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사이드
눈을 떠보니 나의 앞에 바다가 있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내가 그 당시 알 수 있었던 것은……
눈을 떠보니 난 바닷가의 모래 사장에서 기분좋게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푸른색이었고, 날씨는 따뜻해서 낮잠자기에 딱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곁에서 파도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하여서 몇분동안 난 기분 좋게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순간 난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내가 왜 여기있지!”
나의 이 외침에서 기억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왜 있는지도 모르겠고, 더군다나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난 서둘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닷물에 비친 내 모습은 흰색 긴 셔츠와 회색 바지를 입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보니 그곳에는 김성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찰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어쩌면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나는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생각 날 것이라고 믿고 바닷가를 거닐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닷물이 술렁거리면서 모래알들과 부딛끼는 모습을 보면서 이쪽 해안가에서 저쪽 해안가로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어슬렁거리며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저 넓은 바다의 끝에 자리잡은듯 전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불안, 두려움, 초조함, 슬픔, 절망, 괴로움, 피로함 등등의 감정이 서서히 검푸른 바닷물처럼 마음속에 차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난 단지 눈을 감고 바닷가의 내음을 음미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지요. 시간은 모래알처럼 나의 손끝을 스치며 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멍하니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서서히 햇살이 자취를 감추고 푸른 달빛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목소리 덕분에 난 내가 유령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겨우 인식 할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세상과 나 사이의 자그마한 실마리를 누군가가 잡아당기어 주었습니다.
“학생 여기서 뭐하는 거야?”
저음의 목소리는 어두움속에서 퍼지는 베이스의 연주소리 같았습니다.
“ 이 밤늦은 시간에 왜 여기에 있어?”
얼굴에 온통 주름이 진 투박하고 조금은 험상굿어 보이기까지 하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추긍하셨습니다.
“……”
난 잠시 내가 벙어리가 된냥, 아니 이세상의 말을 잊어버린냥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됐다! 우선 나를 따라와라.”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뒤돌아서서 걸어가셨고 난 그 뒤를 쫓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은 바닷가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 있는 허름한 양철지붕으로 만들어진 집이었습니다. 그곳 마당에는 그물과 여러가지 낚시를 위한 도구들이 늘어져 있었고 누런 강아지 한마리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방하나를 비워주시며 그곳에서 쉬라고 말하셨고 곧 따뜻한 밥과 국, 간단한 반찬 몇가지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허기가 져있었던 나는 그것들을 맛있게 먹었고 할아버지는 상을 치우시면서 “이곳에서 쉬고 싶은 만큼 쉬고 마음이 내킬 때 집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시곤 입을 다무셨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후 10여년간 계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