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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강-36

삶의이유 |2005.02.28 05:24
조회 237 |추천 0

애증의강-36

 

아침부터 비둘기들이 창가에 모이기 시작했다.

방안의 누군가가 밤새 먹다 남긴 보리밥 덩어리를 창가에 뿌려둔 까닭이었다.

마치 우량아 선발 대회라도 하듯 저마다 포동포동한 비둘기들이 밥알 알갱이를 하나라도 더 쪼기 위해서 연신 머리를 위로 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발에 실로 꼬아만든 끈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

아마도 무료에 지친 어느 제소자가 비둘기를 잡으려고 덫을 만들었다가 실패해서 긴 끈을 어쩌질 못하고 아직도 달고 다닌듯해 보였다.

그도그럴것이 끈은 제법 낡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좁은 방안 가득 햇살이 쉴새없이 밀려들어왔다.

방안 사람들 저마다 졸리운 눈을 억지로 치켜세운듯 반쯤만 뜨인 눈으로 방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교도관의 순시가 있을 터였고 또 어김없이 아침배식이 있을것이었다.

 눈치빠른 죄수는 그 짤막한 틈을 타서 세수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제법 약삭빠르게 행동하였지만 그럴때마다 온갖 욕설을 듣는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오늘 선고 공판이지?]

[네]

[기분 어때?]

[머가요?]

[나갈꺼 같아?]

[.....]

지영은 말을 할수없었다.

대부분의 출감하는 사람들은 좋은 꿈을 꾼다거나, 그 전날 변호인 또는 가족이 미리와서 결과가 어찌 될것인지를 인지시켜 주는 까닭에 홍조를 띤 얼굴을 감추질 못했었는데, 지영은 꿈을 꾸지도 않았고 더욱이 가족 혹은 친구들 누구하나 면회오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름데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했어요. 결과를 기다려 볼 수 밖에요.]

[그래, 어찌되었던 용기 잃지말고 맘 굳게 먹어라.]

항상 방장은 따듯하게 말을 하였다. 길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데로 절제된 짧은 언어가 이 방 사람들 다수를 누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난 최선을 다했어. 더 이상 어쩔 방법이 내겐 없다.]

지영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처럼 김치국이 찬으로 나왔다.

김치국이라고 해야 시장통에서 굴러다니는 배추에 고추장인지 고추가루인지를 살짝 뿌려놓은 것을 물에 끌인 것처럼 보였지만, 일주일에 세 네번을 미역국으로 연명하다보니 제법 근사한 진수성찬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또다시 철문이 열렸다.

1심때와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깨끗하게 닦여진 흰 고무신과 잘 다듬어진 흰색 수의..

아침일찍 가장먼저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나름데로 귀빈 대접을 받는 유일한 날이며 시간이기도 했다.

평소 어렵게만 여겨지던 교도관들도 이렇게 선고공판이 있는 날이면 입가에 번져진 미소를 한껏 뽐내기라도 하듯 제소자에게 쏟아부어 내고 있었다.

아마도 제소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최대한 편하게 해 주려는 나름의 배려일런지도 몰랐다.

유리와 철망으로 둘려진 호송차나 앞 뒤로 빼곡하게 둘러쌓여진 죄수들과 죄수의 숫자만큼 혹은 조금 모자란 숫자만큼 제복을 입고앉은 교도관과 경교대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둘씩 낯익어 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선고 공판이 이어지고 더러는 이곳에서 풀려나가기도 하고 또 더러는 다른 곳으로 이감을 가기도 했다.

제소자들은 차에 오르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가벼운 목례조차도 없이 서로 창가에 앉기 위해 무언의 눈싸움을 벌이기 바쁜 까닭이었다.

한동안 여자의 생김새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쏟아져 들어오는 도시의 공기가 너무도 달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말을 할 틈이 없는 거였다.

이따금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제법 앙증맞게 걷기라도 할 라 치면 어느센가 조용조용 눈길이 모여기지 시작했다. 그럴때마다 버스의 안쪽에 앉은 제소자들은 창밖을 보기 위해 몸을 창쪽으로 바짝 가져가 보았지만, 철망과 철망의 좁은 간격과 짙게 썬팅이 되어버린 버스인지라 쉽사리 밖을 구경하는 것은 녹녹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인지라 창가는 언제나 최고의 귀빈석이었고, 서로 창가를 차지하려는 통에 말을 할 겨를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거였다.

지영은 맨 앞자리 창가에 앉았다.

호송차가운데 최고의 명당 자리였다.

옆과는 달리 앞은 운전사의 시야 확보 때문인지 선팅조차 되지 않았던 까닭에 거리의 풍경이 가장 많이 눈으로 들어오는 명당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 선고지?]

[네]

[좋은 꿈 꿨어?]

[아니요? 그냥 잤어요.]

[지금 기분은 어때?]

[뭐 별다르지 않아여 똑같아요]

금테를 두른 교도관주임이 지영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건네왔다.

일전에 쪽지를 돌려주었던 교도관이어서인지 지영은 제법 밝은 표정을 대답을 하고 있었다.

굴비처럼 묶여진 끈이 풀어진 것은 선고를 받기위해 대기하는 대기실에서였다.

먼저 선고를 받은 사람은 또다시 차례로 묶이는 것이었지만 불과 몇분의 그 시간은 참으로 달콤하기 짝이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달콤함은 체 5분도 넘기지 못하였다.

첫번째 죄수가 법정 한가운데 서고 뭐라 바쁘게 말하는 주심 판사는 단호하게 사형이라는 두 음절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았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말도 없이 덤덤하였지만 이렇게 사형의 선고가 있고나면 교도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몇번을 더 꽁꽁 묶기도 했고 쇠팔지가 아닌, 가죽 만들어진 수갑을 채운후 가장 먼저 호송차에 올려 태워졌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제소자들도 더 이상 담 밖의 사회 공기가 어쩌고 저쩌고 나불댈 수 없었고 무거운 정적과 침묵이 한차례 지나가고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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