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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못난이 |2005.03.01 01:25
조회 506 |추천 0

어떤분의 글을 읽고 새삼스레 제 일이 생각이 나네요...

참으로 많이 아파하고 울기도 많이 했던 지난 5년간의 저한테 일어났던 일들...

5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죠...많이도 힘들었고...

 

21살때 우연하게 그 사람을 처음 보았죠.

소개 아닌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그사람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죠.

그래서 좀더 친해졌고 나보다 두살이 더 많은 그사람은 정말이지 잘해주었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결혼한 형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그는 생활력도 강했었고,마음 씀씀이도 정말 착한 사람이였죠...

 

사귄지 석달만에 부모님 제사 때문에 저는 그의 집에 가서 제사 음식도 도와드리고, 형님 애기 돌때면 가서 도와드리고, 청소할때나..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그의 집에가서 제가 할수 있는 모든걸 했습니다...형님과 형수님이 맞벌이를 하시는 분들이라서 그사람이 집안일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어떨때 보면 그는 담배불로인해 구멍이난 바지를 입고 다니고 또 어떨때는 짝이 맞지 않은 양말도 신고 다니고. 더러운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옷 또한 변변한 것이 없었죠....

그런 그사람이 너무나 안스러워 내옷 하나 사는것 보단 그사람 옷하나 사주는것이 더 행복 했었고, 그의 바지를 세탁후 다려서 그가 깔끔하게 입는것을 보는것 조차도 큰 행복이였고, 깨끗하게 빨아서 신고 다니는 하얀 운동화마저도 저에겐 행복이였죠...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그는 서울에서 나는 지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올라갈때 조금만 기다리라고 곧 데리러 온다고 했습니다...남자라고는 그 사람밖에 몰랐던 나였기에 그 말만을 기다리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올라간지 몇달후에 우리는 작은 월세를 얻어서 살게 되었습니다.

작은 건물 윗층에 가건물을 지은 방하나에 부엌 하나가 달랑인 셋방이였지만 우리의 사랑은 더욱 커져갔었고 마냥 행복했습니다. 추운 겨울엔 천장에 이슬이 맺혀도 그걸보면서 행복해 했었고 방 바로 밑에는 술집이여서 새벽에 노랫소리 싸우는 소리 마저도 그저 우리에겐 새로운 것이였고 행복이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주고 출근하기 전에 오래동안 안아주었고, 퇴근 하는 시간이 되면 저녁준비를 하고선 그를 마중 나가고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하게 되었고 내가 할수 있는 일들로 그의 공부를 도왔습니다. 카셋트  테잎에 책을 녹음하고 작은 글씨로 그가 일하면서도 볼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그사람 역시 열심히 공부한결과 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동거 생활을 1년하고 나서 그사람이 발령을 받고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1년후에는 그사람을 꼭 닮은 딸을 낳았고, 작은 전세집도 마련하게 되었고...그저 세상 모두를 얻은것처럼 행복하기만 했었습니다. 그 무엇하나도 부러울것도 없었죠. 그저 그 사람만 내곁에 있는것만으로 행복했었으니까요...

그러다 그 사람은 회사에서 노름 아닌 노름을 하게 되었고 몇백의 돈도 빚지게 되었고, 그때 역시 남자니깐 한번정도는 그러면서 그냥 넘어갔고 그 사람도 맘을 잡고 다시 열심히 살았습니다. 시누이들이 괜한 트집을 부려도 항상 제편이였고, 둘째를 유산했을때도 많이 아파했었던 그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아이를 가져 이번엔 저를 닮은 딸을 낳았고, 결혼생활 3년만에 비록 작고 오래된 아파트지만 내집을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모든게 순조롭게 풀려 갔습니다.

하지만 그게 불행의 시작일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남자들이 형편이 나아지면 눈을 돌린다고들 하지요...

그사람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엔 단순하게 그냥 혼자서 하다가 나중엔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을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저의 행복은 여기까지밖에 안되었나봅니다...

그렇게 얼마정도 시간이 흐르고 그는 저에게 하나하나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고 안계시지만 친정 오빠가 급히 20만원이 필요하다고 빌려 달라고 했었죠. 우리는 그돈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수 있었기에 빌려주고 싶었지만 그때 그사람의 한마디는 아직도 제 가슴속에 뼈저리게 아픈 상처로 있습니다.

"돈 나올 구멍을 보고 빌려줘야지. 빌려주지 마! " 단호하게 하더군요...

전 돈이 없어서 안된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고, 안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덮어쓰고 엎드린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고 또 울었죠. 그 이후에도 그사람은 살빼라고 구박도 하고 친정조카를 데리고 있던 터라 전 조카마저 나가서 혼자 자취하라고 하며 내보냈습니다...그렇게라도 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잡고 싶었죠. 주위사람들과 술도 같이 마시며 그에게 맘터놓고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그는 술주정 한다며 싫어했었고, 멜을 보내도 귀찮다면 보내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저 한사람만 바라보며 살아오던 저는 친정에 이야기도 못하고 속가슴만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정 식구들이 큰오빠가 서울병원에 입원하셔서 저희집에 며칠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사람이 출근하고 나서 물으시더군요...

"저 사람이 너한테 대하는거 보니깐 많이 달라졌네..먼일 있냐?...널 보는 눈도 못마땅해하는 눈친데 너 괜찮니?" 그렇게 말씀 하시는데..그저 아무일 없다고 말하고 웃어 버렸습니다. 친정 식구들은 그 사람 눈치를 보며 집에 내려갔고, 돈 20만원을 빌려주지 못한 저는 죄책감에 이틀에 한번씩 오빠 병원에 갔습니다. 오빠는 위독한 상태라서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에 의존만 하고 있었던 터라...가서 얼굴 보고 오는 것으로라도 그런 죄책감을 덜고 싶었죠...그런 저를 그 사람이 "뭐하러 그렇게 자주 가냐?" 면서 화를 내더군요...그렇게 몇일이 지나고, 결단을 내렸죠. 겁을 줘야겠다고 애들을 놔두고 집을 나가면 아마도 찾아오겠지 하고...하지만 그건 저의 커다란 오해였습니다... 그는 제가 집을 나가자 말자 30분도 채 안되어서 카드며 모든것을 다 분실 신고를 내었습니다. 친정에갈 차비 마저도 없이 저는 언니 한테 전화해서 차비를 구했고 언니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정에 전화해서 저를 포기한다고 맘데로 하라고 그러더라고 어떻게 된일이냐며 친정식구들이 묻더군요,,,

여태 싸움 한번 하지않고 행복하게 사는줄로만 알았는데 어떻게 된거냐면서...

그사람은 저를 데리러 오지도 않았고 같이 살 마음 조차도 없이 집마저 팔아서 자기 누나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갈 준비를 했고, 오빠는 입원한지 한달만에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조금 조차도 하지 않았고 모든걸 저의 잘못으로 돌렸죠. 오로지 집을 나간 내 잘못이니깐, 자기 형이 재수씨를 데리러 가라고 해서 왔다고 하면서 앞으로 잘하라고...그리고 누나들이 사는곳으로 아파트를 다시 샀다고,,,

부모님 가슴에 더이상 상처를 주기 싫어서 그 사람을 따라서 그곳으로 갔고...거기서 또다시 한번 참고 살자고 스스로 다짐 했었죠. 애들만 바라보면서 살자고 마음 먹었으니까요... 그의 큰누나는 저를 아주 나쁜여자 취급하면서 집에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고 보기 싫다고 외면해 버리더군요... 누나들이 두명,,,여동생한명..그렇게 세명의 시누이들이 곁에 사는 그곳으로 이사간후 저는 홧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그 동호회를 다니고 죽어도 여자는 없다고 하면서도 저한테는 차갑게 대하고 믿고 의지할곳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사하면서 그러더군요. 당분간 친정이랑은 연락하지 말고 살라고...그래서 알았다고 했죠,,,내 가정이 우선이였기에... 그래서 이사후에도 거의 6개월동안 친정에 전화연락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사람은 더해갔고, 저는 베란다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뛰어내리고도 싶었고 하늘도 훨훨 날고도 싶었습니다. 그는 잠도 거실에서 자고 저는 안방에서 자고 그러다가 잠자리가 생각나면 새벽에 자다가 안방에 와서 하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 관계를 요구했고 혼자 느끼고 나면 그냥 나가서 씻고 거실로 가버리곤 했죠. 그런 것도 한달에 한두번정도...여자라면 그맘 아시겠죠...마치 창녀가된것 같은기분...그렇게 6개월이 흘러도 그는 변하지 않았고 제가 자는 시간에 혼자 찜질방 간다면서 나가곤하더군여...결국 저는 또 한번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나를,,,단지 애들 때문에 살고 있는 그사람이 무척 안스러웠고 안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놓아주기로 했죠,,, 전업주부로 십여년을 살아온 저는 할줄 아는건 살림밖에 없던 터라 위자료도 받지않고 애들은 월급도 꽤 많이 받는 그에게 맡기는게 애들을 위해서,,,자리 잡힌 아빠곁에 있어야 애들이 돈만큼은 구애받지 않고 살것 같았기에...전 진짜 몸만 나왔습니다...합의이혼하자는 말에 그는 선뜻 받아들였고...죽어도 여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헤어지는 만큼 서로 뒤에서 욕하지 말자고...이혼하고 차비로 50만원을 올려놓고 그는 없더군요...십여년을 살아온 저의 짐은 사계절옷을 다해서 가방,신발 다 포함해서 작은 박스 네개...참으로 허탈하더군요,...그저 가족 밖에 모르며 그렇게 살아온 십여년의 흔적이 겨우 박스 몇개...나오기 전날 딸들을 안고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랑 아빠랑 많이 좋아하다가 이제 엄마랑 아빠랑 안좋아하게 되어서 같이 못산다고...큰딸이 그러더군요...자기 사진을 가져다 주면서..."엄마 그럼 우리 이다음에 다시 만나자" 그러면서 저를 달래주더군요...그동안 아빠 때문에 많이도 울었던 저를 본 아이라서 그런지...이해를 하더군요...가슴 찢어지는 아픔을...가슴깊이 간직하면서 뒤돌아서서 나오는 그날,,,다짐 했습니다..절대 쓰러지지 않고 기필코 일어서리라...그래서 너희들을 찾아오리라...그렇게 저는 이혼을 하고 50만원을 가지고 월세를 얻었습니다. 이혼한 저를 부모님이 보시면 더 아파 하실까봐,,,그리고 저또한 부모님 곁에 있으면 약해질까봐...더구나 막내로 자라면서 귀여움만 받던 저라서 부모님께 기대게 될까봐...고향에 가지 않고 월세를 얻었습니다. 방을 얻기전에 결혼한 친구집에서 지냈고 방을 구한후에 저는 무엇이든지 할 각오로 일을 찾아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리 만만하지 않은 세상이라서 판매직을 할려니 보증인이 있어야 하고 식당을 가니 덩치가 작아서 일을 못할거 같다고 시켜 주지 않더군요...

결국 공장에 갔고 가는곳 마다 경기가 어려워서 몇일 일하고는 휴가를 주거나 몇일 일하고 한달 무급 휴가를 주고 그러더군요...결국 한달 동안 겨우 일하면서 애들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밤마도 울며 그리워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한달에 두번 겨우 놀고 받은 월급이 90만원 몸은 부어서 아프고 혈압또한 180까지 올라가고 홧병도 다 낫지 안은 상태라 몸은 거의 망가질 때로 망가져서 링겔을 맞을수 밖에 없었고, 쉽게 잠을 이룰수 없어서 신경안정제 까지 병원에서 처방해서 먹고 잠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한달 반후에 아는 사람이 전해주더군요... 그 사람이 여자를 인사시키러 온다는 소문이 나더라고...

결국 그는 이혼 두달만에 두살위인 아들까지 있는 여자와 재혼을 하고 저는 빚지워놓고 이혼도 안하고 바람나서 도망가버린 나쁜년으로 몰렸습니다...저를 잘 아시는 시댁 친척분이 기가 막힌다고 하면서 저에게 그런 말들을 해주시더군요.

깨끗하게 이혼한 만큼 뒤에서 욕하지 말자고 하더니...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전 지금 몸이 많이 안좋아서 결국은 고향에 내려와서 오빠 일을 도와주면서 친정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듯...그렇게 사랑하면서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부라도...

뒤돌아서면 남보다도 더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게...지금 우리 현실인듯 합니다...산다는거...참으로...식상하다는것...

하지만,,,그 사람이 미움 마음도 있지만,,,미운 만큼 그 사람이 잘 살기 바랄뿐입니다.... 왜냐면...아이의 아빠니깐요...그 사람이 잘 살아야...아이들이 행복할수 있을테니까요... 아프고 상처 받는건 저 하나면 되니까요,.,,

지금도 제 가슴속 깊은 곳에...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무거운 바윗덩이가 되어 한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랑도 둘이 좋을때 사랑이지...헤어지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것 또한 사랑이라 봅니다...첨엔 그 시간들이 기억속에 지워지길 바라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아픈 추억으로 라도 남아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그당시 잘했다고는 말할수 없기에...

그리고 어느 누구든 잘못은 둘다 똑같이 있다고 봅니다...

어느 한쪽이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어느 한쪽만 잘못이 있는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3년을 다시 돌아오길 바라던 그사람과의 십여년 사랑이 끝났습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그 상처 때문에 괴로워 하지만...

또 다시 사랑이란걸 찾게 됩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그 사랑을 알아서 다시한번 찾게 되고...

하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랑이 궁금해서 찾게 되고...

그저 사랑하는 동안 만큼은 이별후에도 후회하지 않을수 있게...

내가 해줄수 있는만큼 해주는것이 사랑이라고 봅니다...

 

이젠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저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은 늘 그대로이지만...

이혼한거에 대해서는 후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연이 여기 까지밖에 안되니까요...

그사람에게 한마디 하고 싶네요...

같이 했던 시간 참으로 많이 행복했었고,,,많이 사랑했었다고...

부디 행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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