이다. 형원도 씩 웃어보였다.

 

-너 그렇게 웃으니까 참 이쁘다. 울지말고 좀 웃어.

 

그러면서 형원은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마리가 헤헤, 소리를 내며 웃었다. 형원의 마음을 놓이게 하는 웃음이었다. 늘 그렇게 웃었으면 좋겠다. 형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형원은 시선을 어두운 창밖으로 돌렸다. 형원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을 본 마리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또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마리는 형원의 그런 표정이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을 느꼈다. 불쌍하다. 마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다..

 

-짜식, 왜 또 그런 표정이냐?

 

형원의 말에 깜짝 놀란 마리가 얼굴 표정을 밝게 꾸며 보지만, 형원 역시 마리의 슬픈 얼굴을 이미 본 뒤였다. 형원은 장난스럽게 마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애가 너무 그런 표정 자주 하면 못쓴다. 나이 먹은다구.


 

 

아침에 테디베어 만드느라고 늦었네요~

실험실 연구생이 하나 만들어달라고 그래서..ㅋ 

여기는 눈이 좀 내리다가 그쳤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구요~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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