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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두번째 새로운 출발...
스물넷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해 둘을 낳아 실패한후 난 서울에서 아이들 둘을 데리고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아들, 딸 둘만의 아빠가되어 유치원 어린이집을 보내고
생활비를 벌기위해 유통업을 시작했다. 그때 나이 우리 아이들 나이 고작 아들 일곱살,딸 다섯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나이었다. 일을 마치고 시간내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지 못하면 둘이서 어린이집에 남아 놀고 있었고, 차가 막혀 시간내에 집에 도착하지 못할땐 아이 둘이서 골목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었다. 아이들 배가 고플까봐 아이들 좋아하는 햄, 소시지를 볶아 저녁을 차려주고는 난 피곤함에 못이겨 옆에누워 잠시 단잠을 잤고
아이들은 그렇게 시장기를 달래고 나름데로 치워놓고 일기쓰고 잠이 들어 있었다. 엄마 없이 자라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지않으려고 유난히 엄하게 다뤘고 회초리도 자주 들었던것 같다. 내 화를 못이겨 회초리 한대 때릴거 두대 때리기도 했고 그렇게 회초리를 든
저녁은 내방에 앉아 맥주 두명에 괜한 설음을 달래고 잠이 들었다. 이렇게 보낸 세월이
어느덧 2년....... 그러던 어느날 스무살 어린나이에 군에 입대하기까지 순수함에 맘을 빼앗겨 좋아했던 지금의 우리 와이프 친한 친구 한테서 전화가 왔고 ( 13~14년만에 수첩을 정리하다 내 폰번가 있어서 생각나서 했단다 ) 전화한 친구는 10분 거리인 화곡동에, 우리 와이프는 일산에서 아직까지 miss로 남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렇게, 우린 몇주후 고향 사람들끼리라는 인연의 끈으로 식사 약속을 했고 난, 그때 얼마나 가슴 설레며 기다렸는지... 두 사람을 반나러 나가는 날, 길건너 날 기다리는 두 사람중에 주위를 걷는 다른이는 들어오지않고 와이프만 크게 두눈에 들어왔었다.
이렇게 시작한 만남은 내가 퇴근후 부천에서 수서,수서에서 일산까지를 오고가며 2년여동안을 오고가며 말친구,술친구로 만남을가진 끝에 2004년 3월 13일 화이트데이 하루전날에
결혼에 골인을 하게 됐다. 결혼을 하기까지 그 과정은 일일히 나열하지 않아도 그 고통(?)과 어려움은 감당하기 힘들었었다. 적어도 난 견딜수 있었지만 우리 와이프에겐 적지않은 고통의 시간이었을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어도 잘견뎌주고 다른 맘 머지않고 끝까지 함께해준 와이프에게 무안한 고마움을 느낀다. ( 지나고보니 그래도
딸가진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자면 장인,장모님 반대하셨던 그 마음은 쉽게(?) 나를 받아 주셨던거 같다.) 다시한번 이 기회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특히나 우리 장모님.....................................................................
이렇게 우리 둘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 채운이다.
아들,딸 있으니 계획이 없었다는 와이프 였지만 낳고보니 잘한거 같다. 지금은 퇴근후
집에 들어갈 생각밖에 못하고, 채운이데리고 보내는 우리 다섯식구의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채운아~~ 아~빠~ " 부름에 피식~ 웃음짓는 얼굴에 피곤함도 잊고 행복하다.
큰아들 성민이는 이제 5학년, 그래서 그런지 무뚝뚝하게 동생을 데리고 놀지만 역시 큰아들 이어서 그런지 듬직하고, 딸은 역시 딸이다 채운이 이쁜짓에 니가 더 어쩔줄 몰라하며
이뻐 죽겠단다. 집안이 온통 채운이 웃음과 채운이 부르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이젠 제법 보행기도 잘타고 쇼파도 잡고 일어서기도 한다. 이러다 기어 다니지도 않고
곧바로 걷겠다고 와이프는 얘기한다. 이렇게 이쁜 아들을 갖게해준 우리 결혼날이 다음달 13일이 결혼 1주년 기념일이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우리 와이프!!! 처음 맞이하는
1주년이니 어디든 떠나야할 것 같다. 그럴려면 비상금을 모아야 할것같은데 휴~우~~^^
내일 아침이면 우리 채운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얼른 들어 가련다...(지금은 편의점을 하거든요..) 3월 13일 우리 채운이를 데리고 어디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