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레스토랑 가서 먹기나 했지 주방에 들어 가 본 적이 없으니 비교 할 수 는
없지만 터키 레스토랑의 주방은 남자들의 주방 치곤 매우 깔끔한 편이긴 한데…
뭐 딱히 조리 도구랄 게 안 보인다. 칼 몇 개, 커다란, 도마로 쓰는 두꺼운
널판지 하나. 냄비 두어개와 접시들. 무시무시하게 날이 선 우리 부엌칼 보다
좀 긴 칼 몇 개가 도마 옆 판자로 만든 칼집에 위협적으로 꽂혀 있는 것과,
양은 양동이 하나 가득 포장 안된 작은 각설탕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이 좀
인상적 이랄까 ?
대체 이 많은 각설탕은 언제 다 먹냐고 하니 한 2-3일 ? 그런다. 끼야…. 하긴…
터키인들은 차를 많이 마시는데 특히 추운 동부 쪽은 차를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살긴 하더만. 근데 차 한잔 마실 때 마다 각설탕을 두 세개씩 넣으니… 한 사람이
하루에 먹어 치우는 각설탕 양만해도 꽤 될 텐데 거긴 일 하는 사람에 손님들까지…
그래 2-3일에 끝장 나기도 하겠다.. (나중에 음식 얘기에서 다시 하겠지만
터키인들은 정말 단 거라면 환장을 한다)
무시무시한 칼을 약간 두려워 하면서 옆에서 사이암의 코치를 받아 가면서 터키 식
샐러드를 만들고, 밖에서 굽던 케밥도 거의 구어 졌는지 밥을 먹자고 해서 나가 보니
이런…. 무슨 생일 파티가 4인용 테이블 달랑 하나 차려져 있고 다른 친구들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내가 눈치 없기로 유명 하긴 하지만 그쯤에서 감을 잡아야 했는데 너무나 멍청하게,
“니 친구들은 언제 오냐”고 물었더니 사이암은 주방에 있던 매니져 하나를 끌고
나와 테이블에 앉히며 “다 왔어, 얘가 내 친구야” 그런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그 불쌍한 매니져는 나 땜에 사이암에게 잡혀 가족들에게
가야 하는데 못 가고 밥 먹는 내내 계속 시계만 흘끔 거리는 걸, 나중엔 너무 불쌍해서
내가 그냥 빨리 집에 가라고 했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사이암의 판정 승… 과연 그날이 사이암 생일이었을까 ?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하려고 귀여운 거짓말을 꾸며댄 것 같은데... 사이암은 나이가
많다 보니 부모님의 결혼 성화가 대단 한 모양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이암은
일찍 결혼해 집에서 애 낳고 살림만 하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쿠르드족 여자들이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 하는가보다. 그러니 나랑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 보니 날 좀 더 붙잡고 싶었다 보다.
무슬림은 술을 안 하고 게다가 라마단 축제 전야라 술 마시는걸 상당히 꺼리지만
거긴 산장이라 보는 눈도 없고, 또 내가 술 못 할거라 생각 했는지 조금 쎈 터키
토속주를 자꾸 권한다. 아가… 내가 아직도 순진한 20살 아가로 보이냐...
내가 첨부터 넘 쎄게 나가면 이런 아그들이 겁을 집어 먹는 관계로… 술 맛이
약 같아 별로라고 살짝 빼니, 터키 주도는 첫 잔을 상대방이 비울 때까지 기다린 후
다음 잔을 마셔야 한다며 자기도 술을 안 마시고 내가 술 마시길 기다린다.
그래 ? 그렇다면 야 나 때문에 기다리게 할 순 없지. 걱정말고 맘껏 마시라고 큰 잔에
따라 놓은 내 술을 홀랑 마시고 내려 놓으니까 사이암이나 그 친구나 얼굴색이 변한다.
때끼놈.… 어디 이 누님을 이기려고 하냐…
이후로 사이암은 내가 자기보다 술이 세다는 걸 알았는지 더 이상 술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다. ㅋ.ㅋ.ㅋ… 이번엔 나의 판정승…. 하지만 과연, 이게 진짜 터키
주도일까 ??? 터키 사람들은 다른 무슬림들과는 달리 무척 개방되 있어서 술을 좀
하긴 하지만 정말 이런 주도가 있는지, 아님 사이암이 술 권하려고 한 소린지 다른
터키인들에게 못 물어 봤다.
이렇게 저녁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서, 나중에 한국에 오면 나도 우리 집에 식사
초대 하겠다는 말로 답을 한 후 피곤 하다고 하니 날 산장에 있는 깨끗한 숙소로 안내
해 준다. 거기서 대충 씻고 문 꽁꽁 걸어 잠그고 추워서 오돌오돌 떨기는 했지만
너무나 상쾌했던 산속의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새벽, 첫 차를 타러 가려고 6시에
다시 레스토랑으로 내려가니 이런 이런…. 아무도 일어난 사람이 없다!
참 나… 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안에서 자는 남정네들을 두들겨 깨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이암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릴 수는 더더욱 없고.. 가만있자…. 이제야
얘기가 맞아 들어 간다.
사이암이 날 여기에 데려 올 때는 나랑 저녁먹고 잘 꼬셔서 어찌어찌 해 볼 심산
이었는데 엊 저녁에 씨도 안 먹힐걸 안 관계로 맘을 바꿔 적당히 시간 끌어
아침도 같이 먹고 (어짜피 다른 사람들은 라마단이라 식사를 안 할 테니) 오전에
아라랏산에 다시 데려 간 후 그날 오후 2시 반 막차 시간 즈음에 시내 터미날로
보내줄 요량이던 모양이다.
것도 모르고 한참 동생이라고 털레털레 따라온 내가 멍청한 거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런 아그들 뜻대로 놀아날 순 없지.. 시계를 보니 지금 부지런히 걸어
내려가면 차 시간에 되겠지 싶어 융숭한 대접에 감사했고 한국에 오면 꼭 연락
하라고 전화 번호를 남겨 문틈에 끼워 놓고 상쾌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안개가
살짝 낀 화려한 색채의 산길을 흥얼거리며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쓸데없는 오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지 깜빡 했다.
한 200m 즈음 내려 왔을까 ? 갑자기 커다란 양치기 개들이 멀리서 날 발견하고
길 양쪽에서 내게 미친 듯이 짖어대며 달려든다…
내가 24살 때, 잔인하기가 야쿠자랑 비교도 안 된다는 태국 마피아들에게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입 조심 하라는 협박을 받았을 때도(그때 그넘들 등 뒤로
태국 경찰이 있었는데, 그 경찰 사태를 짐작 했는지 모른 척 하며 도망가 버렸었다)
이렇게 얼어 붙진 않았다. 정말 길 한복판에 두 발이 그대로 얼어 붙어 앞 위에
전 속력으로 달려오는 놈들을 돌아보는데, 내가 겨우 할 수 있었던 건 모기만한
소리로 “애들아 이러지마… 착하지? 진정해” 이 말 뿐 이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지, 들개들 때문에 위험하니 절대 혼자 가지 말란 길을, 것두
지나가는 사람 전혀 없는 꼭두새벽에 혼자 털레털레 지나간 것이다. 차라리
사자 아가리에 머릴 디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