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고 약한자에게 행하는 그들에게 어떠한 심판을 해야할지 ......"
펌글..>>>>>
[청주성모병원과 부크홀데리아 세파시아(Bukholderia Cepacia) ]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업을 하던 남편이 IMF 환란으로 병을 얻어 6년 전에 돌아 가셨고, 올해 대학입시를 두고 있는 두 아들과 살고 있는 주부입니다.
저 혼자 힘으로서는 도저히 감당 할 수 없는 일을 당하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제가 거짓말을 했거나 제 잘못이라면 벌을 받겠습니다.
부디 세밀하게 조사를 해 주셔서 진실을 밝혀 주시길 빕니다.
저는 2002년에 청주성모병원에서 오른쪽 무릎을 두 번 수술하고 2003년 8월 세 번째 수술 후 부크홀데리아 세파시아(Bukholderia Cepacia) 균에 감염이 되었습니다.
균 감염으로 염증이 생겨 오른쪽 무릎연골이 다 녹아 내렸고 심한 통증으로 현재까지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바깥출입이 어려워 거의 방에만 갇혀 있습니다.
담당의사 ( 변재용 ) 는 2003년 9월 23일 제가 균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2004년 4월 9일 아침회진 때까지도 “당신은 몰라도 된다. 병원에서 우리끼리 통하는 균이다.” 라고 숨겼습니다.
저는 2004년 4월 11일 친분이 있는 다른 의사를 통해서 병원에서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균은 병원 수술실에서 수술 과정에 감염된다는 사실도 그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측에 의료사고임을 알렸고, 2004년 8월 17일 의료사고 책임자인 기조실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으며 그 분은 담당 의사가 저에게 무척 미안해 하길래 절대 환자에게 표현하지 말라고 했다면서도 일이 잘 해결될 것처럼 말 하면서 오늘 우리 얘기는 둘만이 알고 다른 곳에 발설하지 말자고 해서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 후 합의를 위한 공식적인 모임이라고 해서 2004년 9월 1일 16시 30분 경 병원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연락받기로는 담당의사와 의료책임자가 나온다고 했는데 병원측에서는 다섯 사람이 나왔습니다.
기조실장, 담당의사, 행정처장, 원무부장, 원무계장이었고, 저의 가족인 두 아들은 학생들이라 저 혼자 갈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부터 묘한 위압감에 속에 오히려 제가 죄인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담당의사는 제가 핀제거 수술을 하고 퇴원전 일주일간을 거의 병원에 있지 않고 외박?외출을 했다고 했고, 원무부장이 “일주일만에 이런 균이 생기는 이유가 무언가” 했고 기조실장도 “밖에 나가서 어떻게 해서 감염이 되었나?” 하며 원인에 따라 책임소재를 따져야 한다며 다섯 사람이 야릇한 웃음으로 눈을 맞추었고 소리내어 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 앞에서 난도질당하는 심정이었고 그들은 그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또다시 담당의사는 제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며 일주일간을 거의 병원에 있지 않았다고 했고 제가 그렇지 않다고 하자 무슨 소리 하냐고 차트에 의한 사실이니 절대 거짓이 없다고 기조실장과 담당의사가 반박했습니다.
또한 기조실장은 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내 전략인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균 감염 의료사고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은 그 날 모임은 2004년 8월 17일에는 잘 될거라고 안심시켜 놓은 기조실장이 그의 전략에 저를 끌어들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왜 바보처럼 그 자리에서 뛰쳐 나오지 않았나 후회스러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분위기에서도 뛰쳐 나오지 않은게 잘한 일이었다 싶습니다.
만약 제가 그 때 나왔더라면 당신이 합의를 위한 모임을 거부해서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또 제게 책임전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 후 제가 외출?외박증을 확인하게 해 달라고 하자 원무계장이 섞여서 보관되었으므로 보여 줄 수 없다고 하길래 그동안의 의무기록을 복사 해왔습니다.
그 기록을 보면 추석 때 차례준비를 위해 2003년 9월 10일 외출했고 추석날 하루 집에 갔을 뿐입니다.( 2003년 9월 11일 ~ 9월 12일 1박)
외출 당시는 이미 수술자국 실밥을 풀어 샤워를 해도 된다고 병원에서 말 한 상태 였습니다.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2002년 7월 29일 과 같은 해 9월 11일 은 사고로 인대가 끊어져 2차례 수술을 받았고
2003년 8월 25일 (3차 수술) 오른쪽 무릎속의 핀 제거수술 후 균감염
2003년 9월 29일 (4차 수술) 염증제거 수술
2004년 4월 2일 (5차 수술) 염증제거 수술
2004년 4월 30일 (6차 수술) 염증제거 수술
6차 수술 후 퇴원 뒤에도 계속 무릎에 고름이 고였는데도 진료 받으러 가면 담당의사는 계속 합의만 종용했고, 항생제를 날마다 맞았는데도 심해져서(백혈구 수치가 12000이라고 했음), 다리를 절단할 상황까지 올 수 있다며 서울병원으로 가자고 원무과에서 제안했습니다.
저도 빨리 나아서 하던 일을 해야 하므로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기조실장이 이천만원에 합의를 먼저 봐야지만 치료를 해 주겠다고 해서 제가 거절했습니다.
이 사건에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 항상 내가 누군데 니까짓게 감히 와서 따지느냐 식의 불쾌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 담당의사가 추천한 서울의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균은 아주 희귀한 균으로 항상 잠복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게릴라성으로, 균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잡을 수 없어 완치가 안되고, 제 컨디션이 나빠지면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염려되니 핵의학 검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검사결과 보러간 날의 의사는 검사결과지를 보며 많이 놀랐고, 또한 이상할 정도로 심하게 화를 내면서 고함까지 쳤고, 조금 전에 변재용 선생과 이 일로 20분간 얘기했는데 저희가 또 와서 묻는다고 하며 처음 진료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그 날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는지 저와 같이 갔던분은 분해서 밤새도록 잠을 못 잤다며 다음날 서울의 그 병원으로 가서 병원장을 만나 항의하겠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진료 받으러 가서 “왜 저번에 검사 결과지를 보고 놀랬었느냐” 고 물으니 “생각보다 염증수치가 적어서 놀랐다” 고 했는데 염증수치가 적다는 것은 정상에 가깝다는 건데 그렇게 많이 놀란 표정을 지을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검사결과지를 복사 해 왔는데 적혈구 수치는 항생제 부작용으로 인한 정상인의 반 정도였고 백혈구 수치는 만성 골수염 상태 였습니다.
저는 통증에다 호흡곤란까지 와서 가슴이 답답하여 계속 얼음을 먹었습니다.
서울의사는 변재용의 스승이었고, 저의 정확한 몸 상태와 제대로 된 치료받기를 간절히 원했던 저는 그 병원을 그만 갔습니다.
제자와 진실 사이에서의 고뇌가 그런식으로 표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청주 성모병원에서는 저를 얼마나 무시 했으면 검사결과가 있는데도 의사는 절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제 말을 일축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통증이 심했고 ( 성모병원 입원당시도 통증이 심해 무통제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 진통제를 계속 맞았고, 마약성 패치제( Durogesic )를 붙이기도 했는데 구토가 심해서, 다시 마취제를 아예 실같은 관으로 들어가게 해서 일주일을 매달고 다녔음 ) 통증이 점점 더 심해서 밤에 잠도 못 자고 2004년 12월 16일에는 너무 아파서 밤에 성모병원 응급실로 갈까 하다가 원무계장에게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2004년 12월 17일 8시 경에 원무계장에게 전화가 와서 아무래도 아픈게 심상치 않으니 피검사라도 하게 해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정형외과 진료는 원무계장을 통해서 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
원무계장은 바로 병원차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며 기다리라고 했는데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병원차는 오지 않고 저는 울면서 기다린게 오후 4시까지 였습니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감으로 성모병원 원무과에 전화하니 원무계장은 벌써 출장가고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6시 15분에 고객지원센터로 전화를 해서 2005년 12월 28일 11시 20분으로 정형외과 진료예약을 하였습니다.
저녁 때 원무계장이 저의 집으로 와서 미안하다고 하며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하길래 담당의사가 피검사조차 안해주겠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 알면서 뭘 그러느냐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만 참고 내일은 병원 와서 진통제라도 맞자고 했습니다.
저는 내일이 토요일이니 일찍 서둘러 달라고 했더니 10시까지 전화를 해 주겠다고 또 약속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 집에 있는 조그만 돌맹이를 호주머니에 넣고 큰 아들과 병원으로 갔습니다.
너무 아파서 병원으로 갈때는 그 돌로 담당의사 머리를 부수고 싶었습니다.
진료실로 갔더니 텅빈 채 아무도 없었습니다.
곧 원무과 직원이 따라 들어왔고 담당의사는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고 했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원무계장은 또 출장가고 없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죽을 지경이라 왔는지 아느냐고 말하면서 제 앞에 그 사람들이 있으면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진료실 벽에 담당의사 사진이 걸려 있는게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미친 사람처럼 벽에 있는 액자들을 깨 부쉈습니다.
그 일로 병원에서는 제 아들과 저를 고발해서 청주 검찰청에 갔는데 휠체어를 탄 저를 공익요원들이 들고 3층에 가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2005년 3월 29일 14시 338호 검사실)
사흘 뒤 변재용 외래진료가 있는 날, 왜 피검사조차도 안 해주는지 담당의사를 만나러 갔다가 저는 휠체어에 실린 채로 들려내지고 제게 와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말도 못하게 직원들이 쫓았습니다.
제 큰아들은 개끌듯 끌려가서 저와 같이 원무과에 감금도 되었습니다. ( 2004년 12월 21일 )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KBS보도국 기자가 왔고( 2004년 12월 21일 11시경 ) 그제서야 저희는 풀려나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2005년 12월 27일 16시 30분에는 고객지원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내일 예약 된 정형외과 진료를 취소하겠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거부했더니 같은 날 19시 45분에 다시 전화가 와서 자기가 퇴근 할 때 예약을 취소시켜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들과 다시 진료 예약하러 갔다가 겹겹이 둘러싼 병원 직원들에 의해서 다시 원무과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 동안 성모병원에서는
2004년 9월 1일 합의를 위한 모임
2004년 9월 10일 치료받기를 원하면 합의부터 하라.
2004년 11월 3일 합의금에서 공제하기로 하고 우선 자녀 양육비 600만원 지급
2004년 11월 22일 이제는 시기상 합의할 때가 되었다고 하였고
2004년 12월 3일에는 원무과 직원 두사람이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서류를 가져왔는데, 병원 측에는 잘못이 없고 저의 오해라고 쓰여져 있었고 그것을 인정하라고 해서 왜 이렇게 거짓말을 써 왔느냐니까, 법으로 가게 될지 모르니까 재판할 때 제출할 서류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길래 저는 동의하지 않고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병원에서는 서울의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되면 생활비를 주겠다고 하더니 또다시 우선 가합의를 보고 금액이 적다 싶으면 2년 뒤에 법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고, 제가 집안의 가장인데 2년 가까이 일을 못하니 빚더미에 안게 되어 제 큰아이는 등록금이 없어 대학 입학을 못하고 올해 다시 수능을 보기로 하고 생활비와 이자를 벌기위해 공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의료사고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지 경제적인 고통의 가중과 항상 균에 대한 공포와 통증으로 인해서 제 삶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 또한 이 의료사고로 인해서 많은 고생을 했음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수험생이 엄마가 집에 없으니 끼니를 거의 거르고 다녔고, 저는 의료사고임을 알고도 계속 저를 무시하는 병원에 대한 분노와 아이들 걱정에 얼굴이 새카맣게 탔습니다.
지금도 항생제 합병증으로 귀 고막이 구멍이 나서 수술을 해야만 된다고 하며 한쪽 다리만 쓰다보니 이제는 나머지 한쪽다리 조차도 제대로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일에 관여하고 있는 그 한사람 한사람의 가족이 저처럼 되었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제게 많은 가족이나 든든한 배경이 있었어도 병원에서는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병원 방침이라며 통보만 했을까요?
병원측에서는 그때그때 말 바꾸기를 계속 하며 제가 대한민국 어느 병원을 가도 자기들은 누구에게 진료받으며 어떤 결과인지도 알 수 있고, 제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들은 이긴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 일을 알리면 당장의 피해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모든 법적인 배상을 제게 청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에게는 고문 변호사도 있고, 저는 병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병원의 이사장이 보낸 분은 저에게 길가다가 데모대에 쏜 총에 맞아서 억울하게 죽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 2005년 1월 5일 )
그래서 저는 당신의 옷 속에 감춰진 모습이 가증스럽다고 말 했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병원에 가서 죽을 생각을 했습니다.
나 혼자 몸이라면 정말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아들만 두고 그럴 수 없는 제 심정을 누구보다 이 땅의 엄마들은 잘 아실 겁니다.
지난 4월 21일 날입니다.
병원차를 제게 보내어서 병원으로 가서 담당자인 원무계장( 現 과장 )을 만났더니 이제와서 한다는 말이 병원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으니 합의해 줄 생각이 없다는게 병원방침이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에 저는 큰 아들의 작년 수능시험 전에는 공부에 방해가 될까 아들들에게 의료사고에 대해 알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심한 말을 하는 원무계장도 제게 의료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이 지경이 됐는데 가족들이 전혀 목소리가 없이 조용하다라고 말했습니다.( 2004년 10월 13일 )
담당의사도 평생 노동은 할 수 없으며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며 법으로도 갈 수 있다고 말 한( 2004년 7월 29일 ) 한달 후에( 2004년 9월 1일 )저를 투병 중인 환자가 병원 밖에 나가, 이상한 일로 병균을 얻어온 여자로 매도 한 것이 과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 됩니다.
또한 담당의사는 2003년 11월 27일 퇴원후 2004년 4월 2일 5번째 수술 받기까지 내 무릎은 연골이 다 녹아 내렸는데도 외래 진료를 올 때 마다 ‘왜 이렇죠?’ 하며 오히려 내게 되물었으며 파스와 연고만 주었고 2004년 9월 1일 합의를 위한 모임에서 그 사실을 제게서 들은 행정처장은 저에게 의사를 고발하라고 말한적도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게 힘없는 대한민국 국민의 현실입니다.
이제 저는 더 갈 곳이 없어 청주성모병원에 가서 죽게 되더라도 이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또한 저같은 희귀균에 감염된 환자가 본인은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수술만 받아 몸만 망가지고 병만 더 얻는 일도 있지 않을까요?
주위사람들은 저를 보고 왜 참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바보라고 했지만, 조사를 하게 되면 왜 제가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도 참아왔는지도 밝혀질 것입니다.
또한, 이사장측 사람이 저를 만나게 된 동기도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부디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십시오.
미천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