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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13> 통증보다 더 아프게 보고싶다.

초록물고기 |2005.02.18 14:04
조회 1,870 |추천 0

   - 새벽이 나를 열어 너를 내속으로 이끈다.

     한순간도 편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내 영혼이 이토록 간절히 하나를 원한다.

 

창가로 새어드는 아침햇살에 눈을 뜬 동준이 진서의 머리위로 내려 비치는 그것을 막기 위해 몸을 일으켜 커튼을 당겼다. 베개 아래로 두 손을 찔러 넣고 엎드려 잠이든 그 모습을 한참동안 보고 있던 동준의 얼굴에 빙긋이 웃음이 새어났다. 어렴풋한 잠 속에서 동준의 시선을 느껴 진서가 작게 눈을 떠 그 얼굴을 보았다.

 

“잘 잤니?”

 

대답대신 살짝 웃어보이는 입꼬리가 사랑스러웠다. 동준이 진서를 침대 맡에 앉히고 바닥까지 내려앉아 그 눈을 맞추었다. 베개에 묻고 잔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헐렁하게 어깨가 들어난 셔츠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동준이 잠시 그 눈을 말없이 보고 있다 농담을 섞어 웃었다.

 

“야! 윤진서....지금 이 모습.....진짜 혼자 보기 아깝다. ...이런 건 좀 남겨줘야 하는데.”

 

동준이 그 말을 하고 나서 퍼뜩 생각이 난 듯 탁자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어....지금 그걸로 뭐 하려고 그래요?”

 

동준이 하얀 이을 들어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한사람이 함께 하고 있는 아침이 그토록 변해있는 것에 놀라며 그 안식은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아깝다, 남기자. 진서야! 이거 기분 꿀꿀할 때 보면 한방에 업되겠다.”

 

 몸을 일으켜 그를 잡으려던 진서가 동준의 그 말에 자세를 고쳐 앉으며 농담을 받았다. “그 정도로 아까운가? 꿀꿀한 거 한방에 보낸다면....일조하지...뭐.”

 

 갑자기 정색을 하며 사진을 찍겠다고 앉은 진서의 생뚱맞은 표정에 동준이 웃음을 더 참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손을 뻗어 진서를 곁으로 당겨 앉혀 그 무릎에 머리를 올렸다.

 

“졌다. 강적이다. 윤진서.”

 

가만히 손가락을 가져가 동준의 입술을 스치던 진서가 살포시 그 위에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웃는 거 처음 봐요.”

 

동준이 여전히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를 보고 있었다. 한순간 동준의 심장으로 아련한 통증이 전해졌다. 그 아침을 평생처럼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룰 수 있으리라 다짐하면서도 산처럼 버티고 선 모든 것들이 가슴에 돌처럼 짓눌려 있었다.

 

“나한텐.....니가 웃음이다.”

“나 내일 시골 갈 건데...”

“아무도 안 계신다면서 내려가서 뭐해?”

“다녀와서 얘기 해 줄게요.”

 

 동준이 몸을 일으켜 진서와 마주앉았다.

 

“나도 가면 안 되나? 너 사는 집 나도 가보고 싶은데..”

“이번에 말구...다음에...같이 가요.”

“아!.....수상한데...뭐야...남자라도 숨겨둔 거 아냐.”

“모르지 뭐.”

 

동준이 진서의 코끝을 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어. 아침먹자. 뭐 먹을게 있을라나 모르겠다.”

 

 

파란 대문을 들어서는 정재의 얼굴이 처음 왔던 그때와는 다른 느낌을 담고 있었다. 마루에 가방에 내려두고 잠시 저수지를 내려다보다 뒤뜰로 돌아들어가 정자 앞에 멈추었다. 주체할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가슴을 휘젓고 있어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진서를 보았던 그 순간 자신의 빙의 속에 있던 사람임을 직감했었다. 오랜 세월 원인 없이 병을 앓았다던 진서의 그것 또한 자신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었다. 해답을 찾아 그것을 풀어가는 일만 남아있다 생각했던 그 속에 갑작스러운 혼란이 해일처럼 일고 있었다. 그 상대가 누구도 아닌 동준이라는 것에 정재의 심장이 뜨겁게 꿈틀거렸다.

 

결코 미워하거나 밀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었고 함께 하면서도 그 느낌이 이어져 이해할 수 없는 그 삶들조차도 가슴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 진서가 웃고 있었다. 온통 부서진 삶의 끝에서 마지막 잡은 그 끈이 너무도 위험한 절벽의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알 수 없는 뜨거운 화기가 자꾸 가슴을 데우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윗옷을 벗어 던지고 수돗물을 털어 흐르는 물에 머리를 그대로 적셨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무엇에 대한 것인지 모호한 그 감정이 정재의 차가운 이성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원흉으로 이끌고 있었다.

 

 

동준이 진서를 보낸 토요일 오후 한필중의 두머리를 데리고 김평섭의 뒤를 밟았다. 너무도 평화로운 그의 일상에 동준이 잠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딸아이와 백화점을 다녀와 건설현장을 돌아보았고 노상에서 막걸리를 나누고 있는 인부들과 섞여 허물없이 그들 속에 묻히는 그를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필중의 방법이 내키지 않았던 동준에게 그런 김평섭의 모습이 불편한 무게 하나를 더해주고 있었다. 새벽까지 그의 뒤를 밟은 동준이 종두를 불러내 포장마차에 앉았다. 그를 모르지 않아 동준의 얼굴에 내려앉은 그늘을 종두가 읽어내고 있었다.

 

“사장님께서 다른 방법 제시했다고 들었다.”

“......그 사람...이번에 무너지면 다시는 못 일어나겠지?”

“다른 생각하지마라. 그 사람 제수 없어 잘못 걸려든 거....그것도 어쩔 수 없는 그 사람 운명이다.”

 

 동준이 술잔을 급하게 비워 내리며 무거운 말을 뱉어냈다.

 

“우리가.....뭐라고....겨우 밑바닥에서 오물이나 치우고 있는 우리 손에 그 사람 운명이 지워져 있다는 거야.”

“너....행여라도 다른 생각 마라. 이번일 한사장이 너 주시하고 있다. 뭔진 모르겠지만 너한테 다른 날을 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 접어라.”

 “그 사람한테 딸이 있어.”

“내말 명심해라. 딴생각 마라!”

 

 동준이 그 말을 꺼내놓는 이유를 짐작해 종두의 마음이 불안했다. 아버지를 그렇게 잃고 뜨거운 가슴을 버렸던 그였다. 아마도 그 서러웠던 기억이 되살아나 김평섭에게 딸아이가 있다는 것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리고 불편할 것이었다.

 

동준이 이미 모든 사전 준비를 다 해놓고 있었다. 다음 날 하청업체와의 접대자리를 통해 김평섭이 딸아이의 친구와 잠자리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약점을 틀어쥐고 그의 발목을 잡을 계획이었다. 그가 이번 입찰까지만 그렇게 조용히 있어 준다면 그것으로 그 계획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었다. 그러나 한필중과 십년 세월을 쌓아온 동준이 보이지 않는 그의 속내를 읽고 있었다. 한번 시작한 일을 그렇게 끝내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한사장이 정말 이 입찰만 끝나면 김평섭을 놓을까?”

“........”

“술이나 마시자.”

 

동준이 술잔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월 햇살처럼 웃고 김평섭의 딸아이를 떠올려 불편했다. 아무런 힘도 없이 술병만을 붙잡고 살아가든 아버지였지만 동준에게는 이홍필이 살을 부비며 몸을 뉘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저녁쯤에 시골집에 도착한 진서가 마루에 놓인 정재의 가방을 보아 그가 와 있는 것을 알았다. 멀찌감치 낮은 담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강둑에 한사람이 서 있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것과 강둑으로 나가는 것을 두고 잠시 망설이든 진서가 그냥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마루에 앉았다.

 

얼마 후 대문이 열리고 정재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진서가 마루에서 몸을 일으켜 그 얼굴을 마주보며 인사를 건넸다.

 

“일찍 내려온 모양이네요.”

“더 빨리 내려오고 싶었는데...진서씨가 오늘오니 새벽길 밟아서 왔어요.”

 

여전히 따스하고 시원한 웃음이었다. 사람을 편안하게 안도하는 그 웃음에 진서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동준과 함께 지낸 그것으로 왠지 모르게 그를 보는 것이 무거워졌던 마음한켠이 그 한번의 웃음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림....얘기 해줄게요.”

 

갑작스럽게 말을 꺼내는 진서의 행동에서 그 마음의 혼란함을 잃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담감을 들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재의 가슴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갑자기...왜 이렇게 서둘러요?”

“그냥...앞으로 여기 내려오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그냥 일 때문에.”

 

 늘 환영에 시달리며 하얗게 말라 들어가든 진서를 보다 못해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수소문해 해연사를 찾아냈다. 현대의학으로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수록 다른 힘에 매달리게 되는 법이라 주지스님의 깨달음이 깊어 사람의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몸을 새로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진서가 해연사에 찾아간 첫날 그 얼굴을 마주한 주지의 낯빛이 심상치 않게 상기되었었다.

 

 “조급함이 마음의 산란함을 더 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데로 그대로 두어 보십시오. 무조건 밀어내려 부정하려 들수록 더 집착하게 되는 게 사람속의 마음이지요.”

“예.”

 

 그렇게 서너 달을 아침저녁으로 불공을 드리고 법문을 암송하며 절 공부를 시작한 진서가 오랜만에 붓을 든 날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환영으로 보이던 그것들이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고 떠올려 붙잡고 있어도 온몸을 뜨겁게 달구지 않아 그림으로 그려보고 있었다.

 

나이가 비슷해 곧잘 대화상대를 해주던 젊은 승이 진서의 그림을 보고 지나듯 흘려 말했다.

 

“큰스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그림이군요. 처음 봤을 때 좀 섬뜩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서가 놀라 스님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무슨....말씀입니까. 큰스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니요?”

“어.....이거 그 그림보고 그리시는 거 아닙니까. 똑같은 그림인거 같은데..”

“정말 큰 스님께서 제가 그린 이 그림과 같은 것을 가지고 계시단 말씀입니까?”

“예. 모르셨습니까...그럼 어떻게 똑같은 그림을....”

 

그날 저녁 진서가 주지스님과 마주 앉았다. 그 얼굴에 알 수 없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제가 처음 왔던 날 스님께서 저를 보시는 눈빛이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그저 몸이 아파 왔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을 아시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궁금합니까?”

 

진서가 주지 앞에 자신의 그림을 펼쳐 놓았다. 순간 주지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다 제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제 환영 속에 있던 겁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스님께서 가지고 계신지...?”

“이 절의 5대 지주스님이셨던 월정스님이 보관하고 계시던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분과 함께 이곳에서 삶을 마감하셨던 한 사람의 그림이지요. 남은 평생을 떠난 사람을 위해 세상을 다 담아 가려 유랑하며 그림을 그렸던 사람의 것입니다.”

“....그.....사람이 누굽니까?”

“오백년 전에 그려진 그림을 보살님께서 그리셨으니....아마도 끝끝내 놓을 수 없었던 그 염원을 몸을 태우는 환영으로 가져오신 모양입니다.”

 

주지의 말에 넋을 놓은 듯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멍하니 앉아있던 진서가 혼란스러움 속에서 이성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지금 스님 말씀은....제가 본 환영들이 그 사람이라는 말씀입니까...아니면 제가...”

 

진서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맥없이 웃었다.

 

“어떻게...그런 걸 믿으라고......어떻게 그런 일이.....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을 제게 믿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믿으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보살님께서 그림을 물으셨고 답하지 않을 수 없어 말씀드렸으니 버리고 얻을 것을 가려서 담으십시오. 이제 그 환영으로 몸을 죽이는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모든 것을 묻어두고 원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합당할 듯 생각됩니다. 보살님말대로 굳이 이치에 맞지 않는 그것들에 매달려 혼돈 속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그림들도 볼 수 있습니까...세상을 유랑하며 그렸으면 더 많은 것들이 남아 있질 않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림은 떠나실 때 모두 태워 가져가셨습니다. 두 사람이 나누었던 서신 몇 편과 월정스님께서 남기신 글들이 남아있긴 하나....제 생각엔...굳이 일부러 보셔서 혼란함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던 진서가 정재의 깊은 시선이 불편했던지 말을 멈추었다. 여전히 호흡마저 죽이며 진서를 응시하고 있던 정재 또한 그것을 느껴 애써 가벼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왜 그래요. 진서씨 이상한거 알아요. 처음 만났던 그날보다 오늘 더 불편해 하고 있는거.”

“내. 알아요. 나한테 갑작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거 사실이에요. 그중에 정재씨도 포함되어 있지만.....”

 

진서가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있는 말속에 동준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정재의 얼굴에서 편한 웃음이 살아지고 있었다.

 

“그때 말한 거 바꿀까 해요. 천천히 다가가겠다고.....한말...”

 

진서가 눈을 들어 그 말의 뜻을 묻고 있었다.

 

“진서씨 인연 속에 있었던 사람이던 아니던 이제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그것에 억매이지 않고 진서씨 볼 겁니다. 나 쳐다봐달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 망설이거나 물러나지도 않을 겁니다. 내가 느끼는 거 전부 보이고 주저 없이 다가갈 겁니다.”

 

갑작스러운 정재의 말에 진서의 얼굴에 당혹함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러지 말아요. 이유 없이 편하고 날 다 알아줄 것 같은 그런 느낌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 좋았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에요.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을 찾았어요.”

“어째서......그렇게 장담해요. 그곳이 진서씨 자린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요?”

“확신해요. 물어도 대답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이.....내 가슴이....이미 느끼고 알고 있어요.”

 

정재가 말없이 진서의 눈을 응새했다. 그 속에 다시는 놓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묻어 있었다.

“진서씨가 마음으로 느껴 확신하는 그것....나도 그렇다고 하면 믿을래요. 나도.....내 심장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면.....믿어 줄래요. 그래서 내도 물러설 수 없다면 진서씨 나한테 뭐라고 말할래요.”

 “........”

 

큰 눈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내려오는 내내 무거웠던 이유가 이것이었을 것이다. 동준의 존재를 품어가지는 것만으로도 진서에겐 너무도 큰 변화였고 두려움이었다. 그런 속에 정재의 감정을 보게 되어 염려하던 그것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정재의 심장이 아프게 조여들고 있었다. 그냥 둘 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그 상황이 미치도록 답답하고 싫었다. 차라리 편한 곳에 있었다면 그래서 그렇게 두어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바람이 없는 보금자리를 찾아 들었다면 어쩌면 돌아설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아니었다. 결코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동준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영혼을 쉬게 하기엔 너무도 거칠고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그를 알고 있어 정재의 가슴이 더 큰 파동으로 울려 되고 있었다.

 

 

다음날 김평섭의 접대자리가 끝나고 카메라를 회수한 동준이 한필중의 사무실에 들렀다.

 

 “수고했다.”

“남은 일은 태수한테 맞기고 너는 이제 신경 쓰지 마라. 그런 일은 너보다 그 놈이 더 약삭빠를 듯 하구나.”

“아닙니다. 마무리까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카메라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리로 가져와라.”

 

 동준이 잠시 말을 쉬다 다시 이었다. 그 속에 다른 뜻이 있음을 한필중이 한번에 읽어내고 있었다.

 

  “일 끝날 때 까지 제가......가지고 있겠습니다.”

 

한순간 한필중의 눈 속에 한기고 고이다 사라졌다. 이미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너....지금 뭐하는 거냐?”

“일 끝나면 폐기처분 하겠습니다.”

“가져와라. 지금 당장.”

“입찰에 참석하지 않는 그걸로 이번 계획 마무리 하십시오.”

 

한필중이 격앙된 목소리를 들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새끼가.....너 어디까지 기어오를 참이야. 뭘 어떻게 하느냐는 내가 결정한다. 가져오고 뒷일은 손때라.”

“처음부터 매장시켜 버릴 계획으로 시작한 일이라는 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렇게 매장 돼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죽고 싶나.”

“왜......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계획한 일들 성사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은 니가 경멸하는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이다. 어설프게 그냥 두면 언젠가는 나한테 돌아오게 된다.”

“이번에는.....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한필중의 주먹이 거칠게 동준에게 날아들었다. 터진 입술에서 핏줄기가 턱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유가 뭐야?”

“그 사람 울타리에 그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딸아이와 가족들이 있습니다.”

 “...........”

“늘 니 놈의 그런 동정심이나 연민들이 일을 그르칠까 걱정했다.......어쩌면 그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고.....하지만 지금 일은 일로 끝내라. 다른 감정 싫어서 니 자신 다치게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사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거친 소리에 문밖을 지키고 섰던 어깨들과 종두가 놀라 가슴을 조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니도록 그 소리가 거칠 줄 모르고 계속되자 종두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미 한필중의 주먹에 기진맥진한 동준이 비틀거리며 썰어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터진 입술과 찢어진 눈썹에서 흘러내린 핏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려 하얀 셔츠위에 붉은 자국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만하십시오. 사장님”

 

동준이 소파를 잡고 몸을 지탱하며 종두를 만류했다.

 

“형, 나가있어.”

“이 새끼.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카메라 어딨는지 말해라. 내가 가져올게.”

“나가라. 형.”

“동준아!”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선 동준에게 또 다시 한필중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래. 니가 이걸로 날 이겨 이번일 니 뜻대로 해보겠다면 니가 원하는 데로 해주지.”

 

종두가 한필중의 어깨를 잡으며 흔들리는 시선으로 동준을 보았다. 그렇게까지 버티고 있는 것으로 이미 동준의 마음을 알고 있어 그 불안함이 더 컸다.

 

“사장님....아시지 않습니까....이 놈 반 죽여 놓는다고 내놓지 않을 거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그만 하십시오.”

 

한필중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동준을 노려보았다. 종두말대로 이미 알고 있었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그것으로 자신의 뜻을 보였고 그건 무엇으로도 돌리지 못할 결정임을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한필중이 그것을 알면서도 격한 주먹을 날렸다.

 

그 속에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또 다른 당당함이 있어 불안했고 지윤의 마음을 가진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것이 한필중을 더 분노케 하고 있었다.

 

“데리고 나가라.”

 

동준을 부축해 사무실을 나서자 문밖에서 묘한 웃음을 짓고 잇던 태수와 마주했다.

 

“미친 새끼, 가지가지 하네.”

 

비아냥거리는 태수의 태도가 불편했던지 종두가 먼저 그 말을 잘라냈다.

 

“이 새끼 말조심해라.”

“형님도 그놈 싸고돌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형님에게도 해가 될 놈입니다.”

“입 닥쳐.”

 

동준을 차에 태운 종두의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한순간도 편한 곳에 있지 못하고 또 그렇게 바람 속에 서 있는 그가 종두의 가슴을 아프게 긁고 있었다.

 

“그냥....눈 감고 귀 막으라고 했잖아.”

“미안하다. 형.”

“어디...집으로 가면 되니?”

“안돼. 왜 있을지도 모르는데...이러고 가면 많이 놀랄 거야.”

“그래. 그럼 일단 나 있는 데로 가자.”

 

 - 보고 싶다.

   만신창이가 된 머릿속으로도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니가 보고 싶다.

   나를 어루만지든 그 손이 지금 이 통증보다 더 아프게 그립다.

   진서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은 동준의 심장으로 그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동준이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자신을 가슴으로 끌어 않아 심장소리를 들려주던 진서의 평온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 다.

   - 보고싶다. 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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