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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제 1 부-

까미유 |2005.04.13 13:57
조회 1,354 |추천 0

질퍽한 바닥을 발로 차고 오르는 동시에 몸이 허공에 뜨는가 싶더니 다시 깊숙이

가라 앉는 것을 느끼는 찰나 눈을 떴다. 눈부신 사금파리처럼 형광등의 불빛이

쏟아지자 곧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여기가 어딜까. 그런 짧은 생각이 스치는데

낯익은 얼굴이 불쑥 튀어 나왔다. 그 순간 그녀의 목구멍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치심과 원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질끔 감아 버렸다.


-눈 떠.


날카롭지만 감정이 섞이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은우는 눈을 뜨지

않는 대신에 입술을 꼬옥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눈 뜨고 날 봐.


건조한 현서의 목소리가 병실안을 울렸다.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입술을 굳게

다물어 버리는 현서의 시선은 흔들렸다. 많이도 지친 모습이었다. 은우는 그를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그를 지치게 하는지를.


-정말 질기다 너.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현서의 표정은 금새라도 쓰러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지금 이 병실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은 은우였건만, 초췌한 모습은

오히려 현서쪽이었다. 현서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다시 집어 넣었다. 그리곤

은우에게서 등을 돌리고 섰다. 은우의 처음 자살 시도는 목을 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수면제를 털어 넣었고, 이번엔 손목을 그었다. 그때마다 현서는 자신이

마치 의사가 된 듯 은우를 죽음으로부터 떼어 내기 위해 허둥대곤 했다. 욕실에서

손목을 긋고 누워 있는 은우를 오분만 늦게 발견했다면 아마도 더 이상 이런 귀찮은

일 따위에 얽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운이 좋다고만 해야 할까.


-너 정말 왜 이래? 나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그냥 내가 죽어?


참을 수 없는 감정에 현서는 격분했다. 은우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우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이어졌다.


-누가 살려내래?


누워서 자신을 노려보는 은우의 눈에는 금새 눈물이 차올랐다. 현서는 그런 은우의

표정에 짜증이 일었다.


-그러게 왜 죽어?


이번엔 현서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날아 들었다. 은우는 눈을 부릅 뜨고 그를 노려

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마치 붉은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니가 뭘 알아서?

-그래, 나도 모르겠다. 십 년을 너란 여자 뒷꽁무니만 쫓아 다녔는데도 너를

모르겠어. 매순간 니가 낯설어. 도대체 내가 십 년동안 쫓아 다닌 여자가 누군지

나도 모르겠다고.


현서의 말에 은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끔찍하게도 잘 알고 있었다. 수치심에 은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금새

입술에 붉은 피가 솟자 현서는 그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매번 자살이 실패로 끝날

때마다 느끼는 은우의 수치심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현서가

말없이 병실을 나가자 은우는 눈을 감았다. 하얀 병실 안은 적막했다.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느끼던 순간의 적막. 은우는 차가운 그 적막을 오래오래 기억했다.


밖으로 나온 현서는 주차 되어 있는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제일 먼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때문에 현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빛과 함께 어울어져 먼지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현서는 의자에 몸을 깊게

묻고 머리를 뒤로 젖혔다.


-자살도 습관이야, 중독일 수도 있고. 매저키스트 아냐 걔?


선배인 명선의 말을 떠올렸다. 습관성 중독. 학대를 즐긴다? 그건 아닐터였다. 은우의

자살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므로. 처음 자살의 원인은 그녀의 남자 때문이었다. 연애 칠 년만에 남자는 은우를 떠나 다른 여자에게 정착했다. 그의 결혼식 날 은우는

목을 맸다. 두 번째 자살의 원인은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진,

그러니까 친아버지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여섯 번째 남편을

얻자 은우는 약을 털어 넣었다. 아마 다른 이유도 더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의

남자가 떠난 것은 처음부터 솔직하기에는 스스로 창피했던 집안 문제도 포함 되어

있었을테니까. 그러나 이번 자살의 원인에 대해선 현서는 아무 것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녀의 입장으로썬 그럴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 은우를 꼬집어 명선이 한 말은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즐기다니? 매저키스트는 아닐 것이다.


-내가 너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게 대단해.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젖힌 고개를 들어 담배를 비벼 껐다.


-자살은 나약한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야. 그런 이유로 자살을 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인간이 하나도 없어. 살아 있다는 것이 수치가 되지.


명선의 말을 다시 떠올리자 현서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너무 고요해서 그래. 인생이 너무 적막해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야. 배부른 소리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고요한 순간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배부르다고 투정하는

것 밖엔 안 돼. 하나만 묻자. 넌 왜 은우 곁에 있는 거니? 널 한 번도 제대로 봐 주지

않는 애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건 뭐야? 매번 죽으려고 용쓰는 은우나 십 년동안 존재

가치도 인정해 주지 않는 기집애 곁에 딱 달라 붙어 있는 너나 이해하기 힘든 건 매한

가지다.


며칠을 안정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만류에도 상관없이 은우는 바로 퇴원했다. 하루라도

이 곳에 있다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겠다고

손목을 그을 땐 언제고 폐쇄 공포증 환자처럼 숨 막혀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이길 수

없으니 말이다. 은우는 그런 자신이 어처구니 없었다. 손목을 둘러 맨 하얀 붕대는

평생을 수치심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목을 매는 것과 약을 먹는 것에는 흔적이

없다. 다만 기억이 있을 뿐.

그러나 손목에 그어진 흉터는 또렷히 남아 있을 터였다. 볼 때마다 그녀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현서가 원망스러웠다. 작정하고 손목을

그었건만, 결국 우스꽝스런 소란만 피운 셈이 되었다. 작정을 했다면 장소를 잘

정했어야 했다. 이제와서 그런 후회 따위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까부터 말없이

앞만 보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현서와 반대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은우는 차창 밖의

풍경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언제 봄이 왔지?

보도위로 흩날리는 벚꽃들의 향연이 마치 꿈처럼 꿈틀거렸다. 빠르게 지나치는 어느

꽃가게의 화단에는 물감을 풀어 놓은 것마냥 파릇파릇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옷차림은 표정만큼이나 화사하고 선명했다. 유독 자신만 아직 한 겨울 끝자락에

매달려 온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발 끝을 내려다 보았다.

검정 운동화가 어쩐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은우는 고개를 돌려 현서를 본다. 그의

검은 머리가 제법 길어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이발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언제 머리 했어?


은우의 물음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현서가 고개를 돌렸다.


-못 보던 옷인데, 샀어?


은우의 물음에 현서는 잠시 혼란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다 차를 바깥쪽으로 세우고

고개를 돌렸다. 은우의 표정은 어쩐지 불안해 보였다.


-무슨 소리야?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은우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묻자 은우는 그제서야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봄이 온 거야? 벚꽃이 언제 저렇게 피었지?


한숨을 내쉬며 은우가 중얼 거리자 현서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은우야.

-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을 하는 은우의 얼굴을 현서가 두 손으로 잡고 제 앞으로

돌려 놓았다. 현서는 표정 없는 얼굴로 은우의 시선과 마주했다. 그러자 현서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난감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은우는 깊은 수면에 빠졌다. 그런 은우를 머리맡에서 내려다

보다 날이 어둑어둑해질쯤에서야 현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운 거실 바닥위로

쏟아져 들어온 가로등 불빛에 그의 실그림자가 나타났다. 은우의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장고 문을 열자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는 것처럼

불빛이 번쩍거리다 다시 어둠 속으로 갇혀 버렸다. 현서는 은우의 행동이 느닷없이

두려워졌다. 물을 마시다 문득 생각난 사람처럼 작업실쪽으로 향했다. 가만히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한 겨울의 한기가 온 몸을 덮치는

것처럼 서늘하게 느껴졌다. 항상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며 자판 앞에 앉아 있던 은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불을 켜고 현서는 가만히 손바닥으로 책상위를 쓸자 먼지가 조심

스레 일었다. 모니터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작업에 손을 놓은 지가 벌써 반 년이

흘렀다. 그동안 은우는 내내 밖으로만 돌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에 대해서

현서는 묻지 않았다. 이따금 취해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 희수 만났다.


환청처럼 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고개를 돌렸지만 방 안에는 그 뿐이었다.


-날 보자마자 첫 인사가 뭐였는지 아니?


곧이어 은우의 웃음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울려 퍼졌다. 현서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니네 엄마 여전하시지? 그거였어.


언젠가 술에 취해 들어온 은우가 푸념처럼 늘어 놓던 말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또렷히

둥둥 떠다녔다.


-배신한 건 걘데, 당당한 쪽도 걔야. 주눅이 들어서 내내 술만 마셨어. 걔랑 마주하고

있는 두 시간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취해버리기만 했어.


그리곤 쇼파위에 벌러덩 누워 버리던 은우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때 그는 희수에 대한

질투심과 은우에게 향한 원망으로 아마도 그 말을 흘려 들었으리라. 현서는 책상의 맨

윗 서랍을 가만히 열어봤다. 디스켓과 CD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고, 그것들 하나하나에

제목을 단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은우는 현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섬세하다는 걸

느낀다. 두 번째 서랍을 열자 이번엔 필기도구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세 번째

서랍은 잠겨 있었다. 현서는 순간 세 번째 서랍 안이 궁금해졌다.


-거기서 뭐하니?


열쇠를 찾기 위해서 두리번 거리다 은우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현서의 얼굴이

붉어졌다. 언제 깼는지 은우는 굳은 표정으로 방문을 열어 비켜 섰다. 그것은 나가

달라는 몸짓이었다. 현서가 당혹스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머쓱하게 방에서 나가자

그의 등 뒤에서 문이 신경질적으로 닫혀 버렸다. 닫힌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어쩐지 입을 꼭 다문 은우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스산했다. 몸을

돌리는데 방 안에서 은우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처음엔 미세하게 울먹거리는

소리였는데 점차 흐느끼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현서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방문을 두드리며 은우를 부르려 주먹 쥔 손을 올리다 그냥 거두어 버리는

현서의 마음은 착찹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또는 방문을 연 순간 어떤

제스처를 보여야 할지 현서는 난감했다. 어쩌면 그 난감함 때문에 손을 거두었는지도

몰랐다. 방과 거실 사이에 놓여진 벽을 두고 두 사람은 등을 지고 앉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십 년을 동거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이은우란 여자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에 십 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칠 년을 만난 희수보다도 이은우란 여자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내 십

년이란 시간동안 그가 바라본 것은 그녀의 뒷모습이었고, 그녀의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희수는 그런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은우와 마주 보고 있었을테지. 은우의

뒷모습이 혹은 그녀의 그림자가 어떤지는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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