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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세번째}

이야기 상자 |2005.02.20 01:57
조회 1,597 |추천 0

태림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아직도 꿈속에서처럼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아버지가 엄마에게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을 처음 보았던 다섯 살 때의 어느 비 오던 날이었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10년이 넘게 보아왔지만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태림은 항상 잠을 깊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일층에서 무슨 소리라도 날 새라 귀를 쫑긋 새우고 자느라 항상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오늘도 엄마의 눈가에 멍이 들어있지 않기를 바라면 주방으로 내려가기 위해 일어났다가 자신이 지금 침대가 아니라 소파에서 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가..."
 태림은 잠결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이 잠든 곳이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걸 확실히 해준 건 바로 어제 그녀와 결혼한 신랑이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태림이 생전 본적이 없는 모습으로 서서 활짝 기지개를 펴주어서였다.
 태림은 괴성을 지르면서도 그의 그곳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엄마야아아아아아아아."
 세준 역시 잠에서 확실히 깨고 말았다. 세준은 태림이 자신의 남성을 보고 소리를 치자 정신을 차리고 이불로 허리를 감싸 중요한 부위를 가렸다.
 태림이 이렇게 일찍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나도 엄마 있다구. 그러니 제발 진정하리니까아아."
 세준은 태림의 소리를 멈추기 위해서 소리를 치더니 그래도 태림이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거의 뛰다 시피 다가와서 그녀의 입을 커다란 손으로 막아버렸다.
 "좀 조용히 해."
 태림은 그의 성난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의 커다란 손이 입 뿐 아니라 코까지 막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자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런 괜찮아?"
 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려 대답할 기회가 없었다.
 "무슨 일이냐?"
 태림이의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잠옷을 입은 부모님과 아침 준비를 위해 일어나신 아주머니도 그의 방문을 열고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도대체 아침부터 웬 소란이니?"
 태림의 얼굴은 거의 홍당무가 되어 있었고,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입술만 금붕어 마냥 뻐끔거리고 있었다.
 쫓아 올라온 사람들은 분명 소파 위에 있는 이부자리를 보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별일 아니에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태림은 자신을 곱게 쳐다보지 않는 시어머니의 눈길에 마음이 상했지만 좀 전에 본 충격적인 영상에서 아직 헤어나지를 못한 채 방을 빠져나가는 그들을 붙잡고만 싶었지만 자신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고 있는 세준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난 올래 다 벗고 자. 너 때문에 습관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 이런 장면을 보게 해서 좀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난 항상 이렇게 자고 이렇게 일어나니까. 다음부터는 네가 늦게 일어나든지 아니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말도록 해."
 태림은 이직도 말이 나오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쩜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세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 때문에 그도 아버지처럼 할 줄 모른다는 긴장감에 그녀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신혼의 아침이었지만 태림은 학교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또 다시 불편한 식사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시댁에서 처음 맞는 아침을 너처럼 소란스럽게 보낸 아이는 그 세상을 통틀어도 찾기 힘들 꺼다. 무슨 여자 목소리가 그렇게 크니? 난 우리 집에 기차 화통이 있는 줄 알았다."
 태림은 시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밥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그만해요. 새 애가 놀란 일이 있어서 그랬을 테지. 태림이 어서 아침 먹어라. 세준이는 출근하는 길에 항상 새아기 데려다 줘라."
 그 소리에 태림이 처럼 밥만 내려다보고 있던 세준도 고개를 들었고, 그와 동시에 든 그녀와 눈길이 마주쳤지만 금방 무시해 버렸다.
 "하지만 아버지..."
 "전 괜찮아요. 그리고..."
 하지만 시아버지는 두 사람 말을 동시에 묵살해 버리고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관철시키고는 혼자서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지만 태림과 세준은 각기 다른 이유로 식사를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다 먹었으면 빨리 가자."
 아버지의 명령으로 억지로 한다는 걸 여지없이 보여주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낮은 소리였다.
 "네."
 태림이 나가려고 하자 아주머니가 도시락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그녀의 집에 있는 가정부 아주머니처럼 인상이 매우 좋았다. 얼굴도 포근했고, 눈빛도 집에 있는 아주머니처럼 따뜻했다.
 "감사는 무슨.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쌓으니 맛있게 먹어요."
 "그럴 게요."
 어제오늘은 처음인 게 정말로 많은 것 같았다. 남자와 한 방에서 잠을 잔 것도 처음이고 일어나자 마자 남자의 알몸을 본 것도 처음이고, 자가용을 타고 학교에 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버지도 세준 못지 않은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아들이 아닌 태림이에게는 뭐든지 인색한 편이었다. 세준의 어머니처럼 그녀의 성적도 싫어했고, 자신의 체격을 닮아 키는 컸지만 반면에 엄마를 닭은 그녀의 여린 외모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녀가 여자라는 걸 매우 싫어했다.
 "다 왔다니까."
 태림은 상념을 뚫고 들어온 자신의 남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창 밖을 둘러보았다. 버스를 타고 오지 않아서 인지 생각보다 빨리 와있었다.
 "혹시 해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세우라고 했어. 올 때는 네가 알아서 오도록 해."
 "네! 다녀오겠습니다."
  세준은 자신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태림을 보고 역시나 학생이라는 신분을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인사 한번 멋지군. 출발합시다."

 다행이 길가에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물어보더라도 둘러 델 수 있었지만 아침부터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도 그녀가 결혼했다는 것 만 빼고는 별 다른 변화가 없는 학교생활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보충수업에 깐깐한 교련선생님의 수업은 태림이 아직 학생이라는 걸 잊어버리게 하지 않았다.
 빨리 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그래야 그나마 조건이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가 있을 것이다. 태림은 그 희망 하나로 지금까지 꾹 참아왔다. 결혼은 했지만 그 결혼이 그녀의 인생을 변화시켜줄 것 같지는 않았다.
 태림이 아는 남자들은 다 똑같았다. 아버지처럼 가족을 때리고 바람을 피우면서도 전혀 잘못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으스대는 남자들과 자신의 힘을 약한 사람들에게 과시하면서 사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된 세준도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 엄마와 아버지의 옆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깐깐한 시어머니가 그녀가 취직하는 걸 반대할 것 같았지만 시아버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서라도 꼭 취직을 해야했다. 결혼이라는 어려운 장벽이 그녀의 앞에 놓여있지만 아버지의 무자비한 손에 엄마를 언제까지나 놓아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태림은 육체적인 폭력보다 엄마를 더 힘들어하는 폭언과 정신적 압력을 아버지가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태림 보다 몇 살 정도 나이가 많은 젊은 여자들과 정사를 즐기면서도 엄마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자유롭게 놓아주면 서로가 좋을 텐데, 무슨 미련인지 몰라도 아버지는 엄마를 꼭 쥐고 괴롭힘을 즐기고 있었다.
 지루한 교련 시간이 드디어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반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둘 딸린 유부녀 선생님이었다.
 "자자. 다들 옷 입었으면 잠깐 선생님한테 주목 좀 해라."
 아이들은 재빨리 옷을 입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바라보았고, 교실이 조용해지자 누군가 스르륵 문을 열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의 등장으로 교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자! 자! 조용히."
 하지만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실 안에 들어온 인물은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하이틴 스타 이현이었다. 이현이 교실 안에 들어서자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반 아이들도 복도를 가득 메우고서는 교실 안을 들여다보느라고 소란이 가시지가 않을 정도였다.
 이현은 영화에서처럼 깜찍하고 귀엽게 생겼다. 저렇게 생겼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너희들도 이현이가 누군 지는 잘 알 거다. 오늘부터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으니까. 서로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네에."
 "자. 인사해라."
 이현은 선생님이 교탁에서 비켜주자 앞에 와서 섰다.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그녀의 인사는 짧았다. 뭔가 특별한 인사를 바라던 아이들은 실망스러웠는지 금방 김이 샌 사이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저 애 우리들이랑 친구 할 생각이 없는 애 같지 않니? 지가 영화배우라고 폼 잡는 것 같은데."
 오공주파 중에 하나인 아이가 수근 거렸지만 이현은 아무렇지 않는 듯이 웃어 넘겨 아이들의 눈총과 부러움을 동시에 일으켰다.
 "빈자리로 가서 앉도록 해. 어! 태림이 옆자리가 비었구나."
 태림이의 짝궁은 학기가 시작되기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전출을 가는 바람에 전학을 가고 말았고, 지금껏 태림의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이현은 화면에서 보다 키가 커 태림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아 짝궁이 바뀔 일은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안녕."
 "안녕."
 별로 긴 인사는 아니었지만 태림은 이현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서운하지도 않았다. 짝궁이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집에 돌아가서 남편과 시어른들 얼굴을 보고 살아가는 것만 생각해도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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