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시내 조센야!
따스한 아침햇살이 피로를 몰고 왔다.
나는 햇살을 몸으로 받아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상철이와 덕보는 몸을 웅크린 채 머릴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이내 코를 골았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했다.
전쟁미치광이들 ―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지배하려는 이들에게도 당신의 말씀이 전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태양은 장군봉우리를 훌쩍 넘어 중천을 향하고 있었다. 장군봉 좌우로 병풍처럼 펼쳐진 열여섯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평화를 누렸다. ―
우리 강산이는 커서 목사가 됐음 좋겠다.어머니의 속삭이듯 다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넓은 호수의 물빛이 화사했다.
스르르― 두 눈꺼풀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얼마쯤 잔 것일까? 마스자카의 된소리에 눈을 떴다.
마스자카는 우리에게 서둘러 쇠말뚝을 들고 오라고 했다.
우리는 다섯 자가 넘는 쇠말뚝을 밧줄로 감아 질질 끌고 마스자카를 따라 갔다.
그 곳은 방금 그들이 자국의 천황과 신에게 기원하던 장소였다.
그 곳에는 얕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그 구덩이 속에서는 호수에서 밀려온 물이
꾸역꾸역 기어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잠바를 입은 군관의 지시에 따라 구덩이 속에 쇠말뚝을 꽂아 넣었다.
구덩이는 아마 쇠말뚝 박을 자리터로 잡아놓은 듯 했다.
또 다른 사내가 쇠망치 두 개를 가지고 왔다. 그 사내는 우리에게 교대로 쇠말뚝을 박으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이 곳에 쇠말뚝을 박으라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지시한 대로 쇠말뚝을 박아야만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먼저 상철이와 내가 쇠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쇠망치는 몹시 무거웠다.
족히 5Kg은 되는 듯 했다. 나는 쇠말뚝을 향해 망치를 내리쳤다.
―쾅!
이번에는 상철이가 내리쳤다.
―쾅!
쇠망치와 쇠말뚝이 부딪치는 소리가 장군봉을 때렸다.
그리고 좌우의 봉우리로 퍼져 나갔다.
―어흥 ―――― 어흐응 ――― 어흐으응……
그 소리는 마치 호랑이가 피를 토하며 괴로워 신음하는 소리같았다.
―쾅! ―쾅!
쇠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들려오는 메아리는 슬프디 슬픈 장송곡 같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이 쇠말뚝을 더 이상 박아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허리를 삔 듯 엄살을 부려서 망치 내리치는 행위를 중단했다.
이번에는 덕보가 망치를 잡았다.
―어흥 ―――― 어흐응 ――― 어흐으응……
메아리는 처절한 절규로 내 귓속을 후벼팠다.
날카로운 창을 가슴에 맞고 바둥대며 괴로워하는 호랑이가 떠올랐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무릎을 꿇었다.
왜일까? 왜 이렇게 괴로운 것일까?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막혔다. 마스자카는 내가 정말 허리를 삐어 괴로워하는 줄 알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조용히 마음을 비우는 기도를 했다.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일본의 압제때문이었다.
1905년 5월 27일 러일전쟁의 종식을 고하는 대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발트함대가 대한해협에서 일본함대와 맞붙어 싸운 대해전이었다. 꼬박 이틀동안 계속된 이 해전은 발트함대의 완패로 끝이 났다.
49척에 달했던 대함대가 모두 침몰하고 겨우 3척만 남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간 것이다.
러일전쟁을 대승으로 이끈 일본은 그 해 9월 포츠머스조약 [포츠머스조약 : 1905년 9월 5일 러일전쟁에 패한 러시아가 조선을 일본에 넘긴다는 것이 이 회담의 핵심이다.
제2조는 “일본은 한국에 지배적인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고 규정했다.
이 조약으로 여순·대련의 조차권과 장춘 이남의 철도부설권, 북위50도이남의 사할린섬을 일본이 가져갔다.]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조선과 남만주에 대한 권한을 대폭 이양받았고, 조선반도는 물론 만주에까지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일본은 그 해 11월 18일, 고종황제를 협박하고 조선의 매국리들을 매수하여 치욕의 을사늑약을 체결한다.
이 사건으로 울분을 참지 못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켰고, 치안에 이어 군부까지 장악한 일본은 군대를 풀어 의병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했다.
그 후, 일본군에 쫓기던 열혈 젊은이들은 만주로 중국으로 도피했으며, 나 역시 그때 고향을 떠나 이곳 간도로 들어왔다.
갑자기 쇠말뚝 박는 소리가 끊겼다.
장백폭포에서 떨어져 내린 물이 부딪치며 토해내는 소리가 먼 곳에서 아득히 밀려왔다.
나는 쇠말뚝이 박힌 곳으로 천천히 눈을 돌렸다. 쇠말뚝은 한자두치 정도가 땅 위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쇠망치는 우리 일행이 아닌 60대 사내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얀 기모노와 머리에 쓴 하얀 두건이 태양을 받아 흩어진다.
조용히 심호흡을 하던 그는 들고 있던 쇠망치를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의 모습은 결연했고 두 눈은 번뜩이며 먹이를 쫓는 독수리의 눈빛이었다.
갑자기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빛살처럼 스치며 등골이 오싹해 왔다.
그는 절규하듯 소리치며 쇠망치를 내리친다.
“시내! 조센야!”
콰앙――!
함께 있던 일본인들이 합창으로 말을 받았다.
“시내! 조센야!”
콰앙――!
그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날선 칼처럼 번뜩이며 우리 귀에 꽂혔다.
백두산 봉우리를 때리고 돌아오는 메아리는 더욱 처절한 신음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파후볐다.
아! 그들이 핏발을 세우며 소리치는 그 말은, ‘죽어라! 조선아’ 였다.
간도에서 일본말을 쓰는 것은 나는 매국노요 ― 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간도로 간 조선사람들은 일본말을 잘하지 못하지만 단순한 몇 마디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놈은 쇠망치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모오, 조센와 나이!”
함께 있던 자들이 박수를 치며 말을 받는다.
“모오, 조센와 나이!”
그 말 역시, 이제 조선은 없다 라는 말이었다.
이제…이제 조선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전신이 떨려오며 등골에서 식은땀이 스물스물 기어 나왔다.
나는 두 다리가 와들거려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내 뇌리에 강렬하게 꽂힌 것은 그들이 쇠말뚝을 박은 이유였다.
백두산은 우리 조선인의 자존심이었고 백두대간의 발원이며 한반도의 머리가 아닌가!
― 그렇다! 이들이 박은 쇠말뚝은 한반도의 정기를 잠재우기 위해 그 머리에 꽂은 비수였다.
그랬기에 “죽어라 조선아!”였고, 쇠말뚝을 박고 나서 “이제 조선은 없다”고 말한 것이리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욱 소름이 끼쳤다.
키득거리며 힐끗힐끗 돌아보는 놈들의 얼굴이 악마처럼 비춰졌다.
이번에는 40대 중년사내가 일장기를 꺼내 들었다. 놈들은 황급히 기립했다.
그리고 일장기를 바라본다.
“나, 이토 히데키는 우리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이제 그 소임을 마쳤음을 고하나이다!”
이 사내의 이름은 이토 히데키였다. 훗날 듣게 된 얘기지만 ‘이토 히로부미’의 먼 조카벌되는 자이다.
이 자는 덴노(天皇)의 조상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에게 조선땅 머리 위에 저주의 쇠말뚝을 박았음을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사내는 일장기를 두 손으로 잡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쳐올린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기립했던 자들도 두 손 쳐들며 반자이를 합창했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
놈들, 우리 조선땅 한반도의 정기가 솟아나는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고 자국의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천왕봉이 슬피울었다. 하늘은 온통 핏빛이 되었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핏빛 하늘을 쪼개자 장미꽃보다 붉은 피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2천5백만 조선백성들의 눈물이었다.
먹구름이 핏빛하늘을 쓸며 소나기를 쏟아낸다.
아! 하늘이여― 저자들을 심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