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말랑말랑 러브송 < 34 >

나비 |2005.03.11 01:24
조회 3,150 |추천 0

34


“오늘 못 온다고? 토요일인데 얼굴 못 보면 어떻게 해?”


그가 없는 26년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억의 저편에 묻혀버린 듯 했다. 평소 바쁜 그를 주말에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팔꿈치를 책상에 부딪칠 때보다도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를 볼 수 있다면 그런 고통쯤 열 번도 당할 수 있다.


- 미안해. 아무래도 촬영이 늦게 끝나겠어.

“일요일은?”

- 일요일에 올라가서 보자. 그런데 저녁에 만나야 할 걸.

“일요일 저녁이라고? 싫어. 싫어. 남들 다 데이트 하는 주말을 혼자 보내란 말이야. 평일도 바쁘고 주말도 바쁘고 너무한다.”

- 그럼 네가 올래?

“내가?”

- 저녁에 버스 타고 오면 될 거야. 촬영은 10시쯤 끝날 것 같으니까 밤에 볼 수 있잖아. 밤에 같이 서울 올라오자. 내 차로.

“어디라고 했지?”

- 안동. 올 거야?

“글쎄.”

- 나 지금 촬영 들어가야 돼. 어떻게 할래? 역시 무리겠지?

“음. 알았어! 갈게.”

- 진짜? 야호! 그럼 조심히 와! 난 촬영 들어간다!


그가 있는 곳으로 내가 간다. 불면의 밤을 만들 그리움을 없앨 방법은 그에게 달려가는 것 외에는 없으니. 평소 좋아하는 유명 브랜드를 70% 할인해주는 매장과 그가 있는 안동을 택하라고 해도 주저 없이 그를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그에 대한 이끌림은 무엇보다도 강했다. 그렇게 오후 8시 30분, 안동으로 향하는 막차에 몸을 실었다.


막차라는 점과 주말이라는 점 때문인지 버스엔 승객이 많았다. 창가 쪽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내 자리는 통로자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여자라는 점이었다. 대략 20살에서 21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눈은 감은 채여서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나이는 어린 것 같은데 앳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느낌으로 설명하자면 5살의 나이를 한꺼번에 삼킨 듯한 모습? 20살 때 5살의 나이를 한 번에 먹어서 겉은 21살인데 속은 25살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기괴한 느낌을 주는 여성이었다.


***


나연의 소망 (나연의 이야기)



······ 자살을 하는 ······, 이 경우에는 본인이 해학이나 익살의 멋을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을 트럼프에 비유한다면, 나쁜 패를 잡고도 태연하게 웃어넘기는 익숙한 도박사처럼 자신의 상황을 웃어넘기지 못하고, 자기에게 나쁜 패가 돌아오면 화가 나서 더 이상 승부를 계속하기가 싫어서 패를 던져 버리고 게임을 망쳐버리는 것과 흡사하다.

- 쇼팬하우어 인생론 中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심장이 파열되어도 좋고, 갑자기 코피가 흘러 이 버스 안이 흥건해질 때까지 내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서 피가 모자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제 먹은 것 중 잘 못된 것이 있어서 장기가 다 틀어지고 꼬여서 괴롭게 죽는다 해도 말이야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 분명해!’


나는 지독히도 내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죽을 용기는 없었으므로 죽음이 우연히 내게 찾아오기를 바랐다. 고통에 대해서는 굉장한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내게 찾아오는 죽음은 고통이 없이 순간적으로 내 목숨을 앗아갔으면 했다. 평소 예감이라는 것을 광신하는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 죽음이 내게 찾아올지 예감하기 위해서.

덜덜덜. 차의 시동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차에 오르는 소리도 들렸다. 여자 아나운서가 교통안내를 해주는 목소리도 들렸고, 누군가 비닐을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마도 음료수를 꺼내는 모양이겠지. 그렇게 조용히 눈감고 마음을 가라앉혀 보았지만 죽음의 예감은 절대 들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은 내가 죽지 않을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앉은 한 여자를 보았다. 까만 머리를 늘어뜨리고, 요즘 유행을 최대한 따라한 듯한 여자였다. 화장에 옷까지. 텔레비전을 지독히도 많이 보는 여자. 그리고 인생의 교과서로 삼는 그런 류의 여자.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 여자를 눈에 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차가 출발하고 곧 고향을 두 발로 밟게 될 것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몹쓸 그리움이 몰려들었다. 노트와 펜을 꺼내들까 했지만 참기로 했다. 괜히 별난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의 첫 사랑 영규와 헤어진 후 난 지독한 그리움에 시달려야 했다. 연인과 헤어진 후엔 보통 사람들이 흥분상태에 빠지기 쉽고,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면 한 트럭은 넘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 그들의 말은 아주 짧게 요약 되며 요약된 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가만두지 않았어, 꼭 복수하고 말거야. 배신을 당했을 때 이런 반응이 나오기 쉽다. 둘째, 잘 살겠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줄 거야. 전화위복으로 삼으려 하는 이 경우는 복수의 변형형으로 보여 진다. 본인은 정작 인식하지 못할지 모르나 소극적 복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셋째, 잊자, 잊어. 백지형. 헤어짐을 미리 예견했을 경우에 나오기 쉬운 반응이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날 보고 싶어. 다시 널 만나고 싶다. 지독한 그리움 형.


난 영민이와의 헤어짐을 정확히 보름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고, 그 예감은 무섭게도 적중했다. 그렇게 따지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도, 실제로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도 난 가장 바보스런 네 번째 유형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첫사랑이여서 그럴 거야, 냉정히 마음을 다스려도 그리움은 조금도 지칠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에 대한 그리움이 평정심을 무너뜨리고 불안감을 가중시켜 단순한 일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생활에 꽤 지장을 주는 일이어서 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가 생각날 때 마다 가장 쓰기 싫어하는 싸구려 볼펜을 꺼내들고 노트를 펼쳐서 그의 이름을 적기로 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지루한 작업이었다. 15분 정도 쓰다보면 반복적인 행위가 주는 무료함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그래도 아직 그의 생각이 나고 있다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써 나간다. 그의 생각이 날 때마다 지겨운 작업을 함으로서 무의식적으로 그의 생각이 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그 방법을 생각해낸 처음에 한 가지 사소한 걱정이 있었다. 노트와 볼펜이 많이 사용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미리 노트 세권과 준비하고 많은 볼펜을 꺼내놓고 달력 뒷장에 낙서를 하며 두 번째로 마음에 들지 않는 볼펜도 골라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헛되게도 단 3일 만에 노트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는데 노트에 적는 일이 싫어져 그를 생각하기를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이 잠시 나다가도 노트를 생각해내고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다른 일에 몰두 할 수 있었다.

단 3일 만에!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꽤 씁쓸하기도 했다. 그의 대한 나의 마음이 얄팍했음이 너무 적나라하게 증명이 된 것이 못내 씁쓸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고로 난 그다지 할 일은 없는 셈이었다. 그런 무방비 상태를 일부러 틈탄 듯 그에 대한 그리움이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나의 손은 그의 손의 감촉을 기억해냈고, 나의 머리는 그와 함께 거닐던 장소를 기억해냈다. 가슴은 그의 생각에 요동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여자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난 노트를 꺼내기로 했다. 하지만 펼친 노트에 내가 적은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죽고 싶다” 란 네 글자였다. “정말?” 하고 난 노트에 되물어 썼다.


난 정말 죽고 싶었다. 내 곁을 떠난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날 배신한 것도 아니었고, 그가 떠날 것을 모른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매너 있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내게 “시간을 줘, 한달 만.” 하고 말했지만 그 때 난 우리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잘 지내.” 난 그에게 말했다. 그는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곧 내가 이별을 고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날 잡지 않았고, 나도 그를 잡지 않았다. 시시하게 시작된 첫사랑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내가 죽고 싶은 건 그 일 이후에 살아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아니 산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동기로 생긴 죽음에 대한 욕구이므로 스스로 죽어야겠다는 의지가 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죽음이 조만간 내게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가 내게 자연스레 찾아와 주길. 다음 사랑 대신 죽음이 찾아와 주길.


“지금이 몇 시야?”


옆의 여자의 질문에 눈을 뜨고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옆의 여자는 벌써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혼잣말에 속은 것이었다. 핸드폰을 보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걸리지 않는 내 전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 수 없는 내 핸드폰. 내 전화는 보름 전부터 발신 금지 상태였다.


그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헤어지기까지 보름 동안 나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예감이 현실이 될까 두려움에 떨기만 했다. 그리고 헤어진 3일 간도 정신이 없는 하루 하루였다. 그렇게 도합 18일을 넋 놓고 있다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 것은 내 빚이었다. 밀린 핸드폰 값, 자취방 월세, 친구에게 빌린 30만원. 생활비는 물론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리 저리 계산을 해보니 당장 200여만원의 돈이 필요했다.


난 며칠 전까지 19살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20살이 되었다. 나이를 이야기 하자면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난 7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한 현재 대학생이다. 작년 그러니까 며칠 전까지 1학년이었고, 새해에 지금은 아직 일학년이지만 몇 개월 후에는 2학년이 될 것이다. 물론 등록을 해야 가능하지만.


원래 집은 서울이 아니고 학교만 서울이다. 주변 친구들은 나를 두고 팔자 좋은 서울 유학생이라고 하지만 나는 작년 한 해 내내 전학생의 기분이었다. 모두 서로를 알고 있는데 나만 생뚱하게 옮겨진 기분.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내게 나가온 것이 동기인 영민이. 그렇게 영민이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뭐 시시한 스토리다. 유학 일년 동안 학점은 엉망이고 남자에게 채이고 빚만 늘었다. 지금은 잃을 것이 더 없다는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이런 이유가 죽음에 대한 갈망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


옆에 여자가 눈 감고 있는 나를 툭툭 건들었다.


“저, 음악 좀 줄이세요. 이어폰이어도 다 들려요.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아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조근 조근한 목소리였다. 핸드폰 일 이후로 귀를 막고 싶어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소리가 컸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까 느꼈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선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차가 여기서 전복되어 모두 죽는다면 우린 함께 죽게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 길을 함께하는 동무.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눈빛을 잊지 않기로 했다. 죽기 전 보는 마지막 눈빛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음에도 그녀는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두렵지 않다는 건방진 눈빛.


‘나랑 같이 죽어줄 수 있어요?’


그녀에게 눈빛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좋아요. 길동무! 대신 저 세상에선 심심하지 않게 해줄게요.’


저 세상엔 재미있는 일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다. 이 세상에선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 모든 즐거움이 날 떠나 버렸고, 나도 떠난 즐거움을 따라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다시 눈을 감고 있는데 버스가 갑자기 차선을 벗어나 이리 저리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마음처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지만 난 눈을 뜨지 않았다. 죽음이 내 곁으로 오려는 걸까?


“왜 그래요?”

“무슨 일입니까? 차가 왜 이렇게 흔들려요?”

“운전수 양반! 운전 똑바로 해요. 조는 거요?”


자신들의 생명이 갉아 먹힐 수도 있음에 흥분한 사람들. 버스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불빛도 없는 깊은 산 속에 멈추어 섰다.


< 다음 편 계속 >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