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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칙사랑 - 29. 사랑의 편지

나비 |2005.02.19 04:21
조회 2,951 |추천 0

** 반칙사랑 - 29. 사랑의 편지


지하주차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그의 차에 오르자 어디에 가겠느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 좀 더 근사한 식당에 가자는 그의 만류에도 매운 닭요리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근처에서 맛좋기로 유명한 식당이라 아직 때 이른 저녁시간이었지만 사람이 많았다. 가게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였고 얼핏 보아도 가게 안은 사람 머리들로 가득했다. 빼곡히 앉아있는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양념과 함께 닭이 구워지는 매콤한 냄새가 진동했고, 사람들의 말소리와 여러 소음들로 시끄러웠다. 그 소리가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이 든 것은 그와의 어색함이 만들 침묵 때문이었다. 찬기씨는 내 예상과 달리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말소리는 내 귀에 잘 닿지 않았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이 닭 집 굉장히 오랜만에 온다구!”

“아, 응. 나 경주에 있을 때 이거 먹고 싶더라. 특히 지독히 더운 날 이 매운 게 생각나더라구.”

“······?”


그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는지 내 옆자리로 와 물었다.


“뭐, 뭐라고 했어? 아까 잘 안 들리더라.”

“어, 어. 저번부터 먹고 싶었다고.”


안 들렸다지만 너무 가깝게 앉은 것 아니야? 그는 내 귀에 가깝게 대고 말했다. 간지러움을 느끼며 귀를 털어내자 웃으며 더욱 가깝게 말하는 그. 뺨에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응. 앞으로 홍주 먹고 싶은 거 같이 먹고, 가고 싶어 하는 곳도 같이 갈 거야. 좋은 거, 이쁜 거 구경 많이 하자. 이제 내가 바라는 건 네가 즐거워하는 것뿐이야.”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몸이 긴장하고 있었다. 진동하는 음식 냄새를 뚫고 그의 체취가 진하게 전해졌다. 식사하는 내내 그는 내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은근히 허벅지를 어루만지기도 했고 자주 듣기 좋은 말을 속삭였으며 기습 뽀뽀를 하기도 했다. 세상에! 사람 많은 불닭집에서 말이야.


“하지 마! 사람들이 보잖아.”

“네가 솔직해지라고 했잖아. 이젠 거짓말도 안할 거구 내 감정 속이지도 않을 거야. 지금 내 감정대로 하고 있는 거라고.”


지나친 애정 표현에 민망해져서 눈앞의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간 곳은 평소 우리가 잘 가던 카페였다. 좀 더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어 다른 곳에 가자고 했지만 이번엔 그가 양보하지 않았다.


“왜? 다른 곳 가자.”

“안돼. 오늘은 내 의견에 따라줘야 해.”


어쩐지 고집을 피우는 그를 따라 카페 앞에 도착했다. 차문을 열자 해가 진 후였음에도 더운 공기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서 카페로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고 싶었다.


‘두 달 만에 오는 건가? 예전엔 자주 왔었는데.’


카페 안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늘 앉던 창가 구석자리로 자연스레 향하던 중이었다.


“어, 오빠! 오늘 무슨 이벤트 있나본데.”


유독 우리가 앉던 그 테이블이 장미로 꾸며져 있었다. 테이블엔 붉은 장미가 가득했고 소파에는 한 사람이 앉을 공간을 제외하곤 온통 백장미로 꾸며져 있었다.


‘저게 다 몇 송이래? 누군지 몰라도 미쳤네.’


“저기 네 자리야, 홍주야.”

“······?”

“백장미 사이에 앉은 홍주가 보고 싶더라. 넌 그런 자리가 어울려. 자, 가자.”


얼결에 그가 내민 손을 잡은 나. 지금 장난치는 건가? 왠지 믿어버렸다가는 그가 농담이야, 라고 놀릴 것 같았다. 바보가 되어버릴까 두려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내 어깨를 감싸 걷기를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한 걸음도 떼지 못했을 것이다.

테이블에 다가서자 소규모 장미 정원에 온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 송이, 한 송이 너무나 아름다운 장미들의 모임.


‘이게 날 위한 거란 말이야?’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장미향이 몸속으로 들어와 그제야 눈앞의 일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앉아.”


행여 백장미를 깔고 앉을까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많은 꽃을 본 적은 있어도 꽃 속에 파묻힌 것은 처음이었다. 황홀하다고 해야 하나? 꿈보다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자리에 앉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그가 분홍 장미 한 다발을 내밀었다.


“오빠. 왜 이래?”


감사하다는 말 대신 엉뚱한 말을 뱉어버린 나. 난 늘 이렇다. 방금 나와 버린 말을 후회하고 있자니 그가 말했다.


“이제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었다니까.”

“그래두 이건 좀······.”

“왜 화난 표정이야? 오빠가 돈 많이 썼을까봐 그래? 아니야. 돈 얼마 안들었어.”

“아니! 그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아니야. 내가 화를 왜 내! 화 낼 리가 없잖아!”


또다시 감정을 다르게 표현해 버렸다. 애썼지만 고맙다는 말은 쉽게 나와 주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마주 앉아서 내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 그동안 나에 대해 얘기해준 게 많지 않았지? 미안하다. 언젠가는 이런 자리를 꼭 만들 생각이었어. 그전까지 말하지 못했던 거지 숨길 생각은 없었단 건 알아줘야 해.”

“응. 믿을게.”

“천천히 다 말할 거야. 시간이 좀 걸릴 지도 몰라.”


은은한 장미향이 기분을 좋게 하는 가운데 그의 이야기는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 놀랄 이야기도 있고 슬픈 이야기도 있었다. 외동아들이었던 그는 중학교 시절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작은 아버지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고 했다.

생전에 찬기씨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와 동업으로 주류업을 하셨고 그 때 번 돈으로 다른 주류업을 차리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하양주류. 그러다 사고 이후 작은 아버지가 그 일을 전적으로 맡게 된 것이다. 찬기씨는 정식으로 호적에 등록이 되어 장남 아닌 장남으로 살게 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그에게 헌신적이었지만 작은 어머니는 그를 귀여워하면서도 자신의 아들인 찬영이 아닌 그가 사업을 물려받게 될까 걱정을 했다. 그러던 중 그가 주류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자 작은 어머니는 슬쩍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그에겐 하양주류를 물러받고픈 욕심이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유학을 가겠다노라고 말하고서는 집을 나왔다. 행여 그 사실을 들킬까 찬영에게 부탁해서 동생이름으로 회사를 다니게 된 것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모두 알고 계셨어. 내가 찬기라는 것도. 우리 아버지의 일도.”

“나 같아도 꺼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부모님의 이야기들 모두 해야 하는 이야기니까.”

“응. 쉽지는 않았어. 그래도 했어야 했는데. 말을 다하고 나니 너무 후련하다. 진작 말을 할 걸 그랬어.”


그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옛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기억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학창 시절의 이야기들. 그렇게 시간이 늦도록 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늦은 시간 집 앞에 데려다 준 그는 편지 한 통을 건넸다.


“또 뭐야? 오늘 너무 서프라이즈 하다.”

“집에 가서 읽어봐. 쑥스럽다, 참.”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준 편지를 펼쳐들었다. 수수한 편지지에 단정한 글씨로 쓰인 편지였다.



미래의 내 아이에게



아빠야.

아직 스물여섯 살의 아빠란다.


우리 아이, 왕자님인지 공주님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엄마를 닮은 예쁜 아이일 테지?

아빠는 그렇게 믿고 있어.


오늘 갑자기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냐하면 엄마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서, 젊은 엄마에 대해서 말이야.


우리 아기의 엄마는 참 멋진 사람이란다.

엄마랑 엄마가 만난 지 아직 넉달이 채 안됐지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지.

너무나 아름다운 서로의 매력에 반해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단다.

아직 많이 알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정말 정말 매력이 넘치는 여자란다.

아빠가 세상에서 본 여자 중 최고거든.


우리 아이가 지금의 엄마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구나.

대신 사진은 많이 찍어놓을게.

사진으로 그 느낌을 담을 수 없겠지만 그걸로 대신하도록 하마.


웃을 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

호쾌한 웃음을 지을 땐 한없이 유쾌해지고

은근한 미소를 지을 땐 초콜릿을 입에 머금은 기분이 든단다.

부드러운 천에 감싸인 기분이 들기도 해.

그래서 요즘의 아빠는 그 웃음을 보며 무척 행복하단다.


옆모습은 정말 너무 예뻐서 엄마 몰래 훔쳐보는 일도 있단다.

들키지 않게 하려도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는

아마 엄마는 모를 거야.

가슴이 설렐 정도로 너무나 멋진 모습이지.


엄마는 또 마음이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야.

그건 이미 우리 아이가 잘 알고 있을 테지.

엄마의 마음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내 아이야!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아빠는 말이야 늘 너를 사랑할 거라고 벌써부터 다짐하고 있단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주기위해 더욱더 노력할 거구.

빨리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내 아이야.



                                               - 2005년 8월

                                                      아빠가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편지를 들고 있는 손 위로 떨어졌다. 난 눈물을 훔치는 것도 잊은 채 몇 번이나 반복해서 편지를 읽었다. 하얀 종이에 쓰인 글씨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다. 이렇게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은 거대한 축복이었다. 귀중한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내 자신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누르고 있던 검은 돌이 녹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무더운 날에 10월의 바람을 맨 가슴으로 맞은 것처럼 막힌 가슴이 뻥 뚫린 듯 했고 갑자기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낀 거울 속에 보이는 내 자신은 세상 어느 여자보다 아름답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 부족하지만 오빠의 사랑 받을게요. 소중히 받으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삐뚤고 못난 내 옆에 있어 주어서, 도망가려던 내 옆에 있어 주어서.

나 정말 모자란 게 많은 사람이에요.

다정하게 인사하는 방법도 모르고 먼저 웃음을 짓지도 못해요.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도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서툴기만 하죠.’


고마운 마음이 넘쳐 흘려 발을 적시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느끼는 이 고마움을 전달해야해. 약간 망설여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곤하지 않냐고 묻는 그에게 말했다.


“저, 음.”

“왜? 무슨 할 말 있어? 뭔데?”

“오빠는, 음.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야!”


그날 밤 그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내가 느낀 사랑과 고마움은 내 아이가 커서 또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될 때까지, 그 때까지 쉬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모자랄 만큼 컸다.


“사랑해, 오빠.”

“고마워. 오늘따라 그 말을 많이 해주네.”

“아니, 내 입이 닳아 없어질 만큼 해도 부족해. 왜 그동안 말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들어. 사랑해. 사랑해.”


태어나 가장 행복한 밤이었다. 그가 있기에 행복한 밤. 앞으로도 영원히 오늘 같은 행복이 내게 함께하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많이 늦었는데 기다려주신분들 감사합니다.

반칙사랑 이후에 연재될 글을 준비하느라 늦고 말았습니다.

반칙사랑은 연재까지 쓰는 대로 바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님들 사랑 감사합니다. 지금의 홍주 있는 것 다 여러분의 힘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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