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어머니 2
큰 누님이 집으로 전화를 여러 번 했었나 보다. 보름도 넘게 내가 큰
누이 집에 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을 통해 양복점 친구 전화 번호를 알아 양복점 친구 집으
로 전화를 하셨다.
"거기서 머하노""퍼뜩 오느라 보자" 조금은 화가 나신 목소리가 수
화기 넘어 에서 들렸다.
나는 "오야 알아 따" 하고 수화기를 놓자 말자 큰누이에 집에 들어
서니 누이는 "아픈 사람 나 뚜고 거기서 머 핸노" "밥도 안무거째" 하
시고 내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오리걸음으로 부엌으로 가시여 식탁
위에 주섬주섬 반찬을 차리시어 밥과 국을 떠주신다.
마주보고 수저를 내민 누이는 "요새 뭐 해가 묵고 사노" "아 어마이
는 밥이라도 쪼매 묵나" "집에도 안 오고 김치도 없쩨" 하신다. 나는
누이한데 퉁명스럽게 "뭐해가 묵기는 밥하고 반찬 해가 묵지 머" "소
금하고 간장 해가 묵고 사 까바" "내가 답답 하머 오지 마라 캐도 찾
아온다"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누이는 무엇을 그리 많이 챙겨 놓았는지. 아내의 옷. 애들 옷. 내
청바지. 귤. 사과. 고구마. 소고기. 돼지고기, 김치. 멸치 뽁은거. 화
장지, 비누, 하이 타이. 수건까지 다 열거하기도 못할 물건을 비닐 봉
지에 다 담지 못해 박스에까지 담아 보자기로 꽁꽁 묶어 놓으시고 나
한데 전화 하셨다.
그런데 우리집으로 전화를 해도 내가 없으니 누님이 화가 나실 만도
해 쓸 법하다.
어머니 같은 누이의 말씀에 나는 그만 목이 메여 울컥 눈물이 쏟아
져 밖으로 나가니 누이는 "밴 소 갈라 꼬" "안에도 밴소 있는데 말라
꼬 한데 가노" 하시며 울컥하는 내 속내를 눈치 못 차리리 신 것 같았
다.
나는 밖으로 나가 담배 한대 피우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으며 누이한데 나는"버럭 고함을 지르며 "머라캔노" "머묵꼬
사나꼬" "시발 니기미 안 죽으머 사는거지" "사는 기 밸꺼가" 하며 고
함지르니 누이는 "나이가 몇인데 이제 제발 욕 쪼매 하지 마라" 하시
며 자식 같은 동생을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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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던 밥을 꾸역꾸역 씹으면서 "에이 시팔 니기미 천 날 만날 이
래 조도 제대로 몬 묵고 사니 무슨 놈에 팔잔지 모리겠다" 며 투덜거
리니 누이는 "그거 쪼매 가주고 가가 그 거마 묵으 까네 안 그러겠나"
고 탁자 보가 펄럭이도록 긴 한숨을 토하신다.
"아 어마이 지업 을라 퍼뜩 가보 그라" 하시며 챙겨 놓은 물건들을
대문밖에 손수 들어내셨다.
누님은 웃으시며 내게"다 가주고 가겐나 다 몬 가 주고 가께 꺼등 내
리 와가 가가 가라" 하시며 걱정을 하신다.
나는 큰 누님을 쳐다보고 염치없는 말을 내 뱉는다.
"더 조 바라 몬가 가는 강 가 가능 거는 걱정 말고 더 줄 꺼 없는
가 나 살펴 바라. 더 조도 다 가가 간다" 하는 내 말에 칠순의 누이는
빙그레 웃으시며 오토바이에 짐을 묶는 것을 거들어 주시면서 "우야든
동 오토바이조심해서 타고 집으로 바로 가그 래이" 하시는 누이의 말
씀이 시멘트 길 위에 떨어지기도 무섭게 "간데이"하며 오토바이를 타
고 집으로 오면서 큰누이한데 미안해서 차마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
고 오는 마음이 가슴 한 쪽이 아린 다.
큰누이한데 가져오는 기쁨 보다 서글픔의 내 뒤통수의 열기를 오리
며 산다는 것에 대해 환멸이 가슴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다.
자식이나 다름없는 못난 동생 때문에 가끔 며느리와 아들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큰누이 한데 나는 언제까지 먹고사는 문제 하나 스스로
해결 못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못난 동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오늘따라 내 눈을 붉게 충 열 시켜 눈물을 흐르게 한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업이 하루빨리 가벼워져 늙고 병든 큰누이
마음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의 내 현실은 늙고 병든 누이 한
데 염치없이 의지하며 살아 밖에 없다.
굿은 날씨만큼 우중 충충한 내 삶도 살다보면 언젠가는 햇살이 대지
를 말리는 따뜻한 봄날 같은 삶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을 잠시 나마
해본다. 그것은 못난 아비보다 나은 두 아들이 둘씩이나 나를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자신보다 큰 짜장면 통을 들고 다니지만 세월이 물처
럼 흐른 후 언젠가는 짜장면집 주인이 된다면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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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젖은 삶 짚고 박차고 일어나듯이 세상과 당당히 맞서 살 수 있
을 때까지만 내 큰누이가 살아 있어 준다면 고운 한복이라도 한 벌 지
어 드리고 싶다.
어머니! 같은 큰누이! 자식 같은 동생!
누님의 말씀대로 누님도 나도 아내에게 전생의 진 업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색이 든다.
내 작은 바램은 내가 스스로 자립 할 때까지만이 라도 큰누이가 지
금 만큼의 건강이라도 유지 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나의 가혹
한 현실의 너무 벅찬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큰 누부야! 이다음 이다음에 말이다.
내가 어 메 만나면 큰 누부야가 내한데 잘 하지는 몬 해도 잘못 하
지는 안 했다고 어메 한데 꼭 전하 꾸마" "내가 형주 어 메 한데 잘
하지는 몬 해도 모질게는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누부야! 우리는 피를 나눈 남매이니 내 업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도 누부야가 타고난 업 일끼다" "누부야 어 메가 오늘은 디기도 보
고 접다"
"누부야! 어 메가 앞이 보이지 않도록 흐르는 내 눈물은 알는지 모
르겠다. 고맙다 누부야! 누부야는 내 한데는 누부야가 아니고 어메다"
"누부야--!"
오-호 통-제-라!
내 두 눈의 흐르는 이 업은 또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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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의 다리
1999년 6월19일
공공근로를 마치고 오토바이를 집 앞에 세우고 아이처럼 거시기를 올
렸다 내렸다 하며 어릴-쩍 어 메 한데 맞 던 회초리 하기 적당한 빽빽
한 무궁화 줄기 사이에 오줌을 갈기면서 아직도 내 키위로 훌쩍 높이
올라가는 오줌줄기를 보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혼자말로 "이놈이 주인을 제대로 못 만나 힘이 남아 도냐" 하
며 실없는 놈처럼 실실 웃고 어깨를 자동적으로 강하게 흔들며 허리띠
도 매지 않고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내는 눈을 허옇게 뜨고 쓰러져
있었다.
아내 입안에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고 입을 굳게 다문 체 입 주위와
얼굴에는 흑인처럼 새카맣게 묻히고 사지를 주검의 다리를 건너려 하
고 있었다.
나는 외마디 소리로 "오! 신이여 내 아내를 도우소서!"
하며 허리춤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나는 그 자리에 풀 석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내가 아내에게 먹이고 재떨이에 버린 복숭아씨 입안에 가득
채운 체 사지를 비틀며 두 팔은 비틀며 고통에 못 이겨 마비되어 구부
러진 손을 허공을 흔들며 내게 구원을 청하건만 허연 눈알을 까뒤집은
아내가 무서워 뒷걸음치다 자빠져 버렸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홀로 산 속에서 호랑이를 만난 것
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미 굳을 대로 굳어 뻣뻣한 아내의 목에 베개 두개로 받쳐 기도를
확보하고 아내의 입 속에 들어있는 복숭아씨를 쳐다보며 아내가 빨리
깨어나기를 내 어머님께 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이었기에 아내가 깨어날 때까지 기도만 하였다.
십 여분 후 깨어나 축 늘어진 아내의 입을 벌리고 숟가락 두개로 돌
아간 아내의 입에 넣어 입 안든 복숭아씨를 꺼내려니 아내는 숟가락을
와드득 와드득 씹으며 두 손으로 허공의 가르는 몸서리치며 검 붉은
피를 토하며 또 눈을 까뒤집으며 삶과 주검의 다리를 넘어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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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오 하느님"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
"에 메야 어 메야"를 외치며 "내가 아내를 도우려다 내가 오히려 아내
를 죽이 니더" 어 메야 어 메야" 하며 아이처럼 폴짝 폴짝 뛰며 킬라
먹고 죽어 가는 파리처럼 뱅뱅 돌고 돌았다.
나는 본능적으로"어 메야" "내도 형주 어 메처럼 정신을 놓게 해 두
가" "어 메야 어 메야"를 부르면 방구들이 꺼지도록 미친놈처럼 길 기
리 날 뛰었다. 그리고 뒷머리에 강한 전기 충격의 통증을 느끼며 쓰러
졌다. 그리고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를 깨 운 것은 나의 구슬픈 통-곡 울음소리였다.
하얀 모시적삼 차려 입은 어머니는 누런 삼베로 찢어진 검정 코 고
무신 옆구리를 숯 덩이로 칠 하신 신을 신으시고 개울(등지뱅이) 가에
서 바람에 꺼지려다 겨우 겨우 살아나는 촛불의 매달리시어 두 무릎을
꿇으시고 정 안수에 물결이 이 시도록 내 아명 용국이를 부르며 용왕
님께 장대비 같은 눈물을 흘리시며 헤아릴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못난 아들을 위해 빌고 비셨다.
어머니께서는 두 눈의 장대비처럼 흐르는 눈물도 아랑곳하시 지도
않으시고 오직 못난 아들을 위해 비는 모정은 차마 목이 메여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무릎을 꿇으며 어머니의 팔을 부여잡고 "이건 어메
罪(죄)가 아니고 내 죄다"하며 어머니 품속에 파고들어 울-고 또 울었
다. 내 통-곡의 울음소리가 혼절한 나를 깨운 것이다. 나는 깨어나서
도 "에 메" "어 메"를 부르며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나는 그렇게 울고 정신을 가다듬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담배 재 묻은 얼굴은 굳은 피가 말라 피범벅이 되어 사람의 얼
굴이라고는 차마할 수 없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어머님이
저승으로 가시면서 내게 정을 때려든 그 모습으로 아내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겁에 질린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정을 때는 아내의 모습에 질려 엉덩이를 질질 끌며 물러앉았다.
정을 때는 아내가 무서워 도저히 바라볼 수 없어 눈을 감아 버렸다.
잠시 후 아내는 가쁜 숨을 몰라 쉬었다.
아내의 입 속에 코끼리 이빨처럼 숟가락 두 개를 집어넣고 어린애
주먹만한 복숭아씨 다 섯 개를 손을 집어넣어 겨우 겨우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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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미쳐 먹지 못한 답배 꽁초 네 개와 담배 가루 한 움큼 꺼내니
아내는 축 늘어졌다.
나는 아내에게 "여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젠 우리 걱정 말고 좋은
데 가구려" 하며 한이 주렁주렁 맺힌 눈물을 떨어뜨리며 아내의 마지
막 가는 길이나마 지켜 줄 수 있다는 것으로 위로 삼았다.
아내의 피 묻은 수건으로 아내의 얼굴을 닦이려다 멈추고 나는 힘없
이 아내를 바라보며"여보 이젠 당신이 견디기도 힘든 모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정말 편하겠구려 얘들걱정은 이제 하지 말고 뒤
도 돌아보지도 말고 편히 가소" 하며 피 묻은 수건을 버리고 새 수건
을 꺼내 물을 적셔와 아내의 얼굴과 몸을 닦았다.
아내 손에 묻은 시커먼 담배 재를 닦는데 숨을 한동안이나 쉬지 않
던 아내가 갑자기 푸--우 하며 긴 한숨을 토하더니 또렷이 "무-울"하
며 물을 달라는 아내의 소리에 놀라 물러서다 문지방에 걸려 그만 곤
두박질 쳐 넘어졌다.
나는 기다가 구르다 하며 물을 가져와 퉁퉁 부은 터진 아내의 입술
을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고 아내에게 물 뜬 숟가락을 기울였다.
아내는 숟가락으로 한 사발 물을 다 받아먹고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
은 것 같아서 다시 물을 떠와 아내에게 떠 먹이니 아내는 물 두 그릇
이 바닥을 드러내도록 받아먹고는 또 푸-우 하며 긴 한숨을 토하고 고
개를 가로 저으며 축 늘어 졌다.
나는 하도 기뻐 "살았다 살았어 형주 어 메가 저승사자한테 이겼다"
나는 마치 미친놈처럼 두 팔을 흔들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온 방
안을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축 늘어져 양 팔다리를 꼼짝도 못하는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나는 아내에게 "형주 어메야! 살아 조가 정말로 고맙데이"하며 아내를
꼭 안아 주고 밖에 나와 오토바이 시동을 페달을 밟아 시동을 걸어 아
내가 잘먹는 동그랑땡 싸러 가는 하늘엔 노을이 붉게 물들이고 있었
다.
내 50cc 오토바이 빽 밀러 에 무임승차한 빨간 홍씨 같은 붉은 해는
형주 어 메가 살아난 것을 축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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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가르친 비극
2000.5월20
참고인 조사해야 한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내가 움직일 없는 처지라 데리고 가지 못한다고 하니 두 시쯤에
집으로 오겠다며 담당 형사라고 밝히며 전화를 끊었다.
마음 얼음장같은 서글픔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은 현실 속에 삶의 대
한 회의니 어쩔 수가 없다.
법원 건너 골목 의료 기기 상회에 가서 아내에게 필요한 기저귀와
자질구레한 물품을 싸고 반찬거리를 조금 싸서 오토바이에 묶어 혹시
라도 담당 형사보다 늦을까봐 늘 들리던 양복점 친구집도 들르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집으로 온 나는 아내에게 밥을 떠 먹이고 있는데 아내의 성폭행을
목격하고 내게 일러준 천주교 자매 부부가 "경찰이 오라 가라 한다"며
얼굴을 푸르락붉으락 거리며 화를 냈다.
남편과 친정어머니라는 분도 내가 경찰서에 신고했다고 오히려 나를
중죄인 취급하였다.
나는 그들 앞에서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허리를 연거푸 숙이며 번
거롭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기사 내가 죄인이 아니다고 변명할 수 없다. 병든 아내를 가진 죄
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나는 미쳐 몰랐다.
때론 인간은 인간임 포기하고 어쩌면 그토록 이기적인 동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허리가 갑자기 꺾이고 숨이 갑자기 멎고 허리가
움직일 수 없는 고통에 빠져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나는 허리가 꺾여 도저히 일어나지도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취
조 받는 중죄인 취급당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형사 두 분
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형사들은 아내의 모습이 기가 막히는지 고개
를 가로 저으며 느티나무가 있는 벤치로 가자고 하였다.
두 사람 형사 중 한 명은 방에 들어와 짐승이나 다름없는 아내의 모
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호리호리 하고 작은 키의 형사는 아내의 모습
을 이 기가 찬지 한숨을 방구들이 꺼지도록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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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아도 농사꾼처럼 보이는 형사 뒤를 따라가면서도 천주교 자매
님을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분한지 내가 경찰서에 고소했다며 모가지에
검은 핏대를 파르르 떨며 연신 나를 죄인 취조하듯이 몰아 부쳤다.
천주교 자매 부부 뒤를 따라가던 나는 무엇을 잘못 했는지도 모르면
서 계속 "미안합니다"하며 허리를 굽실굽실 거리며 풀죽은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갔다.
천주교 자매 부부는 느티나무에 앉자마자 몇 일전만 해도 우리집에
자원봉사 하러 왔을 때 그 인자하던 모습은 하나님께 보관하고 왔는지
나를 거칠게 몰아붙이며 원망하는 행동은 짐승의 행동이나 다름없었
다.
인간의 어쩌면 저렇게 두 가면을 쓰고 살 수 있는지 용서를 계속 빌
던 나는 그만 분노를 불러 버렸다.
나는 짐승의 탈을 쓴 인간을 향해 악의 바친 독설을 뱉아 버리지 않
을 수 없었다.
나는 천주교 자매에게 "여보 시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매님이 같은
여자로써 어찌 그럴 수가 있소?"
"차라리 내게 그런 얘기를 하지 말지 무슨 놈에 좋은 일 이라고 내
게 말했소" "하나님 믿는 인간이 어찌 그런 妄言(망언)을 할 수 있소"
"내가 언제 당신들 한데 도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소"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말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서슴없이 내
뱉을 수가 있소"
"당신 한데도 저 짐승 같은 동생이 이나 어린 딸이 있는 사람이 어찌
그런 말을 감이 지껄일 수 있단 말이요"
"만약 당신 동생이나 딸이 성폭행 당했다면 지금처럼 말하지 안겠지"
"어찌 하나님을 믿으며 자식 키우는 부모가 잘 잘못도 모르고 함부로
아가리를 나 불 되는 거요.
당신 자식들 한데 부끄럽지도 않소" "여보시오 자매님 당신 자식들
이 당신의 행동을 보고 무얼 배우겠소"
"당신이 내게 그따위 생색내려고 우리집에 자원봉사 하러왔소" "그
것도 자식들을 데리고 말이요" "그따위 짓 하려거든 우리집에 다시는
자원 봉사하러 오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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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들이 당신들보고 배울까 두렵소""당신도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당신이 믿는 하느님께 물어 보시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해서 당신들 한데 죄인취급 받아야 하는가를 말
이요" 하면서 나는 내 가슴을 툭툭 치면서 "당신이 정녕 하나님을 믿
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방에 있는 저-어 짐승 보다 못한 인간을
위해서 우리집에 왔던 사람이요"
"짐승은 그래도 울부짖기라도 하지 저 사람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짐승보다 더 불쌍한 여자가 아니 요"
"당신 동생이나 딸 같으면 짐승 같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해가
되겠소" 내 독설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던 형사 분이나를 진정 시
켰다.
끓어오르는 내 분노 형사 분의 의해 조금 삭 킬 수 있었다.
한 시간 이나 문답식 형식으로 조사를 받을 때까지 하나님 믿는 짐
승보다 못한 인 두꺼비 쓴 그 인간을 내게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천주교 자매는 아내의 비극적인 현장을 수녀와 다른 자매들의 목
격하고서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야 했을 것을 내게 뱉은 것에 대하
여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하느님 믿는 짐승같이 비열한 인간들이 먼저 돌아가고 두 분의 형사
와 삼 십분 가량을 더 얘기를 나누고 형사 두 사람의 손을 번갈아 잡
고 흔들며 서로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내 처지가 딱해 보였던지 나를 문답씩으로 묻던 농사꾼 같은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형사는 헤어지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경
찰서에 찾아와 권 아무개 형사를 찾으라며 후배 형사에게 문답하던 노
트를 넘겨주며 쇠 덩어리 바퀴를 굴리면서 돌아갔다.
형사들이 돌아가고 나는 벤 취에 홀로 남아 먼 산을 바라보며 인간
이 어쩌면 그리도 나약하고 비열한 인간이 되는지에 대해서 아내가 치
욕을 당한 것 보다 더 비애를 느끼며 제살 자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
면서 하느님이 계실 하늘을 향해----!
"하느님! 우예그리 당신 믿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그런교" "하
느님 당신이 모두 가르켜지요" 하며 하늘에 향해 삿대질하면서 하느님
을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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