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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가장 힘들다 느낄때 가족이 있다.

행복하세요 |2005.04.26 14:07
조회 316 |추천 0

삶이 가장 힘들다 여길때가 언제던가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속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웃는 얼굴보단 찡그린 얼굴이 많은 세상속에 챗바퀴돌듯 돌아가는 인생

 

어느순간부터인지 웃음은 잊은채 매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사람들이라는

 

느낌만 드는 사람들 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지 참 의문이네요.

 

하지만 저는 즐겁답니다. 모두가 다 좋을순 없지만 저는 즐겁답니다.

 

즐거울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려 하지요.

 

수많은 돈에 관한 안좋은 기억들속에 가족을 잃어야 하느니 버려야 하느니

 

이혼을 하라니...휴...참 우습군요. 억단위의 돈...그게 사람보다 중요하다라.

 

전 그렇게 생각치 않았는데 다들 왜이리도 인간관계를 쉬이만 보시는지

 

물질의 지배를 너무 받으시는거 같아 맘이 상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무성의한 글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어보이는 리플들이 더욱 안타깝군요.

 

그건 늬놈이 아직 사회물 덜먹어서 그래 고생 덜했구만....이렇게 말하실분도

 

있으시겠지요. 확실히 19살때까지의 저는 그랬습니다.

 

나름데로 부자소리 듣구 도련님소리까지 들으며 살아온 저인지라 아무것도 몰랐지요.

 

정원딸린 큰집에 살때까지만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저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군무원 은퇴하시면서 시작하신 양식업이 성공하셔서 였지만 그덕에

 

삼촌을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남의 밑에서 일하려 하지 않고 다 사업을 했지요.

 

너나 나나 사업...그 뒤에는 늘 할아버지가 자본을 대시구....그 많던 재산은 다 어찌 됐는지

 

19살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누나 그리고 저...딱 7평 방한칸에서 부엌과 샤워실이 겸용인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선산만은 죽어도 팔지 못한다는 할아버지 말씀에 그걸 제외한

 

모든것을 다 팔구요. 빠른 81인 전 대학교 1학년이였답니다. 울강아지 도도....두 농장으로

 

보내고 정들었던 모든것들은 다 지운체 대학교도 장학금 받으려 하향지원하구

 

모든걸 다 채념한체 바보같이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모임도 자연스레 피하게

 

되더라구요 어린 나이니 어디서 알바를 써주지도 않고 끽해야 학교 도서관 알바가 다인

 

제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절 힘들게 한건 방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어요 집에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누나랑 어머니였어요. 유독 남성 우월주의가 심했던 집안 탓인지. 어머니와 할머니가

 

누나보고 돈을 벌어 제 뒷바라지를 하라고 하더군요....누나가 한참을 우는거 같았어요.

 

전...밖에서 듣고 있으니..미치겠더라구요. 누나는....결국 뒷바라지 한다더라구요

 

하하하 제기랄 하면서 그날 미친놈처럼 술쳐먹으며 길을 걸었답니다.

 

그리곤 알바해서 꼬박꼬박 모은 돈을 가지고 누나 학교를 찾아갔어요.

 

학과 사무실 조교에게 누나의 공납금날에 내어달라고 부탁하며 공납금을 줬답니다.

 

공립에 장학금까지 받은 누나인지라 적은 돈으로 내는게 가능했지요.

 

하지만 전 사립에 휴...바보같이 방황이니 어쩌니 하느라 2학기때는 장학금은 어려워

 

보였답니다. 그리곤 대전에 올라갔어요 그냥 무턱대고 이모가 새로 개업한다는

 

극장에서 일을 시켜준다고 하셔서 올라갔답니다. 집에 전화한통 했지요.

 

누나 공부 내가 시키니까 누나한테 이상한거 하지 말라고 나 솔직히 공부 관심없다고

 

그리곤 한달에 75만원 꼬박꼬박 보냈습니다. 정확하게는 72만원 보내고 딱 3만원으로

 

바로 앞집 베이커리 가게에 가서 빵을 샀답니다. 매일 제가 마치고 집에 갈때마다

 

구워대는 그 바게뜨빵...솔직히 아무런 맛도 없는데..

 

정말 보고 싶던 만화책이랑 비디오를 빌려와서는 이모가 한대 사준 비디오 비젼에

 

틀어서 보면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체 그냥 바게뜨빵 먹으면서 울었어요..

 

참 우습죠. 그렇게 4개월 그다음엔 월 250받고 밝은 성격인 저인지라

 

경품게임장 맨트로 취직해서 일을했답니다. 웨이터에 그다음엔 농수산품 직판까지

 

너무 기나긴 이야기들 하지만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군대가서도 휴가 나올때마다

 

쉬지도 않고 농경민 후계자여서 군대안간 친구놈이랑 둘이서 농산물 팔러

 

다녔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구요. 글쎄요. 가족들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다 유학생활을 하고 있고. 누나는 대기업에

 

취직을 했답니다. 억대의 빚...억대의 빚보다 더 소중한건 가족이라는 울타리 입니다.

 

빋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가족은 원수가 되는거고 뛰어넘는다면 보다 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것입니다. 단하나. 단순히 그냥 남의 돈벌어서

 

빚갚아 보려니 하지는 마세요 남의 돈 벌어서는 결코 그 늘어나는 빚을 갚을수

 

없을겁니다. 조그마한 돈을 가지고 이리저리 조금더 고생해서 조금더 알아보고

 

불릴수 있는 길을 찾으세요. 부디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억대의 빚보다는 내가 심지어 살인자가 됐을때도 내편에 서줄수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평범한 삶을 방해 받은것일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망가지는건 아니니까요. 부디 웃으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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