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다리 Air Canada 비행기를 타고 Pacific를 건너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지나갔다. 방황하든 20대 초반,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었지만 번번히 좌절하든 그 시기 그 시기를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세련되고 젠틀하게 보낼 수 있었는대 하는 아쉬움은든다. 그 시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말은 '천상천하 유아독존','독고다이'...ㅋㅋㅋ 내 일은 나만이 해결할 수 있고 내 일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옳고 바른 길이라 믿었던 그 시기...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나보다 날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있고 그 주위 사람들의 충심어린 충고와 대화는 내 문제를 나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 어느 면에서는 더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세 명의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신 아버지였지만 당신에게 막내 아들이란 존재는 어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보는 듯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내들 중에 가장 총명하셨던 남자가 아버지였다. 이건 우리 머리 큰 ^^ 막내 매형도 인정한 사실이다. 우리 아버지 얘기로만 너끈히 책 10권쯤 나오지 않을까싶다. 자기 자신의 총명함을 당신 자신인들 몰라겠는가?! 이 세상 누구보다 하늘을 크게 날아보고 싶어하든 분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다친 다리때문에 평생을 다리를 절어야만 했던 아버지 항상 건강이 아버지 발목을 잡았다. 그런 아버지가 하셨던 나에 대한 기대를 단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아들새끼...아버지 건강이 항상 안 좋기는 했지만 언젠가 거동도 못할만큼 건강이 악화되셔서 누워만 계시던 때가 있었다.
"누구냐?"
그 날도 어김없이 술 쳐드시고 ㅡ.ㅡ 새벽녁에 들어가던 나에게 방문을 열어둔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날 불렀다.
"저예요. 아직 안 주무시고 뭐해요?"
그 시간까지 아프셔서 주무시지도 못하고 계시던 아버지께 다정하게 말은 못할 망정 ㅡ.ㅡ 술 쳐먹고 들어가는거 걸렸다는 바보같은 생각을하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던 바보같은 나...
"술 마셨냐?"
안방을 들어가보니 작고 흐미한 스탠드 불빛의 힘을 빌려 그 시간에도 책을 읽고 계신다.
"조금요. 엄마는요?"
"내가 잠이 안와서 책 좀 읽을려고 작은 방에서 편하게 자라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당신은 밤새 다리가 저려 잠을 못 자지만 당신의 아내가 당신때문에 편한 잠자리를 못 가지는걸 더 싫어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우두커니 내려보고 있으려니 마치 꼭 내 40년 뒤의 모습을 보고 있는듯 했다. 아버지와 내가 쌍둥이처럼 많이 닮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아님 술기운 때문에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소름이 돋을만큼 아버지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아빠~ 아빠는 나보다 인생을 40년이나 더 살았자나요? 그리고 난 지금부터 아빠가 살았던 30대 40내 50대 60대를 살아가야되고요. 아빠가 우리 아빠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정말 아빠가 인생을 살면서 꼭 이것만은 뼈저리게 느꼈던 그런 충고나 교훈 같은거 없어요."
갑자기 아빠에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알씩 드시던 약때문인지 아님 오랫동안 밖엘 나가시질 않아서 그런지 아버지는 핏기없는 얼굴이었지만 어린 아이처럼 눈부시게 빛나던 아버지의 눈을 보고 있으려니 무언가 내 방황하던 시기의 해답을 주실 것만 같았던 것 같다.
"너 뭔가를 이루고 싶지? 쪽팔리게 살기 싫지?...아버지는 항상 정상을 보고 살았다. 미치도록 정상에 서고 싶어서 미치도록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번도 정상에 서보지 못했다...아들아! 네가 만약 정상에 서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정상을 쳐다보지마라...항상 항상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어느샌가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넌 정상에 서 있을거야. 최고가 될려고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주무세요. 요즘 시력도 부쩍 안 좋아지시는데..."
사실 그 때 아버지가 해주셨던 충고는 그 다음 날 술이 깨고 바로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난 4~5년을 더 방황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건내주시던 아버지 일기장에서 다시 그 충고를 읽고나서 난 아버지가 나에게 얼마나 간절하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셨는지 절실히 느꼈다.
사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만해도 나와 아버지는 제일 친한 친구였다. 40년이나 나이차이가 났지만 우린 항상 진지하게 서로의 고민을 말했고 여름이면 텐트 달랑 하나들고 동해며 남해를 여행을 다녔다. 아버지는 나의 가장 애틋한 친구였고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하지만 내가 20살이 넘으면서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서로에게 기대가 컸던만큼 서로에게 실망이 컸을까?! 난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던 독립을 감행했다. 그리고 나의 방황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둘째매형 품에 안겨 마지막 하셨던 말씀이 나에게 전화해보라는 말씀이셨단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 날 우리 둘째누나랑 연애기간까지 합쳐서 10년을 넘게 알면서 나에게 험한 소리 한번 안하던 둘째매형에게 따귀를 맞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던 형에게 우리 아버지는 친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단갈 난 잘 알아었다. 눈물 흘리면서 나의 따귀를 치시던 둘째매형의 얼굴을 보면서 정말 나 자신이 창피했던 기억이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나에게 건낸 것이 아버지의 일기장이였다. 일기장 첫 페이지부터 돌아가실 때쯤 손에 마비가 와서 삐뚤삐뚤 거리는 글씨로 쓰신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조리 나와 가족에 대한 얘기로 채워져있었다. 그 일기장을 품에 안고 한없이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의 성서는 아버지 일기장이 되었다.(언젠가 우리 아버지의 얘기를 글로 옮겨보고 싶다. 나의 능력이 된다면...꼭...)
비행기가 출발한지 한참이 지나서 긴장이 풀려서 똥꼬가 느슨해질쯤 가방에 넣어두었던 아버지 일기장을 꺼내 읽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시 한번 더 다짐을 했다.
'아자~ 열심히 하자.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최선을...' 그렇게 일기장을 읽다. ㅡ.ㅡ 코 곯며 잠을 자다 밥 먹으라는 뚱땡이 stewardess ㅡ.ㅡ 아줌마의 손지검에 잠을 깼다. 그렇게 뚱땡이 아줌마가 주는 기내식을 가장한 꿀꿀이 죽을 3번쯤 먹고나니 ^^ Vancouver가 비행기 창 밖으로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 촌스럽게 나 혼자 소리쳤다. '야~~~호~~~~~'
ㅡ.ㅡ 어째든 도착했다. Vancouver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