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경고(赤色警告) 부제:잔혹하게사랑하라
“………”
한경의 눈에선 기다렸다는 듯 굵직한 눈물방울들이 투툭 떨어졌다.
몇날 몇일을 걷던 그 익숙한 길이 이제는 제법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미치게 뛰어오르는 심장의 설렘과 함께 집으로 한발자국씩 가까워져갔다.
희미하게나마 집의 형상이 보였고, 아주 익숙한 인영도 눈에 들어왔다.
“…누…누나?”
“………”
얼마나 보고싶었던 얼굴인가, 얼마나 듣고싶었던 음성인가.
한경과 한진은 한참을 멍하게 서로를 바라만 보았다.
한진이 먼저 입을 떼어 한경을 불렀고, 한경은 고개를 위아래로 두어번 끄덕였다.
“누나!”
“…한…진아, 한진…아.”
한진은 집앞에 쪼그리고 앉았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와 한경을 품에 쏘옥 품었다.
그리고 한경은 벌써 키가 더 자란듯한 한진의 품에, 따뜻한 동생에 품에 안기었다.
눈에선 눈물이 끝없이 흘렀고, 입에선 한진의 이름이 수없이 되뇌였다.
“어디…갔었어. 많이 찾았잖…아”
“…미안해, 미…안해. 누나가 정말 미안…해.”
“누나가 나 그동안 못되게 굴었다고 떼어놓고 도망간 줄 알았잖아.
나 싫다고 누나가 도망간줄로만 알았잖아.
전화한통이라도, 아님 편지 한통이라도 좋았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 이제 정말 혼자 되는 줄 알고……”
“…미……안해. 한진아 누나가 진짜 많이 미안해.”
한진이 다시 한번 힘주어 한경을 세게 껴안았다.
그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한경이 어디라도 다친건 아닌지, 아님 혹시나 많이 아픈건 아닌건지.
그리고 다시는 한경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어렸을적 철없던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것도 모잘라
이젠 누나까지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한진은 그런 걱정들에 억압되어 왔었다.
“나 이제부터 말 잘 들을게. 누나 말 정말 잘 들을게.”
“…응. 응……”
“그러니까 나 떼어놓고 도망가지마. 그건 정말 싫어.
…그건 정말 무섭단 말이야.”
“누나가 왜 도망가. 누나가 한진이 놓고 왜 도망가…”
“…도망가지마. 나 두고 가지마……”
키는 한경이보다 훨씬 많이 컸지만 아직 어릴적 그 여린마음은 다 크질 못한 모양이다.
어린아이처럼 투정부리듯 한경에게 도망가지 말란 말을 되풀이 하는
한진의 모습이 애처로운 반면, 안도감을 찾은 것인지 어느정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한경은 자기 자식을 쓰다듬듯 한진의 등을 따뜻하게 쓸어내려주었다.
미안하단 말과 함께.
“………”
“………”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서산쪽으로 기울때까지
한경과 한진은 그 자리 그대로 그동안의 그리움을 풀어내었다.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키는 문제아 한진은 없었다.
다만 누나를 애타게 찾는 한진만이 있을 뿐.
그저 한없이 여리게 보이는 한경은 없었다.
다만 동생을 엄마처럼 쓰다듬어 주는 한경만이 있을 뿐.
“…누나가 어디를 갔다왔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묻지 않을게.
그냥 다시 나 잊지 않고 찾아와 줬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할게”
“…으응.”
“그동안 나 누나 미워했던거 아니였어.
그냥 누나한테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어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그랬던거야.
내 자신이 너무 미운데, 나 자신한테 화를 낼수가 없어서 괜히 누나한테 투정부렸던거야.”
“…으…응.”
“앞으로 정말 잘할게. 내가 무슨 보탬이 될지 안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누나 속은 썩이지 않을게.
처음부터 큰걸 해줄 순 없지만 차근차근 하나하나씩
지금까지 누나가 해줬던거에 몇백배, 몇천배로 갚아줄게.
…내가 정말 잘할게.”
한경은 다시 한번 밀려오는 눈물에 이번에는 입술을 꾹 깨물고 애써 울음을 참았다.
많이 컸구나. 키 만큼이나 예전보다 많이 컸구나.
**
“………”
한적한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그의 차가 유난히도 돋보였다.
살기를 내뿜는 듯 싶은 엄청난 속도의 차는 도로를 질주했다.
그는 조용히 앞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다만 그것이 운전에 열중한다는 의미를 많이 훨씬 지나친 응시였다.
한경을 내려주고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몸은 어쩔수없이 집으로 운전하고 있지만,
그의 진실된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핸들을 휙 꺽고싶었다.
집에 도착해 일어날 일들이 너무 뻔했다.
그가 생각하는 그 생각들과 분명 척 들어맞을 것이다.
“………”
답답하게 목을 단정히 옭아맨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해쳤지만,
답답한 숨통은 트일줄 몰랐다.
미간이 찌푸러져있는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있었다.
그 중, 외로움은 한쪽 귀퉁이에서 더없이 요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누가 그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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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별 (d_dmino_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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