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벌써 봄이 되가고 있네..
작년 이맘때 였지..
2월말경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서 병원생활 했던게...
암세포 들이 전신으로 퍼지다 못해 머리까지 퍼져서 뇌압이 올라가고 뇌가 부어서
쓰러졌었어..
아빤 그 전날까지도 출근했고..그러기 한달전여부터 부쩍부쩍 말라가고 힘없어 뵈는 아빨 볼때마다
위태위태했건만,,쉬라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하고 그저 아빠 맡은일만 열심히 했어..
병원서 깨어나니 아빤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고
시간이 지나서 날 알아봤을땐 내가 아닌 날 고모로 알아봤고
내 새끼들을 나와 정인이로 알아봤어..
아빤 삼십여년을 거슬러 올라가있기도 하고 또 현실에 있기도 하면서
아빠 자신이 왜 그렇게 됬는지 그냥 암인데 왜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는지 알수 없어 했고
많이 자존심 상해 했어..
그런 아빠를 지켜보면서 내 눈물이 보이면 목멘 내 목소리를 들으면
아빠가 더 힘들어 할까봐
더 맘에 상처가 될까봐 흐르는 눈물 뒤돌아서 쓰윽 하니 닦아내고
아빠가 너무 힘들고 쉬질 못해 그러는거라고 말도 안되는 위로를 했지만
그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걸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 온다는걸
아빠도 알고,나도 알고 그러면서 서로에겐 모르는척 해야 하는게 넘넘 가슴이 아팠어..
얼마전,,인테넷 검색창에 아빠이름을 쳐넣어 보았어..
그랬더니 아빠와 연결된 많은 글들이 뜨더라..
제일 먼저 뜨는건 아빠의 부고...
그 부고안에 엄마이름,,우리 이름들...
아빤 벌써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무슨 광고나 하는것처럼 커다란 사진과 함께 올려진 부고..
인터넷서 아빨 볼수 있다는 신기함보다는 그 화면은 나에게 아빤 여기 없다는 현실만 더 각인시켜 줄뿐이었어..
그리고 몇페이지에 걸쳐 올려진 아빠가 썻던 기사들..
개인 피씨가 보급되기전,,
밤늦게 퇴근한 아빠는 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서재에 앉아서 줄곧 줄담배를 태워가며
기사를 쓰기 바뻣어..
어떨때 자다 일어나 물이라도 먹을라 치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서재의 불빛..
한손에 담배를 든채 여념없이 기사에만 몰두하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
가끔 발이 저린지 손으로 주물러 가며 발가락을 방바닥에 비비면서도 한번도 일어서지 않고
그 긴밤이 다 가도록 기사를 쓰고
행여 시간이 좀남아도 토막잠도 자지 못하고 기사를 팩스로 보내고 다시 출근하는 아빠..
그렇게 쓰여진 아빠의 글을 인터넷서 보니 은근히 화가 나더라..
저 글들이 아빠의 살이고 뼈이고 피인데....저렇게 저 글들은 아무의 인고도 없이 그냥 올려진 글들인것 같아서...아빠에겐 피고 살인데....그렇게 해서 쓰여진 기사들 때문에 또 내가 지금까지 잘살수 있었던건데..그화면에 있는 글들은 그냥 당연히 거기 있는것처럼....아무런 고통의 흔적도 없이.....
저 기사들이 다 우리 아빠인데....그러면서 막 화가 나더라..
시간이 지나면,,어쩌면 인터넷에서 아빠이름을 쳐넣어도 그 화면들이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인쇄를 했네...나 웃기지?
다른길도 많았고 선택의 여지도 많았고 그 선택의 여지에 따라서
좀더 잘먹고 잘살고 폼나게 살수 있었는데도
아빤 오로지 기자만 고집했어..무슨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처럼,,,아빠가 기자하지 않으면 이세상 아무도 할사람이 없는것마냥,,그런것들이 때론 속상하고 이해 안가고 했지만
차츰 내가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아보니까 그런 아빠의 의지들이 넘넘 자랑스럽더라...
겨우 66년을 살다 가면서도
한번도 자식들에게 서운하다 소리,싫은소리 한번 않하고
부모라서 항상 자식에게 베풀고 보듬어 안아줘야 한다고만 생각했는지..
아빤 한번도 아빠의 그 힘든 모든것들을 우리한테 내색한번 하지 않았어..
그렇게 쓰러질 지경까지 왔는데도 그 정도였으면 머리가 터지게 아팠을텐데도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어..
남은 생을 항생제와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아빠의 선택이
가끔씩 원망스러웠지만 오랜 병석에 누워있는 엄마때문에라도 항생제에 찌들어진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고 엄마보다 앞서 가는것도 미안한데 그런모습보여서 남은 생을 우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아빠의 선택을 우린 선택의 여지도 없이 받아들여야 했어..
그 맘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오래오래 수족도 쓰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엄마때문에..
우리 모두 몹쓸말이지만 엄마 먼저 보내고 나야 아빠가 맘편히 준비할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런데 아빠한테 난데없이 암선고가 떨어지고 한가닥 남아있는 ㅅ술마져
오빠의 결혼과 겹쳐서 수술을 미뤘지....아빠 몸보다는 오빠 결혼이 더 중요하다고..
새끼가 뭐라고..그까짓 새끼들이 뭐라고..
수술을 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서 재발할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퇴원하던날..
하늘은 왜그리 맑기만 하던지..왜그리 화사하기만 하던지..
그러고 보니 그때도 딱 이맘때 였네...
그리고 나서 겨우 2년반을 살다간 아빠...
불쌍한 내 아빠...
평생을 일밖에 할줄 모르던 아빠..
평생 그렇게 일해 번돈으로 자식 유학시키고 대학 다 보내고 결혼시키고..
손주새끼들 재롱보면서 새끼들 섬김 받으면서 쉬셔도 되건만..
정년퇴직후에도 여기저기서 스카웃들어온다고 또 다시 일만 하던 아빠..
지방의 작은 신문사에 편집국장으로 들어가서 2년동안을 엄청나게 일만하던 아빠..
그 신문사 날로날로 성장해 가는걸 보면서 뿌듯해 하던 아빠모습...
훗~~아빤 남좋은일만 시키나벼...
하지만 아빠..
그런 아빠의 모습들을 원망도 많이 하고 안쓰럽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모습들이 그립기만 한거 있지...
그런 아빠모습들이 너무너무 보고싶은거 있지...
언젠가 얼마전,,
그렇게 한번도 꿈에서 조차 보여주지 않던 아빠가..
나한테 와서 예쁘고 따뜻한 털조끼를 입혀주고 갔잔아..
정말 꿈인지 생신지 그 꿈에서 조차 아빨 봤다는게 넘넘 놀라고 신기하고 기뻐서
정작 꼭 해야 할말은 또 못했네..
넘넘 사랑한다고...
아빠가 내 아빠인게 나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른다고..
평생 내 우산이 되어주고 지붕이 되어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이담에 다시 태어날수 있다면 그땐 꼭 내 새끼로 태어나 달라고..
아빠한테 다 못한거,,무조건 무한대로 받기만했던 아빠사랑
나도 그렇게 아빠한테 줄거라고..
다시 내가 아빠딸로 태어나면 난 또 받기만 할꺼니까..꼭 담엔 내 새끼로 태어나 달라고...
아빠 너무너무 보고싶어.....
아빠 보낸지 겨우 아홉달인데 가끔씩 문득문득 내가 너무 아빠를 잊고 지내고 있는ㄱ 아닌가 싶어서
넘넘 미안해..
울아빠,,얼굴도 부벼보고 싶고,,손도 만지고 싶고,,머리염색도 해주고 싶고..
아빠라고 크게 불러보고싶고......
내가 아빠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내가 아빠 많이 그리워 하는거 알지?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야 아빨 만날수 있을까...
이제 내나이 서른다섯이나 됬는데
얼마나 더 지나야 아빨 만날수 있을까....
몇달후에 나 이사한다..
지금보다 더 넓고 좋은데로..
근데 아빠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놓고
한집에 같이 있었으면서도 아빠임종도 못지키고 그렇게 쓸쓸하게 보내놓고
아빠 그렇게 외롭고 힘들게 보내놓고...
나 이렇게 잘살아도 되는건지...미안해 아빠....
아빠 숨넘어 가는것도 못알아봐서 미안해..
아빠 갈때 손한번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빠 가기전에 사랑한다는말,,감사하다는말 한마디 조차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아빠 내맘알지?
내가 넘넘 아빠 사랑하는거 알지?
그러니까 나 용서해줄꺼지?
한달정도만 있음 아빠 손주새끼 보는거 알아?
올케가 한달있음 아기 난대..
아들이래.. 아빠 손주새끼 보고 싶어 했잔어..
외손주건 친손주건 딸뿐이라고 아빠 아들손주보고 싶어 했잔어..
아빠가 가면서 남기고 간거 아닌가 싶어..
오빠가 좋아하더라...난 아빠 그렇게 가고 바로 임신한 올케가 더러 밉기도 하더만...
아빠가 올케 용서한거지?
그래서 손주새끼 선물로 주고 간거지?
오빠네가 엄마 아부지 한테 한거 다 용서한거지?
정인이도 나도,,다 용서해야 하는데 아직 그게 안되네..
그래서 부모랑 자식은 다른가봐..
자식은 암만해도 부모맘을 따라갈수 없는가봐....
보고싶은 내 아빠야...
만지고 싶은 내 아빠야...
사랑해..많이많이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이 넘넘 외소해 보이고 넘넘 부족한거 같아..
하늘만큼 땅만큼 아빠 사랑해..
넘넘 보고싶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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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보니 오늘의 톡이 되어버렸네요..
아부지가 보고싶고 그리워지는데도..
엄마한테 달려가 아부지 보고싶다는 말도 못합니다..
십여년을 병석에만 누워있는 엄마한테,,이젠 호흡기에 의존하고 튜브로 음식을 먹고 말도 할수 없는 엄마기에..아버지에 대한 내 그리움보다 울엄마가 간직하고 있을 아부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내가 가진것보다 더 크고 가슴아플것이기에...맘대로 엄마 앞에서 아부지 이름 불러가며 그리워 할수도 없답니다..
새끼들이 가끔씩 외할아버지 보고싶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할때면
그 사랑스런 눈망울속에 아부지가 첫손주라고 유난히 이뻐했던 모습들이 비쳐집니다..
한번도 우리 자식들에겐 사랑한다는 말씀도,
살갑게 품에 안아주지도 않으셨던 울아부지... 그런것들이 내심 불만이었는데..
무뚝뚝 하지만 속깊은 사랑을 주셨던 울아부지의 사랑을 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느껴봅니다..
가끔씩 길을 가다 노년의 아부지와 중년이 되보이는 딸의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부럽고 아부지가 사무치게 보고싶은데
내가 할수 있는일이란건 고작 아부지를 그리워 하고 기억하고 이런곳에 아부지가 그리워,미치도록 보고싶어서 미어지는 가슴을 글로 적는일밖에는 할수 있는 일이 없네요...
아빠,,보고싶어...
그리고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