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가 끌리는 이유
(4)별난 그녀의 방식
그녀의 생일이 다가올수록 우신은 부담스러워 졌다. 채련의 말처럼 채련은 토요일이 될 때 까지 오지 않았다. 한동안 자신의 곁에 머물렀을 뿐인데도 금세 허전함과 서운함이 밀려왔다. 벌써 자신이 그녀에게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아 우신은 씁쓸해 졌다.
“내가 그렇게 외로웠던가?”
한낱 꼬마 계집아이가 내민 손 하나에 이렇게 쉬이 넘어가는 자기가 한심스러워 졌다. 누군가의 생일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본적 없던 그였다. 부모님의 생신 때엔 적당한 돈 봉투로, 아는 여자들의 생일에는 보석으로 때웠던 그였다. 그에게 누군가의 생일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동짓날 같은 날이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 누구의 생일도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던 그였다. 하지만 그렇게 대충 때우고 넘어가기엔 그녀는 목의 가시처럼 걸렸다. 쿡쿡 자신의 목을 가로막고 누르는 생선 가시처럼, 애써 내려 보내려 해도 내려가지 않는 가시처럼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우신은 집으로 향하던 걸음을 근처 보석가게로 옮겼다. 하지만, 보석가게 앞에서 그는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동일시 그녀를 대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참, 신경 쓰는 여자로군.”
우신은 하는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선물을 안주면 안줬지, 다른 사람과 그녀를 동일시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금세 그의 오피스텔이 있는 층에 그를 내려다 놓았다. 우신은 모서리를 돌면 채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모서리 너머 그 어느 곳에도 그녀는 없었다. 헛된 기대였다. 순간 이러다가 그녀처럼 채련도 어느 순간 자신을 떠나 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밀려왔다. 그런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을 점령해 갈수록 우신은 채련을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붙잡았다. 다음날 저녁, 우신의 핸드폰이 울렸다. 좀처럼 울리는 법이 없는 핸드폰이라, 한동안 자신의 핸드폰 소리인지도 몰랐던 우신이었다. 채련이었다. 회사 앞에서 기다린다는 전화였다. 아직 처리할 일이 조금 남았지만 우신은 재킷을 집어 들었다. 괜스레 마음이 조급했다. 느리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던 엘리베이터가 왜 그리 굼벵이 같은지, 우신은 거의 뛰다 시피 회사 앞으로 나갔다. 회사 앞에는 그녀가 서있었다. 반가움이 왈칵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내색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신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어? 빨리 나오셨네요? 조금 늦을 줄 알았는데......”
채련이 긴 생머리 사이 귓가에서 이어폰을 뽑으며 말했다. 방긋 웃는 그녀가 갑자기 참 청순해 보였다. 어린 여자애한테 청순함을 느끼다니, 우신은 순간 자신이 한심해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죠? “
채련이 우신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런 채련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우신은 주변의 시선이 거북스러워 채련이 잡은 팔을 애써 빼내며 말했다.
“뭐 필요한거 있어? 아님 돈으로 줄까?”
우신의 말에 채련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정말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묘한 여자였다. 우신은 그런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서있었다. 우신이 말이 없자, 채련이 잔뜩 골이란 말투로 말했다.
“정말 이러기예요? 좋아요! 그래요. 선물 안주면 뭐 저도 생각이 있다고요. 오늘 하루 그러니깐 오늘 12시 즉 제 생일 까지 아저씨 시간은 이제 제거예요!”
그의 입에서 싫다는 소리가 나오면 바로 울 기세로 그녀가 바라보고 있었다. 우신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만족한 듯 채련은 우신의 팔을 잡아끌었다. 차는 반대쪽 주차장에 있는 것을 알 텐데 채련은 연신 다른 쪽으로 그를 끌어 당겼다.
“어디 가는 거야? 차 저쪽에 있는 거 안보여?”
“오늘은 차 안탈 거예요.”
“그럼 뭐 타고 가자고? 모범택시라도 잡자는 건가?”
“어허! 이 아저씨 보게나. 아저씨. 우리나라 교통수단은 자가용 아니면 택시뿐인 줄 아는 거예요? 버스 있잖아요. 버스”
꼬마 계집아이에게 혼나는 기분이 영 나쁘지만은 않았다. 장난치는 기분이었다. 우신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채련이 잡아끄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차를 사고 나서 버스는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먹했다. 900원이라고 써있는 버스 값을 보니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오른 것 같았다. 우신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지불하려고 하자, 채련이 냉큼 차안으로 올라와 카드를 대며 ‘두 사람이요’라고 말했다.
“요즘엔 카드로도 지불이 되는 건가?”
“버스 몇 년 만인가요?”
“글쎄. 차 사고는 처음이라…….”
“그럴 줄 알았어요.”
또 세상사람 다 아는 것을 우신 혼자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하고 있는 꼬맹이였다. 그런 채련을 보니 우신은 볼이라도 꼬집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사람을 묘하게 자극하는 여자였다.
“그런데 어딜 향하는 거지?”
“종착지는 없어요.”
“그럼 왜 탄 거야?”
“아저씨가 모르는 세상을 구경시켜 주고 싶어서요.”
이런 여자는 처음이었다. 우신 자신이 만난 몇몇 여자들의 생일은 이렇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값비싼 명품 가방이면 구두를 그에게 요구했고, 또한 하나같이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성대한 파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옆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 작은 여자아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에게 돈도, 값비싼 명품도, 레스토랑도 그 무엇도 그에게 바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동안 숱한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이 그들에게 돈 지갑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던 우신 이였지만, 이 여자는 달랐다. 차는 한참 동안이나 시내를 돌고 돌았다. 갑갑할 줄 알았던 버스도 그녀와 있기 때문에 재미가 있었다. 옆에서 종알대던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곧 이어 그의 어깨에 살며시 그녀의 머리가 얹혀졌다. 항긋한 샴푸 내음이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순간 우신은 그녀를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보이는 그녀의 입술, 고와 보이는 피부를 한없이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나도 별수 없는 남자로군.”
우신의 중얼대는 소리를 들었는지 채련이 부스스 고개를 들며 가방에서 MP3를 꺼내었다. 무척이나 낡은 것으로 보아 초기 모델인 듯싶었다. 채련은 그 이어폰 한쪽을 우신에게 넘기고선, 다시 우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어폰 너머로 고운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 많은 만원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의지해서, 나만의 세계로 빠져 본적 있어요?”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요!”
우신의 말에 채련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아저씨가 아저씨만의 세상이 아닌 다른 특별한 세상에도 행복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꽤나 철학적인 말투인걸.”
“어? 여기서 내려요!”
채련은 창밖을 보더니 우신을 끌고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을 토하듯 내려놓은 버스는 꽤나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뒤꽁무니를 내 비치며 사라지고 있었다. 채련이 내린 곳은 채련의 집 근처였다.
“이제 무얼 할 건가?”
“꼭 무언가를 해야 하나요?”
“난 계획성 없이 움직이는 게 싫어.”
우신의 말에 채련은 ‘쿡’ 하고 낮게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것도 무언가를 하는 거잖아요. 여기서 내가 이렇게 아저씨의 손을 잡고 걷는다면, 이건 좀 계획성이 있는 일인가요?”
채련은 그러면서 우신의 손을 잡고, 자신의 주머니 속에 우신의 큰 손을 집어넣었다.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채련의 손의 온기가 자신의 몸 안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맹랑한 꼬마가 있었던가? 우신은 그녀가 끄는 대로 몸을 맡기기로 했다. 채련은 천천히 사람들이 많은 시내로 걸음을 옮겼다. 때론 사람들에게 부딪히기도 하고, 더러운 흙탕물을 밟기도 했지만, 왠지 기분만은 날아갈 듯 꿈속을 거닐 이는 기분이었다. 채련은 여고생이 많은 생과일 집을 향해 손짓을 했다.
“저길 들어가자는 건가?”
“네!”
참 당당한 여자였다. 자신의 성격을 아는 여자라면 쉬이 그러지 못 할 텐데. 우신은 그런 그녀가 싫지 않은 게 더 신기했다. 채련은 우신이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채련은 자신도 모르게 우신에게 자신감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은 조금 무리수가 있지만, 우신을 끌고 생과일집으로 향한 것이었다. 조금 난감해 하더니 우신은 이내 그녀가 끄는 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키위쥬스를 앞에 놓고는 서먹히 앉아있었다. 우신은 자신이 타고 있는 이 그네에 앉아 있는 게 정말 자기 자신인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기자기한 가게나, 가게 안을 꽉 메우고 있는 여고생들의 수다소리나, 어느 것 하나 자신과 맞는 공통분모가 없는데 왜 자신이 여길 이렇게 앉아 있는 건지,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이게 원하는 거였어?”
“나랑 아니면 아저씨 이런 곳 올 일이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다른 여자와 했던 것,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어요.”
예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채련은 쪼-옥 소리를 내며 스트로우를 빨며 말했다. 우신은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일어났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깐 기다려.”
의아해 하는 채련을 내버려 둔 채 우신은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인근에 있는 전자제품점에 들러 최신형 MP3를 샀다. 낡은 그녀의 MP3가 맘에 걸렸던 그였다. 우신은 자신이 그녀에게 무언가 사줄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게 갑자기 고맙게 느껴졌다. 한번도 돈을 제대로 썼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했던 그였지만, 오늘은 뜻 깊게 쓴 기분이었다. 우신은 생과일전문점에 들어가기 전 작은 케이크와 장미꽃 한 다발을 샀다. 낯간지러운 일이었지만, 이 정도는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깨우쳐준 값이라고 생각해도 좋다고 우신은 자기 자신을 정당화 시키고 있었다. 우신이 커다란 장미꽃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여고생 몇 명이 우신을 쳐다보며 야유의 목소리를 내었다.
‘여고생이 많았다 는걸 깜박했군.’
변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채련의 생일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우신은 꽃다발을 채련에게 내밀었다. 채련은 그런 우신과 꽃다발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눈물이 가득 고이며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채련의 눈물에 우신은 가슴속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우신은 케이크를 꺼내어 초를 켰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에게 경험하지 못한걸 일깨워 주기 전에 네 생일이 먼저지 않을까 싶어서.”
우신 자신이 생각해도 낯간지러운 대사였지만, 안에 있던 여고생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채련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초를 끄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진심어린 박수소리였다. 여태껏 우신이 간 고급 레스토랑 어디에서도 이렇게 진심어린 박수를 내 보인 곳은 없었다. 우신은 채련이 초를 끄기를 기다렸다가, 안주머니에서 새로 산 MP3를 꺼내었다.
“필요할 것 같아서…….”
멋쩍게 내민 그의 선물을 채련이 받아들며 한동안 잡고 있었다. 포장지 사이로 채련의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채련은 선물을 풀었다. 최신형 MP3였다. 채련은 그 MP3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가 준 고급선물이 좋은 게 아니었다. 돈 봉투가 아닌 그의 진심이 어린 선물을 받았다는 게 더 감격스러웠다. 채련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고장 나서 쓰지 못할 때 까지 늙어 죽을 때 까지 간직할게요. 흑.”
“울지 말라고.”
이번에도 채련은 우신이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기 전, 재킷에 눈물을 닦아버렸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보이는 우신이었다.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누가 이렇게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꼬마 계집아이에게 빠지지 않겠는가? 우신은 채련을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와 있는 시간은 참으로 금방이었다. 우신은 채련을 집 앞으로 데려다 주면서도 시간이 너무 빨 리가 혹시 시계가 고장 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채련은 들어가기 전 우신을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은혜합니다.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말을 남긴 채 부끄러운 듯 쏙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채련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우신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가 퍼지고 있었다.
“어머님이 주선하신 이유가 이것인가?”
우신은 뒤돌아 걸으면서도 다시 그녀의 집 앞에 가고 싶고,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신은 어머님이 왜 그녀를 자신의 짝으로 점지하셨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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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눌러주시고, 허접한 제 글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분 한분 리플 제때 못달아 드려서 죄송해요.
일단 제목 색깔 안보이신다길래 바꿨는데.(더 안보이는 것 같은...)ㅋㅋㅋ
그래도 이쁘게 봐주시구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춥네요. 어제 정말 추워서 죽는줄 알았는데 아마 몇일동안은 계속 추울꺼라고 하네요.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