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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러브송 < 33 >

나비 |2005.03.11 01:19
조회 4,096 |추천 0


33


[새해가 되는 순간 같이 있을 수 있지?]


윤섭 오빠의 문자였다. 오늘은 26살 마지막 날이었다.


‘물론이지. 물론! 오빠랑 새해맞이는 당연한 거 아니야?’


하지만 마음속과는 달리 손은 내 이성을 따르고 있었다.


[글쎄. 좀 더 보자. 엄마가 아직 허락을 안 하셨어.]


100% 거짓말은 아니었다. 엄마는 새해가 되는 순간은 가족과 같이 보내야 한다고, 밖에서 보내게 되면 일년 내내 일이 순조롭지 않을 거라고 집에 일찍 들어올 것을 신신당부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윤섭 오빠와 신년을 맞는 것이 네게는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그와 사귀게 됐다고 해도 내가 그에게 푹 빠져 있다고 해도 튕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잊지 않는 것뿐이었다. 28일 첫 키스 이후에 오빠는 내게 새해는 꼭 같이 맞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난 새해는 늘 가족과 함께 보내왔다며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말로 확답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예상대로 오빠는 무척 아쉬워했고, 당일이 되자 아침부터 문자를 보낸 온 것이었다.


[언제 알 수 있는데? 부담된다면 그냥 집에 있을래?]


이것은 나와의 새해맞이를 포기한다는 말? 희망을 가질 여지는 주어야지.


[가능할 것 같아. 조그만 기다려봐.]


회사에 출근해서도 오빠는 계속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며 애타 했다.


[좋은 데라도 예약 했어?]

[네 말대로 바이올린 연주 하는 곳]


평소 현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나는 취미가 맞는 친구도 없고 해서 직접 들을 기회는 좀처럼 없었는데 내 말을 들은 오빠가 직접 연주를 하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말 세심한 배려에 감격해 마음이 뜨거워졌다.


[진짜야? 너무 좋다. 사랑해!]


문자를 입력하던 손을 멈추었다.


‘아니지. ’사랑해‘ 는. ’사랑해‘ 는 아직 일러. 너무 낯간지럽기도 하고.’


[진짜? 너무 좋다. 고마워. 이따 봐. 쪽!]


우리는 예정된 시간에 만나 근사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레스토랑을 나서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어디가나 사람들이 붐볐지만 그런 들썩거리는 분위기 속에 팔짱을 꼭 끼고 거니는 기분이 싫지는 않아서 산책하듯 걷다가 보드 게임방에서 게임을 하고 나오니 그럭저럭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어디 가지?”


29일부터 말을 놓기로 한 윤섭 오빠가 물었다.


“글쎄. 멀리는 못가고 그렇다고 시내는 싫고. 남산?”

“문희 너도 남산 좋니? 나야 좋지만.”

“나두 좋아. 오빠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지.”

“좋다! 남산 콜!”


우리는 여태껏 남산을 찾은 것 중 가장 좋은 기분으로 남산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안에서 오빠는 “문희야, 새해를 맞는 순간 너와 키스 중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서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수줍어하며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기에 급급하였다.

드디어 남산에 도착. 차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연하장을 건네고 보니 벌써 11시 46분이었다. 새해가 밝기 까지 14분. 이제 14분 후면 오빠와 난 키스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예정된 키스. 예정된 키스라니 마음이 떨리고 있었다. 다른 날은 아니어도 매년 새해가 밝아올 때 키스를 하기로 예정이 되어있다면 일 년 전에도, 육 개월 전에도, 4개월 12일 3시간이 전에도 미리 알 수 있으리라. 그것은 생일이 1년에 한 번씩 반복된다는 것보다는 100배 이상 즐거운 일이 될 것이었다.

시간은 흘러 11시 51분. 키스하기 9분전이었다. 이미 내게는 새해보다는 키스를 할 시간의 의미가 더 컸다. 호흡이 점차 빨라지는 것 같아 괜스레 시선을 밖에다 두었다.


“희야! 무슨 생각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윤섭 오빠가 말을 꺼냈다.


“어? 음. 아무 생각 안 해. 오빠는 무슨 생각했어?”

“나는 네 생각.”

“내 생각 뭐?”


그는 질문에 답변 대신 조용히 내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왔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입이 나의 입을 향해 왔고, 결국 우리 입은 맞닿았다.


‘아직 9분전인데. 그럼 10분 넘게 키스를 해야 한다는 거잖아.’


그의 혀가 반쯤 입으로 들어왔다. 첫 키스 이후로 그와 입맞춤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오늘따라 그 느낌은 달랐다. 여느 때보다도 조용한 키스라는 느낌이었다. 심장은 여전과 다름없이 힘차게 뛰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로로 기분은 점차 차분해지고 있었다.

그의 혀가 내 입술을 약하게 한 번 핥았다. 그리고 한 번 더. 그 다음은 다시 입 속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숨도 쉬어서는 안 될 것처럼 조용한 움직임, 분위기. 그런데 머리가 바짝 서버릴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이걸 전율을 느낀다고 하는 걸까?

그의 입이 나의 목 쪽으로 움직이더니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내게 나만의 체취가 있다는 그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그 체취를 맡고 싶은 듯해 보였다. 목을 간지럽혔던 더운 입술은 천천히 귀로 올라와 귓불을 살짝 물었다.


“사랑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하는 걸까?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알았다고 살짝 고개를 흔들어야하는 걸까? 그게 아니면 분위기를 깨지 않게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조용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랑해주어서 고맙다고, 함께 있어주어 감사하다는 나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그도 내 마음을 알았을 거라 믿는다. 사랑 없이도 키스나 스킨쉽이 가능하다고 해도 내 온 몸이 그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해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상태라 말로 하지 않아도 그가 먼저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땡-!”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음에도 종소리는 분명하게 들렸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응. 오빠두.”


종이 서른 세 번을 울릴 때까지 우리의 입맞춤은 계속 되었다.


“이제 우리 만나지 1년이 지났다.”


‘그렇게 되는 건가? 하긴 틀린 말도 아니지. 12월에 태어난 아기는 1월에 두 살이 된다니까.’


한국식 나이 계산법에는 평소 불만이 있던 나였지만 틀린 말을 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만난지 1년 고마워. 1년 동안 내 곁에 있어주어서.”


나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1년이나 만났으니 좀 더 과감하게 해도 괜찮겠지?”


그의 손이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요함마저 느끼게 했던 그의 움직임은 갑자기 빨라져 막을 틈도 없이 나의 겉옷 단추를 하나 풀려내고는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피부에 직접 닿는 것은 아니어서 상대가 무안하게 물리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의 키스도 점점 더 거세져 나의 입술을 빨고 내 혀를 삼키고 있었다. 좋고 나쁘다는 느낌이 아니라 갑자기 돌변한 그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하는 생각뿐이었다. 이러다가 차안에서, 혹시? 그런 건 싫었다. 지금 나의 마음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첫 섹스를, 내 생애 최초의 섹스를 차에서 치루게 되는 것은 싫었던 것이다.


“오빠, 잠깐만.”

“문희야! 네가 좋아서 그래.”


그는 목소리마저 다급했다.


“잠, 잠깐만.”

“······.”

“오빠, 나 처음이거든. 그래서 그래.”


그는 놀란 듯 내게서 몸을 멀리했다. 그리고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진실을 말하는지 확인하겠는 듯 냉엄함 눈초리로 내 눈을 응시했다.


“진짜야?”

“······.”


이런 의심을 받다니. 하긴 채련이도 믿지 않았던 일이다. 그간 변변찮은 놈들만 만난 내  잘못이 크긴 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내가 정상인데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너 진짜구나! 이런 귀여운 것!”


오빠는 갑자기 날 감싸 안았다. 마치 어린 애를 안 듯 자신의 품에 폭.


‘오빠도 남자군. 남자야. 숫처녀 만나서 신났군 그래.’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한 편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래서 솔직히 말을 하지 않을까도 고민했었다. 오빠는 기분이 정말 좋은지 귀에 입을 걸어놓은 듯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워 난 괜스레 화까지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만약에 아니었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어?’


“오빠는?”

“뭐가?”

“오빠는 처음이냐고?”

“내 나이가 몇인데 어떻게 처음이야?”

“나이가 많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 오빠 결혼한 적 있어?”

“아니. 총각이지 무슨 소리야.”

“총각인데 그런 경험은 왜 있는 건데?”

“그건······.”

“그건 뭐?”

“너 화났니?”


화가 안 났다고는 볼 수 없지만 예상치 못했던 일도 아니었기에 마음이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건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오늘은 새해 첫 날이었고, 그에 대한 지금 내 마음은 내가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격해있었다. 지금 기분으로는 화해를 하고난 후 다시 그가 무드를 잡아오면 난 그를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몰라. 집에 가자.”

“화 난 거야?”

“아니야. 새해맞이 했으니 집에 가야지. 나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야.”


난 가방 속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부재중 3통.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내용의 문자도 상당했지만 3통의 전화는 모두 집이었다. 엄마가 전화를 할 것을 알고 전화벨은 무음으로 해놓은 상태라 벨은 울리지 않았었다.


“이거 봐. 엄마야. 전화를 세통이나 했잖아.”

“알았어. 가자 가.”


그는 내 눈치를 살피다 엄마 이야기가 나오자 얼른 안전벨트를 맸다. 차가 출발한 후에 난 기어를 얹어있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너 화 안 났구나! 와하. 다행이다. 난 정말 네가 화난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

“몰라! 화났어. 그런 말 듣고 화 안 나면 비정상 아니야? 정말 문란한 세상이라니까!”

“미안해. 대신 평생 바람 안 필게. 그럼 안 될까?”


그의 눈이 귀엽게 찡그러졌다. 당장 그를 용서를 하기는 힘든 일이겠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용서를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왜 귀여운 척을 해? 안 어울리게.”

“귀여웠어? 한 번 더 할까?”


‘정말 나이 값 못하게 귀여운 아저씨란 말이야.’


그를 만난 지 하루가 지나고 있었고, 그의 대한 내 마음은 하루만큼 더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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