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그 남자 - (24) 그래도 그들은 사랑했다.
"주 주엽씨?"
상처를 주고 그와 헤어진 것도 모자라 이제 와서 그를 다시 찾아 왔다면 그는 놀랄 것이다. 그것도 훤한 낮도 아닌 조금 있으면 동이 터 올 새벽에 그를 찾아오다니....... 수연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괜한 걱정이 앞섰다.
'지금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 그가 아픈걸.........'
그가 다시 잠들었는지 어스름한 불빛에 약간의 미동도 없이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수연의 두 눈에 들어 왔다. 아마도 그녀가 부르는 소릴 못 들었는지 그는 일어날 기미조차 없어 보였다.
수연은 그가 미동도 없이 몸을 한껏 웅크린 체로 자는 모습에 가슴이 짠하여, 그의 곤히 잠든 모습만 보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그의 힘겨운 목소리와 함께 아픈 듯 내는 힘겨운 신음소리를 들어 버리고 말았다.
"주 주엽씨! 어머! 이 열 좀 봐. 어 어떻게...... 일어 나봐요. 제발 왜 이렇게 아프도록 미련하게 있는 거예요! 제발 일어나라 구요. 제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나오는 줄도 모르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드는 그를 흔들어 깨우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어나요. 제발...... 흐흐흑"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속 잠만 자는 그를 더 이상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결국 수연은 자신이 아플 때마다 정성 들여 간호를 해주던 엄마를 떠올리며, 새벽인줄도 까맣게 잊고 그녀의 엄마를 깨우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어서 좀 일어나 줘."
잠결에 자신의 딸이 울면서 부르는 통에 너무 놀란 그녀의 엄마와 아버지는 그녀에게 황급히 나와주었다. 그녀의 딸이 무엇때문인지 몰라도 무척 당혹스러워 하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니? 수연아."
"주엽씨가 주엽씨가 아파요. 빨리 가서 그를 좀 봐 주세요. 어서요."
수연이 주엽이 아프다고 말하며, 그녀의 소매 깃을 잡아 당겼다. 그녀는 우선 자신의 딸을 진정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남편에게 수연을 부엌으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하곤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녀가 나오자 수연이 튕겨져 나오듯 주방에서 나와 그녀와 함께 주엽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휴! 이 열좀 봐. 아니 주엽 인 데 체 어쩌고 다니 길래 이 지경으로...... 쯔쯔쯔 우선 열부터 식혀야 하니까. 얘 수연아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란다. 그러니 우선 아니다 내가 가서 가져오마. 넌 이 집에 뭐가 있는지 좀 보고 오렴. 아무래도 빈속에 술을 마신 모양인데.... 하여튼 요즘 사람들은 술이라면, 큰일도 낼 사람들이라니까."
주엽이 술을 마시고, 술병이 난 것처럼 말하는 그녀의 엄마는 서둘러 그녀의 집으로 가시더니 이내 차가운 얼음주머니와 함께 해열제를 가지고 왔다.
"이거면 아마 열은 내려 갈 거다. 에휴, 남에 자식 때문에 내 자식 얼굴이 이게 뭐냐? 자 그거 내려놓고, 주엽이 한테 네가 올라가 보거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엄마가 자상하게 물어 오자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인 체 빠르게 그의 방으로 올라 왔다. 그가 소란스러움에도 상관없다는 듯 여전히 온몸에 열을 뿜으며, 힘겹게 잠들어 있었다. 펄펄 끓고 있는 그의 이마를 손으로 한번 짚어 본 후 엄마가 가져온 얼음주머니를 그의 이마에 올려 주었다. 차가운 기운을 갑작스럽게 느낀 그가 깜짝 놀라며, 눈을 떴지만,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로 눈을 감아 버렸다.
"주엽씨 이 거 먹고 자야 되요. 힘들겠지만, 자......."
그녀는 힘겨워 하는 주엽의 머리를 자신의 팔로 살며시 보듬으며, 그녀의 엄마가 가져온 해열제를 물에 녹여 그의 입 속으로 흘려 넣어 주었다. 그녀는 주엽이 잠결에도 쓰디쓴 약 맛에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이 아이같이 귀여워 보였다.
약을 가까스로 넘긴 그를 위해 그의 베개를 편안하게 매만져 주고, 그를 살짝 내려놓았다. 그녀의 품에서 떨어져간 그가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수 연 아..... 이제 "
그녀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힘겹게 부르는 소리에 놀라 들고 있던 얼음주머니를 놓칠 뻔했지만, 이네 평정을 찾고, 그의 이마에 조금 전 올려놓았던 얼음주머니를 다시 올려주며, 그의 옆을 지키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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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은 형준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어느새 그의 집 앞에 도착한 택시기사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는 멍하니 택시 기사를 바라보다. 자신이 온 곳이 그녀와 그의 집이 있는 골목이란 걸 알고는 서둘러 요금을 지불한 뒤 택시에서 내려섰다. 택시에서 내려선 그는 땅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자체가 너무도 힘들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비추는 달빛이 그의 눈에 반사되어 눈앞이 어지러워 졌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거라 생각을 한 주엽은 문뜩 누군가가 자신을 보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무심코 그녀의 방을 올려 다 보았다.
'풋, 넌 아직도 착각 속에 사는 구나. 그녀는 널 밀어 낸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이 뭐 하러 네가 들어오는 걸 이 늦은 시간까지 지켜보고 있겠냐고, 푸하하하하'
수연에 대한 힘겨운 결론을 내려 버린 그의 입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방을 바라보던 시선을 씁쓸히 거두어 자신의 집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철컥. 삑!
평소엔 그렇게 크게 들리지 않던, 현관의 잠금 장치 마저 그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차가운 기운이 그를 엄습했다. 오랫동안 비워둔 티를 내듯 사람 온기 하나 없는 그의 집이 삭막해 보였다. 더 이상의 기운을 낭비하기 싫었던 주엽은 현관을 들어 설 때처럼 힘겹게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의 방 역시 싸늘하게 그의 체온을 감싸고 지나갔다. 조금의 온기라도 전해 받으려는 듯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침대의 이불을 끌어 당겨 온몸을 휘감았다.
얼마나 잔 걸까. 낯익은 그러나 누구인지 그 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형체가 그의 눈앞에 어른 거렸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점차 울음소리로 바뀌자 그는 그 사람이 울먹이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누 구 지? 왜.. 자고 있는 날. 힘들게 하는 거야...'
그는 상대방을 향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자신의 입이 원망스러웠다. 꿈인 듯 자신을 흔들어 깨우던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그는 또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를 만났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애브린드에서 그녀와 달콤한 솜사탕을 나눠먹으며,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 정말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맞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즐거움이 그는 찾아 왔다. 그런데,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갈 정도로 즐겁게 웃고 있던 그녀가 갑작스레 미소를 지우더니 더 이상 차가울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변한 그녀의 태도에 놀란 주엽은 그녀의 손을 잡고, 왜 그러는 건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고, 그는 그녀와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자신이 방금 본 것이 꿈이란걸 알고는 힘겹게 도로 눈을 감아 버렸다.
꿈속에서 느껴 던 차가움. 그건 바로 그의 이마 위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얼음주머니였다. 힘겹게 일어나던, 그의 눈앞에 그를 그토록 힘겹게 애태웠던 수연이 잠들어 있었다. 아직은 새벽바람이 차가운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얄은 웃 옷만을 걸친 체 그의 침대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얼음주머니의 차가움과 묵직함이 그의 눈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려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깨지 안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그녀의 어깨에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낯선 감각에 여지없이 그녀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 일어났어요? 괜찮아요?! "
수연은 언제 잠들었냐는 듯 앉아 있는 그의 이마를 자신의 조금 차가워진 손으로 매만지며,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의 이마는 열은 내렸지만 아직까지 게슴츠레한 그의 눈이 그가 밤새도록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팠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를 걱정하는 수연의 따뜻함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눈앞의 그녀가 믿기 지 않는 다는 듯 그에게 잡힌 손을 치우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지?"
자신의 목소리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는 낯선 목소리가 그녀의 행동을 채근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미리 생각하고 있던 그의 말들 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함이 그녀를 서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 난 여기 와서는 안돼는 거였는데......... 그도 내가 보기 좋지는 않았을 건데........'
하지만, 수연은 불가항력적인 그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를 아침까지 지켜줘야 한다고, 자기 합리화 시켰었다. 수연은 그에게 꼭 잡힌 팔을 빼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밤새도록 그를 간호 할 때 가졌던 애틋함을 몰아내려 애를 써야 했다.
"미 미안하군요. 나 난 사실은 형준씨가 보낸 메신저를 받고 당신이 아프다 길래...."
'젠장 할, 왜 내가 이 남자에게 변명 따위를 해야 하지. 정말 신경질 나는군.'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 관 전혀 다르게 그에게 화가 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미안해요. 정말 당신이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구요. 이젠 괜찮은 것 같으니까 난 그만 가볼게요."
결국 그가 걱정이 되었던 마음은 그의 싸늘한 시선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수연의 가슴속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 후회와 자신에 대한 깊은 원망이 자리했다.
주엽은 그저 그녀가 왜 무슨 마음으로 자신을 간호하고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자신의 친구 부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다였다.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무얼 기대한 건지 왜 아직도 그녀에 대한 마음이 미련으로 남아 있는지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을 잡듯 무심코 잡고 있던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겨 그녀의 눈 속을 속속들이 들여 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다. 그가 잘 알고 있듯이 그녀는 거짓말을 할 때면 눈동자가 연한 회색 빛을 띄곤 했었다.
"앗, 어머! 왜 이래요?! "
갑자기 그녀를 거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녀는 그의 가슴 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밤새 아팠다고,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힘이 그에게서 전해져 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아! 소리를 내서 그에게 항의를 하는 것 뿐 이였다.
"남자가 혼자 있는 집에 왔으면 이 정도는 각오하고 온 거 아닌가?"
그가 평소모습보다 짖굳은 말투로 말하며, 당혹스러워 하는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놀란 모습과 함께 긴장한 그녀의 입술이 실룩이는 걸 그는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고있으니 참을 수 없는 갈증이 그를 엄습했다. 주엽이 목마름을 해결하려는 듯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아!..........."
"갈증이나, 너를 보고 있으면 왠지 자꾸만 갈증이 난다고, 이젠 네가 날 위해 그 갈증을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
그가 여전히 그녀의 입술을 가진 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해왔다. 주엽의 애타는 한마디에 그녀는 지금 이순간 그의 갑작스런 키스도 그의 허스키 한 음성 모두다 너무도 소중한 순간처럼 다가왔다.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표현하듯 그의 머릴 매만지며 자신의 입술을 강하게 밀어 붙였다. 그가 그녀의 열정적인 행동에 놀라 그녀와 똑같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녀가 맛보는 지금 그의 입술은 어젯밤 선열로 들 끌어 오르던 그이 이마처럼 너무도 뜨겁게 느껴졌다.
"음. 점점 날 미치게 할 작정이로군. 으음............"
두 사람의 진한 키스로 인해 두 사람이 내는 헐떡임만이 주엽의 방안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엽은 이 순간이 꿈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그녀를 소중하게 안아 주었다.
"자, 이젠 어쩔 셈이지?"
조금 전 뜨겁게 키스를 나누던 주엽은 그녀를 향해 채근하듯 물어 왔다. 선뜻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못하고, 그녀는 애 굳은 자신의 입술만 물어뜯고 있다.
"그만 좀 하라고, 그렇게 하면, 그 입술이 나마 나겠어. 네 입술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나 뿐 이면 될 것 같은데......."
주엽이 싱글거리며,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 조금 전 키스로도 부족했던지 그는 그녀의 입술에 또 다시 키스를 했다. 그녀도 이번엔 그를 조금전 보다 더 열정적으로 그를 안아 주었다. 그러자 그가 그녀에게 답례를 하듯 이번엔 그녀의 귀에 달콤한 키스를 해왔다. 그리고 순서를 정하듯 그의 입술이 그녀의 얼굴 곳곳을 키스하고 다녔다. 달콤하고, 간지러운 그의 스킨쉽에 그녀의 입술이 기분 좋게 벌어지며, 경쾌한 웃음소리를 자아냈다. 그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녀와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다.
"이젠 네가 나한테 뭐라고 해도. 더 이상 소용없어 널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면 모든게 가능하고, 충분하니까."
"주엽씨........ 미안해요."
"아니 아직 일러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긴. 적어도 우리가 서로 사랑이란 감정을 모를 때 서로를 속일 순 있더라도 난 너 없이는 하루가 얼마나 긴지 잘 알아 버렸으니까. 수연이 너도 내가 걱정이 되었던 게 단지 이웃 이여서가 아닌 거 난 잘 알고 있어. 안 그럼 네가 나한테 이렇게 안겨 있지 않을 테니까."
그가 그녀의 마음을 확정짓는 말 한마디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실 그가 모르길 간절히 바랬던 마음만큼 그가 은미가 아닌 자신을 좋아해 주는 그를 믿고 싶었다.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자꾸만 당신을 기다리는 내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단지 6개월 정도 장난처럼 만나기만 하면 될 거 란 내 생각과는 자꾸만 멀어지는 내 행동들이 당신을 밀어내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죠. 미안해요. 당신을 속이려 했던 건 아니니까. 나를 미워하지는 마요. 제발"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처음으로 힘겹게 자신의 심정을 말해 버렸다. 그는 그런 그녀를 이해 한다 는 듯 가볍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입맞춤으로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알아. 단지 내가 당신에게 너무 서둘렀다는 것이 문제였지. 참, 줄게 있어 너한테 꼭."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그녀를 살며시 때어 놓으며,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깔끔한 흰색 장롱으로 다가가 언젠가 본적 있던 그의 깔끔한 세미 정장을 뒤적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빨갛게 포장된 무언가를 들고 그녀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는 그녀를 침대로 앉혀 놓은 체 자신이 준비한 무언가를 내밀어 보였다.
"자, 이제야 이게 주인을 만난 것 같은데.... 받아 줄래 수연아?"
그가 내밀어 준 자그마한 상자 속에는 그녀를 위해 그가 어렵게 구입한 반지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초록의 빛이 그녀를 황홀하게 만들어 주었다.
"너무 예뻐요.!"
예쁘다는 말로 찬사를 하는 그녀의 손가락에 만족한 미소를 지은 체 그가 준비한 아름다운 반지를 끼워 넣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그녀의 손가락이 그를 기쁘게 해주었다.
"애쿼머린 (aquamarine) 이게 3월 탄생석이래. 왠지 처음 봤을 때부터 널 닮은 것 갖 길래 내가 널 위해 사두었지. 어때 맘에 들어?"
그녀에게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 지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 초조 한 눈빛으로 그녀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아름답게 빛나는 자신의 생일과 같은 탄생석을 바라보며, 한숨처럼 감탄사를 연발했다.
"너무 아름다워요. 게다가 나랑 같은 3월 생이라니 너무 좋아요. 어쩜 좋아 난 이런 거 당신 한 테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아니, 난 당신이 이 돌덩이 보다 더 값진 보석이라고 생각해. 이건 그냥 당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장식에 불과한 거라고, 난 당신만을 사랑하는 걸."
기쁜 마음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하는 그녀를 그가 황급히 안아 주었다. 한줄기 걱정이 걷히고, 밝은 세상이 그들을 기다린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