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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날

김명수 |2005.03.23 16:23
조회 155 |추천 0

                        

 

 

                         대마도의 날 


마산시의회가 ‘대마도의 날’ 조례제정안을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한다고 하며 이 조례안은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3개조와 부칙으로 되어 있는 조례안 제정으로 마산시의회는 고토회복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독도 문제로 나라안이 벌집을 수신 것처럼 시끌벅적한 지금 한줄기 단비 같은 소식이다.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지방 자치단체가 먼저 시작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고토 회복에 대한 발언이 생경성(生硬性)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건국 직후인 1948년 8월 18일 이승만은 대마도 반환 요구를 주장하였고, 이틀 후인 8일에 대일강화회의 참가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마도 반환 요구를 거듭 주장했다. 이듬해 1949년 1월 8일 이승만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일본에 대해 대마도 반환을 다시 한번 당당하게 요구하였다. 


이승만의 대마도 반환 주장에 놀란 일본측의 반응은 신속하여 대마도 반환 요구에 대한 반대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외무성 산하에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역사학·고고학·인류학 등과 관련된 일본의 5대학회가 동원되어 2년간에 걸쳐 대마도를 조사하여 제출하였으며, 이승만 발언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논문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이승만의 발언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다. 외교관 접견 때면 언제나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단호한 주장 뒤에는 이승만의 고토회복에 대한 분명한 사명감과 부동의 역사관이 있었기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서기> ‘신대(神代)’에 대마도를 가리시마(韓鄕之島)라고 표기하고 있다. ‘한국섬’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들도 대마도가 한국영토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환단고기>에는 예로부터 규슈(九州)와 대마도는 곧 삼한(三韓)이 나누어 다스린 곳으로 본래 왜인이 살던 땅이 아니었다. 대마도는 세 가라(加羅)로 나뉘었다. 좌호가라(佐護加羅)는 신라에 속하고, 인위가라(仁位加羅)는 고구려에 속하며, 계지가라(鷄知加羅)는 백제에 속하였다고 했다.

<진대(塵袋)>에는 ‘무릇 대마도는 옛날에는 신라국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서 나는 토산물도 있는 것은 모두 신라와 다름이 없다.

<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에서는 “호공이 대마도인으로서 신라에 벼슬하였으니, 당시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어느 시기에 저들의 땅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논평했다.

조선 세종 원년(1419)년 대마도정벌과 뒤이은 대마도의 경상도 속주화 조치 때 조선 정부의 대마도관을 보면, “대마는 섬으로서 본래 우리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놀기 시작하였다.”


대마도가 우리국토의 부속도서였음을 나타내는 기록은 부지기수다. 십분심사일분어(十分心思一分語)란 말이 있다. 마음에 품은 뜻은 많으나 말로는 그 십분의 일밖에 표현 못한다. 란 뜻이다. 사실 수많은 기록을 나열하고 싶지만 대마도에 관한 말은 만분의 일로 줄이기로 하자. 


마산시가 제정한 ‘대마도의 날’은 시마노현의 ‘독도의 날’에 대응하기 위한 울분이나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고 본다. 고토회복운동의 꺼져가는 불씨를 지핀 것이다. 고토회복운동에 대책 없는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시작했을 따름이지 사실, 이승만 이후 정권이 고토 회복에 대한 의지나 집념을 보인적은 없었다. 의욕 또한 없었으니 자신감마저 상실하지 않았나 싶다.


그사이 중국은 국력을 기울인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의거해 고구려와 발해 유적을 우리 고대문화양식을 철저히 배제하고 중국 건축양식을 대입해 그들의 방식으로 재정비 했다. 고구려와 발해 유적은 정체성을 잃은 퓨전문화로 재창조되어 후손인 우리들로서는 서글플 뿐이다. 중국은 이후에 있을지도 모를 역사시비와 영토 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하게 세우고 있다.


일본 역시 국내용이든 국제용이든 틈만 나면 독도의 영유권을 줄기차게 제시하며 자국중심의 역사관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교육 한다. 그것은 독도가 영토권을 다투고 있는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널리 선전하여 세계여론화 하려는 전략이자 전술인 것이다.


우리국민이라면 삼척동자도 독도가 우리국토란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자칫 한쪽으로 난 창문만 바라보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사시(斜視)가 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계발한 첨예한 논리가 충돌할 때 국제사회에서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눈은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진시황이 죽고 내시 조고가 세운 ‘이세’ 황제는 주색에만 빠져 정사는 모두 조고에게 맡겼다. 조고는 마음대로 권세를 부려 조금이라도 제 뜻에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죄를 씌워 없애버리려고 했다. 따라서 조정의 백관은 모두 그의 눈치만 보고 아첨하는 것이 일상사였다. 어느 날 조고는 자기의 위세가 얼마만치 대단한가 알아볼 생각으로 한 마리의 사슴을 이세 황제에게 바치며,

“이것은 말이 옵니다”                

했다. 그러자 이세황제는,

“승상은 무슨 소리를 하시오? 그게 사슴이지 어찌 말이란 말이오?”

그리고는 곁에 있던 신하를 향해서

“그래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말이냐 아니면 사슴이냐?”

하고 물었다. 신하들 중에서는 그저 겁이나서 잠자코 있는 자도 있었고, 조고의 눈치를 보며 아첨하느라 모두가 말이라고 했다.


일본이 노리는 것이다.

일본은 UN에서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 중이고, 미국은 일본을 지지한다고 천명했으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일본 측 독도 영유권 주장 논리를 국가 정보 보고서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UN도 독도문제에 관한한 일본 측 논리에 따르고 있다. 모든 사항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음을 감지하지만 우리 정부는 맥락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세 황제와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더우기 이 정권 들어서서 미국은 ‘한미동맹’보다도 ‘미일동맹’을 더욱 중요시하고, 미국과의 사이도 예전처럼 매끄럽지 못해 은연중 따돌림 당하고, 중국을 짝사랑하다가 뒷통수 맞고, 일본과는 충돌과 대립으로만 첨예하고, 우군 없는 와중에서 기약 없는 북한의 눈치만 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독도문제에 대하여 ‘옛날부터 우리영토’라는 단순논리로 대응할 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헌법 개정으로 시시틈틈 군사대국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권세가 커지고 국제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발언권을 획득하면, 사슴이 말로 둔갑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우리의 대응논리도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라는 단편을 떠나 세계인을 위한 다각적인 논리 계발과 홍보에 모든 조직을 가동하여 분발해야 할 것이며 세계 각국에서 발행되는 지도에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로 ‘쓰시마해협’이 아닌 ‘대한해협’으로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명기해야함이 옳다는 것을 끓임 없이 주지시켜 바로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언론과 문학계에서는 독도를 주제로 한 문예작품을 공모하여, 시(詩)나 산문, 기행문, 소설 등 문예작품으로 독도의 얼을 기릴 수 있을 것이다. 화단에서는 아름다운 독도를 주제로 한 여러 장르의 그림으로 전람회도 열고, 음악계에서는 비발디의 ‘사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도의 사계’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운 금강산’ ‘성불사의 밤’처럼 ‘그리운 독도’나 ‘독도의 밤’으로 노래하여 독도를 사랑한다면, 독도는 절해고도의 외로운 섬이 아니라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더 친숙하게 우리들의 섬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독도에 가지는 문화적 감정도 배가 될 것이다.  


고토회복 운동도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국시(國是)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마산시가 제정한 ‘대마도의 날’엔 마산시민 수효만큼 ‘대마도 사랑’ 뱃지라도 만들어서 정부예산으로 지원해 주라고 부탁하고 싶다. 외교통상부가 마산시의회에 조례철회를 요청하여 기껏 불씨지핀 고토회복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치졸한 모습을 보인 것은, 국민들의 정서를 거부하고 민심의 기미를 살피지 못한 오만이다. 그리고 이 시점 민중의 요구를 묵살한 반역사임을 알아야 한다.

역사교육도 선택이 아니라 정규과목에 편입시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교육해야 한다. 내 나라의 역사적 주관이 희박하다보니 온라인에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친일 싸이트들이 범람하는 주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부정부패와 권력독점욕 때문에 마산시민이 촉발한 민중항쟁으로 비참하게 무너졌지만, 그 당시 우리 밑에는 꼴찌인 다른 한나라가 더 있을 뿐인 세계 최빈국의 국가에서 국제사회를 향한 국권수호의 정신력만큼은 어느 국가보다 확고한 의식을 가진 세계 최강이었다. 국가수반의 리드십이란 이런 것이다. 이승만 이후의 정권은 대마도 반환문제를 비롯한 고토회복문제를 승계하지 않았고 굳게 입을 닫고 있었기에 독도문제가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은 건국 초부터 북간도, 두만강정계비, 독도, 대마도 등 영토와 국경선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였으며, 고토 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국가수반이 확고한 역사의식으로 초지일관(初志一貫)하여 구심점이 되면 국민의 뜻은 자부심과 함께 결집될 것이며, 그의 의지를 강력하게 지원할 것이다. 우리는 이승만이 고토회복에 대한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게 주장했던 기개를 오늘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역사란 돌고 돈다. 국가간의 영고성쇠(榮枯盛衰)에 따라 차후의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는 역사시비와 영토시비에, 나아가서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를 고토회복에 만전을 다하고 있어야 한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이나 일장기 짓밟으며 단지(斷指)하고 규탄대회나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위정자(爲政者)들 또한 국민의 감정과 정서에 편승하여 실추된 인기를 만회하고 세를 모으기 위한 정치적 선동이나 포퓰리스트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마산시의회 ‘대마도의 날’ 조례제정안

 

  제 1조 시민 및 시가 하나가 되어 대마도의 영토권 조기확립을 지향하는 운동을 추진하고, 대마도 문제에 대한 국민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대마도의 날을 제정한다.

  제 2조 대마도의 날은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로 한다.

  제 3조 시는 ‘대마도의 날’의 취지에 맞춰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노력하기로 한다.

  부칙 조례는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2005년  3월  23일

                                    김 명 수  kmspks@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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