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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94. 앗~! 깜박했었네

무늬만여우... |2005.03.24 14:49
조회 2,422 |추천 0

옷가게는 손님이 몰리는 시간이 있었다. 아침 나절 10시쯤 북적대다 점심 때쯤 한산하다. 그리고 오후 세네시쯤 다시 북적댄다. 그리고 문 닫을 6-7시쯤에도 북적댈 때도 있다.

처음에는 항상 손님이 많겠거니하고 긴장하고 기다리고 그랬는데 요령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일이 쉬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랑 아는 사람들은 딱히 우리집에 물건하러 오는 것도 아닌데 들리기 시작했다. 와서 같이 커피도 마시고 점심때면 같이 밥도 먹고 그랬다. 그들은 우리 가게 와서 놀다가는 걸 즐기는 듯했다.

그런데 그렇게 북적이는 시간대가 따로 있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북적대다 사람 정신만 혼란하고 물건을 하나도 못 팔 때가 많았다.

북적 댈 때는 갑자기 손님들이 열 댓명이 몰려와서 이 물건 무슨 색이 있냐, 사이즈는 어디부터 어디냐, 현찰가격은 얼마고 수표 거래는 하냐. 이거저거 와서 묻는 사람이 많다.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는데, 그 날도 열댓명이 붐벼야 할 시간도 아닌데 들어와서 북적대고 있었다.

이상하게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건성으로 사람들을 대하다 우연히 가게를 나가는 사람을 보게 됐는데 우리집 바지를 들고 가는 것 같았다. 가게를 나가며 커브를 도는데 언뜻 우리 가게에서 만든 바지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헉 이건 뭔 뜻이지. 도둑?

"라드론! (도둑)"

큰 소리로 외치며 내가 뛰어나갔다.

직원이 뒤늦게 그 소리 듣고 안에서 튀어나오고 그 도둑은 날 보더니 신나게 뛰었다.
그 도둑은 여자였다. 갸날퍼 보이는 그 여자는 바지를 한 아름 안고 마구 뛰어가는게 아닌가. 우리 직원이 잡으러 뛰어가니까 바지를 바닥에 버리고 뛰어가버렸다.

직원이 바닥에 버려진 바지를 다시 들고 왔다.

세상에... 도대체 몇 개를 들고 튄거야.

옷걸이에 잘 다려서 걸려진 바지를 족히 백장은 넘게 안고 뛴 것 같다. 난 그 바지가 무거워서 25장 이상은 한 꺼번에 못 들겠는데 그 여자는 어케 들고 튀었는지 모르겠다.

가게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다시 썰물처럼 하나둘 빠져나가고 한 명도 안남았다. 아차싶어 가게를 둘러 보았다. 내가 밖을 신경쓸 때 안에 있던 사람들 중에 한 패거리가 있었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옷이 많으니 언뜻 그 사이에 뭘 훔쳐서 안에 넣어갔는지 몰랐다.

다행히 그 도둑을 잡으러 뛰어 갔을 때 돈통을 열쇠로 잠그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클날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온세 지역에서 장사하는 로미나에게 했더니 웃으며 그 일이 하루에 한 번은 꼭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어떤 뚱뚱한 아줌마는 가랑이 사이에 옷을 잔뜩 끼고 긴 치마를 촥 내려서 가다가 들통이 나는 적도 있고, 또 이옷 저옷 다 입어본다고 갖고 들어가서 잔뜩 껴입고 도망가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지방에서 소매상 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또 가관이었다. 수영복 사가며 입어본다고 그럼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주인 아저씨에게 이쁘냐고 물어보며 맴을 도는 여자도 많다고 했다. 그걸 주인아줌마가 보면 대판 부부 싸움하는 날이 된다고 했다.

내가 그 동안 장사를 안하다 했더니 훔치기 잘하는 아르헨티나인 습성을 잊고 지낸 것이다. 조심해야지 안그럼 파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게 더 많을 듯 싶었다. 내가 그 동안 모르고 지나친 적이 많았을 꺼 아닌가.


워낙 난 사람을 눈을 보며 대화하기를 즐기는데 그 이후로부터는 사람들 눈을 보며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들은 그 습관은 한국인들끼리 대화할 때도 종종 나타나서 내가 스스로 무안해 할까봐 눈길을 내린 적도 있다.

암튼 그 이후로 들어오는 손님들 눈을 살피는 버릇이 되었다.

한국인에게는 내가 판매하고 원주민들이 들어오면 점원들이 상대하게 했다.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눈을 읽다보니 어느정도 파악이 되는 게 아닌가.

벌써 도둑질하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눈빛이 불안한게 보였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백발백중 도둑이었다. 그리고 열댓명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정신없게 굴면서 도둑질하는 수법을 알게 되니까 그렇게 사람이 갑자기 많이 몰려 들어오면 일단 가게 유리문을 닫게 했다. 도중에 누가 튀어 나가는 일이 없게끔했다.

그들은 세네명이 내가 앉은 카운터 앞에서 얼쩡거리며 내 시야를 가로막고, 점원들에게 또 대여섯이 달려들어 물어보며 뒤에서 세네명이 훔치는 작업을 하는 거였다.

일단 내 앞에 선 이들은 건성으로 대하고 뒤에서 얼쩡거리며 옷 구경하는 척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봤다. 내 앞에서 커다란 봉투에 물건을 넣다 들킨 사람도 있었고, 잠바 주머니에 넣다가 들킨 사람도 많았다.

"이론. 너 그거 사가는 거냐?"

훔치는 사람에게 그렇게 물으면, 옆에 있던 사람이 대신 대답해 주는 때가 많았다.

"아, 야 그거 계산 아직 안했잖아. "

그러면서 꾸물대다 맘에 안든다고 빼놓고 간다.

여름옷은 얆고 부피가 작고 비싼 옷도 많아서 작은 뭉텅이 잠바 속에 넣으면 몇백불어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앞에선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다.

대부분 그들은 다른 소매상들처럼 커다란 가방을 갖고 다녀서 그 가방 속에 순식간에 들어갈 확률도 많아서 신경을 이만저만 곤두세워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었다.

한 번은 참하게 생긴 부부소매상이 와서 이거저거 물어보며 꺼내달라고 했다. 가게 문닫을 시간이어서 점원들은 다 퇴근하고 나만 남아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거저거 꺼내다가 그 사람 가방에 내 물건이 들어있는 걸 봤다. 내가 뒤돌아 물건을 꺼낼 때 그 사이에 가방에 넣은 것이다. 확 신경질이 나면서 가방에 있는 물건 보자고 했다. 그들은 싫다고 했다.

아, 그럼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가방을 열어 그 사이에 집어 넣었던 물건을 도로 뺐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가게를 나갔다. 기가막혀 그냥 그 사람들을 씩씩대며 바라보았다.

혼자서 가게문을 열고있음 안되겠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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